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로저스] 하이브리드 -혼성체- ] 8

칼질중독 2015-01-30 1

 서유리가 순찰을 나간 사이, 제이와 이슬비는 강남 유니온 사무소를 지키며 은하수를 감시했다. 감시라고는 해도 그냥 셋이서 같은 곳에 있었을 뿐이며, 하이텐션을 담당하는 유리나 슬비의 속을 긁는 세하가 없으니 차분하고 조용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제이는 슬비의 노트북을 빌려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으며, 슬비는 임무로 인해 빠진 학교 수업 진도를 자습으로 매꾸고 있었다.

 "………, 끄아아악 팔이, 내 팔이!!"

 하지만 하수는 언제까지고 정숙을 유지하는것이 무리였는지, 결국 심심함에 못참고 소리친다. 떨리는 오른팔을 왼손으로 쥐어잡으며 거칠게 숨을 가뿐다. 하지만 거기까지,

 "뭘 하든 두번째는 재미없는 법이지."

 "공부하는데 방해되니까 조용히 해주겠어?"

 제이와 슬비 두 사람의 가차없는 연계공격이 하수의 멘탈을 공격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하지만 하수는 거기에 물러서지 않고 연이어 말했다.

 "하지만, 심심하단 말이야. 이 일대는 사람들이 전부 대피해서 순 유령도시지, 유니온이 판단을 마칠때까지 난 너희들하고 같이 대기하고 있어야 하지, 난 너희들하고 다르게 뭐 할만한 것도 준비하지 못했단 말이야."

 18년만에 깨어나 목적이고 돌아갈곳이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에겐 버틸 수 없는 무료함인 것이다.

 그의 이야길 듣고 슬비는 한숨을 내쉬면서 공책을 덮었다.

 "답답한건 너 뿐만이 아니야. …주민들의 피해가 커져만 가고 있는 상황에서도 유니온의 지원은 계속해서 늦어지고 있어. …누군가에 의한 악의적으로 말이야."

 여전히 강남 곳곳에선 차원종의 반응이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차원문을 생성해낼 정도의 위상력을 보유한, B급 이상의 차원종이 숨어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숨어있는 차원종을 모두 끌어내 강남의 안전이 확인될때까지, 검은양 일원들의 임무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본래대로라면 훈련생으로 이루어져있는 검은양 팀이 이런 대규모 임무를 단독적으로 수행하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을 터였다. 승급시험이 앞당겨지고, 무자비한 현장 시험 내용을 제시한것에 검은양 일원들은 오히려 사기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수습요원으로 승급하였다.

 …지금의 검은양 일원들은 엄연한 수습요원으로서 'B급 차원종 비상사태'를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의 팀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지금의 검은양은 결코 약한 클로저 팀이 아니다. B급 차원종 정도는 큰 위험없이 처치할 수 있는 엄연한 수습요원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강남 사태의 해결에 늦어지게 된 이유라고 한다면…

 "하긴, 펜리르하고만 마주하지 않았더라면 좀더 일찍 유인전을 벌였을태고, 지금쯤 우리들의 임무도 끝나갔을태지."

 라는 것이다. 비록 하수에겐 아무런 악의도 없었어며 결코 인류의 적이 아니라고 한들, 그의 팔에 묶여있는 펜리르가 지금의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일어나 버린 현실. 슬비의 눈에는 이 상황에서 불만을 드러내는 하수가 곱게 보일리는 없는 것이다.

 "으으윽…,"

 하수는 뭐라고 딱히 반론을 펼칠 수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선 버티기 힘든 무료함인 것이지만, 검은양에게 있어서는 억울하면서도 견뎌야만 하는 부조리였던 것이다.

 하수가 주눅들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 슬비는 헛기침을 몇번 하더니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바꾼다.

 "하지만…, 네가 펜리르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렇다고 해도 너 혼자서만 힘든게 아니니까 좀더 인내를 가지라고."

 슬비는 그가 너무 맘 상하지 않게 애써 말한 것이었지만, 하수는 그 말에 헛점을 찔러 태클을 가했다.

 "하지만 그거하고 너희가 나하고 안놀아주는건 전혀 관계 없잖아?"

 그의 어이없는 소리에 슬비가 소리친다.

 "뭐어? 왜 우리가 너하고 굳이 놀아줘야 하는건데? 우린 너와 네 안의 펜리르를 감시하라는 임무를 받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지금 나에겐 아는사람이라곤 너희밖에 없고, 난 친해지고 싶은데 말이야."

 하수의 그 말에 슬비는 말문이 막혔다. 슬비에게 있어서 하수라는 존재는 다가가기도 받아들이기도 껄끄러운 복잡한 심정이었다. 하수와 펜리르를 동일시봐선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통해 세하가 다치는 모습을 떠올릴 뿐더러, 자신은 거기에 흥분하여 그를 차원종으로 취급하여 죽이려들었다.

 "하아, 니 좋을대로 해.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은 방해하지 말아줘."

 슬비는 한발자국 물러서면서도 프라이드를 굳히는 식으로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그런데, 이젠 너도 꽤나 편하게 불러주네?"

 하수의 그 말에 슬비는 순간 흥분하며 대답한다.

 "뭐, 뭣 불만있어? 지도 같은 18살이라면서 편하게 부르라 강요한건 너잖아?"

 "그야 그렇지만, 왠지 넌 안그럴줄 알았거든."

 그 짧은 시간 사이에 하수는 검은양 일원들의 성격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딱히 하수가 눈치가 빠르다기 보단 그만큼 일원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알기 쉬웠던 탓이다. 실제로 슬비는 하수에게 말을 놓았음에도 그것이 익숙하지 않아 어색한 기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유리하고 세하가 이미 편하게 부르고 있는데, 나 혼자 따로 놀면 이상하잖아. …단지 그거 뿐이야."

 그런것이다. 서유리야 본래부터 명랑하고 사교성 좋은 아이라 하수를 보고 말을 놓는게 어렵지 않았던 것이며, 세하는 딱히 말을 놓는 것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수가 슬비와 마찬가지로 18살이고, 그래서 친해지고 싶어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럼 어째서 하수는 제이 아저씨한테 말을 놓는거야? 18살이라면서."

 하지만 하수가 말을 놓는 상대에 대해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서 슬비가 묻는다.

 "흠…, 그게 그렇게 거슬리는거야? 그럼 나도 제이 아저씨라고 부르면 되는건가?"

 하수가 그렇게 대답하자 버럭 화를 내는 아저씨가 한명 있다. 제이 그는 잠자코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생뚱맞게 자신에 관한 화제로 이야기가 바뀌더니 기어코 아저씨 소리가 튀어나온 것이다.

 "아저씨는 누가 아저씨라는거야?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그리고 하수. 넌 형이라고도 부르지마. 너한테 형이라고 불릴만큼 안늙었어."

 그런 모순이란 말이다. 사실 하수 본인 자체가 존댓말을 모르는 성격이긴 하지만, 그것이 과거 차원전쟁의 영웅으로 알려진 '은하수'의 인지도와 합쳐져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김유정도 말을 놓긴 했어도 그를 여전히 '하수씨'라고 존중하게 부르는 것도, 그녀에게 있어서 '은하수'란 인물은 과거 세상을 구한 언니 오빠들중 한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정작 하수 본인은 자신이 얼마만큼이나 유명한지에 대해선 아직까진 잘 모르지만말이다.

 

 

 

 

 

 유리가 순찰을 마치고 돌아올때쯤의 시간이었다. 조용하던 방 안으로 슬비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김유정 이었다.

 슬비는 하던일을 멈추고 곧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유정언니?"

 "큰일났어 슬비야! 얼른 제이하고 함께, 강남 사거리 쪽으로 가줘! 하수씨한텐 내가 따로 상황을 설명할 태니 신경쓰지 말고 얼른 출발해! 유리도 이미 그쪽으로 가고있어."

 다급하게 말하는 김유정의 말이 긴습한 상황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통화의 분위기를 읽은 제이도 몸을 일으키고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바로 출발할게요.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난거죠? 차원종인가요?"

 슬비는 제스처를 통해 제이를 이끌고 요원 휴식실의 문을 열고 나왔다. 하수는 그저 어리둥절해선 그 뒤를 조심스럽게 쫓아간다.

 "갑자기 밝은하늘에 천둥이 내리쳤어. 천둥은 강남 사거리에 설치되어있던 차원종 유인기에 떨어졌고, 말도 안되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유인기가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했어. …유인기 근처에 있던 송은이 경정과 다수의 특공대 요원들이 둘러쌓였다는거 같아. …가능한 그들이 탈출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

 도시에 숨어있는 차원종을 끌어내기 위해, 특수한 전파로 차원종을 자극해 유도하는 장치. 강남 사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차원종들이 개미때처럼 들끓는 끔직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서유리는 좀더 분주하게 움직였다. 육로를 통해 이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사무소의 옥상 계단으로 빠르게 박차고 오른다.

 "알겠어요. 곧장 날아갈게요."

 그곳- 강남 유니온 사무소로 부터 강남 사거리 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까지 멀지 않다. 두번정도 연속으로 사이킥 점프하면 닿을 수 있는 거리였다.

 뒤따라오는 제이와 함께 앞서 계단을 박차오르던 슬비는 위층의 병실에서 쉬고 있어야 할 세하와 계단과 복도 사이에서 마주쳤다.

 "세하…!"

 "슬비야?, 아저씨까지… 대체 무슨 일이에요?"

 여전히 왼다리가 움직이지 않아 목발을 짚고 있는 세하에게, 슬비는 짧게 한마디만 남겨두고 옥상으로 향한다.

 "세하 넌 쉬고 있어. 금방 돌아올거야."

 슬비는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전력이 되지 않는 세하에게 자세한 사정을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하여 그를 지나친다. 제이도 딱히 아무말 하지 않고 슬비를 따라 옥상으로 향했다.

 

 "금방 돌아오겠다니…, 보통 상황이 아니잖아 지금…!"

 

 창밖을 통해 보이는 사무실 건물 바로 앞의 도로만 해도, 차원종으로 들긇고 있다. 그들은 이쪽 건물은 공격할 생각 없이 전부 한쪽 방향으로 향하곤 있엇지만,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것 정도야 세하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엔 또 뭔 일이 일어난건지…."

 슬비와 제이를 따라가는것을 도중에 포기한 하수는 세하의 앞에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하수! …대체 지금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넌 알고 있어?"

 세하의 물음에 하수는 아는것 만큼만 대답해준다.

 "잘은 못들었지만, 유인기인지 뭔지가 멋대로 작동했다고…."

 "그게 사실이야?!"

 그 말에 놀란 세하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계단 아레 쪽으로 급히 내려간다.

 "야, 어디가는거야?"

 "여기서 이럴 시간 없어! 나도 가**다고! 셋이서 사거리에서 싸우는게 말이 돼?!"

 아직 세하의 중추신경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들고있던 목발을 버리고서, 위상력을 통해 억지로 다리를 움직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하지만 무리였던 것일까? 중간까지 내려간 세하는 다릴 잘못짚어 몸이 앞으로 쏠린다.

 "우와아아악?!"

 "세하?!"

 그대로 계단을 굴러 내려가는 세하를 쫓아 하수가 급히 내려왓다. 그렇게 까지 크게 다치진 않은거 같지만, 허릴 매만지면서 아픔을 호소하는 세하에게 하수는 손을 내밀었다.

 "그 상태론 무리야. 그 상태로 가봤자 일만 더 커질거야."

 하수는 그에게 냉정하게 말한다. 지금의 세하는 검은양의 전력에 있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하는 멈추지 않았고, 불안정한 폼으로 요원 휴식실로 향했다.

 휴식실에 들어와 방의 어느 한 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진 자신의 건블레이드를 손에 쥔다. 건블레이드를 손에 쥐는 순간, 그는 생각했다. 자신은 이슬비 처럼 위상력을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 다리근육을 컨트롤 하면서 자신이 이 검을 사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애초에 섬세한 컨트롤은 그와 맞지 않는다. 휘두르는 순간 근력을 강화하고, 위상력을 방출해 폭발을 일으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지금의 자신의 상태론 이 건블레이드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하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 판단이 섰는지 건블레이드를 들고서 뒤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자신을 쫓아온 하수가 서 있었고, 그에게 세하가 묻는다.

 "하수. …너 예전에 위상능력자라고 했지? 그것도 꽤 대단한 녀석이라면서."

 하수가 딱히 부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 세하는 그에게 건블레이드를 내밀면서 질문을 바꾼다.

 "검. 다뤄본적 있어?"

 하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검을 다루는건 구경밖에 못해봤어."

 하수의 대답은 비록 유감스러웠지만, 세하는 상관 없다는 듯이, 그에게 건블레이드의 손잡이를 내밀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서유리의 검도를 구경한게 전부였지."

 하수는 곤란하다는 듯이 대답하면서도, 세하가 내민 건블레이드를 건내받는다.

 "그렇게 말해도, 정말로 무기같은건 별로 안다뤄 봤는데…, ………어?"

 하수는 건블레이드를 건내받으면서 위화감을 느꼈다. 오른손으로 건블레이드를 바로 쥐어, 날이 위로 향하도록 한번 세워본다.

 "…역시, 무리인거야?"

 세하는 막무가내로 밀어붙혔을 뿐이다. 조금이라도 이 상황이 호전되길 원했던 것이다. 지금의 자신에겐 힘이 없다. 전쟁에서 영웅이라고 불렸을 정도인 이 남자라면 힘이 있지 않을까- 하고 세하가 멋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하수가 느끼고 있는 위화감은 세하의 판단과는 전혀 무관하다. 하수는 건블레이드를 들고, 복도로 나와 허공에다가 검을 몇번 휘두르고서, 세하를 보면서 말한다.

 

 "큰 도박이지만 잘하면 될거같아. …이거, 잠깐만 빌릴게."
2024-10-24 22:22:3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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