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 & 큡세하] Gengar(Doppleganger)

루이벨라 2016-06-24 4

 '이상해...'


 요즘 들어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원래 내가 건망증이 심한 편이었나? 라고 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최초로 그 증상을 발견한건 강남 사태가 일어나고 난 직후였다. 그때 이슬비와 같이 유니온 터릿으로 향해 헤카톤케일의 움직임을 막으라는 임무를 받았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예전에 한거 같은데?


 물론 난 헤카톤케일을 그때 처음 보았다. 강남 대로변에서 터릿까지 유인하는 작전은 서유리와 제이 아저씨가 했기 때문에 헤카톤케일을 첫대면한건 이번 터릿에서 처음이 확실했다.


 하지만 헤카톤케일을 처음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여과없이 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난 '이것' 과 싸운적이 있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고, 매우 힘든 상대였고, 아마도 내가 상처를 입었던 것도 같다.


 입었던 것도 같다니...? 갑자기 임무를 수행하기도 전에, 건블레이드를 들고 있던 오른팔에서 엄청난 통증이 일어났다. 건블레이드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통증이었다. 결국 나 대신 테인이가 들어가 이슬비와 합동 작전을 했다.


 내 팔을 진찰하던 캐롤 누나가 이런 말을 했다.


 -이세하군, 어디서 이렇게 다쳤나요? 족히 보기에는 2일은 된 상처인데.


 2일...? 너무 아파서 '아프다' 라는 생각만 들게 만들던 상처가 사실은 2일은 지난 상처라고...? 게다가 2일 전에는 난 아무런 임무를 받지 않고 거의 쉬고 있었다. 난 분명 2일 전에 상처를 만들만한 격한 일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긴 상처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뼈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나왔지만 난 그후로 3일은 아무런 일도 못하게 되었다. 오른손을 쓸때마다 겪어지는 격한 고통 때문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임무를 나가면 이 곳을 와본적이 있다는 느낌과, 이 차원종과 싸워본 적이 있다는 느낌, 그리고 딱히 다친 기억도 없는 신체 부분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등...의 기이한 형상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더 두려운건 이런 류의 기시감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5일, 그다음은 10일, 그다음은 일주일...이제는 하루에 1번씩 찾아오는 꼴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어쩌면 난 몽유병이 있는게 아닐까? 그래서 내가 자고 있는 상태에, 돌아다니면서 차원종을 처리하다가 상처는 그런식으로 생겨나는 것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이 아저씨에게 우리집에서 같이 자자는 말도 꺼내본 적이 있다. 아저씨에겐 거실에서 자라고 하고, 내가 문을 열고 나오게 되면 잠귀가 밝은 아저씨가 깨어날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걸 보고 기억할 수도 있으니까.


 결국 몽유병은 아니었다. 제이 아저씨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몇번 잤지만 아저씨는 내가 중간에 일어나는 걸 전혀 ** 못했다고 했다. 그럼 뭐라는 말인가. 그리고 점점 더 내 몸에는 잔상처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원인이 뭔지 모르고 답답함만 커져가는 가운데 한가지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한창 재해 복구를 할때의 이슬비가 지나가듯이 한 말이었다.


 -이세하, 어제 구로역 일대에서 뭘 하고 있었던거야?

 -구로역 일대? 난 어제 거기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데?


 너무나도 당당한 내 태도에 오히려 이슬비가 아리송했나보다.


 -그럼 내가 잘못 본건가? 아닌데...분명 이세하 너였는데...건블레이드를 가진 정식요원복을 입은 사람이 너말고 누가 있다는거야?


 -...그거 사실이야?


 난 절대 어제 구로역을 가지 않았다. 어제 내가 맡은 구역은 신강고 일대였다. 어제의 구로역 담당은 이슬비였다. 그래서였나. 오늘 구로역을 지나는데 어제 와본것도 같은 기시감이 들었던 이유는.


 -어. 불렀는데도 대답 안하기에. 먼발치서 보기는 했지만 이세하 너였는데...이세하. 너 혹시 쌍둥이 아니야?

 -쌍둥이라니, 드라마 많이 봐서인지 상상력도 풍부...


 ...쌍둥이...? 그 말에 오한이 스쳐지나갔다.


 쌍둥이는 아니지만, 나와 닮은 존재를 본 적이 있다.




 이슬비 이후로 나를 닮은 형상을 본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슬비를 시작으로, 제이 아저씨, 테인이, 서유리, 김유정 누나, 그리고 이제는 나타까지.


 나랑 합동 작전을 하고 있는 도중 나타가 매우 불쾌하게 말했다.


 "야, 버러지? 너 왜 이 나타님 말을 무시하고 간거지?"

 "무시했다니. 난 지금 네 지시에 맞추어서 차원종 쓰러뜨리고 있잖아?"

 "하, 지금 그 이야기하는 줄 알아?! 아까 전에 말이야! 여기 오기 전에 먼발치서 보이기에 몇번이고 불렀잖아! 정말 이렇게 끝까지 무시할거냐?!"


 나타가 날 불렀다고? 아니다. 나타가 말하는 시간대에 난 나타와는 떨어진 곳에서 유정 누나에게 브리핑을 듣는 중이었다. 나타와 만난 건 그 후로 30분 뒤의 일이었다.


 "...너, 뭐 헛걸 본거 아니냐?"

 "이 옷을 입고, 건블레이드 든 녀석이 여기서 둘인줄 아냐!? 너 하나잖아!"

 "..."


 이렇게 또 목격자가 하나 추가되었다. 날 보았고 불렀지만 내가 대꾸를 안했다는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말하는 것은 딱 하나였다.


 -여기서 건블레이드를 들고 정식요원복을 입고 있는 남자애는 너밖에 없잖아?


 겉으로 보이는 외견이 나와 매우 닮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답답한 점은 전부 다, 그 '나' 라고 하는 사람의 얼굴을 ** 못했다는 것이다. 얼굴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 의문이 다 풀릴텐데...


 나타가 또 말했다.


 "근데 너, 팔은 괜찮냐?"

 "또 무슨 말이야?"

 "하아, 강한 척 안해도 되니까 솔직해지지 그래? 분명 너 다친거 같이 왼팔이 축 늘어져있었다고."

 "무슨..."


 나타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왼팔에 또 극심한 통증이 났다. 내가 타이밍 늦게 아픔을 호소하자 나타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러게 일부러 괜찮은척 할 필요없다니까."

 "...그, 그런거 아니거든...?!"


 난 최근 일주일동안 왼팔을 크게 다친 기억이 없단 말이다. 또, 그거다. 다치지 않았던 곳에서 실제로 다친 것과도 같은 상처가 생기는 것. 임무를 끝내고 복귀해서 왼팔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는데 이번엔 뼈에도 약간 금이 간 모양이다. 정도연 박사님이 내게 말했다.


 "이세하 요원, 요새 좀 이상한거 알아요?"

 "네...?"

 "이렇게 큰 상처를 숨기려고 하다니...아무리 팀에 방해가 된다고 해도 이런 자잘한 상처를 방지하면 나중에 더 큰 해가 된다고요. 그리고, 왜 이제 치료하려고 하는거죠?"

 "...?"

 "분명 아까전에도 보았을 때 왼팔이 이상해보여서 치료해**다고 소리까지 질렀지만 무시하고 가더군요."


 또, 또, 나타와 같이 날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왼팔에 붕대를 감고 있는 정도연 박사님께 물었다.


 "...그게 언제였죠?"

 "흠? 기억 안나나요? 불과 5분 전이었죠. 아까 선우란 요원이 있던 헥사부사 근처였으니까..."

 "실례 좀 할게요!"

 "이세하 요원!"


 치료가 덜 끝나기는 했지만, 너무 신경이 쓰여서 나오기는 했다. 도대체 누구야. 나랑 똑같은 정식요원복을 입고, 나와 비슷한 체형을 한 자식은...?! 자꾸 느껴지는 이상한 기시감과, 계속 생겨나는 정**를 상처의 원인이 왠지 그 녀석일거 같았다.




 란이 누나가 항상 헥사부사를 주차하는 곳에 가보았는데 란이 누나는 없었다. 아무래도 개인 임무를 간 모양이었다. 사람이 원래 많이 다니지 않는 길목이기도 해서, 좀 으스스한 기분도 들었다. 5분전이라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지만 벌써 사라졌을수도...


 "...어?"


 주위에 사람이 없나 살펴보는데 좀 어두컴컴한 곳에서 갑자기 인영 하나가 비추었다. 유니온의 정식요원복을 입고 오른팔에는 건블레이드를 든, 분명 나와 매우 비슷하게 생긴...


 "..."


 비슷한게 아니었다. 난 처음으로 그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매일 거울속에서 보던 나와 똑닮은 얼굴, 그게 그 녀석의 얼굴이었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매우 차가운 빛을 발휘하는 붉은색 눈동자. 힐끗 보는데 녀석의 정식요원복은 헤어진 곳이 꽤나 있었다. 그리고 더욱 소름돋는 건 그 헤어진 곳이 내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상처의 통증이 생기는 곳이었다. 특히 이번에 아프기 시작한 왼팔 부근은 심하게 찢기기라도 한 것인지 살이 보이는 부근에 피까지 맺혀있었다.


 난 매우 당황스러웠는데 상대방은 아닌 모양이었다. 씩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렇게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치도 않았는데..."

 "...넌 그때 큐브에서 본...?"

 "-오호, 날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잘도 기억하는군. 그래, 맞아. 차원종이 된 이세하. 그게 바로 나야."


 정식요원으로 승급할때 들어갔던 큐브에서 나온 '나', 정확히는 차원종의 힘을 받아드린 이세하. 그게 직접 형상이 되어서 나온 적이 있다. 큐브를 거의 못 쓸 정도로 부수고 나서야 완전히 사라진줄 알았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너...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왜 그렇게 화를 낼 일이지? 난 이 차원종의 힘으로, 네가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헤카톤케일 처치, 재해 복구, 안드로이드 격파 등등."


 나하고는 연관성이 있는 거봐야 똑닮은 겉모습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내가 느꼈던 기시감은 이 자식이 자기 혼자 했던 일이 나에게도 무의식적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라는거야...?! 그리고...


 "그 상처...는 또 뭐야."

 "-싸우다 생긴 상처지. 너와 같이 의료진을 딱히 옆에 두는게 아니라서. 그리고, 난 통증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 통증을 내가 느끼고 있는거 같다고, 이 xx야...내 표정이 읽혀졌는지 날 똑 닮은 도플갱어는 씩 웃었다.


 "-호오, 그렇게 된거로군."

 "...? 앗!"


 갑자기 그 녀석은 자신이 들고 있는 건블레이드로 자신의 오른쪽 다리를 세게 내리쳤다. 상대방은 괜찮아보이는데, 대신 내 오른쪽 다리에 극심한 무게감이 실렸다. 마치 방금 전 녀석이 내려친게 자신의 다리가 아닌, 내 다리인것처럼. 갑작스런 무게감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나를 보고 녀석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역시 그렇게 된거였군."

 "...시끄러..."


 날 닮은 도플갱어 주제에, 그래봐야 가짜인 주제에. 갑자기 녀석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표정도 같이 굳어졌다.


 "-이게 다, 내가 '가짜' 이기 때문이라는거지?"

 "..."

 "-가짜이기 때문에, 살아있는것도 같지 않아. 내 몸을 만져도 온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아무리 공복 상태여도 배고픔과 목마름도 느껴지지 않아. 통증도 느껴지지 않아. 피곤도 느껴지지 않아. 살아있는거 같지 않다고. 하지만..."


 녀석이 날 힐끗 쳐다보았다. 눈빛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분명 도망을 가**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따르지 않았다. 방금 전 녀석의 행동으로 인해 얻어맞은 오른쪽 다리 부근이 아직도 잘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진짜가 되면 네가 얻고 있는 '권리' 는 당연히 내것이 되겠지?"

 "...그럴리가 없잖아. 넌 그냥 시뮬레이션일 뿐이잖아!"

 "-그건 아닌거 같은데?"


 녀석이 내 앞에 오더니 갑자기 내 배를 세게 쳤다. 커억, 저절로 신음소리가 입밖으로 터져나왔다. 녀석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시뮬레이션 치고 꽤나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아?"

 "...이 자식..."

 "-다행이야. 너한테 가해지는 고통은 '아직까지는' 나한테 전해지지는 않아서."


 녀석은 그대로 앉더니 아직도 배에 가하지는 고통으로 인해 저항할 수 없는 내 목을 두손으로 세게 누르기 시작했다. 뭐야...점점 더 목에 가해지는 압박이 강해지고 있었다. 산소, 산소가 부족하다. 나는 이렇게 괴로운데, 나를 똑닮은 저 녀석은 더 신이 나는거 같았다. 지금껏 내가 들었던 녀석의 목소리 중에서 제일 많은 '감정' 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이세하, 그거 알아? 도플갱어 이야기."

 "...무슨."

 "-도플갱어는 죽음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지. 평소에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다가 '본체' 의 죽음이 가까워지기 시작하면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지."


 도플갱어...저 녀석은 정말 도플갱어일까.


 "-그리고 도플갱어와 본체의 눈이 마주치면, 나머지 한쪽은 사라진다...뭐 그런 이야기야. 그런데 말이야, 그 둘중 누가 사라질거 같아?"

 "...크윽."

 "-오늘 네가 나를 만나러 오는건 안되는 일이었어. 뭐, 조만간 내가 다가갈 참이었지만."


 이젠 의식마저 흐릿해져간다. 저항을 하기 위해 꽉 잡은 녀석의 손을 잡은 내 손이 힘이 점점 부쳐 녀석의 손등을 살짝 할퀴었다. 녀석은 아픈지 눈쌀을 살짝 찌푸리고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의식을 잃기전,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녀석의 또렷한 말, 한마디였다.




 "나를 묶고 있는 줄은 없어(There are no strings on me)."







[작가의 말]

어쩌면 제가 마지막으로 쓰는 세하와 큐브세하의 단편일지도 모르겠네요.(뒷부분은 알아서 상상하시길)

시간때우기로 본 '포켓몬 괴담 - 픽시 & 팬텀' 편 보고 쓱쓱 적어본 거에요.(Gengar가 팬텀의 영어문 표기라네요. Doppleganger에서 따왔답니다.)

한번쯤 써보고 싶었던 세하와 큐브세하의 강렬한(?) 대치. 왠지 큡세하가 좀 집착하는 부분이 많이 보이네요.

그리고 올리기 전에 오랜만에 공홈에 가서 큐브세하 만화를 보고 왔습니다. 한번 보시고가서 이 만화 다시 재탕하시는것도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세하 - 흑안 or 벽안

큐브세하 - 적안

광휘세하 - 자안


으로 표현을 하니 참고...만 삼아주세요.

2024-10-24 23:02:3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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