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4편

에피메테이아 2016-05-21 0








오랜만에 1편을 올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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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근처에 나타난 차원종들을 소탕하고, 검은양 팀은 녹초가 된 몸을 이끌며 본부에 돌아왔다. 발을 질질 끌고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은 마치 좀비와도 같았다. 가장 체력이 모자란 제이는 말할 것도 없었으며, 다섯 중 가장 체력 좋고 팔팔한 세하마저도 눈가에 그늘이 역력했다. 모두가 지쳐있었던 것이다.

“저희 보고만 끝내고 해산하면 되죠?”
“그 전에 본부서 조금만 쉬었다 가요. 너무 힘들어.”
“거기 쉴 만한 장소가 있던가. 아니, 애초에 배들 안 고파?”

각자가 쉴 생각을 가득 품고 본부로 돌아왔다. 여전히 어수선한 계단과 복도를 지나, 회의실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응?”
“무슨 냄새지, 이거.”

어떤 냄새가 검은양 팀의 코를 간질여왔다. 고소한 기름 냄새라든지, 달콤한 향신료 냄새라든지… 여하튼 뭔가 맛있는 냄새였다. 안 그래도 허기가 져있었던 일행들은 혀에 군침이 돌았다. 자신들도 모르게 발걸음도 빨라졌다. 냄새의 출처는 그들이 향하는 본부 사무실이었다.

덜컹!

“어머나. 생각보다 일찍들 왔구나.”

‘에?’

문을 열자, 그들의 눈앞에 분홍빛 앞치마를 멘 소피아가 보였다. 높으신 분이 몸소 기다려주실 줄은 몰랐는지라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런데 앞치마라고?

“많이 궁금해 보이는 얼굴이구나.”
“어, 예.”

텅 비어있어야 할 책상 위에는 지금 수많은 요리 재료와 그릇들이 놓여있었다. 소피아의 두 손은 열심히 부침개와 젓가락을 놀리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서 프라이팬 안의 각종 야채와 고기가 너울너울 춤을 췄다. 맛있는 냄새의 근원지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메인 요리 말고도 샐러드와 따뜻한 밥 등이 싱그러운 향기와 따뜻한 김을 뽐냈다.

“내가 직접 싸우러 나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앉아서 윗사람 흉내만 내기도 민망하더구나. 거드름 피우기는 내 취향도 아니고… 이런 일이라도 하는 쪽이 나아보였느니라.”

천연덕스러운 그녀의 설명에 검은양 팀 모두, 특히 차원전쟁 때 곁에 같이 싸웠던 제이는 입을 떡하니 벌렸다. 차원종을 수없이 때려잡는 손으로 요리라! 일전에도 요리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지만,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진 않았다. 그나마 소피아에 대해 모르는 아이들은 그런 은밀한 내막(?)보단 음식에 더 관심을 보였다.

“와, 소고기다! 소고기!”
“좋겠네. 좋아하는 쇠고기라서.”
“액정에 기름 튀면 안 좋으니까, 게임기는 좀 집어넣지?”
“아주머니 요리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오늘의 메뉴는 찹 스테이크. 가장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히 검은양 공인 소고기 마니아인 유리였다. 구경하는 중에도 게임기를 놓지 않는 세하를 보며 슬비는 한숨만 쉬었고, 미스틸테인은 연신 싱글벙글한 얼굴로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잠시 후, 문이 덜컥 열리면서 김유정이 서류다발을 들고 들어왔다.

“얘들아 보고해야… 아, 소피아 이사님도 계셨네요. 그런데 이건…….”

유정도 의아한 얼굴로 소피아를 쳐다보았다. 붕어빵 찍듯 똑같은 반응에, 소피아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이 그렇게도 신기하던가? 잠깐 자신의 몸을 훑어본 그녀는 검은색 옷과 분홍색 앞치마가 상당히 언밸런스함을 깨달았다. 아주 살짝, 그녀의 뺨에 홍조가 들었다.

“흠흠! 옷이 좀 그렇기는 하구나. 다음부터는 다른 앞치마를 두르마. 애들 보기에도 안 좋았겠군.”
“아니요. 그게 문제는 아니지만요. 어쨌든, 아이들에게 줄 음식인가요?”
“싸우는 일이 어디 보통 힘든 일이겠느냐. 열량 보충이야 항상 필요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소피아는 연신 요리에 집중했다. 빳빳하던 야채에 기름기가 스며들어 부드러워졌고, 기름진 소고기는 야채에서 배어나온 물과 양념에 범벅이 되며 더욱 윤기 있게 변해갔다. 당연히 달착지근한 냄새도 방 안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세하를 뺀 나머지는 프라이팬에서 눈을 뗄 줄을 몰랐다.

“제이군도 한창 때는 많이 먹었었지. 기억나지 않느냐? 과인이 대충 감자만 삶아왔어도 팀원 중에서 제이 네가 가장 많이 가져갔었던 거.”
“그러다가 지수 누님이 ‘욕심 부리지 마!’라고 혼내셨죠. 그럴 때마다 손날치기로 때리시는데, 어휴! 어르신은 그 손맛을 모르실 겁니다.”
“과인이야 그 아이에게 맞을 일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정도면 되었구나. 다들 손 씻고 오너라. 상은 미리 차려놓으마.”
“네!”

유리를 선두로 아이들이 손을 씻으러 나갔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던 유정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뭔가 공기가 밝아진 것은 좋지만, 분위기가 매우 어수선해져서 찜찜한 기분도 들었다.

“미안하니라. 먼저 언질을 주고서 이랬어야 했는데.”
“아아, 저지르고서 그걸 말씀하시면… 다음부터는 말씀부터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나저나 너는 안 가보는 것이냐?”
“네?”

유정이 되묻자 소피아는 그녀의 두 손을 가리켰다. 종잇조각같이, 각종 서류를 자르고 정리한 흔적이 손바닥에 역력했다. 손 씻고 오라는 뜻임을 알아차린 유정이 더듬거렸다.

“어… 전 배가 별로 안 고파서요.”
“밥은 제때 먹어야 좋은 법이다. 어르신 말은 잘 따라야지?”

아이를 훈계하는 것 같은 말투에 유정은 무안해졌다. 그러나 저 ‘어르신’이 그녀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기에, 뭐라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관리요원은 팀을 체크하면서 항상 같이 긴장하는 위치에 있다. 몸으로 뛰지는 않지만 피로한 것은 똑같지. 사양 말고 아이들이랑 같이 먹도록 하여라.”
“아, 알겠습니다. 이사님.”

저렇게까지 부드럽게 말하니 거절하기도 민망했다. 손을 툭툭 턴 유정이 목례를 한 뒤 문밖을 나섰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제이는 그녀를 뒤쫓듯 재빨리 따라서 나갔다. 그 많던 인원이 자리를 비우자, 사무실 안은 고기 굽는 지글지글한 소리가 대신 메웠다. 잠깐 문 쪽을 쳐다본 소피아는 다시금 요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모두가 만족한 만찬이었다. 유리가 가장 기대하던 찹 스테이크는 물론, 제철 야채로 만든 싱싱한 샐러드와 갓 지은 밥 등이 금방 자취를 감추었다. 접**닥에 조금 고인 양념만이 여기 음식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피아를 만나러 온 데이비드도 중간에 합류하면서, 오히려 음식이 조금 모자라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제일 빠르고 많이 먹은 유리가 배를 두드리며 만족한 한숨을 쉬었다. 푸근한 표정이 꼭 천국에 온 사람 같았다.

“아아~ 이렇게 많이 먹어본 건 진짜 오랜만이에요.”
“너 좀 많이 먹기는 했지.”
“여자애한테 그런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세하 너도 은근히 많이 먹더라? 게임기 손에서 놓을 정도로.”
“윽…….”
“맛있었어요!”

제이는 말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기름진 음식을 자제해야 하는 그를 위해서인지, 소피아는 샐러드도 많이 만들어주었다. 결과적으론 모두가 만족한 식사였던 것. 처음엔 주뼛주뼛했던 유정도 막상 수저를 들고선 아이들과 경쟁을 하며(…) 식사에 열중했었다.

“잘들 먹었다니 다행이구나. 제이군이랑 유정양은 과인을 좀 도와주겠느냐? 뒷정리도 잘 해야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처음 만나 뵈었을 때랑 똑같네요.”

설거지를 시킨단 말에 제이가 짐짓 침울한 척을 했다. 그의 말마따나, 그녀는 처음 만난 날에 멋대로 밥을 지어주고서 멋대로 설거지를 같이 하게 만든 ‘위업 아닌 위업’이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는 뒷정리를 해야겠지?’
‘에?’
‘놀라기는. 먹었으면 치우는 것은 당연 하느니라. 거기 서지수라고 했나? 지수 양도 얼른 와서 돕도록!’



“처음 만나 뵈었을 때라면, 차원전쟁 때요?”
“응. 누님한테도 기어이 설거지를 같이 시키셨지. 그때 누님 얼굴이 참 예술적이셨는데 말이야.”

그때를 회상하는 제이의 얼굴이 아련했다.
그 혼란했던 와중에 찾아온 황당한 이야기와 따뜻한 밥… 생각해보니 소피아가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강력한 힘을 가진 원군’보다 그런 ‘일상적인 즐거움’이 더 컸었다. 싸움과 피로 얼룩진 시간에는 의외로 그런 별 거 아닌 일들이 더욱 위로가 되니까. 침울한 척을 하던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맺혔다.

“이사님, 잠깐만요. 전 아직 보고서를 다 안 써서…….”
“어허. 유정씨, 어른이 돼서 발을 빼서야 쓰나. 얼른 설거지 하고서 가면 되지.”
“제이씨!”
“나도 같이 할 테니까 너무 절망하진 말게나. 같이 일할수록 좋은 법이지.”
“국장님, 국장님까지 그러시면!”

일을 이유로 발을 빼려는 유정에게 제이와 데이비드가 연타를 가해왔다. 졸지에 물러설 곳이 없어진 유정이 절망하려는데, 지켜보던 소피아가 느닷없이 폭탄을 하나 던졌다.

“오. 데이비드군 접시 깨먹는 솜씨는 과인이 익히 잘 알고 있지. 오늘은 몇 개를 깨먹을지 기대하마.”

흑역사란 이름의 폭탄을.

“어, 어르신. 그건……!”

데이비드의 날카로운 표정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눈동자는 지진이 난 땅처럼 격렬히 흔들렸고, 자세는 고목나무처럼 빳빳하게 변했다. 뜻밖의 사실에 직속부하인 유정이나, 까마득한 상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흑역사를 같이 알고 있는 제이만이, 방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아하하하! 형의 흑역사가 이렇게 다시 드러날 줄이야. 지금도 집에서 식기세척기만 주구장창 돌리지? 저번에 가봤을 때 접시들에 이상한 자국들 많더라.”
“제이, 조용히 해다오. 애들이 앞에 있다.”

데이비드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무너져가는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최선의 자세였지만, 이미 불꽃처럼 새빨개진 귀는 그가 어떤 상태일지를 짐작케 했다. 감히 상관의 일이라 웃을 수도 없는 유정은, 입을 틀어막다시피 하며 웃음을 참았다.


그렇게 검은양 팀에겐,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기밀이 하나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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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지에 가정부가 되신 최강의 아줌마.txt


였습니다.(응?)







2024-10-24 23:01:5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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