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뤄 주는 푸른 달

클로즈드베타 2015-12-23 1

 

 

 

 

"나타님, 저기 보세요. 푸른 달이에요."

 

 

 

 

 

이름 없이 코드명으로만 살아가던 두 사람, 벌처스 처리 부대의 나타와 레비아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중이었다. 가로등이 옅게 켜진 서울의 한 좁은 골목을 걸어가다, 레비아가 하늘 높은 공터에 떠 있던 달을 가리켰다. 희고 가는 레비아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던 달은, 평소와 달리 유난히도 푸른 색이었다.

 

 

나타는, 레비아가 가리키던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걸음을 멈추었다. 평소라면 시시한 장난 말라며 레비아에게 면박이나 주고 말 그였지만, 둥글고 푸른 달은 그에게 무슨 의미나 있었는지, 그는 독기 빠진 감상적인 눈빛으로, 마치 달을 바라보던 늑대처럼 달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간이나 그렇게 달을 빤히 바라보았을까, 나타는 달 쪽을 여전히 빤히 올려다보면서 레비아에게 말을 슬쩍 흘렸다.

 

 

 

 

 

 

"푸른 달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달이라던데. 소원이라도 하나 빌어** 그래, 차원종."

 

 

 


 

 

 

"웬일이세요, 나타 님? 왠지 나타 님 답지 않은걸요."

 

 

 

 

 

 

정말로, 평소의 나타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였기에, 레비아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에게 되물었다. 틀림없이 면박을 받을 질문이었기에, 레비아는, 질문을 한 후에야 아차 싶었지만. 뜻밖에도 나타는 레비아의 말에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여전히 달 쪽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훈련소에서 어떤 바보같은 녀석이 푸른 달을 볼 때마다 그렇게 말했었지.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말이야."

 

 

 

 

 

 

 

과거의 기억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타였지만. 그런 그가 예전 생각을 하면서, 달을 바라보고는 송곳니를 씩 드러내어, 웃고 있었다.

 

 

 

 

 

 

 

"푸른 달을 볼 때마다 우리한테 늘 같이 소원을 빌자고 했었는데, 바보 같은 놈이었어.

 

지금 와서는, 그 녀석의 소원이 이루어졌는지 어쨌는지, 알 길도 없군."

 

 

 

 

 

 

달을 바라보며 짓던, 냉소적이기까지 한 그의 웃음은 누군가를 추억하기에는 퍽 괴악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건만. 정작 그 앞의 레비아는 그 웃음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달을 바라보던 시선을 나타에게 옮겨, 뚱한 눈길로 나타를 바라보던 레비아에게, 나타가 다시 말을 툭 던졌다.

 

 

 

 

 

 

"너도 소원이 있다면 빌어 ** 그러냐. 차원종."

 

 

 

 

 

 

"나타 님. 레비아는 빌 소원 같은 건 없는걸요."

 

 

 

 

 

 

레비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 건네던 나타의 말에 돌아오던 레비아의 대답은, 즉답. 레비아가 나타에게 몹시나 기운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돌려주었고, 나타는 그런 레비아를 바라보며, 감상적이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레비아에게 쏘아붙였다.

 

 

 

 

 

 

"너, 약한 소리 하지 말라 했지."

 

 

 

 

 

"네? 어째서.. 약한 말인 거죠? 레비아는 정말로, 빌고 싶은 소원 같은 건 없는걸요.."

 

 

 

 

 

레비아의 말에 나타의 인상이 확 구겨지며, 나타가 레비아에게 소리쳤다.

 

 

 

 

 

"바보 같은 녀석. 살아가는 이상은 누구나 다 소망을 품고 사는 거야. 설령 그게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고 해도 상관없어.

 

소망 없는 삶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알겠냐, 너."

 

 

 

 

 

생의 의지가 없는 말, 사람의 나약한 모습을 누구보다 혐오하던 그였다. 빌 소원이 없다는 레비아의 말에, 나타는 얼굴이 확 찌푸려질 정도로 인상을 쓰면서 레비아에게 소리쳤다.

 

그런 나타에게, 레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나타 님에게도 소망이 있으신가요?"

 

 

 

 

 

 

억누를 수 없던 호기심 때문에 무심결에 던졌던 질문에, 레비아는 다시 아차 싶었다. 나타를 또 화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레비아가 몹시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 끝에 얼른 말을 덧붙였다.

 

 

 

 

 

 

 

"아, 제가 괜한 걸 물었나요...?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대답이 금방 돌아오지 않자, 레비아는 눈을 감고 꿈찔, 나타에게서 날아올 일격에 대비하듯 몸을 웅크렸다. 허나 왜였을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와야 했을 나타의 철권은 간데없이, 골목길에 흐르던 바람소리만이 레비아의 귓속에 가득 들렸다. 당연히 날아와야 했을 주먹이 이쯤에 날아오지 않자, 레비아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닌지 외려 걱정하며, 다시 눈을 떠 나타의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의외였을지, 나타는 하늘에 걸린 창백한 달에 눈이 붙박인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달을 또렷이 바라보던 나타의 모습은, 평소의 비열했던 웃음기도 한 점 없이 몹시 진지했다.

 

 

 

 

 

 

"누구보다 자유로워지는 것."

 

 

 

 

 

"네?"

 

 

 

 

 

"누구보다도 자유로워지는 걸 원해.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는 게 내 꿈이야."

 

 

 

 

 

 

푸르고 둥글던 달을 눈 안 가득 담으면서, 나타가 레비아에게 대답했다. 나타에게서 대답이 돌아온 것 자체가, 레비아의 입장에선 몹시 의외였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아는 여전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뜸을 들이고는 나타에게 되물었다.

 

 

 

 

 

 

"뭔가.... 어렵네요. 나타님은... 그 소원을 달님에게 빌었나요?"

 

 

 

 

"흥, 당연히 안 빌었지."

 

 

 

 

 

"왜죠? 나타님이 레비아에게는 소원을 빌어보라고 했으면서..."

 

 

 

 

 

레비아의 말에, 나타는 콧방귀를 뀌며 어깨까지 한 번 으쓱해 보이고는,

 

 

 

 

 

"자기 소원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나약한 녀석이나 저런 거에 기도하는 거지. 애초에, 내 꿈은 저런 거에 빌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이 아니라고."

 

 

 

 

 

달을 바라보던 시선을 레비아의 쪽으로 옮겨, 예의 사악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레비아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나약한 너 같은 녀석이나 달에게 소원을 빌어보도록 해. 혹시 알아? 정말로 파란 달이 소원을 이뤄줄지 어쩔지."

 

 

 

 

 

 

레비아는, 나타의 말을 듣고 잠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소원을 빌라는 말이 무언지 생각하기라도 하듯 나타의 얼굴을 두 눈 가득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 눈을 그대로 옮겨 달 쪽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는 레비아의 눈 속에, 푸르고 둥근 달이 가득 담겼다. 달을 바라보다, 레비아가 손을 모으면서 눈을 지긋이 감았다. 고개를 살짝 숙여, 입술을 손가락 끝에 살짝 가져다댄 그녀의 모습은, 그녀가 차원종의 딸이었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던 소녀의 모습, 바로 그 초상이었다. 나타는 그런 레비아의 앞에서, 기도하듯한 레비아의 모습과 하늘에 걸린 달을 한 번씩 번갈아 지긋이 쳐다보았다. 레비아가 기도하듯 모은 손을 풀어낼 때까지, 다시 눈을 뜨기까지, 둘은 몇 분간 그 모습 그대로 붙박여 서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지나고, 다시 눈을 떴던 레비아의 입가에는 미소가 싱긋이, 반달처럼 걸려 있었다. 평소에 작은 웃음조차 잘 짓지 않던 레비아였기에, 그 모습을 보고는 의아했던지, 나타가 레비아에게 물었다.

 

 

 

 

 

"소원을 빈 거냐, 차원종? 대체 무슨 소원을 빌었길래 그렇게 싱글벙글이지?"

 

 

 

 

 

레비아는, 전에 없이 방글방글하게 웃으며, 온 얼굴에 따스한 웃음을 가득 지은 채로 나타에게 대답했다.

 

 

 

 

 

"나타 님이 행복해지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

 

 

 

 

그 말을 듣고는, 나타의 안색이 확 굳어졌다. 화난 표정, 아니, 퍽 황당하다는 당황한 표정을 얼굴 가득 지어 보이며, 나타가 곧바로 언성을 높여 레비아에게 따져 물었다.

 

 

 

 

 

 

"무슨 소리 하는 거냐 너...?! 소원은 자기 자신을 위해 비는 거야! 소망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남의 소망을 대신 빌어주는 거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레비아는, 나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이번에는 나타의 화난 모습에 동요하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치만, 나타 님이 행복해지는 게 바로 제 행복인걸요."

 

 

 

 

 

이번에는 외려, 나타 쪽이 당황해 할 차례였다.

 

 

 

 

 

"뭐...?"

 

 

 

 

 

만면에, 인간의 아이라도 짓지 못할 순수한 웃음을 밝게 지으면서, 살갑던 기쁨을 고운 목소리에 가득 담아, 레비아가 전심으로 나타에게 소망이 담긴 말들을 전했다.

 

 

 

 

 

 

"그러니까, 나타 님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레비아도, 행복해질 수 있게."


나타는, 레비아에게서 온 말에 인상을 확 찌푸렸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의 표정은 그다지 화가 난 모습처럼만 보이지는 않았다. 레비아의 얼굴을 또렷이 쳐다보며, 레비아의 말들에 나타가 무신경한 말 한 마디를 더 덧붙였다.




 



"질리지도 않는 녀석이군. 마음대로 해라. 그게 너의 행복이라면 나도 간섭하지 않겠어."









그리고는 레비아에게서 홱 돌아서며, 나타가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를 이었다.










"대신 어줍잖게 내 앞을 가로막거나 하지는 마라. 알겠냐, 차원종?"




​언뜻 퉁명스럽게 들렸던 나타의 말에, 레비아는 싱긋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마다 진심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에, 지금 해 주었던 말이 사실은 다정한 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담아 -

레비아는 자신을 바라** 않는 나타의 뒤에서 싱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하고 밝게 대답하고는, 레비아가 나타의 뒤를 다시 졸래졸래 쫓아가며, 잠시의 애상을 뒤로한 채로 그들은 다시 본부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기로부터 돌아가는 길에는, 이전처럼 나타가 레비아를 망연하게 구박하는 일이나, 레비아가 평소처럼 의기소침해 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푸른 달 아래서, 그들은 여느 때의 복귀 여정과는 퍽 다르게, 꽤 정다운 모습이었다.

 

 

2024-10-24 22:42:3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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