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자 12화

검은코트의사내 2016-05-25 0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슬비가 라이칸 토스들과 교전을 벌일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충돌을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피하려고 했다가는 라이칸 그룹에게 의심을 받아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충돌을 피했으면 슬비가 저렇게 싸울일은 없겠지. 이들이 날 해치우지 않을 거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어째서 내가 지금 무서워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두려움은 뭘까? 죽을 거 같은 기분이 들 때와 같은 느낌이다. 내가 아니라 슬비가 죽게 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슬비의 전투력은 내 상상을 초월했다. 분홍색 위상력을 내뿜으며 단검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그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포위공격을 해도 슬비는 피해내거나 막으면서 상대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였다. 라이칸 토스는 A급 차원종이다. 슬비는 정예 클로저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슬비의 어깨에 손톱으로 긁힌 상처가 생겨났다.

 

"슬비야!!"

 

"바보야!! 넌 도망가!!!

 

내가 달려가려고 했지만 슬비는 방해된다면서 도망가라고 윽박질렀다. 하긴 그럴 것이다. 클로저는 민간인들을 끌어들이려고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라이칸 그룹은 이빨을 드러낸 채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말려야된다. 하지만 말리는 선택을 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또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이 선택으로 내 운명은 달라진다. 라이칸 그룹에게 배신자로 찍혀서 죽거나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을 죽게 만든 살인자로 살면서 고통받거나 말이다.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되는 상황이었다.

 

"하아앗!"

 

슬비의 뒤를 노리는 라이칸 토스에게 달려드는 또 다른 클로저가 있었다. 검도 소녀 서유리, 나와 같은 반 친구, 그녀의 검이 슬비를 노리는 팔 하나를 베자 늑대울음소리를 내었고, 이어서 푸른 불꽃이 밀집해 있는 라이칸 토스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석봉아, 괜찮아?"

 

"어... 응."

 

나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이제 갈림길의 운명에서 벗어난 셈이다. 이제 이들이 와주었으니 다행이라고 판단했다. 세하와 유리, 슬비가 라이칸 토스들을 향해 달려들자 그들은 잠시 주춤하더니 이에 맞서싸우기 시작했다. 리더는 울음소리를 내면서 포위공격을 전개하자고 했다. 말이 들린다. 역시나 내가 라이칸 토스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들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말해도 알아먹을 수 있었다. 포위공격, 한꺼번에 치겠다는 얘기다. 세하와 유리가 가세했어도 상대는 버거운 듯 했는지 진땀을 흘린 채 고전하는 검은 양 팀이었다. 하지만 그 침묵을 깨고 공중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가 보였다.

 

콰앙!

 

창으로 지면을 내려찍은 조그마한 키의 소녀다. 아니 소년인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안갔다. 아무튼 긴 창을 내려찍음으로써 밀집된 라이칸 토스가 충격파로 인해 흩어져버렸고, 다른 한명의 그림자도 나타나서 떨어져 나간 라이칸 토스를 붙잡고 무차별로 주먹난타를 했다. 나는 오늘 많이 놀라는 거 같았다. 검은양 팀의 전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한 리더는 울음소리로 후퇴명령을 내리자 그들은 일제히 그 현장에서 벗어났다.

 

"우와..."

 

전투의 현장이 끝난 자리, 라이칸 토스의 팔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서유리가 자른 팔이다. 검은양 팀의 적이 되었다간 나도 저렇게 살해당할 게 뻔했다. 일단 내가 차원종이 아닌 척 해야되는 게 먼저였다.

 

"슬비야. 괜찮아?"

 

"응. 괜찮아."

 

슬비의 어깨에 피가 물들어서 팔 소매 중간위치까지 붉게 변했다. 아까 주먹을 날린 아저씨가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른 후에 간단히 붕대로 감으며 응급처치를 하는 것을 봐도 나는 멍하니 있었다.

 

"석봉아. 너는 안 다쳤어?"

 

"으응."

 

"아무튼 다행이야. 네가 미리 말 안해줬으면 큰일날 뻔했어."

 

그렇다. 나는 이 계획을 미리 알려준 셈이다. 라이칸 그룹이 계획을 세운 건 자신들이 이곳에 온 사실을 모르는 검은양 팀의 현 상황을 이용해 리더인 슬비를 기습으로 살해하려고 했지만 세하와 유리,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이 와준 덕에 실패로 끝나버린 셈이었다. 하지만 라이칸 그룹은 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경고도 미리 말한 적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지금 당장은 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검은양 팀도 말이다. 일단 연기가 더 필요했다. 무서워서 벌벌 떨은 척, 안그러면 의심당한다.

 

"슬비는... 괜찮은 거지?"

 

"어, 쟤는 괜찮을 거야. 그나저나 제이 아저씨, 왜 이렇게 연락이 늦었어요? 큰일날 뻔했잖아요."

 

"미안, 휴대폰 배터리가 닳아서 충전하느라고."

 

주먹을 쓰는 아저씨 이름이 제이였나 보다. 그리고 나머지 한명의 어린애가... 뭐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르겠다.

 

"안녕하세요. 석봉이 형, 세하 형에게 많이 들었어요. 저는 미스틸레인이라고 해요."

 

초등학생의 인사를 받은 기분이다. 아니, 실제로 초등학생인가? 이름도 이상한 이름이다. 외국인인가? 판타지에서 나오는 미스릴이 생각나는 데 이건 아무래도 내가 판타지에 중독된 탓일 거다. 그리고 형이라고 부르는 거 보니 남자가 맞는 거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린 나이에 창을 무섭게 휘두르다니 어리다고 얕보면 큰 코 다칠 거 같았다. 요즘 10대들은 무섭다는 어른의 얘기를 들은 거 같았다. 청소년 비행범죄라던지 불량그룹 생성이라던지 말이다. 이런 것과 연관지으면 여기 검은양 팀도 사실 무서운 존재들이다.

 

"걸을 수 있겠어?"

 

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세하는 내가 그만큼 라이칸 토스에게 죽을까봐 무서워했나보다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이들에게 내가 라이칸 토스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무서운 것이다. 과연 이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질 수 있을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 할 거 같았다. 슬비의 눈빛을 차원종을 증오하는 편이었다. 당분간은 그녀와 말을 안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나는 세하의 부축을 받으면서 집까지 걸어가는 신세가 되었고, 제이아저씨와 유리, 미스틸 레인은 슬비를 부축이고 어딘가로 가는 게 보였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02:0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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