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春] (合) 마주치다

루이벨라 2016-05-15 8

[春] , 反[春] 에서 서로 만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 평행세계 경계에서 세하와 유리가 만난 이야기입니다.






 "세하...?"

 "유리...?"


 두 사람의 입술에서는 각자 서로가 그리워했던 이의 이름이 나왔다. 입밖으로 꺼내면 너무나 아픈 단어여서, 말하지 않으면 잊어버릴거 같았지만 너무나 아픈 두음절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숨기고 있었던 이름을...


 말해버렸다.


 "..."

 "..."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확인을 한 것과 달리 두 사람 사이에 있는 10m라는 거리는 전혀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의심스러웠으리라. 분명 테러 진압을 하다 죽어 이제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는 남편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눈앞에서 희생되었던 아내가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게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차라리 비슷한 얼굴을 한 사람과 마주쳤다고 하면 더 현실적이었는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자신들이 알았던 얼굴과 100%로 일치했고, 이름마저도 같았다.


 이런 꿈을 꾸는 건 꾸는 동안은 행복했다. 하지만 꿈에서 깨어나 맞이해야할 현실이 매우 아플 뿐이었다.


 유리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앞에 있는 세하를 보았다. 실제로 세하가 살아있더라면, 이라고 기도했던 적은 많았다. 아무리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도 이미 죽어서 화장까지 한 사람이 멀쩡히 되살아올리가 없다는 건 잘 알았지만, 세하가 죽은 초기에는 꽤 많이 기도를 올렸다. 그때의 작은 기도가 이제서야 이루어진걸까?


 저쪽 유리와는 다르게 이쪽 세하는 이게 꿈이라는 걸 100% 믿고 있었다. 유리는 세하가 죽을 당시 그 자리에 직접 있지 않아서 세하의 죽음에 대해 좀 모호한 편이었지만, 세하는 직접 보았다. 애초에 유리가 죽은 건 세하 자신이 무능했기 때문, 자신이 옆에 있는데도 아무런 힘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유리가 죽은 직후에는 그 사실을 가지고 내가 죽어**다느니 날 죽이라느니 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던 세하였기에, 지금 이 비현실적인 상황은 비현실적인 상황이라고 그대로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꿈이라고 해도 이런 꿈은 나쁘지 않았다. 사진으로 보고 기억을 되새기면서 보는 유리의 모습은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눈앞에 펼쳐진 형태로 생생하게 다시 보는 유리의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감사했다. 이 꿈에서 깨어나고나면 마주할 현실 때문인지 꿈에서 깨어나기 싫을 정도였다.


 그런 자신의 생각이 유리에게 들렸던 모양이다. 자신을 보는 유리의 눈빛이 무척이나 서글펐다. 꿈 안에서라도 자신과 재회하게 되어 기쁘다는 표정은 있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어쩔수 없이 이별을 맞이해**다는 사실에 서글픈 모양이었다. 유리가 입을 열었다.


 "죽은 줄 알았어..."


 그제서야 세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입장에서 죽은 사람은 유리였다. 하지만 저쪽편에 있는 유리는 지금 세하 자신을 죽은걸로 알고 있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반대되는 상황이었기에 깨달았다. 지금 자신 앞에 서 있는 유리는 자신과 결혼까지 하고 살았던 '유리' 가 아니었다.


 "...너 누구야."


 갑작스런 세하의 질문에 유리는 당혹스러웠다. 지금 여기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는 상관이 없었다. 처음에는 이곳을 나가서 슬비들과 만나서 도시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지금은 세하가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어서 솔직히 자신이 먼저 잡은 약속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거 같았다.


 어찌 생각하면 서유리라는 인간의 마음은 의외로 강하지는 않은거 같았다.


 "세하야...? 나 유리야. 모르겠어? 네 아내."

 "유리는 맞아. 근데 넌 내가 아는 그 '유리' 는 아닌거 같아. 왜냐면 내가 알고 있던 유리는 죽었거든."


 세하의 서슬퍼런 말에 유리는 그제서야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에 자각하기 시작했다. 저쪽에 있는 세하가 방금 전에 내뱉은 잔혹한 말.


 유리는 죽었거든. 자신이 죽었다? 그렇게 따지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세하가 죽었다는 거. 그러니 살아있는 자신과 함께 이 곳에 같이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당신 정말 누구야? 어째서 세하 모습을 하고 있는거야?"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넌 정말 누군데 죽은 내 아내 모습을 하고 있는거야. 취미 참 고약하네."

 "그 말, 좀 실례 아니야?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유니온 신서울 지부 <검은양> 소속 클로저 서유리라고!"

 "...그렇다면..."


 그제서야 세하의 머릿속에는 한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명확히 이해시킬 수 있는 건 '그거' 뿐이었다.


 평행세계(平行世界, Parallel World).




 돗자리를 피고 앉은후, 유리가 싸온 도시락을 먹으면서 둘은 꽤나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로 인해 세하는 자신의 억측이 딱 맞아떨어졌다는 걸 알았다.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유리는 서유리가 맞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서유리였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유리가 죽은 임무에서 저쪽 세계의 유리와 세하는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후, 저쪽 세계의 세하는 테러리스트 기지를 탈환하는 작전 도중 순직을 했다는 걸. 아직 세하 자신은 겪지 못한 일,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그때 죽었구나..."


 자신이 죽었다는 반응에 유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아마도 무언가 들은게 있나보다.


 "나, 그때 세하가 나를 감싸안아줘서 그렇지, 안 그랬으면 나 그대로 즉사였대. 그게...네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는 그대로 일어났구나."

 "..."


 유리가 그런 위험에 처했는데도 구하지 못했던 자신을 늘 탓했는데 다른 세계에서는 살게 해주었던 모양이다. 그걸 알고나니 마음 한구석에 늘 자리잡고 있던 미안함이 조금 사라졌다. 그와는 다르게 유리는 조금 불안한 표정이었다.


 "...그...테러리스트 기지 탈환 작전을 아직도 안 한거라면...난 세하 너는 그 임무 절대 하지 않았으면 해."


 유리가 불안해하고 있던 건 그 부분이었다. 이쪽 세하가 지금까지는 겪지 않은 일이라고해서 안 일어날 보장은 없었고, 거기서 세하가 안 죽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러니 유리의 말은 되도록이면 그냥 피하라는 말이었다.


 세하...세하는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분명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기에 자신의 이름을 불려도 별 감흥은 없을줄 알았는데, 자신의 심장 박동이 조금 빨라짐을 느끼고서 깨달았다. 역시 유리긴 유리구나...자기 몸보다 내 몸을 언제나 걱정했던 것도 유리다웠다. 그 점이 세하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점에서 '유리' 란 생각이 확실히 들었다.


 둘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었다. 가장 소중히 여기던 사람이 떠나버려서...


 ""많이 힘들었구나...""


 예정된 이별도 아니었다. 임무를 하던 도중,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고사였다. 그로 인한 충격은 두 사람의 인생을 틀어지게 만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많이 울고, 방황도 하고, 자기 자책도 하고, 심지어 같이 따라갈까 하는 좋지 못한 생각도 했었다.

 그리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난 말이야...세하 네가 다른 세계에서는 살아있다는 거에 안심이 돼."

 "...나도 그래..."


 묘했다. 다른 세계에서의 자신은 죽었는데 다른 사람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심을 한다는 게.


 그 말을 끝으로 둘 사이에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바람이 살짝 불자 벚꽃잎이 눈처럼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봄인데도 한겨울에 볼법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세하가 머뭇거리며 옆에 놓여있는 유리의 손 위로 살짝 자신의 손을 포갰다. 온기가 자신의 손에 올려진걸 느낀 유리였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다시 두 사람 사이로 지나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원래 자신들이 있었던 강변길에 되돌아가있었다.


 신비롭고도 기묘한 만남이었다.






(남겨진 이야기 - 유리 ver.)

 "유리야, 좀 늦었네."

 "미, 미안. 잠깐 딴 생각하느라..."

 "또 세하 생각한거야?"


 슬비는 조금 아파보인다고도 생각되어질 미소를 지었다. 또 펑펑 울면서 왔을 유리가 상상되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의외로 유리의 표정은 밝았다. 오랫동안 짊어지고 살았던 짐을 드디어 내려놓은 표정이었다.


 "흠? 세하 생각한거치고 기분이 좋아보이네? 정말 무슨 일 있었어?"

 "히히, 비밀이야!"


 다들 자리를 잡고 앉고서 도시락을 꺼내는데 이상하게도 유리의 도시락통은 비어있었다.


 "유리야, 도시락 안 싸왔어? 우리거 조금 나눠줄까?"

 "아, 아니야...사실 도시락 조금 까먹으면서 왔거든..."


 그 이야기를 할때의 유리의 뺨은 홍조도 같이 피어올랐다. 홍조와 잘 어울리는 함박미소와 함께.




(남겨진 이야기 - 세하 ver.)

 한창 밤을 새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는 슬비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받는 슬비.


 "...여보세요."

 -나야. 또 야근했어?


 전화 속 상대가 누군지 알자마자 슬비의 온몸을 지배하고 있던 잠은 어느새 사라졌다. 세하가 왠일로 전화한것일까? 게다가 세하의 목소리는 유리가 죽은 이후로 제일 밝고 활기찬 목소리였다.


 -힘들지?

 "아, 아냐...근데 무슨 일이야? 혹시 병세가 더 악화되었거나..."

 -그건 아니고. 이제 슬슬 일에 복귀할까해서 말이야.


 세하의 발언은 놀랍다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따뜻해지면 돌아온다는 말은 그냥 핑계거리라는걸 슬비도 알았다. 세하가 다시는 유니온으로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예상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세하가 갑자기 복귀한다니...


 반갑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너 정말 괜찮아? 쉬고 싶으면 더 쉬어도 되고..."

 -아, 아냐. 이젠 정말 푹 쉬었거든. 이제 날도 완전히 풀린거 같고 일을 해야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세하의 목소리에는 웃음기도 같이 배어있는거 같았다.


 -내가 '저쪽' 몫까지는 열심히 살아야지.

2024-10-24 23:01:4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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