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 01화

엘류온 2015-11-15 0

01


-현재 이 지역에는 제1종 차원 재난 경보가 발령중입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즉시 가까운 대피소로 피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이 지역에는..


서울 강남 여기저기에 위치한 재난 방송용 스피커에서 피난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쉴새없이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황급히 인근의 대피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차원종 이라는 이차원의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도, 이런 재난 방송은 몇 번이고 들어왔지만, 그때는 ‘국내에 테러 조직이 들어왔을지도 모른다’ 라는 확실치 않은 정보 때문에 피난을 권고하는 방송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제대로 듣고 피난을 가는 시민들은 적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재난 경보는 말 그대로, 시민의 목숨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재난을 알리는 방송이었고, 그 어떤 급한 볼일이 있던 사람들도 즉시 행동을 멈추고 대피소로 향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어떤 다급한 일이라도, 자신의 목숨보다 우선시되지는 않았으니까.


2년전 차원문이 처음 나타나고 인간은 차원종이라는 미지의 적 앞에 후퇴만을 거듭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같은 인간이나 동물의 목숨을 빼앗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그 가격에 비해 성능이 월등히 좋았던 총이라는 무기는 차원종이라는 적 앞에는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했다.


최하급으로 평가되는 E급의 차원종들에게나 수십발을 쏟아붓고 나서야 간신히 처리할수 있었고, 그마저도 D급에 이르러서는 화만 돋우는 용도일 뿐이었다.


그나마 최근에 클로저라 불리는 이능력자들이 출현하여 D급 이상의 차원종들에게 대항할수 있게 되었고, 차원종과 클로저가 사용하는 힘인 위상력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지금에 와서는 클로저들이 전보다 효율적으로 차원종들을 퇴치할수 있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는 그 기능이 무색해진, 경찰과 군인들을 통합해 ‘특경대’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하급 차원종의 퇴치 및 차원 재난 경보가 발령된 지역의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해당 지역을 고립시키는 역할을 도맡게 되었지만, 아무래도 휴전국이었던 예전의 군의 규모보다는 확실히 그 규모가 작아지고 말았다. 사실상 차원종의 퇴치는 클로저들이 도맡아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고, 특경대가 하는 일은, 클로저들이 전투에 집중할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하는 것 뿐이 고작이었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바리케이트의 설치 완료되었습니다. 클로저 요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위험하니 송진우 경감님도 뒤로 물러나 주시길 바랍니다.”


“예. 그럼 수고하십시오. 충성!”


거수경례를 마치고 빠르게 바리케이트 뒤로 몸을 피하는 특경대 소속의 송진우 경감을 잠시 바라본 유니온 서울지부 소속의 클로저 요원인 서지수는 자신의 위상력에 맞추어 제작된 무기인 가칭‘건블레이드’를 두어번 휘둘러보며 상황을 체크했다.

‘1급 경보가 발령될 정도면, C+급이나 B급 정도이려나?’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뻐근한 뒷목을 풀어준 그녀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한숨을 내 쉬었다. 차원종은 세계 각지에서 출몰하고 있고, 그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인 클로저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본래의 계획인 팀을 이루어 차원종을 격퇴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된 휴식조차 취하지 못한 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출동을 해, 목숨을 걸고 차원종을 퇴치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나마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압도적일 정도로 위상력에 대한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인지, 힘이 모자라는 일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소문을 듣자 하면, 다른 클로저들의 경우, 작전 도중 위상력이 바닥나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는 요원들까지 생겨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런 소문이 돌 정도니, 위상력이 발현된 사람은 유니온에 신고하는 것이 원칙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가족을 사지로 내몰것이 분명한 일에 협조하는 인원은 많지 않았고, 유니온은 여전히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빨리빨리 덤비라고, 지금 당장이라도 쉬고싶은 마음이니까.”


최근 일주일간은 하루에 서너시간도 제대로 잠을 ** 못했기 때문에, 뺨을 쓰다듬는 손에 거친 느낌이 전해져 왔다. 피부 상하면 안되는데, 라는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가고,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황당해져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요원님! 위상 변곡률 수치가 상승하고 있습니다! 곧 차원종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 같습니다!”


등 뒤에서 특경대 경감의 외침이 들려옴과 동시에, 바리케이트 안쪽의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간헐적인 스파크와 함께 일그러짐은 점점 가속화 되었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살갗을 찌르는 듯한 위상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거 아무래도 C+급은 넘어서는 것 같은데?”


느껴지는 위상력으로 보아하니 B급이나 B+급은 되어보였다. B급까지는 퇴치해본 경험이 있지만, B+급은 구경해본적 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녀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힘의 격차는 아무래도 그녀쪽이 우세했다. 하지만 차원종들의 경우 간혹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위상력의 우세가, 전적으로 승패를 좌우하지는 못했다.


-바스락.


그녀가 생성되기 시작한 차원문에 집중할 무렵, 어디선가 무언가를 밟는듯한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바리케이트 밖의 특경대 대원이 낸 소리일까? 하지만 특경대 대원들은 대부분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을 터인데?


“여, 여긴 어디지?”


“?!!”


심장이 밑으로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는 무척이나 앳되보였다. 기껏해야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되는 꼬마아이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황급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공교롭게도 차원문이 생성되고 있는 위치의 바로 옆쪽의 바리케이트 안쪽으로 몸을 한껏 웅크린채 기어들어오고 있는 남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꼬마야! 거긴 위허..!!”


꼬마에게 큰 소리로 위험을 알리려던 지수는 하던 말을 멈추고는 전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일그러지던 공간이 이내, 균열을 일으키며, 검은 구멍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인간에게 무한한 적의를 가진 적인 차원종을 배출해내는 공간인 차원문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느껴지는 위상력으로 보아선 적어도 B급 이상의 개채, 위상력이 없는 어린아이로서는 차원문 근처에 있는 것 만으로도 차원문에서 흘러나오는 이차원 분진에 몸이 오염되고, 차원압력을 버티지 못해 몸이 터져나갈지도 몰랐다. 설령 차원압력에 몸이 버텨내더라도, 인체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올 가능성이 다분했다.


‘제발 늦지 말아줘!’


하지만 그녀의 바램이 무색하게, 차원문은 그녀보다 한발먼저 소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윽고 드러나는 차원종의 모습은, 그녀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어떤 차원종의 모습보다 거대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모습은 익숙했다. 그녀가 어렵지 않게 처리할수 있었던 이족 보행형의 차원종, 트룹의 상위 개채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크기는 일반적인 트룹의 배 이상이었다. 키만 해도 일반적인 트룹의 두배에 이르는 만큼, 그 거체에 담겨져 있는 힘은 일반적인 트룹의 몇배는 넘어설 것이었다.


트룹의 고위 개체로 보이는 차원종은 달려오고 있는 그녀에게 잠시 시선을 주더니, 이윽고 자신의 발치에 있는 자그마한 생명채를 발견한 듯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러운 차원종의 출현에 놀란 것인지,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고 멍하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소년을 확인한 차원종은 곧바로 오른손에 들린 기형의 도끼를 치켜들었다. 큰 힘도 필요없이 그저 도끼를 밑으로 내려치기만 해도 눈앞의 자그마한 생명채는 그 형태를 잃고 바스라질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 자신의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적이 이곳까지 당도하는 것 보다 빠를 것이 분명했음으로 그를 막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것이라 판단한 차원종은 망설임 없이 도끼를 내리찍었다.


“안돼!”


차원종의 도끼가 소년의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지수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터져나왔다. 구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좀더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탓에, 지금의 상황을 이해조차 하지 못했을 저 어린 생명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짧은 시간동안 수십번이고 머릿속에서 되뇌어 보아도, 도출되어 나오는 답은 한결같이 소년의 죽음이었다. 도끼가 소년의 머리 바로 위로 떨어지는 순간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그녀의 뇌리에 내리꽃혔다. 차마 그 작은 생명이 스러지는 순간을 바라볼수 없어 그녀는 달리는 그대로 눈을 감고 말았다.


-콰앙!


무언가 부서지는 듯한 큰 소리와 함께 지수는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결국 그 작은 아이의 죽음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자신이 이대로 주저앉아 버린다면, 차원종은 그대로 자신에게 공격을 해 오거나, 방향을 바꾸어 다른 사냥감을 찾아 이동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해당 차원종의 강대한 위상력에 이끌려 나타날 수많은 하위급의 차원종들의 위협 역시,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어라?”


하지만 지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녀의 예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소년은 말끔한 상태 그대로 그 자리에 울먹이며 서 있었고, 산산조각이 난 것은 차원종 쪽이었다. 몸의 절반 가까이가 말끔하게 날아간 채, 쓰러지고 있는 차원종의 뒤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하위급 차원종들의 시체가 난폭하게 찢겨져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 주변에 있던 차원종들은 그것이 전부였던 것일까?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서서히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차원문 만이 지금의 사태가 끝나버렸음을 알리고 있었다.

멍하니 서있는 지수의 살갗에 저릿저릿할 정도의 위상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위상력은 다름아닌 소년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바리케이트가 둘러싼 일대를 짓누르고 있었다.


“말도안돼. 어떻게 저런 위상력이..”


그야말로 압도적일 정도로, 공포심마저 느껴질듯한 막대한 량의 위상력이 소년의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에게서는 위상능력자 특유의 위상력 특성에 따른 눈이나 머리카락의 색의 변화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어떻게 저렇게 막대한 양의 위상력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아? 또 저질러버렸다.”


지수가 느끼고 있는 혼란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를 짓누르고 있던 막대한 위상력이 순식간에 소년의 몸 안으로 갈무리되었다. 목소리에 울음기가 뭍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상황을 태연하게 즐기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떨리는 눈으로 소년을 바라본 지수는, 아주 미세하게나마 소년의 몸 주위로 일렁이는 검은색의 위상력의 잔재를 확인할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소년의 위상력의 컬러는 블랙. 검은머리에 검은 눈동자가 일반적인 대한민국에 맞춰진듯한 위상력의 컬러였고, 소년은 자신의 힘을 정말이지 빈틈없이 숨길수 있었다. 그녀가 소년을 일반인으로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는 지수를 잠시 바라보던 소년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여긴 어디야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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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로저스 홈페이지 팬 소설 란과, 조아라 패러디 란에 동시 연재중입니다.

2024-10-24 22:41:3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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