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멋진 클로저스 온라인에 축복을 1화

마법사의밤 2016-05-15 1

게임이나 만화에는 수많은 클리셰가 존재한다.
사망플래그, 생환플래그, 소꿉친구, 동급생, 환생물, 루프물.
그 중에서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어떻게 생각할까?
거기서 선언한다.
단언한다.
그야 말할 것도 없이...


최고지!







"피해!!!"
급박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진다. 중년 남성의 목소리.
게임 속의 녹음된 J의 음성과는 사뭇다른 약간 경박한 목소리가 경종을 울린다.
"뒤!"
그에 몸을 돌린다. 방패로 삼듯 검을 앞으로 내밀자 무언가와 부딪혔다.
노린 게 아닌 요행이 부른 행운.
금속성의 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진다.
"큿!"
맞지도 않았을 텐데 신음성이 흘러나온다. 저린다.
고작 한 번 부딪혔을 뿐인데 검을 쥐고 있는 손에서 힘이 풀린다.
싸우는 건 생각하지 않는다. 도망친다. 거리를 벌리자.
무기가 바닥에 떨어졌지만 주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꼴사납고 추하게 뒷 걸음을 친다.

하아... 하아...
숨이 거칠다. 몇 분 싸우지도 않았는데 흡사 수십분은 뛰어다닌 거 같다.
심장이 터질 거 같다. 긴장 탓에 침을 삼키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다.


-키기기기기긱
여유일까? 아니면 기색을 살피는 걸까?
'바깥'에 있었을 때는 바보같은 행동이라며 치부했을 테지만, 지금은 이 공백이 감사하기 짝이 없다.
왼손의 무기를 고쳐들고 부딪힌 오른 손으로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
감각이 마비된 걸까? 아니면 공포심에 굳어버린 걸까?
앞서 나갈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적의 눈치만 살피던 그 때.


"좋았어!!!"
-끼익!
중년 남자의 환호성과 함께 적이 지면에 쓰러진다. 
빛의 입자가 되어 사라지는 적을 보며 그는 울부짖는다.
하지만.

-끼기기기기긱

적은 하나가 아니다.
수십의 적이 방금 전 광경에 자극을 받은 듯, 거세게 이를 갈기 시작했다.
이놈들을 쓰러트린다해도 뒤가 있다. 뒤를 해치워도 다음이 존재한다. 
그렇게 모든 적을 해치워도 마지막에는 보스가 남아있다.

"후우..."
숨을 내쉰다. 저 아저씨 덕분에 간신히 상황이 파악됐다.
지옥이다. 설령 여길 돌파해도 갈 길은 멀고도 멀다.
그래도 방도가 없다. 
이것 밖에 남지 않았다면, 이걸 하는 수 밖에 없다.

앞을 바라본다.
격려로는 안 된다. 
착각이든 환각이든 자만이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
앞으로 뛰쳐나간다.

그 앞에는, 그 시선의 끝에는 적이 보인다.

[Lv 1 스캐빈저]

"..."
초보입니다만.
불만이라도?







"아, 또 실패했어!"
스캐빈저의 키기기기긱 소리에 이명증 걸리기 일보직전. 
키패드를 이용해 무사히 던전에서 도망쳤다.
죽지 않아도 되고 위험을 감수할 필요도, 목숨을 걸 필요도 없다.
즉, 언제 어디라도 [작전 이탈] 버튼을 누르면 안전하다.

그런 버러지 정신에 입각하여 현재 [역삼 주택가 EASY]에 머물러 있다.

"동생.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건 어때?"
방금 전 던전에서 들었던 중년 남성이 말을 걸어왔다.
이전 게임에서부터 계속 친구창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형이다. 

닉네임은 -이터널포스블리자드-

기니까 아저씨라고 부르고 있다.
바깥에서의 본직은 차량정비공. 취미는 오토바이 개조와 튜닝이다.
나이는 26살. 통장이 마이너스를 찍는데도 과금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게이머의 귀감이다.
참고로 아저씨가 선택한 캐릭터는 J지만, 설정보다 키가 작다.
덤으로 머리카락도 검은 색이다.

"그래도 아저씨."
"형이라고 불러. 나이도 별로 차이 안 나는게."
"그럼 아저씨."

"안 바꿨잖아..."

"상식적으로 버티는 게 무리잖아요. 트롭인지 뭔지가 하늘에서 떨어진다고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옥상에서 화분을 떨어트리는 게 차라리 낫지.
저런 거구가 하늘에서 낙하한다고 생각해봐라. 
지면에 금만 가면 다행이고, 사람 머리가 토마토 쥬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캐릭터 보정 탓인지 죽지도 기절하지도 않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여겨질 정도로 아프다.
흰자가 뒤집혀 진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겪어봤다.

"[강남역 인근 EASY]를 깬 것도 대단하지 않아요?"

스캐빈저의 무리를 뚫고 보스방에 도착했을 때 주술사가 불을 뿜고 있을 때는 정말로 포기하고 싶었다. 도중에 화상 데미지에 기절하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작전이탈 버튼을 눌렀다.

"뭐 그건 그렇다만."
아저씨도 그 부분은 납득하는 지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팀들에게도 물어봤는데 아직 지하철로 진입한 사람은 없는 모양이예요."
게임 시작한 지 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까지 엔딩을 ** 못하다니.
김치워리어가 알면 거품 물고 졸도할 거 같지만 무리도 아니다.
 
체력은 그다지 달지 않는다. 
기절도 잘 하지 않는다. 
이 2가지 요소 덕분에 위상력을 다룰 수 없는 인간캐의 정신은 죽어갈 뿐이다. 
스캐빈저 한마리를 쓰러트려도 다른 놈이 공격해온다. 
그걸 반복하다 보면 체력이 아니라 정신이 깍여서 포기하고 만다.
근성으로 버티다보면 포카리 탄 소주 원샷한 것 마냥 어느 샌가 정신을 잃는다.

"하다못해 몹몰이라도 됐으면 좋았을 텐데."
"뭐 현실이니까요."
1 : 20으로 싸워서 한 대도 안 맞고 이기는 흑형도 아니고, 
푸념을 내뱉으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에 옷이 좀 흐트러졌지만 아무렴 어떤가. 신경쓸 피로도는 남아있지 않다.
"역시 동료를 모아야겠죠."
어떤 던전이든 게임이든 2인조로 돌파해왔지만 이제는 무리인 거 같다.

EASY지만.
적 레벨도 1이지만.

슬픈 현실에 크게 한숨을 내쉬고 있자 아저씨가 헛기침을 하며 이쪽을 바라본다.
"크흠, 동생."
제대로 바라** 않고 힐끔힐끔 눈길을 주는 그 모습은 흡사, 
카페에서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가 다리를 꼴 때의 남자와 닮았다. 
그리고 간신히 눈치챈다. 내가 선택한 캐릭터는 '이슬비'
입고 있는 코스튬은 하얀색 치마.
주저 앉음으로 천이 젖혀지고 아저씨에게 '그게' 보이고 있다.
그래, 무엇보다 고귀하고, 숭고한 속옷이.





HEY~ BOY



"까악, 아저씨는 **!"
아, 참고로 난 남자다.
"쿨럭!"
실제로 아저씨가 피를 흘리지만, 그의 건강보다는 내 존엄성이 위험하다.

"**, **, 짐승, 꺄악~ 뭘보는 거예요."
"... 동생. 부탁이니까 하의 탈착 좀 해주면 안 될까?
 이슬비는 벗으면 트레이닝복이니까. 제발 부탁이야!"

아니, 무슨 소리를.
이 치마에는 무려 물리방어률 1%가 붙어있다. 조금이라도 데미지를 줄이기 위해 그리 쉽사리 벗을 수는 없다.
연신 피를 흘리는 아저씨를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그 와중에 사죄의 뜻을 담아 슬쩍 치마를 젖히는 것도 잊지 않는다.
판치랏!

"쿨럭!"

"역시 동료를 구하러 가죠. 아~ 이왕이면 근육질이거나 보디빌딩을 한 사람이 좋을 텐데."
지난 번에 세하를 선택한 여고생이 있었는데 영 못쓰겠다.
쭉 뻗은 맨다리에 길게 기른 윤기나는 머리카락, 피곤에 지친 목소리와 게슴츠레한 눈동자.
그 와중에 틱틱 하며 팅기는 게 캐릭터 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지만.







"음, 발포를 쓰다 검을 날리다니. 고민 할 것도 없지.
 역시 남자다. 우람한 근육. 땀내나는 모습.
 하악 하악 고동치는 근육의 향연.
 예스~ 마쵸 마쵸~ 맨! XX 염색체 최고~!"


"체인지! 명백히 세리짱이 더 낫잖아! 게다가 그런 애는 언제..."



"마쵸 ~ 마쵸~ 매앤~ "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가자! 새로운 동료를 찾아서.




2024-10-24 23:01:4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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