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ha-1

SSS0130001 2015-01-12 0

"아니, 자식 교육을 어떻게 하셨길래 애가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고 그래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뺨에 흉이 진 채로 울고 있는 여자아이의 어머니에게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아들 녀석은 엄마가 왜 보라색 털코트를 입고 장신구를 과하게 달고 있는 아줌마에게 스스로를 굽히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시선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해, 얼른 친구한테 사과하지 않고!"


아들은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미안해."


라고 말하였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다들 그러는 거에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이 처음으로 한 말이다.


"애들한테 나쁜 짓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왜 다들 나만 미워하는 거냐고요! 그깟 위상력이 뭐라고! 왜 그것 때문에 애들한테 왕따당해야 되냐고요!"


"세, 세하야."


"엄마가 그랬죠?! 위상력이라는 거 좋은 거라고, 특별한 사람한테 주어지는 거라고요. 근데 그거 때문에 친구들이 다 날 떠나갔다고요! 이게 대체 뭐가 좋은 건데요?! 뭐가 특별한 거냐고요! 말해봐요!"


"..."


"난... 이런 거 싫어요. 괜히 쓸데없는 힘 때문에 미움받는 것보다, 그런 거 없어도 친구들하고 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요!"


이 말을 끝으로 세하는 자기 방문을 세게 닫고 잠궈버렸다. 나 역시 세하의 방금 전의 그 절규를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적어도 세하가 위상력을 처음으로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을 때만큼은, 역시 내 아들답다는 기대감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세하는 집에 돌아올 때마다 그전까지 사귀던 친구들과 절교했다는 말을 8일 연속으로 했다. 이후에는 누구랑 사귀게 되었다는 말조차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볼까 했지만, 세하의 얼굴을 보니 그러기도 곤란했다. 그랬던 것이 오늘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그전까지 세하는 친구들과 싸운 적은 없었으니까.


일이 이렇게 된 건 엄마인 나, 서지수의 책임이 크다. 조금만 더 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면, 세하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보려고 노력이라도 했다면... 세하가 이렇게까지 아파할 이유는 없었는데.




그래... 차원전쟁 때도, 그 이후에도, 난 전혀 변하지 않았던 것이다...






"신고합니다. 코드 네임 알파-1, 서지수 요원은 20XX년 X월 XX일 부로 유니온 구로 지부 클로저 부대에 배속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성!"


"충성, 반갑네, 서지수 요원. 난 David Lee라 하네. 자네 같은 유능한 클로저가 우리 부대에 오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하는군. 앞으로 잘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충성!"


차원전쟁이 한창이던 시절, 위상력을 최초로 발휘한 이들 중 한 명이었던 나는 서울의 최대 격전지인 구로에 배속되었다. 그 동안 차원종들과의 싸움에서 좋은 성과를 연달아 거둔 것이 지부장의 눈에 띄어 나의 전장을 구로로 옮기게 된 것이다. 먼저 구로에서 차원종들과 대치 중이었던 요원들과도 짧은 인사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지수 요원님! 하늘길에 정찰을 나갔던 요원들이 대량의 차원종에 의해 발이 꽁꽁 묶인 상태라고 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그 쪽으로 가겠어요!"


매번 반복되는 출동 명령과 그에 따라 늘어나는 전적... 어느새 내 머릿속에는 이 두 가지만 존재하게 되었다. 두 귀는 오직 긴급 상황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두 눈에는 차원종들의 혐오스러운 모습만이 선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잠시나마 나를 반겨주던 요원들도 점차 눈에 과하게 띄는 나한테 접근하기 어려웠던지, 하나둘씩 나에게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마주칠 때마다 서먹서먹한 인사가 전부였다. 심지어는 뒤에서 나에 대한 시기 어린 이야기들도 몇 마디씩 주고받는 걸 들은 적도 있었다. 그럴수록 나의 말 수 또한 점점 줄어가기에 이르렀고, 나는 구로의 클로저 요원들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은따'라는 것이 되어있었다. 요원 구조 임무에서도 내 이름은 포함되지 않았고, 내게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함께하는 요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이 지루한 생활에 변화가 찾아온 건, 한 소년이 새로 구로에 배속되면서부터였다. 스스로를 'J'라고만 짤막하게 소개한 그 아이는 2주일도 지나지 않아 나의 코스를 밟아버렸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위상력을 각성하면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다 보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J, 잠깐 시간 좀 내줄 수 있니?"


그래서인지 몰라도, 평소에는 말도 잘 안 꺼내는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누구세요, 누나는?"


"코드 네임 알파-1, 서지수 요원이야."


"아, 여기서 '대량살상 마녀'라 불리는 분이 누나였군요?"


"그래, 그런데 그 이름은 누나도 처음 듣는데, 누구한테 들은 거니?"


"다른 요원 형들한테요. 차원종이랑 싸울 때 보면 마녀 같다면서요."


"그랬구나? 그치만 속마음까지 마녀처럼 쌀쌀맞지는 않아. 비록, 내가 말 수가 적어서 여기서도 친구가 없긴 하지만, 왠지 너를 보고 있자니 내 모습이랑 많이 비슷해 보여서 말이야."


"그래요? 그런 것 치고는 이번에는 말이 좀 많았는데요."


"어머나, 그랬니?"


"뭐 어쨌든, 누나랑은 뭔가 죽이 잘 맞을 것 같아요."


"나도 그래. 그럼 J, 지금부터 나랑 함께 다니지 않을래? 너와 나의 힘을 합치면 최강의 콤비가 될 텐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대신, 출동할 때마다 누가 더 많이 죽이나 시합해요."


"좋아, 누나도 대환영이야!"


사람과 개인적으로 말을 주고받은 게 얼마만이었나, 아무튼 J와 나는 그 때부터 둘이 같이 다니면서 차원종도 차원종대로 죽이고 말도 말대로 늘었다. 여러모로 그 아이와 함께 다닌 시간만큼은 구로에서의 생활이 이렇게 즐겁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또다른 신규 요원 한 명이 배속되었다. 그 요원은 여자였고, 나 이상으로 과묵한 처녀였다. 하지만 명령이 내려지면 다른 요원들이 농땡이 부릴 동안 혼자 열심히 준비해서 가장 먼저 뛰쳐나오는,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 요원 이야기가 나온 이유는, 이번에는 반대로 그 요원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배속되기 전부터 서지수 요원님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왠지... 떨리네요."


"후후, 차원종을 보고도 안 떨던 여우비 요원이 사람을 보고 떨면 제가 차원종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가 되는데 어쩌죠?"


"그, 그런 뜻이 아니라...!"


"농담이에요, 후후. 제가 말 수가 적긴 하지만 친해지면 그 누구보다 친근감 있는 사람이니까, 편하게 대해주세요."


"네, 서지수 요원님."


여우비 요원의 약간 부끄러운 듯한 웃음,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마 그것이 내가 여우비 요원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어쨌든 이후에도 여우비 요원은 내게 이따금 대화를 건네왔고, J와도 금세 친해졌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두 요원들 덕분에, 이전까지의 고독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더욱이 차원전쟁 종반부 무렵에는 나와 여우비 요원이 같은 해에 결혼도 했다. 나는 일반 남성, 여우비 요원은 동료 클로저 남자 요원과. 그 다음 해에는 우리 둘을 각각 쏙 빼닮은 아들과 딸을 하나씩 갖기도 했다. 자식을 먼저 가지는 건 여우비 요원에게 밀리긴 했지만, 그런 건 개의치 않았다. 아무튼, 차원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을 동안 J, 여우비, 그리고 나는 구로에서의 행복한 나날들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애쉬와 더스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서지수 요원님! 긴급 상황입니다! 지금 마천루 옥상에 웬 아이가 나타나더니 요원들을... 크아아아아악!!!"


"여보세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응답하세요!"


한 클로저 요원의 무전을 받은 나는, 즉시 대기조를 이끌고 마천루 옥상으로 향했다. 선발조로 나간 J와 여우비 요원의 안부도 걱정이 되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이후 도착한 현장에는...


"서... 서지수... 요원... 님... 쿨럭...!"


"여, 여우비 요원! 이게 어떻게 된...!"


"아아, 이거 미안하게 됐어. 누나가 좀 난폭하게 굴어서 말이야."


온몸에 상처를 크게 입은 채 의식을 잃어가는 여우비 요원을 끌어안고 있던 와중에, 애쉬 그 녀석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넌 대체 누구지? 어째서 우리 동료들을!"


"난 애쉬라고 해. 저 쪽에서 어린애 한 명하고 놀아주고 있는 게 우리 누나 더스트고."


"어린애...? 설마...!"


아니나 다를까, 그 여자아이가 상대하고 있었던 건 J였다. J가 전력으로 덤비는 동안, 더스트는 적당히 놀아주는 듯 힘을 아껴두고 있었다.


"저 꼬마 녀석, 어린 나이에 저 정도의 위상력이라니 정말 대단하더라고. 그래서 우리의 군단을 맡기고 싶다고 제안했더니만 싫다면서 저렇게 떼쓰고 있는 꼬라지 하고는. 뭐, 나머지 놈들이야 별 볼일도 없으니 제거한 거고."


"그래서, 나한테도 똑같은 제안을 할 건가?!"


"글쎄, 한 번 붙어보면 알겠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애쉬에게 달려들었다. 애쉬도 미처 준비하지 못한 듯 당황한 기색이었다.


"쳇, 나머지 요원 녀석들과는 수준이 확실히 다르군. 누나, 아무래도 혼자는 무리일 것 같아."


"그래? 대체 얼마나 강한 클로저길래?"


"단 한 번의 공격에 거의 당할 뻔했어."


"어머나, 그럼 꽤나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네!"


그렇게 그 두 녀석과의 목숨을 건 혈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J도 자신의 위상력을 최대한으로 쥐어짜내서 날 도와주었지만 번번이 놈들에게 가로막혔다. 한 30분 정도 서로 스킬을 몇 번이나 주고받았을까, 나도, 애쉬도, 더스트도 모두 지쳐 있었다.


"왠지 기분 나쁜걸... 저 한 명한테 우리 두 명이 한꺼번에 덤볐는데...!"


"힘만 조금 더 있었으면 당장 부숴버릴 수 있었는데...!"


"클로저 요원으로 일하는 동안... 날 이렇게까지 지치게 만든 건 너희가 처음이야...!"


"뭐, 됐어. 이 이상 우리를 쫓아올 클로저는 더 이상 없을 테니, 순순히 물러나주지."


"물론, 선물은 듬뿍 주고 갈 거니까 걱정은 말라구!"


"뭐? 기다려! 어딜 도망가는 거냐!"


하지만 그들은 이미 차원문을 통해 그들의 세계로 돌아갔고, 선물이랍시고 A급 차원종을 소환하여 구로 일대를 들쑤셔놓았다. 마천루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많은 클로저 요원들이 말렉에게 죽어갔다. 나와 J는 한 명 한 명 목숨을 잃을 때마다 눈물을 흩날리며 더욱 세게, 더욱 빠르게 말렉을 공격했고, 말렉이 죽었을 무렵, 우리는 수많은 클로저들의 시체를 보며 눈물을 그칠 줄을 몰랐다. 특히 여우비 요원의 남편의 시체를 보고 안 그래도 막혀있던 말문이 더 막혔다. 쐐기를 박은 것은, 마천루 건물 문으로 나오는, 흰 천으로 싸여있는 들것. 그 시간 이후로, 우리는 더 이상 여우비 요원의 웃음을 볼 수가 없었다...




차원전쟁이 끝난 이후, 나는 '알파 퀸', '차원종의 재앙', '대량살상 마녀'라는 별명을 얻은 채 위상력을 모두 잃고 클로저 계에서 은퇴를 했고, J 또한 유니온의 부름을 받고 갔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행방을 알아보려고 했으나 끝내 잠적하고 말았다. 그 동안, 나의 아들 세하는 무사히 잘 자라고 있었다. 종전 후 아이를 껴안았을 때, 또 얼마나 울었던지... 그래서 이 아이만은, 세하만은 반드시 건강한 아이로 키우겠노라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새 직장에서의 연이은 업무로 인해 세하에 신경쓸 시간은 극히 적었고, 세하와 함께 있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행히 세하는 내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주었고, 나는 세하의 무난한 성장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상력을 각성한 이후로 세하는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요원 시절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 종전 이후 세간의 명성에 질린 나머지 그에 대한 탈피를 해 오던 내 모습이, 하나뿐인 내 자식을 기르면서까지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세하를 더 챙겨줬더라면, 세하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세하는 날이 가면 갈수록 타인에게 더욱 배척받게 되었고, 그 결과 세하가 찾은 탈출구는 다름아닌 '게임'이었다. 위상력이 세하의 족쇄가 되어버린 것 같아, 왕년의 클로저 요원이었던 내 입장에서 지금의 게임 폐인이 된 세하가 정말 안쓰럽게 보였다. 그 때부터 세하의 다른 탈출구를 찾아 유니온의 정보를 입수하는 데에 주력했다. 세하가 위상 능력자라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엄마의 아들이라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지 않도록...




끝내 세하가 18살이 되던 해에 유니온이 그 탈출구를 제공해 주었다. Project 'BLACK LAMBS'가 그것이었다. 몇 번의 설득 끝에 세하는 마지못해 승낙하고, 나는 아들을 유니온에 보내며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속으로 하였다.




'다녀오세요, 이세하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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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우비 요원 : 가명. 이슬비의 어머니.






세하 어머니의 클로저 요원 시절의 모습은 어떠하였을지, 문득 궁금해져서 써봤습니다. 비극적 요소도 추가해봤고요.

2024-10-24 22:21:4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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