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12편

에피메테이아 2016-07-28 0







얼마만에 오는지 모르겠군요.(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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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광장.


“위상 변곡률,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5분 이내에 차원문이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알았어. 전 대원, 전투 준비.”

검은양 팀보다 먼저 도착한 특경대원들이 사방을 예의주시했다. 요즘 장비들이 변곡률 측정을 정확히 한다지만, 차원문이 대뜸 자신들의 뒤에 열릴 수도 있었다. 만사태평에 게으름으로 소문난 송은이 경정도, 지금은 옛날 ‘하얀 악마’ 때처럼 매섭게 주변을 훑어보았다. 손가락은 언제든 발포할 수 있도록 방아쇠에 아슬아슬하게 걸치고 있었다.

“검은양 팀은 아직 안 왔네.”
“출발한다는 연락은 받았습니다. 곧 오겠지요.”
“흐음~ 그거 이상하네. 클로저들이 우리들보다 늦게 오는 건 처음이지 않아? 아예 안 오면 몰라도.”

특경대 인원 중에서 클로저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을 꼽자면, 단연코 송은이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상식으로 지금 상황은 조금 생소했다. 스포츠카 달리듯 달릴 수 있는 클로저들이 특경대보다 늦게 도착한 일은, 특경대로 전근해온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거겠죠. 우리는 우리 일에 열심히 하면…….”
[위상변곡률 급상승! 차원문이 생각보다 일찍 열릴 것 같습니다!]

채민우 경감의 잔소리를 자르고, 급박한 보고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보고를 증명하듯 특경대의 앞쪽에서 보랏빛 파장이 심하게 일었다.

“사격 대기! 명령할 때까지는 쏘지 마. 놈들 나오기 전에 총알 낭비하는 놈들은 나중에 연병장 돌 각오하라고!”
“알겠습니다!”

차원문을 향해 총구를 겨눈 송은이가 대원들에게 단단히 지시를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겁을 먹고 먼저 사격을 하는 경우는 흔하고 흔했다. 화력 분산은 물론 사기저하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엄한 목소리로 부하들을 다그쳤다.

[차원문, 곧 열립니다. 10, 9, 8, 7, 6, 5…….]

그러는 사이, 보고는 더욱 더 급박해졌다. 점점 줄어드는 시간이 특경대원들의 심장을 옥죄어왔다. 시간이 5를 지나자 송은이도 바짝 신경을 곤두세웠다.

[저… 경정님. 위상 변곡률이 이상합니다.]

그런데 숫자를 외치던 목소리가 급변했다. 긴박함 대신 황당함이 가득 담긴 반응이었다. 뭐가 이상한지 물어보려던 송은이와 특경대원들은, 그 ‘이상함’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

“뭐, 뭐야 저건?”

차원문에서 나오는 빛은 보통 보라색. 차원종들이 사용하는 위상력과 같은 빛깔이었다. 인간들이 쓰는 정갈한 푸른빛 위상력하고 다른 음울한 색깔은, 이들이 인간을 적대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 보라색 위상력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난데없는 다른 색깔이, 눈부신 금빛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새로 나타난 금색의 빛은 차원문을 금방 집어삼켰다. 보라색 위상력이 저항하듯 반짝였지만, 지상에 나타난 태양처럼 밝은 빛에게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채 경감. 저거… 뭐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현상이라서 말입니다.”

3초. 보라색 위상력이 사라지는데 걸린 시간이었다. ‘위상 변곡률이 낮아진다.’는 보고가 뒤를 이었고, 특경대원들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했다. 차원문이 알아서 닫히는 일은, 돈을 주고도 보기 힘든 진귀한 경험이었으니까.

[위상변곡률 0. 차원종 출현 위험상황 해제하겠습니다.]

보고를 듣고도 다들 말이 없었다. 얼음땡 놀이라도 하듯, 전부 멍하니 차원문이 있던 방향만 쳐다보았다. 그러나 차원문이 다시 열리는 일은 없었다.

“어라. 진짜 끝?”

한참 후. 제일 먼저 소감을 말한 사람은 송은이였다. 허탈한 그녀의 말투가 특경대 전부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휴! 오늘은 이거로 끝인가?”
“그런 것 같아. 숫자가 그렇게 안 많아서 다행이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차원종이 오긴 왔었다.

“낮에 그 일은 뭐였을까요? 저도 경보가 울리다 해제된 경우는 처음 겪어봤어요.”

낮이 아니라 저녁 늦게.

“유정 언니도 모른다고 하시더라고. 이사님이 뭔가 아는 눈치이시긴 했는데, 직접 여쭤**는 못했어.”
“그냥 예감 같은 거 아니셨을까? 그분 하시는 거 보면 꼭 마법 같잖아. 제이 아저씨도 그분이 쓰는 힘을 마법 같다고 하셨고. 세하야, 넌 아는 거 있어?”
“내가 무슨 그분 대변인도 아니고… 나도 몰라. 자주 뵌 정도지, 그분이 어떤 힘을 어떻게 쓰는지는 깜깜하다고.”

경보가 다시 울린 것은 학교가 끝난 직후였다.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에, 그러니까 종례가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유정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마침 집에 갈 준비를 하던 검은양 팀은 즉시 출동할 수 있었고, 거북이 기듯 기어서 나온 차원종들은 신속하게 두들겨 맞고 나가떨어졌다.
일이 금방 끝나자, 아이들은 점심 때 있던 일에 관해서 쑥덕거렸다. 클로저 일을 시작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니 신기할 만도 했다.

“제이 아저씨! 아저씨는 아는 거 없으세요?”
“글쎄올시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긴 하네.”
“어, 어떤 거요?”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라고 불러주면 말해줄 수도 있는데.”

소피아에 대해 가장 잘 알 법한 제이에게도 의심의 눈초리가 돌려졌다. 제이는 대답을 구실로 오빠라 불러달라고 했지만, 그의 그러한 음흉한 의도는 단번에 간파 당했다.

“… 알았어요. 그럼 저희끼리 알아서 알아볼게요.”
“말씀하기 싫으시면 직접 말씀하셔도 되는데.”
“치! 제이 아저씨는 매정해요.”

유리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고민 없이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같은 남자인 세하와 미스틸테인의 반응도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슬비만은 ‘그나마’ 양심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상처가 되었단 사소한 사실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리라.

“너, 너희들 너무 쉽게 포기하는 거 아니니?”

제이가 아이들의 냉랭함에 울상을 지었다. 씰룩거리는 입과 볼이, 실망감과 아저씨로서의 비애를 표정으로 나타내주었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도 아마 영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검은양 팀에 참가한 이래로 이번이 10번째 실패. 정신건강을 위해선 슬슬 아저씨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된 거지?’

어찌되었건, 찝찝한 느낌은 제이를 제외한 아이들의 마음 한구석에서 똬리를 틀었다. 특히 계획과 정확성을 좋아하는 슬비는 더욱 그러했다.



‘차원종 경보가 해제되었다고요?’
[응. 이사님이 대기하라고 하고서 얼마 안 있다가, 갑자기 위상 변곡률이 낮아졌다니 뭐니?]

연락을 받는 슬비나 연락을 해온 유정이나, 처음 겪어본 사태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위상 변곡률이 자연스레 낮아지다니… 매뉴얼이나 사례집에서는 **도 듣지도 못한 일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제이야 그러려니 했겠지만, 책상물림인 유정과 이론을 주로 섭렵해온 슬비에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그래서 그들답지 않게 허둥지둥 대고 있었다.

‘그럼 저희는 어쩌죠? 마냥 대기하고 있기도 그런데…….’
[이쪽도 뭐라고 딱히 정하진 못했어. 국장님도 보고를 받고는 아무 말도 없으셨고. 음, 잠깐만 기다려볼래? 이사님에게 어찌할지 여쭤볼게. 그분께서 대기하라고 하신 거니까, 뭔가 알아도 아시겠지.]

그래도 유정은 어른답게 금방 혼란을 회복했다. 이번 일의 원흉(?)을 지목한 그녀는, 얼른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수화기 너머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말소리가 잠시 들려왔다. 몇 초 뒤, 아까보다는 평정을 되찾은 유정이 결과를 알려주었다.

[다시 변곡률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 연락할게. 이사님이 지금은 그냥 학업에나 충실하라고 하시니까, 대기 명령은 해제할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가요?’
[나도 이해는 안 가. 그런데 뭐 별 수 있겠니? 우리가 뭘 알아낼 수단도 없고, 위상 변곡률이 변하면 그때그때 맞춰서 행동할 수밖에. 아! 이사님께서 ‘걱정은 나쁘지 않지만, 가끔은 걱정을 안 하는 것도 좋다고.’란 말을 전해달라고 하셨어. 슬비 너에게 하시는 말씀 같더라.]



뭔가 연관성이 있다.
그것이 슬비가 내린 결론이었다. 차갑게 가다듬어진 이성과, 그동안 추리소설로 서툴게나마 쌓아온 추리력이 의혹을 부추겨왔다. 그러나 거기까지. 나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들쑤실 이유는 없었다. 쓸데없이 일을 키우는 걸 싫어하는 성정도, 호기심을 가라앉히는데 한몫을 했다. 넘쳐나려는 궁금증을, 슬비는 날숨과 함께 바람에 실어 보냈다.

“이걸로 임무 종료. 다들 복귀하죠.”

차원종을 처리하고, 시민들을 보호했다. 가장 확실한 사실은 바로 이거였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집요하게 파고들었을 그녀도, 지금은 ‘적당히’란 말을 알고 그대로 행할 여유가 있었다.

“예이~ 마침 저녁시간인데, 우리 같이 밥이나 먹을까? 외식이나 하자고.”
“전 이사님이 해주신 요리도 맛있던데… 너무 투정부리면 안 되겠죠?”
“어르신 요리가 맛있기는 하지. 내가 말씀드려볼 테니까 언제 또 얻어먹어보자고. 어르신이 형 말이라면 엔간해선 들어주거든.”
“야, 이슬비. 임무 끝났으니까 게임기 꺼내도 되지?”

그걸 마련해준 계기가, 동료들이 그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전투의 소음이 가시고 화기애애한 대화가 자리를 대신했다. 시끄러웠지만, 짜증보단 이유 모를 즐거움이 먼저 일었다. 슬비는 살포시 웃으며 그들과 함께했다.

“이사님이랑 유정 언니도 저녁 안 드셨을 테니,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자. 밥은 같이 먹어야 좋으니까. 제이 씨는 이사님한테 예의 좀 갖춰주세요. 그리고 세하 너는 밥 다 먹을 때까진 게임기 금지. 아직은 압수야.”
“에에? 왜! 어차피 차원종도 없잖아.”
“게임하면서 횡단보도 건너면 위험하다고.”






“외식?”
[네. 유리가 이 근처에 맛있는 고기집을 안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창 때 애들이라 워낙 고기를 좋아해서…….]

소피아가 유정의 연락을 받고 자신의 한손을 내려다봤다. 거기에는 오늘 음식에 쓰려던 각종 식재료들이 봉투에 담겨져 있었다. 직접 만든 식사를 먹이고픈 마음이 가득이었지만, 유정이 덧붙인 말이 망설이게 했다. 사온 재료는 두부와 각종 채소와 된장… 오늘 메뉴는 고기 한 점 없는 신선한 ‘채식’이었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로구나.”
[하하하, 죄송합니다.]
“되었다. 아이들을 위한 일이지 과인을 위한 일이 아니니까. 과인이 아이들에게 맞추도록 하마. 장본 물건들을 냉장고에 넣고 바로 따라갈 테니, 먼저 가보아라.”
[알겠습니다.]

아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었다. 이것저것 이유가 있지만, 요리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그녀였다. 다시 한 번 봉투를 내려다본 소피아는 고개를 빠르게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뭐. 오늘 실수할 뻔했던 값으로 치면 되겠지.”

그녀가 점심에 했던 ‘그 일’을 떠올리며, 소피아가 경쾌하게 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하늘색 원피스를 걸친 10대 소녀의 외형은, 그것만으로도 발랄하고 가벼워보였다.

‘그나저나 이대로 가도 괜찮나 모르겠군.’

한편으로, 머릿속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윗사람은 쉽게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소피아의 신조.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충실했다. 지난주 토요일의 훈련부터 오늘 있었던 일까지… 검은양 팀을 위해 준비한 각종 안배와 스케줄은 가상의 일정표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걸 계획하고 조정하는 것은 오롯이 소피아의 몫. 그녀에겐 그 부담을 감당할 의지도, 능력도 있었다.
지금 그녀를 만약 컴퓨터로 표현할 수 있다면, 경쾌한 발소리 대신 신경질적인 CPU의 처리음이 주변에 가득할 터였다.
약간의 실수만 빼면 스케줄은 예정대로였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어떨까. 토끼는 도망칠 굴을 여러 개 파는 법이라고, 그녀가 짜는 일정표는 항상 많은 가능성을 함축했다. 어느 가능성이 오더라도 예정대로 이루어지도록 기획하는 것이 소피아가 의도하는 바였다.



‘데이비드 리, 신서울 지부 국장에게서 수상한 낌새가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아!”

그 순간.
그녀의 뇌리에 전에 들은 불확실한 정보가 끼어들었다. 불현 듯 머릿속을 강타하는 예감처럼, 어떤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생각이었다. 잠깐 평정을 잃은 소피아가 비틀거렸다. 봉투 안에 가득 쌓인 식재료가 위태롭게 덜그럭거렸다. 마음이 헝클어졌다. 걸음도 덩달아 멈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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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편서 뵙겠습니다.(<-서둘러라 이놈!)






2024-10-24 23:10: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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