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기사(Knight of Janus)-2편

에피메테이아 2016-05-18 0








오늘도 야음을 틈 타서 1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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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오신 건가.”

형광등조차 켜지 않고 어두컴컴한 방 안.
그곳에서 오롯이 빛나는 진홍색 눈동자가 있었다. 그 두 쌍의 눈동자가 바라보는 것은 유일하게 빛나는 모니터, 아니, 그것을 넘어선 생각과 망상 깊은 곳… 눈동자 속에서는 빛나는 생각과 음울한 연산이 춤을 추었다.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요.]
“괜찮아. 어차피 우리가 하려는 일 자체가 도박이다.”

모니터를 통하여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도 있고 절제된, 군인의 기백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걸 들은 눈동자의 주인공, 데이비드 리는 쓰게 웃으며 답했다.

“숨겨 봤자 그분에게는 언젠가 들킨다.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그분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유럽의 방패이자 인류 최후의 보루. 그러기에 그런 분을 당신 가까이에 계시게 하는 것이 불안합니다. 솔직히는, 실수하시는 거라 판단됩니다.]
“그렇다고 불러온 분을 도로 가라고 할 수도 없지. 그럼 의심만 더 사게 될 거야.”

상대는 아무래도 데이비드가 불러온 여인, 소피아 린도스를 경계하는 듯했다. 걱정과 의혹이 가득 어린 의문에 데이비드는 딱 잘라 대답했다. 이미 기사단장은 한국 땅을 밟았고, 그 순간부터 데이비드의 ‘계획’서 그녀를 배제하고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미쳐 날뛰는 황소의 등에 탄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데이비드가 어느 정도 바란 흐름이기도 했다.

“그분의 존재는 우리에게 도움도 될 것이다. 너무 염려하지는 말도록.”
[어떻게 말입니까?]

또 다른 질문에, 데이비드는 침묵으로 응했다. 더 이상은 말하지 않겠단 무언의 명령이었다. 통신 중이던 상대는 그의 그런 반응에 체념한 투로 대답했다.

[…알았습니다. 보스는 당신이니까요.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하던 일이 끝나면 보고하도록.”
[Roger.]

대화가 끝나고, 모니터마저 어둠에 잠겼다. 완연한 어둠 속에서도 데이비드는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
백십자 기사단의 단장이자 유니온 이사를 겸하고 있는 권력자. 그리고 유럽 최강의 실력자이기도 한 소피아 린도스. 그녀는 지난 전쟁에서 군단장급 차원종조차 두 자릿수 단위로 학살한 극악의 강자였다. 어디 힘뿐이랴?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와 통찰력, 그리고 직감은 거의 예지의 영역에까지 도달한 현자이기도 했다. 존재만으로도 태풍과도 같이 격렬하고 또 거대한 여인이었다. 아까까지 통신하던 상대방의 말처럼, 그녀를 부른 것은 엄청난 실수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때로는 통제 불가능한 변수도 필요한 법이지. 계획이라는 건 말이야.”

데이비드는 기꺼이 그 독배를 마시기로 했다. 모든 일은 ‘그 계획’을 위해서.





“우와.”
“저 숫자를 혼자서 잡으셨다고요?”

미스틸테인과 유리의 눈동자가 동전 만해졌다. 슬비도 표정은 담담했으나 놀란 기색은 감추지 못하였고, 세하와 제이만은 ‘그럼 그렇지.’하며 고개만 주억거렸다. 소피아는 그들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간만에 힘 좀 써봤느니라. 너희들이 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만, 전력을 안 쓰고 놀리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지. 기물파손 이외에 피해는 전무하니 걱정 말려무나.”

그렇게 말하는 소피아의 뒤편으로, 차원종의 시체들이 작은 산처럼 쌓여있었다. 흔히 쳐들어오는 있는 스캐빈저에 푸짐한 덩치의 트룹들, 거기에 보기도 힘든 희귀한 차원종까지 보였다. 저 많은 숫자를 홀로 사냥했다는 이야기에 검은양 팀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차원종들의 시신이 별로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부서진 흔적도 거의 없는데, 어떻게 잡으신 건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구멍이 하나에서 둘, 많아 봤자 두 자리를 넘기지 않았다. 손가락 하나만한 두께의 구멍이 차원종들의 유일한 상처였다. 심지어 그 상처에서는 피도 흐르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면 처음부터 이렇게 구멍이 난 줄로 착각할 정도였다. 슬비는 그녀의 정체에 더불어, 그녀의 힘에서도 경외감을 만끽했다.

“내가 쓰는 힘이 조금 독특해서 말이다. 세하군도 이걸 본 적은 없을 테고, 제이군은 본 적이 좀 되려나?”

소피아가 은근한 표정으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떠넘기는 그녀의 눈짓에, 제이는 약간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자연스레 아이들의 관심은 제이에게도 분배되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곤란한 분이십니다. 오시자마자 일을 시키시고.”
“네가 이 아이들의 대들보이지 않느냐? 대들보답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려무나.”

‘파이팅!’이라고 말하듯 주먹까지 꼭 쥐어 보이는 소피아. 예스러운 어투와 다르게 그녀의 행동은 참으로 발랄했다. 말을 듣지 않고 행동만 본다면 유리와 비슷한 연배로 보일 것만 같았다. 기대에 찬 그녀의 눈빛에 부담을 느끼면서, 제이는 헛기침을 몇 번 했다.

“흠흠! 너희들도 알다시피 등급이 높은 차원종은 위상력으로 물리적인 저항을 제거하여 타격이 간다. 이건 다들 알고 있지?”
“네~!”
“하지만 그중에서도 예외는 몇 가지 존재한단다. 그런 사례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돋보이는 것이, 지금 우리들 앞에 계신 이분이시지.”

떠넘겨진 것에 대한 불만을 표하듯, 제이는 소피아를 엄지손가락으로 건성건성 가리켰다. 자신이 언급되자 그녀는 슬쩍 손을 흔들어주었다.

“예외라고요?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래, 대장. 이분이 사용하는 힘은 위상력이 아니거든. 조금 더 특이하고 이상한 힘이라고나 할까? 유니온에서도 무슨 힘인지 분석하려고 애를 썼지만 전부 보기 좋게 실패했더군.”
“어떤 점에서 특이한대요? 궁금해요!”
“위상력이 공격적으로는 투박하고 사용방식이 제한되어있다면, 이분이 발휘하는 힘은 사용방식에 제한이 없지. 우리가 흔히 동화나 옛날이야기에서 보던 것들 있잖아? 마법이라든지 말이야. 위상력으로 공격하는 수단은 무기로 할 수 있는 것들하고 그렇게 차이가 없지만, 저 분이 쓰는 힘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활용이 가능해.”

거침없는 칭찬에 소피아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그런 ‘기상천외함’이 잘 전해지지 않는 법. 아이들의 궁금증은 풀리기는커녕 더욱 심화되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이들을 보면서, 소피아가 손뼉을 쳤다.

“자자! 중요한 것은 과인의 힘이나 저것들을 잡은 힘이 아니지. 과인이 너희들과 같이한다는 사실, 그것이 중요하니라. 대충 이곳은 끝났으니 본부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데이비드 군하고도 만나보고 싶구나.”

그러면서 그녀는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여자의 비밀은 무죄다. 그런 말을 발랄한 행동으로 대신 말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말투와 행동의 갭이 너무나도 큰 사람이었다. 유리와 미스틸테인은 물론이거니와, 슬비와 세하마저도 그런 모습에 피식 웃었다.

‘어르신.’

그러나 제이는 웃지 않았다. 잠시 후, 데이비드와의 만남에서 그녀가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30분 후. 신서울 지부 국장실.


“마중 나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괜찮다. 일이 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오라 가라 할 수는 없는 법이지.”

도합 3명의 사람이 원탁에 마주앉아 차를 즐기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있는 것은 손님이자 최고연장자인 소피아, 그리고 양 옆으로는 각각 데이비드와 제이가 앉아있었다. 탁자에 놓인 홍차가 약간의 쓴맛과 짙은 상큼함을 공기 중에 흩뿌렸다.

“검은양 프로젝트에 관해서는 이미 문서로 전해드렸었으니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래. 꽤나 골치 아픈 계획으로 보였네. 데이비드 군. 젊은 위상능력자들을 조기에 현장교육을 거치게 해서, 전투력을 보강한다. 이건 파벌을 넘어서 양심적인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을 듯하네. 맞는가?”
“하하하! 역시 어르신께 뭔가 숨기는 일은 어렵군요.”

가차 없는 소피아의 말에, 데이비드는 괜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나 유럽의 방패. 수없이 많은 난관을 거쳐 온 만큼 문서만 보고도 그 내막을 단숨에 파헤쳤다. 다행히 ‘그 사실’까지 들키진 않았지만, 이건 문서엔 아예 적어두지 않은 것이라 운 좋게 피해갔을 따름이었다.

“언론의 적대적 보도와 어린 위상능력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들의 반발, 유니온의 방침에 대한 국가들의 의혹… 대충 따져 봐도 산 넘어 산이겠구나.”

소피아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예상되는 문제를 말하였다. 어느 것 하나 그냥 넘기기 어려운 문제들이었다. 지금은 겉으로나마 평화로운 시기. 미성년자를 현장에 동원하는 일은 그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결함 있는 계획이었다.

“국가들의 경우는 그래도 대충이나마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문제가 된다면 그건 언론이겠지요.”
“이런 사소한 사실을 데이비드 군이 몰랐을 리는 없으리라 생각하는데 말이야. 묘책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걸 모두 감수하고서라도 계획을 진행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일순간, 소피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해있었다. 제이가 그것을 보고 뛰쳐나가려던 자신을 진정시켰다. 그 눈빛을 직접 대면하게 된 데이비드는 긴장감에 몸을 떨었다.
그랬다. 눈앞에 있는 그녀는, 도덕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한 여인이었다. 아이들을 봤을 때야 아이들을 위해서 웃어넘겼다지만, 어른들만 있는 이 공간에서는 그런 가면도 필요 없을 터였다. 180도로 달라진 분위기에 찻잔에서 올라오던 김도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지금은 추궁과 고백의 시간이었다. 적당한, 그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말을 조합하느라 데이비드는 진땀을 뺐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다행히도 소피아는 인내심 있게 데이비드를 기다려주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데이비드는 자신의 신념을 담아 말문을 열었다.

“이유가 있는 진행… 네, 맞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런가? 그 이유를 한 번 들어보고 싶군.”

소피아와 데이비드의 눈이 서로 마주보았다. 데이비드도 눈빛 하나로는 자신이 있었으나, 태양과 같은 황금빛 눈동자를 볼 때면 그 자신감이 0으로 수렴하는 걸 느꼈다. 고개를 숙이려는 스스로를 몇 번이고 붙든 그는, 최대한 덤덤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어르신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차원전쟁 때 우리 인간들의 피해는 막중했습니다. 인력은 얼마나 투입하든 부족했고 소년병들을 투입하는 일도 망설임 없이 진행되었죠.”
“안다. 가장 가까이에서 그 꼴을 목도한 것이 과인이었으니까.”

차가움이 살짝 가라앉고, 그 자리를 무거움이 대체했다. 셋 모두 차원전쟁을 경험해본 당사자들이었다. 그때 그 시절을 헤쳐 나온 그들의 기억은 결코 평화로울 수 없었다.

“그런 비효율과 낭비를 수없이 보면서,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검은양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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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편 요약: 약 파는 사람(데이비드)vs약 사는 사람(소피아)



가 되겠습니다.(응?)








2024-10-24 23:01:4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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