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자양화

추방자 2015-12-08 0





트리플킬!
쿼드라킬!
펜타킬!

이어폰에서 울려퍼지는 아나운서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으며 마우스를 집어던졌다. 

"정말...  집중이 안되는 날이네, 오늘은."

혼잣말을 내뱉으며 욱신거리는 머리를 연신 두들겨대며 부엌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두통약은 영 약효가 들지 않는다. 의사 말로는 심리적 문제가 크다고 하던데 돌팔이라서 그런 변명을 한 것 같다.

"조만간 병원을 바꿔야할지도..."

중얼거리면서 다음 병원은 어디로 정해야할 지를 고민하다 문득 달력을 보았다.

'서기 2026년 10월 31일'

몸이 떨려온다. 드디어 내일이다. 이 두통의 주범이자 특효약. 안심이 되면서도 불안하다.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11월로 넘어가려 하는 달력을 보며 상념에 젖어 들어갔다.




'서기 2020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동료로 시작된 마음이 조금 커졌을 뿐이다. 그녀는 꿋꿋이 자기 자신의 업무, 클로저의 일에 집중을 하였다. 그 모습에서 매력을 느낀걸지도...

그렇다기보단 그녀는 너무 아름다웠다. 나같은 나비를 사칭하는 벌레나 민달팽이가 꼬여들정도로 무척이나 아름다운 꽃이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고마웠고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감사하였다. 분명 당시의 나는 행복하다 생각했고, 앞으로도 그 행복은 변치 않으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S급 요원 조차도 어찌 하지 못하는 것, 위상력 상실증이었다. 당시의 나는 위상력 상실증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마치 신서울 사태 때의 김기태 요원처럼 말이다. 굳이 오기를 부려서라도 검은양 팀의 일원으로 남고 싶었다. 위상력이 없어지면 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녀와 나란히 서지 못한다. 그녀가 나를 봐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가 나를 예전에 벌레처럼 대하던 연구원들의 눈으로 보는 것은 너무나 싫었다.

그 전에 무언가 확실하게 공을 세워야 한다고 나와 검은양 팀을 몰아부쳤다.

"꼭 투입시켜주세요. 저는 괜찮으니!"

오만과 객기의 결과는 참혹했다. A급 차원종의 출현으로 인한 차원종들의 광기에 더불어 나의 위상력 상실증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그 작전은 너무나도 비참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맡은 구역의 방어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차원종들의 포위가 순식간에 이루어졌고, 나와 나를 이송한 그녀를 제외한 검은양 팀 전원이 간단히 사망했다.

그녀 또한 일반인이 되어버린 나를 이송하기 위해 무리를 한 탓에 다시 전장에 나서기는 힘든 몸이 되었다. 

"괜찮아. 너는 잘못이 없어, 세하야!" 

그녀는 말해주었다. 나 때문에 나머지 검은양 팀원이 전부 사망하고, 관리 요원인 유정 누나가 해임되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나를 감싸주었다.

검은양 팀의 처리 문제는 나의 모친인 알파퀸이 해결해주었다. 대신 알파퀸은 무미건조하게 나에게 말하였다.

"알파퀸의 아들은 검은양 팀과 함께 죽은거야. 너는 이제 내 아들이 아니야."

나중에 가서 안 것이지만 그 사건이 나의 객기로 인해 유발된 것이 밝혀지면서 상당히 곤란해졌던 듯하다. 그걸 처리하기 위해 나에게 그런 소리를 했었던 듯하다.

어찌 됬든 상관없다. 나는 그녀와 함께 클로저를 은퇴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하였다.

비록 나의 위상력 상실증과 PTSD 때문에 살림의 전반을 그녀가 떠앉게 되었지만

그래도 둘이서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서로를 기대는 버팀목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검은양 팀이 죽었지만'
'알파퀸이 나를 버렸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녀를 보면서 웃을 수 있고 그녀가 나를 보면서 웃는다면 그걸로 괜찮았다. 그날까지는.

"좋은 조건의 아르바이트가 들어왔어!"

저녁밥을 담던 도중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갓 성인이 된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고생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 땐 나의 PTSD도 차츰 좋아져가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권유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좋은 기회를 걷어차고 싶진 않았나보다.

"영상 촬영 한두번 하고 이렇게 많은 돈을 받는 건데 당연히 해야지! 박심현 요원님이 찍던거랑 비슷할 것 같은데..."

라면서 말소리가 줄어들었다. 아무래도 클로저 시절의 일이 기억나버린 것이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웅크린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는 것 뿐이었다.




그녀는 결국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나 또한 PTSD를 극복하고 얼른 일을 하기 위해 병원에서 재활치료에 전념하였다. 

그러면서 차츰 그녀와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러면 안됬다.

그랬으면 안된 것이었다. 

그녀는 어지간히 아르바이트가 잘되었는지 며칠을 출장을 갔다오기도 하였다. 

나중가서는 원래 하던 일을 관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쪽과 정식으로 계약을 하게 되었다. 

좋은 일이었다, 분명히.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녀는 항상 내가 그녀의 일터에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모델로 촬영되는걸 보여주는게 부끄럽다나. 나에게 있어선 그저 여신인데.

진작에 위화감을 느꼈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 USB가 온 것은 그녀가 해외 로케라 하며 반찬을 잔뜩 챙겨주고 간 아침이었다.

'업무용'이라고 적힌 그 USB가 왜 궁금했는지... 그걸 컴퓨터에 꽂고선 무엇이 들어있는지 찾아보아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차, 또 이 두통이다. 뭐가 이렇게 심한건지 모르겠는데... 하나를 너무 집중해서 오래 쳐다봐서 그런 것 같다.

이럴 땐 꽃향기를 맡는게 심신 안정에 좋다. 마침 어제 자양화 한송이를 꽃병에 꽂아두었으니 그걸 보면서 안정을 하도록 할까...































설명충) 자양화는 수국의 다른말로서 아름답긴 하지만 민달팽이가 많이 꼬이는 꽃으로 알려집니다.

그녀가 누군지는 알아서 상상하시면 됩니다.


2024-10-24 22:42: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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