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슬비] 용서해주세요 - 9. 칼바크 턱스 -

Articulus 2016-06-2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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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


  "이슬비입니다."

  "크후후후하핫. 오랜만이로구나, 길 잃은 어린 양이여."

  "칼바크…, 턱스?"


  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분명히 칼바크 턱스의 목소리이다.

  이전에 몇 번이고 그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기에 익숙했으므로, 결코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는 지금 늑대개 팀을 이용해 공항을 점거한 이후, 모종의 이유로 탈취한 램스키퍼를 늑대개 팀에게 넘겨준 뒤 도피 중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가 어떤 이유로 연락을 한 것일까?


  "도피 중인 당신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건가요? 자백이라도 하려는 모양인가요?"

  "자백? 크하핫, 죄도 없는 자에게 죄를 짐 지우려는 셈인가? 과연, 양이 아니라 유니온의 개로구나."

  "발신자 위치 추적이 진행 중이에요. 당신은 곧 체포되겠죠. 그럼 이만."

 

  더이상 그와 대화를 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슬비는 전화를 끊기 위해 휴대폰을 귓가에서 떼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듯, 칼바크는 그녀에게 전화를 끊을 수 없도록 유도하는 말을 해왔다.


  "네게는 잃은 양 - 이세하 - 이 있지 않더냐?"

  "… 당신이 어떻게."  

  "내게는 미래예지의 힘이 있지. 나는 너희 검은양의 미래를 이미 보았노라."

  "당신, 뭘 말하고 싶은거야."

  "이제야 내 말을 들을 마음이 생긴 모양이군. 오늘 자정, G타워의 옥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겠노라.

  오직 너 혼자서 찾아오너라. 그리고 네가 귀 있는 자라면, 내게 와서 복음을 듣거라."

  "뭐?"

  "자정이다. 그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너의 연인을 구할 복음은 영원히 듣지 못하리라."



  뚝-.

  전화가 끊겼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다.


  그는 언제나처럼 자기가 하고싶은 말만 하고서 끊어버린다.

  알 수 없는 남자, 칼바크 턱스는 도주중임에도 굳이 신서울의 한복판으로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기에 그는 그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알 수 없지만 가야만 한다는 생각만 이슬비에겐 들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강남 사태 때도 칼바크의 도움을 얻은 바가 있는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그의 말을 믿어보아야할까?


  "오늘 자정."

  그녀는 짧게 말하고 G타워가 있는 강남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타워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그녀는 어두컴컴한 강남의 밤거리로 향했다.


.

.

.


  "네? 그게 사실인가요, 채민우 경정님?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전화를 내려놓는 김유정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었다.

  기쁨의 눈물이고, 안도의 눈물일 것이다. 그녀는 약간 감격한 목소리로 세 명의 팀원들에게 말했다.


  "슬비를 찾았대. 남산 타워에 가 있었다더라."

  "정말이야, 유정 씨?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된 거야?"

  "강남으로 떠났다고 해요. 이곳으로 찾아오려는게 틀림없어요."

  "다행이군. 대장마저 떠나버렸다면, 우리 팀은 정말 위기였을텐데."

  "정말이에요. 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검은양 팀의 소집장소인 이곳은 정말 오랜만에 방문하였다.

  그동안 이곳 저곳의 일에 투입되던 차라, 이곳에 마지막으로 방문한건 신논현역에 말렉이 출현하던 때였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들르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겨우 그들은 안식처에 들어왔다.

  익숙한 방의 향기와 곳곳에 놓인 의자들이 그들을 반겼고, 그들은 이 안에서 계속해서 외부의 소식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시간 째, 드디어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 들린 것이다.


  미스틸이 기쁨에 취해있던 김유정에게 물었다.

  "유정 누나, 혹시 슬비 누나는 그곳에 왜 갔었다고 해요?"

  "음… 사실 그건 나중에 슬비가 오면 말하려고 했는데."

  "세하를 만났죠, 거기서?"


  우연치않게 그녀가 말을 이어가려던 찰나에, 서유리가 끼어들었다.

  유리의 정확한 지적에 유정은 다분히 놀란 느낌이다.


  "어? 어… 맞아, 유리야.

  특경대의 보고에 의하면, 거기서 슬비는 세하와 만났었대. 하지만 세하는 특경대 헬리콥터가 들이닥치기 무섭게 사라졌고."

  "세하를 거기서 만났다는 건, 아직 세하가 이성을 잃지 않았다는 말이에요.

  아직 차원종이 완전히 되지 않았어요, 세하는!"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유리는 말했다.

  그럴만 하다. 그들의 동료였던 그를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기에, 그를 다시 인간으로 만들 또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기에.

  그녀의 흥분을 가라앉히며 유정은 말한다.


  "유리야, 진정해. 아직 세하가 우리에게 이적행위를 하지 않았고, 슬비와 접촉했던 것을 봤을 때 아직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남아있는게 틀림없어.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하는 분명히 차원종의 힘을 받았고, 따라서 차원종의 힘을 세하에게서 어떻게든 분리시켜 놓지 않는한 여전히 그는 차원종이라는거야."

  "방법이 없을까요, 언니?"

  "찾아봐야겠지만 없지는 않을거야… 정도연 씨에게 이미 말을 해두었으니까, 곧 머지않아 답이 올거야. 그리고…,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만은 않았으면 해, 유리야… 이미 유니온은 세하에 대해…"

  "그쯤 하지, 유정 씨."


  제이가 유정의 말을 끊었다.

  그녀의 입에서 어떤 말이 이어질지 뻔히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이 이상 팀원들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테인이와 유리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 너무 늦었으니까.

  유정 씨와 내가 여기에 남아서 일을 마무리짓겠어. 그리고 슬비가 돌아오면 바로 너희에게도 알려줄게."

  "아뇨, 저희도 여기 남을 거예요."

  "맞아요, 아저씨. 저희도 남아서 슬비 누나를 기다릴 거에요."

  "어른들이 말하면 들어. 슬비가 이대로 안 돌아오는게 아니잖아? 그러니 두 사람 모두 돌아가도록 해."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근엄함이 느껴진다.

  정말로 그가 진지해질 때에만 내는 그 낮은 목소리를 기억하기에, 유리와 미스틸은 이것이 매우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생각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들은 더이상 캐묻지 않고 돌아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인사를 남기고서 회의실 밖으로 나갔고, 방 안에 단 둘이 남은 김유정과 제이는 저마다 크게 한숨을 지었다.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는 하룻밤이었다.


 


  ◆ 9-2


  휘이잉-

  세찬 밤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고층 빌딩의 옥상 위의 헬리포트에는 긴장감이 맴돈다.

  그 위에서 단발의 분홍 머릿칼을 흩날리는 소녀가 우두커니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오른쪽 팔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자주 바라보면서, 시간을 계속해서 체크했다.

 

  현재 시간은 다음 날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기 전까지 30초를 남겨두고 있는 때이다.

  이제 30초 후면 이 소녀 - 이슬비 - 가 검은 붕대의 남자 - 칼바크 턱스 - 와 약속한 시간이 된다. 그녀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분 전이었지만, 그 시간동안 그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슬비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몇 시간 전, 연인과 나누었던 그 대화를 회상했다.


  『내가 언젠가 이성을 잃고 너를 알아 보 지 못하게 되면… 그 땐 니 손으로, 내 심장을 찔러줘.』


  "그렇게 놔둘까봐?"


  그녀의 눈가는 또 젖어 있었다.

  찬 바람에 눈물은 쓸려나갔지만 눈시울은 분명히 촉촉했다. 그 정도로 그녀의 사랑은 진실했다.

  그녀를 향한 그 남자 - 이세하 - 의 사랑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와 그는 하나의 목적지로 가기 위해 서로 다른 방법을 취했다. 하지만 목적지에서 그들은 반드시 재회한다. 그리고 그가 말한대로 그는 분명히 돌아온다. 그녀는 그의 말을 믿었다, 그는 반드시 돌아온다고.


  삐익-

  손목에 찬 시계가 정시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다.

  아마도 자정이 된 것이 틀림없다.


  뚜벅뚜벅.

  두 번의 발자국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가 찼으니, 와서 복음을 들을지어다."

  "칼바크 턱스."


  슬비는 돌아섰다.

  거기에는 검은 붕대로 얼굴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복장은 언제나와 같이 코트 차림의 그는 차원종의 힘으로 충만한 자신을 보이기라도 하듯 붉은 빛으로 가득한 두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녀는 곧바로 물었다.


  "길게 이야기할 시간 없어. 당신은 세하를 구할 방법을 알고 있지?"

  "크후후훗. 당돌한 자로다. 과연 양들을 이끄는 양들 중의 양이로구나.

  잃은 양을 되찾고 싶으냐?"

  "당연한걸 왜 물어? 세하는, 내게 전부니까."

  "과연 사랑은 놀랍구나. 너의 말에서 조금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군."

  "빨리 말해줘! 세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칼바크 턱스는 등 뒤로 팔짱을 낀채로 말했다.

  "그는 너에게 말했지, 반드시 되돌아오겠노라고.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소망이다. 그는 결코 스스로의 의지로는 인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잠깐… 그게 무슨 말이야."

  "이미 강남 사태 때 경험한 것이 아니었나? 차원종의 힘을 받아들였을 때, 너희는 죽음을 각오하고서 아스타로트와 싸움을 벌였지. 그것은 다시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정한 것이 아니었나?"

  "……"

  "이와 마찬가지이다. 그는 결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냐! 세하는, 세하는 분명히 돌아온다고 했어!"

  "어리석은 자여, 신뢰는 언제나 절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어찌하여 모르는가?"

  "아냐... 세하는, 세하는 반드시 돌아와!"


  『약속할게… 내 일이 끝날 때까지 내가 이성을 잃지 않으면, 꼭 돌아올게, 이곳으로.

  너의 남자친구로서, 약속할게. 꼭, 그 때가 되면, 꼭, 다시 돌아올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나를 기다려줘.』


  칼바크의 절망적인 말과 이세하의 말이 오버랩되면서 그녀는 곧바로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음만을 쏟아내었다.

  현실에 대한 부정, 그리고 그를 향한 원망, 이 모든 것이 담긴 그녀의 울음을 보면서 검은 붕대의 남자는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겨우 울음을 주체하고서 슬비는 물었다.


  "당신! 당신은 알지! 당신은 안다고 그랬어, 그를 구할 방법을!"

  "그를 구할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너에게 해주어야할 말이 있다."

  "해, 주어야할, 말?"

  "너희를 배신한 자, 그가 꾸미고 있는 계략으로서의 인류의 미래를 들려주겠다."

  "계략…"

  "그는 진실로 인류의 멸망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살아남은 소수의 인류를 지배하는 신세계의 질서를 꿈꾸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이곳이 겪을 일은 참담하기 그지 없지."

  "더 자세히 설명해줘…"

  "그가 베로니카에게서 흡수한 차원종의 힘은 중력을 제어하는 능력이다. 그는 그것을 인류의 멸망에 사용하려는 것이다."


  칼바크의 말은 정확했다.

  실제로 데이비드와 그녀가 맞딱뜨렸을 때,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붙잡은 것은 매우 강력한 중력의 힘이었으니까. 그녀의 염동력만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그 막대한 힘을 그는 가지고 있다.

 

  "그걸로 어떻게 인류를 멸망시키겠다는거야."

  "바로 저것을 사용해서."


  칼바크는 오른팔을 들어올려 밤하늘 정 중앙에 와 있는 보름달을 가리켰다.

  오늘따라 유난히 빛나보이는 그것을 가리키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저 빛나는 달이 이 지구에 가까이 오게 되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야… 자연재해가 일어나겠지."

  "그렇다. 아마도 달의 힘에 의해서 아마도 이곳은 물바다가 되어버리겠지."

  "…!"

  "눈치챈 모양이군. 인간에 의한 재앙은 강남 사태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참혹할 것이다.

  만약 이대로 그를 놔두게 된다면, 분명히 내가 말한 미래는 이루어지리라."

 

  끔찍한 사실이다.

  저 달을 지구 가까이 끌어오는 것만으로 엄청난 피해가 있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렇게 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만 한다. 칼바크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인류의 미래를 해치는 것이기에.


  "허나 근심하지 말지어다."

  "어?"

  "잃은 양이 인류의 원수를 무찌를지니."

  "잃은 양이라면 세하를 말하는거야?"

  "그렇다. 차원종의 힘을 얻은 그라면, 제3위상력에 각성했을 터. 그렇다면 그를 무찌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그는 영원히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은 대가를 요구하는 법, 그렇기에 그의 생명과 맞바꾸어 인류를 구해내는 것이다."

  "말도 안돼! 당신은 세하를 구할 수 있는 법을 알고 있댔잖아!"

  "물론, 당연히 알고 말고."

  "그 방법이 뭔데!"


  슬비의 다그침에 칼바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웃긴 것인지 그의 웃음은 좀처럼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크후후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으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재미있구나! 허나 구원에는 피흘림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너는 그를 위해 피를 흘릴 각오가 되었는가?"

  "…… 희생이라면, 언제든지 각오가 되어있어."

  "음후후하하하핫! 좋다! 네게 복음을 전해주겠노라! 이 복음을 듣고, 가서 잃은 양을 찾거라!"

  "말해줘."

  "그를 만나거라. 그를 만나서, 너의 모든 위상력을 그에게 쏟아부어라."

  "뭐? 같은 성질의 위상력이라고 하더라도, 강제로 주입하는 건 안돼! 위상력은 조금만 자신의 컬러와도 달라도 다른 위상력을 배척한단 말야. 그렇게 했다가는 세하가 위험해!"

  "방법은 이것 뿐이다. 네 위상력이 차원종의 위상력과 새로이 결합하여, 그의 위상력으로부터 차원종의 힘이 분리되도록 하겠지. 물론 그럴 경우에 네가 위험해지겠지만 말야."

  "내가 위험해지는건 상관 없어. 하지만 세하는!"

  "그의 목숨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너의 희생을 원할까?"

  "뭣…"

  "말 그대로이다. 그가 너의 희생을 원할까?"


  칼바크의 말은 슬비로 하여금 선택을 더듬거리게 하였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도 그녀를 사랑한다. 위상능력자로서 자신의 모든 위상력을 쏟아 붓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생명을 버린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녀가 없는 세상, 그것을 그가 원할까?

 

  "잘 생각해보거라, 어린 양이여.

  그가 계속 차원종으로 남게 하든지, 아니면 인간으로서 비극의 삶을 살아가게 하든지, 그것은 너의 선택에 달렸노라."

 

  그렇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녀에게 달린 것이다.

  그녀가 어떤 선택지를 선택할지에 따라 세하의 인생은 변한다.


  제 일의 선택, 그가 차원종으로 계속하여 남게될 경우, 이 경우에는 서로가 살아있음을 알기에 안도하겠지. 하지만 그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또 다른 선택, 그녀가 모든 위상력을 그에게 쏟아부을 경우, 이 경우 그녀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 죽음을 각오한 이 길을 선택할 경우, 세하는 인간이 되지만 영원히 비극 속에서 살아야 한다.


  "이제 미래는 너에게 달려 있노라, 검은양이여.

  당분간은 작별을 고하마. 멀리서 지켜보겠노라."


  차원의 균열에서 나오는 보랏빛 섬광이 어두운 빌딩의 옥상 위를 일순간 밝혔다.

  그리고 그 틈 사이로 그는 빨려들어가듯 사라졌고, 금세 옥상 위는 평온을 되찾았다. 다시 평소의 G타워 옥상으로 돌아온 이곳에서, 슬비는 무릎을 꿇고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달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 9-3


  "슬비야! 괜찮니? 어디 다친데는 없어!?"

  "유정 언니… 제이 씨? 이 늦은 시간까지 왜."

  "대장, 이렇게 단독행동을 하면 유정 씨가 걱정한다고. 도대체 어딜 다녀온거야?"

  "일이… 좀 있었어요. 죄송해요. 징계는 내리시는대로 받을게요."


  자리에서 일어난 김유정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이슬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꼭 그녀를 안아주었다.

 

  "징계라니. 이렇게 돌아와준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데.

  앞으로는 절대 이런 행동하면 안돼, 슬비야."

  "네. 명심할게요, 언니."


  슬비를 토닥여준 후 유정은 슬비의 품에서 떠나서 물었다.

  "특경대에게 연락은 받았어. 10시 쯤, 남산 타워에서 세하와 함께 있었다며."

  "… 네, 사실이에요."

  "세하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니?"

  "별 이야기는 없었어요.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물었을 뿐이에요."

  "세하가 뭐라고 했어?"

  "데이비드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어요.

  유니온에서는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하면서."

  "그랬구나. 역시, 데이비드 때문이었구나."


  고개를 떨구는 김유정.

  그녀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이어가지 못했다. 이슬비의 말을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공항의 일에 신경쓰느라 제대로 세하를 케어하지 못했다는 그 죄책감이 그녀에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말없이 고개를 떨군 것이겠지.

 

  그녀의 속 마음을 알고 있는 제이가 그녀를 대신하여 물었다.

  "그래, 대장. 그 외에 또 다른 이야기는 안 나눴나? 예를 들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생각같은 건 없는가, 같은 거."

  "물어봤어요. 그리고 꼭 돌아온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칼바크, 그가 말하길, 세하는 본인 스스로 다시 인간이 될 수는 없다고 했어요."

  "칼바크? 칼바크 턱스를 말하는건가, 대장?"

  "네. 세하와 헤어진 후에, 칼바크에게 연락이 왔어요. 단 둘이 만나자고.

  그래서 그를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의외의 일이었다. 슬비가 칼바크를 만났다는 일은 전혀 모르고 있던 그들이기에, 다음 말을 곧바로 이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놀란 유정이 그녀에게 다시 한 번 안부를 묻듯 말했다.


  "칼바크와 접촉했을 때, 별다른 일은 없었어? 공격을 받았거나, 그런건!"

  "아뇨, 없었어요, 언니. 안심하셔도 되요. 칼바크는 제게 조언만 해주고 떠나갔어요."

  "조언? 그가 조언을 해주었다고?"

  "네. 그 때 그는 세하가 돌아올 수 없다고 했어요."

  "…… 말도 안돼."


  온 몸에 힘이 빠져버린듯 유정은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현기증에라도 걸린듯 넘어질 것 같이 주저앉았기에 슬비와 제이 모두 깜짝 놀랐지만, 그들의 부축을 물리치고서 그녀는 겨우 테이블에 상체를 기대었다.

  충격이 클 것이다. 데이비드에게 경고를 쏟아놓은 뒤에도 그녀는 이렇게 주저앉았다. 세하가 차원종이 되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분명히 그녀는 이렇게 충격을 받았으리라. 그런데도 이런 큰 충격을 또 다시 받았으니, 그녀의 건강에 대해서도 걱정을 해야할 정도일 것이다.

 

  "유정 언니, 오늘 너무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이만 들어가보세요."

  "아냐… 이대로 들어가면 안돼. 세하가, 세하가 겪었을 고통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닐테니까."

  "대장, 칼바크가 또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나?"

  "데이비드가 꾸미고 있는 계획에 대해서 말해줬어요."

  "자세하게 말해줘."

  "데이비드가 흡수한 차원종의 힘을 이용해서 달을 지구에 가깝게 끌어올려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지구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리고 인류를 궤멸시키는게 그의 목적인 것 같아요."

  "잠깐… 정말 칼바크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 큰일이야. 빨리 데이비드를 쫓아야만 해."

  "거기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세하가 데이비드를 반드시 무찌를테니까."

  "그 후에는? 동생은 절대 돌아오지 못하는건가? 목표를 이루고도?"

  "그래서 칼바크가 한 말이 있어요."


  김유정과 제이의 시선이 다시 슬비에게 쏠렸다.

  어느 쪽이든 세하와 자신에게는 비극일 수밖에 없는 결말이기에 말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임에도, 슬비는 용기를 내어 칼바크가 들려주었던 방법을 말해주었다.


  "저의 위상력을 모두 세하에게 쏟아부으라고 했어요."

  "대장의 위상력을 동생에게? 하지만 위상력은 같은 성질이라고 하더라도 본인의 위상력이 아니면 서로 반발하는 성격이 있어. 그렇게 되면 동생이 위험해지지 않나? 그리고 위상력을 모두 쏟아부으면, 대장의 목숨이 위험해."

  "세하는 안전할 거라고 했어요. 그 반발력이 세하로부터 차원종의 힘을 떼어놓을테니까."

  "대장의 목숨은!"

  "…"


  계속해서 듣고 있던 유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슬비야,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하지만, 절대로 하면 안돼. 이건 명령이야."

  "언니, 하지만!"

  "세하를 구할 방법, 분명히 또 다른 방법이 있을거야. 찾아볼테니까, 제발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줘. 부탁이야."


  강남 사태 때 애쉬와 더스트에게 차원종의 힘을 받은 검은양 팀이 아스타로트를 물리치기 위하여 용의 영지로 떠나가기 전에도 유정은 이렇게 그들에게 경고했었다.

  물론 그 때는 그녀의 경고를 무시하고서, 용의 영지로 안으로 침투한 검은양 팀은 결국 아스타로트를 무찌르고 강남 상공의 차원문을 닫는데 성공했었다. 그 때는 애쉬와 더스트의 변덕이 있었기에 그들이 목숨을 되찾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이상 아니다. 그런 변덕은 더이상 기대할 수 없다.


  그렇기에 유정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무모한 행동을 이미 보였던 그들이었기에, 만약 슬비가 희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게 되면, 그녀는 분명히 다른 클로저들을 이용해서라도 슬비를 붙잡을 것이다. 절대로 더이상 팀원을 잃는 일은 경험하기 싫은 일일테니까.


  "밤이 너무 늦었어. 벌써 새벽 1시야. 아침 8시에 작전 브리핑이 있으니, 이만 우리 모두 쉬어야할 것 같아. 충분히 우리는 하루를 바쁘게 보냈어. 이 이상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아.

  유정 씨, 이만 우리 모두 들어가서 쉬도록 하지."

  "제이 씨의 말이 맞아요. 우선은 우리 모두 쉬고,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죠.

  슬비야, 강남 GGV에서 아침 8시에 늑대개 팀과의 협동작전의 브리핑이 있어. 검은양 팀의 리더로서 꼭 참석해야만 해. 알겠지?"

  "네, 언니. 하루 종일 걱정끼쳐드려 죄송해요."

  "아냐. 너도 정말 하루 종일 마음 아팠을테니까. 우리 모두 고생했다고 하자."


  

  몇 분 후 검은양 팀의 회의실의 불이 꺼진다.

  또 다시 사람을 기다리는 회의실 안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이곳에 홀로남은 김유정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 손등으로 눈을 가린채 잠에 빠져들었다.



  ◆ 9-4

   

  "슬비야아아아아앗!"

  "서유리, 떠, 떨어졋."

 

  너무나도 반가웠는지, 서유리는 저 멀리서 슬비를 보자마자 다가와 슬비를 품에 안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에 너무나도 기쁜 모양이다.

  서유리의 가슴의 푹신한 느낌에 얼굴을 한순간 맡겼던 슬비는 얼굴을 잔뜩 붉히며 서유리로부터 떨어졌다. 그래도 이런 일상의 모습이야말로 활기넘친 검은양 팀의 모습이기에 절대 싫어하지는 않지만.



  복구 작업이 우선적으로 완료된 이 근방은 원래 클로저들의 집결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엄청난 상권이 자리잡고 있어서 많은 청춘들과 사람들의 발자취가 닿는 곳이었다.

  물론 복구 작업이 끝난 후, 강남 GGV 뒷골목인 이곳은 특경대에 의해서 24시간 통제되는 곳이다. 정작 중요한 기밀같은 것은 이곳에 하나도 없지만,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아주 극소수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조치이지만, 차원종의 강남 침공 이후 세계가 클로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으므로 모두 불평은 없을 것이다.


  뚜벅뚜벅.

  구둣발 소리와 함께 회색 코트를 한 남자가 세 명의 남녀를 데리고 특경대의 바리케이트 사이를 지나 유유히 모습을 드러냈다.

  정식 유니온의 클로저가 아니면서도 위상능력자인 이들로서 한 때 벌처스라는 거대 민간기업의 뒷면에 있었던 이들, 늑대개 팀이다. 그들은 강남 사태 이후 강남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누명을 쓰고 쫓겼으나, 국제공항의 탈환 때 램스키퍼의 소유자가 되면서 그 혐의가 풀린 상태이다.


  그러나 한 때 검은양 팀과 대립관계에 있던 이들이기에, 검은양 팀은 계속해서 그들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칼바크가 말했듯이 늑대와 양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양은 늑대를 길들이려고 하고, 늑대는 양의 빈틈을 노린다. 서로를 향한 견제의 수단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들은 결코 긴장을 놓치지 않은채, 서로를 대했다.


  "늑대개 팀 전원 모였소."

  "램스키퍼는 어떻게 했죠?"

  "아, 램스키퍼라면 이곳 강남 상공의 높은 곳에서 순항 중이오. 순항 명령을 내려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 동안은 위상능력자 없이도 순항은 가능할 것이오.

  물론 우리가 램스키퍼에 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를 스위치로 위협하려는 속셈이라면 그만두는게 좋을 것이오. 램스키퍼가 비록 이곳에 없더라도 그것의 주포는 바로 이곳을 향하고 있으니 말이오."

  "역시 빈틈이 없는 사람이로군요, 당신은. 어차피 당신들의 초커를 작동시킬 생각 따윈 애초에 없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요."

  "좋소. 그렇게 상생의 길을 찾아가보도록 하지."


  묘한 신경전이 두 사람 사이에 오간다.

  검은양 팀에 김유정이 관리요원으로 있다면, 늑대개 팀에는 트레이너라는 저 남자가 관리대원으로 존재한다. 두 사람은 각 팀을 통솔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여타하면 서로를 향해서 칼날을 들이대도록 명령을 내리는 통수권자이므로 서로를 결코 자극하지는 않는다.


  "어이 아줌마, 도대체 브리핑은 언제 시작하는거야!"

  "아…, 아줌마…"

  "그리고 그 짜증나는 녀석은 또 어딜 간거야? 왜 안 보여?"

 

  나타의 첫 도발은 김유정의 심기를 매우 자극하는 말로 시작되었고, 두 번째 도발은 아마도 이세하의 행방을 묻는 듯한 말이다. 여기에서 안 보이는 검은양 팀원은 오직 한 명, 그 아이뿐일테니까.

  크게 숨을 들이키고 심장의 박동을 가라앉히고서 김유정은 침착히 말했다.


  "좋아요. 나타 씨의 말대로 브리핑을 시작하죠.

  잘 들어놓도록 하세요."


  평소에 검은양 팀을 대상으로 브리핑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는 김유정.

  그녀의 목소리에는 분명히 힘이 담겨 있었지만, 그 힘은 청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있는 듯 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기에, 이렇게나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는 것일까?



  "먼저 나타 씨께서 물어보신 질문에 대한 답을 드려야겠군요. 그것이 저희가 이제부터 해야 할 브리핑의 내용과도 연관이 있으니 말이죠."

 

  나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검은양 팀에게 김유정의 말은 다소 혼란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그녀가 시작할 브리핑의 내용이 이세하의 팀 이탈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말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유정은 스스로를 독려하기 위해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었을까.


  "이세하는 더이상 검은양의 팀원이 아닙니다."

  "에?"

  "뭐라고?"

  "예?"

  "무슨 말씀이세요?"


  늑대개 팀의 모두가 일제히 그녀의 말에 의문을 터뜨렸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일까.

  그들의 의문에 김유정은 친절하게 다시 대답했다.


  "세하는, 더이상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세하는 차원종과 손을 잡았거든요."

 

  그들에게도 다소 충격이었을까?

  국제공항에서 마지막으로 그들이 마주쳤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세하는 검은양 팀에 소속된 유니온의 정식 클로저 요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라니, 게다가 차원종과 손을 잡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트레이너가 물었다.


  "도대체 며칠 동안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후… 다 제 불찰이에요. 세하가 차원종과 손잡지 않도록 제가 옆에서 계속 있었어야 했는데, 국제공항의 일로 제가 그걸 생각하지 못했어요."

  "무슨 일로 알파퀸의 아들이 차원종과 손을 잡게 된 거지? 말해주시오."

  "… 그저께 세하와 슬비의 앞에 데이비드가 나타난 일이 있었어요. 휴게소에서 도망친 직후 그는 이곳으로 숨어들은 모양이에요. 그 때, 녀석은 흡수한 차원종의 힘으로 세하와 슬비를 공격한 후 사라졌죠.

  여러분도 아시다싶이 데이비드는 제3위상력에 각성했어요. 제2위상력만을 사용하는 저희에게 있어서는 상대할 수 없는 힘이죠. 세하는 유니온의 힘만으로는 데이비드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애쉬와 더스트라는 차원종과 손을 잡게 되었어요. 그게 바로 어제 일이에요."

  

  트레이너는 두 눈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깊은 한숨 속에는 매우 여러가지 감정이 담겨있다. 그는 곧 말을 이었다.


  "말도 안되는군.

  알파퀸의 아들이 그렇게 무모한 판단을 쉽게 내리지는 않았겠지. 그 전에 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오."

  "그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한 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한다.

  물론 그렇게 될 때엔, 그저 세하의 책임이라고만 할 수 없겠지만. 그렇기에 김유정은 말을 머뭇거렸다.

 

  이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그녀 대신 슬비가 답했다.

  "저 때문이에요."

  "뭐라고?"

  "데이비드가 저희 앞에 나타기 전에, 저와 세하는 사랑을 하던 사이었어요.

  그날 저녁에 저희가 데이트를 하던 중에 데이비드가 나타났고, 데이비드는 세하가 보는 앞에서 저를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세하를 조롱했죠.

  데이비드가 사라진 후에 애쉬와 더스트가 다시 저희 앞에 나타났고, 저희에게 차원종의 힘을 빌려줄테니 그에게 복수하라고 말했어요. 그 때는 제가 세하를 막았지만, 그 이후에는 막지 못했어요…"


  슬비의 말에 김유정은 손사래치며 반박했다.

  "아니야, 슬비야!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그 때 검은양 팀에게 철수하라는 명령만 내리지 않았더라도, 세하가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을거야. 이번 일의 책임은 절대적으로 나한테 있어."

  "언니, 저는 이번 일에 대해서 매우 책임을 느껴요. 제가 그렇게 무능하게 데이비드한테 당하지만 않았더라도… 세하는 그렇게 차원종이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슬비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 데이비드는 유니온의 어떤 클로저라도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사용하는 존재야. 너무 너를 책망하지마."

  "아니에요, 이건 모두 제가 못나서…"


  김유정과 이슬비의 계속되는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공방에 나타가 짜증을 내며 험한 말을 뱉었다.

  "질질 짜는거, 정말 못 봐주겠군. 두 사람다 그만 징징대."

  "나타! 입 다물어라!"


  나타의 말에 트레이너가 곧바로 제지를 가했다.

  나타는 콧방귀를 뀌며 얼굴을 돌려버린다. 트레이너가 나타를 대신해 사과한다.


  "미안하오. 이 녀석은 꽤 버릇이 없는 녀석이어서 말이지.

  대충 그쪽의 상황은 알겠군. 나도 왜 이세하가 없는지 궁금했었거든. 이런 상황이니 어제 두 사람이나 비었던 것도 당연할테고.

  그래서 이제는 어떻게 할 방침이오? 유니온이 이걸 그대로 눈 뜨고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지 않소?"

 

  유니온에게 이미 한 번 버림받은 적이 있는 그에게, 유니온은 절대 신뢰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

  정말로 그의 말대로 유니온이 이대로 눈 뜨고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방안을 강구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강구했을 것이다.

  이 브리핑은 바로 그것에 관한 브리핑일테고.


  "유니온은… 두 가지의 임무를 검은양 팀과 늑대개 팀이 수행할 것을 요구했어요.

  하나는 이세하를 찾아낼 것. 나머지 하나는 이세하가 인간이 될 뜻이 없다면…, 그를 주살할 것…"

  "헤! 놈을 죽이는 거라면 나에게 맡기라고. 내 칼이 놈을 썰고 싶어하거든!"

  "나타, 조용히 해라! 너는 지금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다시 한 번 트레이너가 나타에게 꾸중을 했다.

  이번에는 다소 엄한 목소리였다.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그들의 말에 상관없이 김유정은 담담히 브리핑을 해나갔다. 하지만 확실히 힘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이세하는 앞으로 본명이 아닌, 코드네임 『스트라이커』로 명명합니다…

  유니온은 그를 더이상,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기로 했으니까요… 저나 여러분 모두, 앞으로 그를 본명으로 부르는 일은 삼가주시길, 부탁드려요."

  "언니, 세하를 주살한다뇨! 유니온이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잖아요!"

  "유리야, 세하가 아니야, 이제는 스트라이커야. 유니온은 계속해서 그를 살릴 방법을 찾고 있어. 하지만 정말로 그가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정말 최후수단으로서 그를 없애라는 거지."

  "말도 안돼. 세하를, 세하를 우리가 죽인다니요… 언니, 저는 못해요. 어떻게 세하를 죽이라는 거예요!"

  "슬비야! 너까지 왜이러니!"


  이 다툼에 싫증을 낸 나타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의 단독행동을 막기 위해 트레이너는 하피와 레비아에게 그를 쫓을 것을 지시했고, 자신은 이 자리에 남았다.


  "한 때 같은 팀원으로 있었던 그녀의 아들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임무는 꽤 오래 걸릴 것 같군…

  그리고 역시나 유니온다운 일처리 방법이야. 언제나 놈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될만한 것은 무조건 없던 일로 만들어버리기 위해 어둠에 묻어버리지.

  김유정 부국장, 우리 늑대개 팀에게 당장 해야할 지시를 내려주시오. 이 일에, 최선을 다하겠소."

 

  트레이너는 혼잣말을 이어가다 김유정에게 지시를 요청했다.

  당장 어떤 임무라도 내려주지 않고서는 같은 팀의 늑대들은 방황하기만 할 뿐이다. 단독행동은 할 수 없기에 그는 그런 요청을 한 것이겠지. 

  그의 요청에 김유정은 답했다.


  "고마워요, 트레이너 씨. 부디 비극으로 이 임무가 끝나지 않기를 같이 기도하죠.

  그리고 지시를 내려주기 이전에, 당신에게 또 들려드려야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오. 기꺼이 내드리리다."

  "감사해요.

   제이 씨, 아이들과 함께 있어주세요. 이야기가 끝나는 데에는 그리 오래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요청에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그녀가 아마 트레이너에게 할 이야기는 새벽에 회의실에 찾아온 슬비가 했던 말일 것이다. 칼바크 턱스로부터 들었던 그 이야기를 아마 들려주겠지.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 한 명에게만 들려주면 되는 일이다, 굳이 많은 사람이 알아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니 말이다.

 

  김유정은 트레이너와만 이야기하기 위해, 약간 걸어 이곳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멀어져가는 그녀를 보면서 검은양 팀 모두는 매우 울적한 기분으로 고개를 떨궜다.




  ◆ 9-5


  "어디에 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었네?"

  "한참 찾았어, 이세하."


  외부 차원의 어느 그림자 속에 있었던 그를 두 남매가 찾아왔다.

  그들은 이세하에게 차원종의 힘을 준 이들로서, 어떻게보면 힘의 원천으로서는 이세하의 부모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인간이었던 이세하가 외부차원의 어딘가에 이렇게 있으리라고는 그들도 전혀 생각을 못한 모양인지, 그들이 세하와 재회한건 거의 하루가 지나서였다.

  물론 이곳에는 아침과 저녁이 없기 때문에, 하루라는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은 그가 검은양 팀에 들어갔을 때 유니온으로부터 보급품으로 나온 시계를 보고서 알 수 있었다.

   

  그는 지난 밤, 이슬비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친 뒤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눈도 전혀 붙이지 않은채로 그는 이렇게 멍하니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녀를 보낼 때 했었던 '다시 돌아오겠다'는 그 약속, 지킬 수 없는 것임을 그는 알고서 말했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그는 더 이상 그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이 상황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가 해야하는 일 - 데이비드를 죽이는 것 - 도 잊은 채, 이곳에서 있었던 것이겠지.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그를 찾아온 남매가 물었다.

  "어머, 이슬비와 떨어진게 그렇게 마음에 상한거야? 바로 내가 있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거야?"

  "어차피 네겐 어울리지 않는 여자였어. 후훗, 잘된 결말이라고 생각해, 이세하."


  남매의 말은 모두 이슬비와 관련된 말들이었다. 마치 그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그들은 그가 기뻐하지 않을 말을 내뱉으면서도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다.

  그렇다, 이것이 차원종. 그들은 인간과 다르다. 그렇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그들과 손을 잡았으니 당연히 받는 벌이라고 생각하며 이세하는 말 없이 자리를 뜨기 위해 일어섰다.


  어디론가 가려는 그를 애쉬가 불러세운다.

  "멈춰, 이세하."

 

  종속 관계는 아니지만 결코 그들의 말을 예전처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차원종의 힘을 받은 이후로부터 쭉, 계속해서 그래왔다.


  그는 몸을 돌려 애쉬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그래."

  "이대로 가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멍하니 있는 네 모습을 보면, 우리의 의욕이 사라지거든.

  그러니 네가 나가서 일을 해줘야할 것 같아."

  "한 가지 잊고있는가본데, 나는 너희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조건으로 너희의 힘을 받아들였어."

  "아아, 물론이야. 절대 잊지 않고 있지. 우리는 너희 인간과 다르게, 약속은 목숨으로 지키거든.

  내가 한 말은 절대 명령이 아니야. 이건 네가 원하는 것이지."

  "내가 원하는 것?"

 

  애쉬의 입꼬리가 치켜올라간다.

  대신 그의 누나라고 칭하는 더스트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분명히 너가 원하는 거야.

  ''의 행방을 찾았어."



  이세하의 표정이 바뀐다.

  그가 이렇게 된 궁극적 이유를 제공한 그 남자 - 데이비드 리 - 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그리고 그를 이슬비 앞에 무릎 꿇리기 위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쉽게 정보를 주면 재미가 없어. 안 그래?"

  "… 네놈들!"

  "아하핫, 분노하는거야? 우리한테?"


  더스트는 키득키득 거리며 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로 그녀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말하는 동안 말을 참고 있던 애쉬가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하지만 바보같은 인간들은 제 꾀에 속아서 넘어오지.

  우리는 너에게 명령하지 않아. 다만 네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얻기 위해서는 우리와 거래를 해야하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방식이야."

  "약속할게. 내가 '놈'을 찔러죽인 후에, 반드시 그 다음으로는 너희를 죽일거야…" 

  "과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후훗."

  "네놈들이 원하는게 뭐야."

  "과거에 어떤 들개들을 만났어. 녀석들을 만났을 때, 꽤 재미있는 장난감이 될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녀석들을 훈련시켜주었지.  

  그런데 그 이후론 녀석들이 과연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겠어. 마침 녀석들이 유니온놈들에게 붙은 참이거든. 그 들개 녀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테스트해주었으면 해."

  "유니온과 적이 되라는 뜻이지, 그건."

  "후훗, 역시 눈치가 빨라. 걱정마, 이세하. 너는 놈들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을지 몰라도, 놈들은 이미 네게 수배령까지 내린 상황이야. 너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넌거다."

 

  이세하는 알고 있다, 그들이 들개라고 부른 이들을.

  국제공항 사태 이후로 유니온과 협력관계에 있는 늑대개 팀을 상대로 한바탕 싸움을 벌이라는 그 뜻은 완전히 유니온과 결별하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완전히 그들의 적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뜻이다.

  그들의 속셈은 분명하다, 이슬비에게 더이상 마음을 두고 이런 추태를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더 이상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이세하는 그들을 떠나기로 했다.

  그의 앞에 보랏빛 섬광과 함께 차원의 균열이 나타났고, 그 틈으로 그는 내부 차원으로 향했다.

 

  균열이 다시 메워지고 그가 완전히 사라지자, 남매는 웃음을 그쳤다.

  "애쉬! 우리도 빨리 따라가자. 이세하가 얼마나 들개 조련을 잘 하는지 구경해야지!"

  "그래야지, 누나.

  아아, 기대가 되는걸. 차원종이 되어버린 녀석을 보면서 절망에 빠질 유니온 놈들의 표정이 말이야."



  말을 마친 남매의 모습도 흐려져간다.

  다시 적막에 휩싸인 그곳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저번 화에도 많은 환호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말씀을 보면서 참 많이 힘을 얻습니다.


  정말 바빠도 꼭 써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득해요.

  그래도 연재주기를 앞당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결말은 내어요.

  이전에 장편 연재하던 60화짜리 소설도 끝내고 왔으니까요...

  더욱 열심히 쓰겠습니다!


  보내주신 응원에 정말로 감사합니다!

  다음화도 기대해주세요~



2024-10-24 23:02:3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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