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듣고 싶은, 듣지 못한, 들려주지 않는.

Ryusia 2015-01-18 5

 

 

 

" 이세하. "

 

 

언제나 들리는 익숙한 음성. 게임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보

자니 역시나 분홍머리의 소녀가 내게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 알았어. 알았다고. "

 

 

자동반사처럼 게임기를 끈다. 이 이상 끌면 게임기가 무사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저번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땅바닥에 널브러져있는 건블레이드를 등에 꽂아넣고는 이 이상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강남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이후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 이 이후, 시간 있어 ? "

 

 

침착하고 표독한 음성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 목소리에 어딘가 상냥함도 조금 담겨있
어서, 내 등에 식은땀을 흐르게 했다.

 

 

" 너, 어디 아픈거냐 ... ? "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보며 열이 없음을 확인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확실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불길함을 느껴서 손을 떼니, 역시나 그 다음 날라온건 폭력이었
다.

 

 

" 이세하 … !!! "
" 으아아아 !!!! "

 

 


" 아파라 …. "

 

 

맞은 부분을 문지르면서 녀석이 화난 이유를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오늘은 잔소리를 하기 전에 게임기도 껐고, 임무 도중에도 게임기는 2번정도밖
에 안꺼냈고, 그 외에 그녀를 화나게 할 요소는 하나도 없었는데, 그녀가 볼을 붉히면서
나를 따로 불러낼 이유가 어디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본다.

 

 

" 아, 죽었네. "

 

 

무의식적으로 두드리고 있던 게임기가 어느새인가 게임 오버가 되어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다시 게임을 시작할 기분이 들지 않아서 뒷머리를 긁고는 주머니에 게임기를 찔러넣었다.

 

 

" … 문자라도 보낼까. "

 

 

계속 생각하다가 얼굴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문자를 적어야지 하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는데, 자세히 생각해보니까 ….

 

 

" 이거, 여자한테 보내는 첫 문자네. "

 

 

같은 검은양 팀에 소속해 있어서, 또한 앙숙이었기에 의식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
해보니 그 녀석도 여자였지. 라고 생각하니 어째서인지 금방 긴장해버렸다.

 

 

" 윽 … 뭐라고 써야하는거지 … . "
" 여! 자칭 게임 매니아 ! 뭐하고 있어 ? 세하야 ? "
" … 한쪽으로만 말해. "

 

 

가볍게 태클을 걸고는 친근하게 어깨동무를 한 동급생이자 친구인 서유리 또한 여자였다
는 사실을 생각해낸다.

 

 

" 야, 서유리. "
" 응 ? "
" 여자한테 문자보낼 때는 어떻게 보내야하냐 ? "

 

 

별 생각 없는 내 말이었지만, 그녀의 눈이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착각일까. 하지만
이내 서유리는 생각에 잠기더니 불길한 웃음을 얼굴에 담았다.

 

 

" 상담료는 … ! "
" 편의점 도시락. "

 

 

선수는 쳤지만, 그녀는 생각이 있던 것인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대체 얼마나 대단
한 것을 주문하려고 ….

 

 

" 1주일치! "

 

 

… 취소. 역시 이 녀석은 단순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담을 시작한다.

 

 

" 사실 슬비가 화난 것 같아서. "
" 어떤 식으로 ? "
" 평소에 안하던 행동을 해. "
" 어떤 ? "
" 나보고 임무 후에 시간이 없냐고 물어보던데. "
" …. "

 

 

계속 응답해주던 유리의 말이 끊긴걸 깨닫고는 그녀를 슬쩍 쳐다봤는데, 어라. 웃고있어 ?!

 

 

" ㅇ, 야! 왜 웃어! "
" 풉 … 푸후훕 … ."

 

 

볼을 긁적이면서 더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서는 메세지로 들어가서 슬비의 번호를 찍었지만, 이후에 뭐라고 적어야할지 고민
하다가, 결국은 아까 질문의 대답하는 형식으로 문자를 썼다.

 

 

[ 어… 일단 시간은 있는데, 무슨 일이라도? ]

 

 

그렇게 일단 보내놓고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려 했으나, 금새 벨이 울려서는 다시
메세지함에 들어갔다.

 

 

[ 강남 GGV 옥상으로 와. ]

 

 

그 문자 하나만 보고 어떻게 알까 싶었지만, 다행히도 내가 아는 강남 GGV 건물은 단 한
개 뿐이어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소답지 않게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겨서는 GGV 건물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 곳에는 흩
날리는 바람에 머리카락과 제복을 휘날리고 있는 소녀가 있었으니, 바로 문자를 보낸 장
본인이다.

 

 

" 그래서, 무슨 일이야? "

 

 

숨을 가다듬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사실은 여자와 이렇게 대화하는게 처음이여서
긴장한 것일 지도 모른다.

 

 

" … 이세하. "

 

 

나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는 듯 했으며, 괜히 나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효과 또한 가지고 있었다.

 

 

" ……. "
" 하 ? 뭐라고 ? "

 

 

그녀가 입을 벌리는 것까지는 내 눈에 보였지만 공교롭게도 때마침 불어온 강풍이 내 귀
에 영향을 줘서, 그녀의 말을 듣지 못했다.

 

 

" … 됐어. 못들었으면. "
" 야! 못들었다고! 다시 말해! "

 

 

내가 그녀의 그 말을 다시 들을 수 있는건 언제쯤일까.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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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라는 전직은 안하고 잉여처럼 글이나 쓰고있네요 하하하하.


 

2024-10-24 22:21:5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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