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9편

에피메테이아 2016-05-31 0







이거, 게임은 건드려보는데 정작 본업인(?) 글쓰기가 소홀해지는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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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곡이 찔린 세하는 벙 찐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말 그대로이니라. 과인은 현재의 너를 보는 것이지 다른 것을 **는 않는다. 보렴. 유리나 슬비 양하고 다르게 너는 과인의 공격에 버티고 있잖니?”

말을 쉴 새 없이 하면서도 수련은 계속되었다. 손에 힘을 줘서 세하를 밀어낸 그녀는 검도의 머리치기 자세를 취했다. 머뭇거리던 세하의 정수리에 힘 덩어리가 작렬했고, 세하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쳤다. 방금 전 유리였다면 그대로 얻어맞았을 공격이었다. 그러나 세하는 가까스로 그것을 막았다. 명백히 차이가 나는 실력이었다.

“가진 실력에 맞춰서 대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라. 과인이 상대하는 것은 이세하 하나. 다른 누구나 그들의 생각은 끼어들 틈이 없지.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아니니 염려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해는 가지 않았다. 어머니의 아들로서 특별 취급받는 것하고, 실력이 좋아서 특별 취급받는 것하고 차이가 있나 싶었다. 특별 취급이라는 결과는 같은 것인데.

“너는 아직 힘의 한계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물탱크는 거대한데 그걸 내보내고 회수할 수도관은 좁쌀만 한 것이다. 훈련 교관으로서, 과인은 그걸 넓히려고 한다. 그러려면 끝없이 한계에 부딪쳐봐야 할 터.”
“…….”
“요컨대, 과인이 너에게 벽이 된다는 의미이니라.”

그래도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아주머니를 넘으면, 더 이상 훈련을 할 필요도 없다는 거죠?”
“뭐,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면 그게 있겠구나. 그런데 쉽진 않을 게다. 자랑이어서 낯 뜨겁지만, 과인은 네 어머니보다도 강하거든. 한 대만 제대로 맞출 수 있다면, 그 뒤는 알아서 해도 좋다. 그 쯤 되면 굳이 훈련이 필요하지도 않을 테고.”

소피아는 확실한 목표를 그어줬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기까지. 살짝 닿기는 닿았구나.”

그녀가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 공중에서의 충돌 이전에는 없던 그을음이 옷에 묻어있었다. 털어내면 사라질 흔적이었지만, 어쨌거나 닿았다.

‘두고 보라고요, 아줌마.’

어머니처럼, 비교당하며 끝없이 멀어지는 목표가 아니었다. 못 박히듯 고정된 목표였다. 할지 말지는 세하의 마음에 달린 일. ‘일단은’ 게임할 시간의 탈환을 위해, 세하는 제시된 목표를 한 번 깨보기로 했다. 게임 퀘스트를 깨는 것 같은 느낌이 그의 가라앉았던 마음을 살짝 띄워주었다.

“체육관이 조금 망가졌군. 미스틸테인은 아쉽지만 내일 하도록 하자꾸나. 복구야 금방 할 수 있지만, 여러 번 망가뜨리다간 관리인이 뒷목을 잡을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본 소피아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세하와 그녀가 만들어놓은 난장판이 여기저기에 펼쳐져있었다. 음울함의 극치를 달리는 유정의 표정도 양심을 콕콕 찔러왔다.

“걱정하지 말게나, 유정 양. 복구는 확실히 해놓도록 하지.”
“부탁드립니다아아…….”

유정이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울상을 지었다. 복구만 해준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법한 절박함이 단어 하나하나에 녹아있었다.


이것으로 검은양 팀과 소피아의 두 번째 나날이 반 쯤 지나갔다.






복구는 호언장담대로 금방 끝났다. 그 마법 같은 광경에 유정은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다 복구된 거 맞죠? 홀로그램이나 신기루가 아니라?”
“궁금하면 직접 만져보려무나.”

상처투성이이던 체육관이 말끔하게 치유되었다. 깨진 창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제자리를 되찾았고, 부서지고 갈라진 바닥과 벽들은 흉터 하나 남지 않고 매끈함을 회복했다. 시간이라도 돌린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실내는 그들이 처음 오기 전과 같아졌다. 믿기지 않았던 유정은, 소피아의 말대로 벽이랑 바닥을 만져보고서야 의심을 거두었다. 그 후에는 시말서를 안 써도 된다는 기쁨이 얼굴에 차올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사님!”
“감사할 필요까지야. 따지자면 부순 것도 과인이니까 병 주고 약 주고겠지.”

허리까지 90도로 숙여대는 유정에게 쓰게 웃어 보인 소피아.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유정과 표정이 다르지 않은 아이들이, 그녀에게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반짝거리는 눈빛들이 그녀를 콕콕 찔러왔다. 시선에 물리력이 있다면, 지금쯤 백옥 같은 피부 곳곳이 벌개졌으리라. 소피아도 무한한지 헛기침을 해댔다.

“흠흠흠! 주말이니 쉴 때는 쉬어야 하지 않겠느냐? 다들 이만 해산하여라. 월요일날 다시 보자꾸나.”

다들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오늘은 토요일, 그러니까 휴일이었다.






“엄마!”
“엄마 귀 안 먹었다. 작게 말하렴.”

세하는 돌아오자마자 어머니 서지수를 찾았다. 목청을 높인 아들의 부름에, 지수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당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이 상황을 예상한 듯싶었다.

“엄마가 저 굴리라고 하셨다면서요?”
“응.”
“너무해요! 남에게 아들 굴리라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불만이 가득한 아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목표가 잡힌 건 잡힌 거고, 소피아의 힘을 정면에서 받아치느라 온 몸이 쑤셔왔다.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뻐근함이 그의 불만을 한층 증폭시켰다. 하지만 지수는 아들의 그런 항의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냈다.

“남이라니. 소피아 어르신은 이 엄마하고 전우이시라고. 전우가 남이니?”
“아이 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중요하지. 엄마는 그분이 믿을만해서 부탁을 드린 거란다. 진짜 생판 남이었으면 우리 아들을 굴리라는 말 따위를 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지수가 손날로 아들의 머리를 툭툭 쳤다. 미미하게 위상력이 담긴 그 손짓은, 세하를 훈계하듯 조금 큰 충격을 주었다. 세하가 머리를 싸매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엄마가 험한 말 쓰지 말라고 했지? 우리 세하는 언제쯤에나 말로 할 때 들을까 몰라.”
“으윽. 엄마가 그러실 때마다 아프다니까요. 엄마는 엄마 힘을 모르셔서 그래요.”

영웅의 손짓답다고 할까? 지수가 아들을 혼낼 때마다 하는 촙은 매번 매섭기 그지없었다. 얼얼함을 이겨내려고, 세하는 머리를 열이 나게 문질러야 했다.

“아프라고 때리는 거지. 알았으면 앞으로 조심하렴.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가 밥 차렸으니까, 손 씻고만 와라.”
“네, 알았어요.”

툴툴대며 화장실로 향하는 세하.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는 지수의 표정은 착잡했다. 식은 찌개를 다시 덥히고 밥을 푸는 중에도, 그녀는 옛 일을 생각했다.



‘어르신,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들은 그대로이다. 과인이 그곳에 가려는 이유는, 데이비드 군의 요청도 있지만 ‘그 이유’도 있느니라.]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세하가 어째서?’
[꽤나 먼 미래의 일이라, 나도 자세하게 **는 못하였다. 허나 분명 무언가 불길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 그러니 한동안 곁에서 지켜보고자 한다.]
‘…….’
[마음이 복잡한 것은 이해하마. 그러나 혼란하기만 해서는 그 미래가 정말로 와버린다. 굳게 결심하고 대비하는 쪽이 나을 것이니라.]
‘검은양 프로젝트에서 활동하게 되면, 그걸 피할 수 있나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그래도 선택할 기회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선택이 어떻게 될지는 그때에 가봐야 알 일. 지금은 지금의 일만 집중하자꾸나.]



‘그런 미래라니.’

그녀가 떠올린 것은 며칠 전의 전화통화였다. 거기서 소피아가 ‘그 일’을 언급했다. 내용을 들은 지수는, 하마터면 수화기를 냅다 집어던질 뻔했다. 통화상대가 존경하는 그분임을 알고도 그럴 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던 것이다.
십 수 년 전. 그녀가 보아온 소피아는 항상 옳고 정확한 존재였다. 말한 일은 반드시 이뤄졌고 행한 일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졌다. 예언, 혹은 예지의 경지… 세상의 모든 일을 아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로 틀림이 없었다. 비록 그때 언급한 ‘그 일’이 터무니없고 믿기지 않은 내용이더라도, 소피아가 말한 일이니 일어날 것이다. 지수는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더욱 걱정되었다.

‘데이비드 군. 00야.’

소피아는 이렇게 말했다. ‘검은양 프로젝트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는 모른다. 그래도 최소한 그것은 세하에게 스스로를 지킬 힘을 줄 것이다.’라고. 굳이 그녀의 예언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어미새가 아기새를 둥지에서 보내듯, 세하를 자신의 품에서 보내야함을 직감하고 있었다. 기왕이라면 자신과 함께할 때 최대한 강하게 키워주고 싶었다.
세하가 싫어할 것임을 알고도 검은양 팀에 합류시킨 것도, 만신창이인 제이에게 염치 불구하고 부탁한 것도 전부 한 가지 이유를 위해서였다.

“엄마, 다 씻었어요! 밥은요?”

사랑하는 아들의 안전.

“응. 다 되었어. 오늘 반찬은 아들이 좋아하는 소시지 볶음.”
“저번처럼 짜게 안 하셨죠? 그때 간장 너무 많이 넣으셔서…….”
“적당히 넣었으니까 잔말 말고 오기나 하렴. 안 오면 엄마가 다 먹는다?”
“와아, 치사하셔!”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보기로 했다. 우선은 가장 기본적인 일이자 가장 중요한, 어머니로서의 일부터.






“머리!”

따악!

발랄한 외침과 함께 죽도가 통나무를 두들겼다. 경쾌한 타격음과 둔탁한 파열음이 죽도와 통나무 사이에서 일어났다. 이미 여러 차례 두들겨 맞은 나무는 쪼개지기 일보 직전. 깊게 난 균열이, 수없이 많은 내리침을 짐작케 했다.

“열심이시네요, 유리 누나.”

유리와 미스틸테인은 유니온에서 마련한 수련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유리가 검도 연습을 하는 옆으로는, 미스틸테인이 만들어낸 여러 개의 창들이 빽빽하게 바닥에 박혀있었다. 수련의 흔적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공기는 미처 다 쓰지 못하고 흘려낸 위상력으로 푸르게 물들었다. 일반인이 지금 이곳에 들어오면 호흡곤란이나 갑갑함을 느낄 터였다.

“테인이 너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
“그 아주머니가 하시는 걸 봤으니까요. 그냥 가만히 내일까지 기다리기는 싫었어요.”
“하하하! 나도 마찬가지야. 아줌마한테 한방에 당하니까 뭔가 분한 거 있지? 두고 보라고! 내일은 절대로 100번 이내에 나가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유리의 얼굴에 투지가 만연했다. 굳게 쥔 주먹에서는 힘줄이 불끈 돋았다. 소피아가 보여준 압도적인 힘은 그녀를 조금도 주눅 들게 하지 못했다. 세하가 자신보다 더 오래 버텼단 사실도, 열등감이 아니라 투지를 위한 연료가 되었다. 유리는 그 도도한 아줌마에게 한 방 먹일 생각으로 사기가 충천했다. 이따가 밥을 먹고는 1000번이다! 그런 과장된 목표를 세우던 유리의 뒤편으로 슬비가 다가왔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 관절 같은 부위는 너무 많이 움직이면 상하니까.”
“슬비 누나!”
“슬비야!”

항상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던 슬비가, 웬일로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수련실로 왔다. 안 그래도 그녀가 왜 안 오나 궁금해 하던 유리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들었다.

“어, 유리야…….”

슬비가 자신을 껴안은 유리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습기 찬 후끈함이 유리의 온 몸으로부터 전해져왔다. 열심히 통나무를 두들기다 보니, 유리는 지금 땀투성이였다. 차마 대놓고 그 사실을 말하기가 곤란했던 슬비는 안긴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몸 상태를 깨달은 유리가 화들짝 놀랐다.

“으아~ 미안해! 땀 냄새 많이 나지 않았어?”
“아하하… 괜찮아. 열심히 수련한 결과인데 뭐.”
“괜찮기는! 여자에게 냄새는 적이라고. 안 되겠다, 테인아, 나 잠깐 씻고 올 테니까 정리는 나 갔다와서 하자!!”
“자, 잠깐만 유리야!”

재빨리 슬비에게서 떨어진 유리가 손부채를 흔들어댔다. 과하리만치 호들갑을 떤 그녀는, 이 민망함을 물과 함께 씻어내기로 결심하고 샤워실로 향했다. 어찌나 빠르게 나갔는지, 슬비가 불러 세우기도 전에 유리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차피 정리하면서 또 땀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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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대강 이 정도로 끝. 슬슬 차원종들도 등장시켜야(=굴려야)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2024-10-24 23:02:0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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