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27-(1)

엘세이드 2015-10-11 7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SWAT'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흩어지는 양떼 -10-]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865



           [흩어지는 양떼 -1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958



           [흩어지는 양떼 -1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046



           [흩어지는 양떼 -1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123



           [흩어지는 양떼 -1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497



           [흩어지는 양떼 -외전-]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264



          [흩어지는 양떼 -1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2790




          [흩어지는 양떼 -1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065



          [흩어지는 양떼 -1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244




          [흩어지는 양떼 -1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504




          [흩어지는 양떼  -1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733




















         

           [흩어지는 양떼 -2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5104






           [흩어지는 양떼 -2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n4articlesn=5332





















한밤중의 행군은 생각했던것 이상으로 어려웠다.


도움이 될법한 것이라고는 손전등에서 나오는 불빛 뿐이었고, 무려 900루멘에 달하는 광량을 가진 그 손전등마저 완벽한


안내를 해주기는 굉장히 힘들었다.


비는 이미 이틀전에 그쳤지만, 아직 울창한 숲과 산의 특징답게 땅은 젖어있었고, 따라서 그 질어진 땅을 밟고 나아간다는것은


상당한 기력을 소모했다. 대부분 소은이 앞장서고 뒤에 세하가 한 손에는 손전등을, 한 손에는 건블레이드의 자루를 얹고서


따라가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클래스 레인저인 소은이 차라리 그보다는 더욱 전방 주시에 익숙한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이런 지형에 대해 잘 아는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향은 그녀가 마을로 들어온 길목을 지나가야 했기 때문에


한번이나마 와보았던 길을 지난다는 것이 그나마 익숙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나무 뿌리와 이곳저곳을 가로막은 나뭇가지들이 난잡하게 그들의 앞을 막으려 했지만, 그때마다 소은이 자신의 화살을 위상력


을 담아 휘두르는것으로 딱 사람 한명쯤 지나갈 정도의 길을 터주었다. 밤의 숲은 너무나도 적막했고, 동시에 치명적인 도사림


을 품은것 같이 고요히 으르렁대는것만 같았다. 한번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발이 잠깐 미끄러져 질겁을 하며 발을 뗀 세


하는 바로 자신의 옆이 기형적으로 안쪽으로 파인 절벽이란 사실을 알고 놀란 가슴을 조용히 진정시켰다.


굳이 차원종이 아니더라도 이 숲은 충분한 위험을 안고 있었다.


"...조심해야겠어요."


그가 입을 연것은 출발한지 두시간이나 흐른 뒤였다. 원래부터 별로 말이 없는 소은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녀와 말을 나누기 위


해서는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여는것이 거의 일상화되어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시 그러하다시피 그 역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한참이 지나도 대답이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


보며 따라가려니 그 자신의 모습이 문득 웃기게 느껴져 그는 픽하고 작게 웃었다.


이상한 감정이 그의 속에서 계속 들끓으며 그를 옥죄고 있었다. 아니, 옥죈다는 표현조차 그에게 맞는 정확한 묘사인지 알 수


없었다. 간지럽기도 하고, 동시에 쪼개질듯 괴로우며 고통속에 몸부림치려니 동시에 속이 시원하기까지 한 묘한 감정은 그의


정신을 반쯤 미쳐버리게 할것만 같았다. 속을 꽉 메운 거무튀튀한 감정은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대었다.


-참아**다.


이미 그는 한번 S급 차원종인 스피더와 조우했을때 그 거무죽죽한 감정, 아니. 그 짐승을 마주 대한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


이 얼마나 추한 자기 혐오인지를 깨달은 적이 있었기에 그는 더욱 가슴이 답답했다.


이 심장을 도려내고 그 깊숙이 자리잡은 검은 덩어리를 꺼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가슴을 부수고 그 짐승을 꺼낸다면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이것이 얼마나 쓸데 없는 포효인지, 무의미한 외침인지조차 그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에게 있어 이 깊은 내면에 도사리는 짐승은 적의의 대상이었다. 이미 이곳까지 몰린 이상 그가 어찌 할 수 있


는 일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꿈틀거리는 그의 나약한 본능이 짐승처럼 울부짖으려하는 그 마음속 깊은 곳을


틀어 막았다.


-이제는 어쩔 수 없어.


더 이상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아마 그가 10년 전. 아니, 7년 전 클로저의 훈련 받는 것 을 주변의 부담감이라는 너무나도 배


부르기 그지없는 핑계로 그만 두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한밤중의 위험한 숲속을 자신을 위해 모든것을 내던진 이와 함께 걷는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지 않아도 되었을까.


힘. 그래, 힘이 필요했다. 세상이 적의를 보인다면 드러낼 이빨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나약한 그는 피하는것을 선택했고, 현실로부터 등을 돌렸다. 모든것을 놓았고, 기대를 받기 전에 자신이 기대하기를 포


기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그것을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것을 도저히 부정할수 없었다.


후회와 의미 없는 가정이라는것은 지금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그에게 있어 더이상 안전한 도피처가 되어주지 못했다.


인간을 증오하고 클로저를 증오했었다.


나약하면서도 조금이나마 강한 자들을 클로저라 부르며 멸시하고, 그러면서도 괴물끼리 싸워 클로저와 차원종 둘 다의 괴멸을


바라는 군중들을 혐오했었다. 그렇지만 그들과 자신이 다른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똑같이 나약하고, 똑같이 도피하길 택한 소년이었던 주제에 증오할만한 권리를 가진것마냥 비아냥거리는 네가 혐오스럽다.


**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는 원하지 않았다. 원해서 알파퀸의 자식으로, 클로저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모든것을 놓고 달아나는 주제에 나와는 다른 운명을 걸을 친구들에게 사랑을 했던것은 네가 자초한 파멸이다.


마치 펄펄 끓는 도가니와도 같이 부글거리는 그의 속이 마침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때, 그의 귀에 불현듯 들려오는 소리가 그


의 달아 오른  가슴 속 전쟁터에 찬물을 끼얹었다.


"정말 그것가지고 되겠어?"


혼잣말 같기도 한 질문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을 도출해 내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이 어떠


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것인지 조차 불분명했기 때문에, 그것이 이슬비와 서유리에게 건네고 나온 초라한 종이쪽지로 남


긴 작별인사라는것에 대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몇 미터를 더 걷고 난 후였다.


"네."


별다른 말 없이 단조롭게 대답한 그에게 잠깐 의아한듯 그녀는 잠깐 고개를 돌렸지만, 곧장 다시 앞을 보고 묵묵히 걸음을 옮


겼다. 사실 그 이상의 말은 할 필요도 없었다. 그로써는 말을 할 이유도, 그러고 싶은 기분도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


만 가장 큰 이유는 미련이 남는게 두려워 선을 그어버리는 그 자신의 나약함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고 있었다.


그는 그리 해야만 했었다.


슬비와 유리는 최선을 다해 그를 도와줄 것이었다. 또한 그것이 그 힘의 보탬이라는 의미는 그들이 설사 일반인정도의 힘을 가


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변함없이 가장 큰 도움이 되어줄것임은 자명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의미라는것에 초점을 맞추었을때의 이야기었다.


물론 조그만 힘이라도 도와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힘과 힘을 더해 더 큰 힘이 나온다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었다.


전투에 있어 부상자가 생기면 그들을 내버려둘수는 없고, 따라서 그들을 보살피는 시간은 결국 전투를 좋지 못한방향으로 끌


고 갈 것이 뻔했다.


그리고 가장 힘이 부족한 슬비와 유리는 아무래도 가장 먼저, 그리고 쉽게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게다가 SS급 차원종은 자신의 수하들을 거느리는것으로 유명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 방어선을 단신으로 괴멸시켰다는 SS급 차원종은 정말 말 그대로 '단신' 이었다.


그렇지만 그것 외에도 유럽 방어전선을 괴멸시켰다던 또 하나의 SS급 차원종은 일개 군단에 달하는 S급 차원종을 이끌고 언


제부터인가 차원문으로부터 소환되어있었다. 괴이쩍은 일임은 분명했다.


그 정도의 차원종들이 나왔다면 아무리 유럽연합이 일부 영토를 포기했다지만


위상 파동이 측정기로부터 관측되지 않았을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었고, 그 비참한 전쟁터속에 남은것이라고는 싸


늘히 죽어버린 유니온 소속의 전투병력뿐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유니온의 힘은 약해졌다고 해도 사실상 과언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연합해 만들었던 알량한 협력관계는 SS급 차원종 둘에 의해 풍비박산이 난 채 간신히 명맥만이라도 유지해오고 있


었다.


그 사실이 더욱 그의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진 것들을 지금부터 상대한다면 승산이란것이 있을지


는 의문이었다. 게다가 더욱 그에게 두려움을 심어준것은 SS급 차원종에 대한 무지였다.


차원 전쟁 후에 전쟁을 치룬 국가를 추슬리기 바빴던 대한민국은 그나마 인간이 사수할 수 있었던 국내에 집중해 관측기를 설


치했었기에 바리케이트 밖 차원종은 소환여부를 알 길이 없었고, 따라서 그들은 언제부터인가 위상파동으로 기록이 된 'SS급'


차원종의 위상파동을 관측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것의 등장을, 그것도 뒤늦게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SS급 차원종이 아무런 돌발 행동 없이 은둔생활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다행스럽게 여겼을 뿐, 자극을 할만한


행동을 삼갔기에 반대로 말하자면 정탐이나 정찰등의 어떠한 조사도 하지 못했었다.


물론 차원종이 득시글대는 이 숲은 인간만큼, 혹은 그 이상의 지능을 가진 비행형 차원종이 날아다니는 위험한 곳이었기에


정찰기나 무인 드론같은것이라도 격추당할 확률이 매우 컸다. 하지만 그런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SS급 차원


종에 대한 지식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세하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는 무의식적으로 왼손의 손전등을 꽉 움켜잡은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다는것을 알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갈라진 입술 사이로 쌉쌀한 혈향이 배어나왔다.


"곧 도심지쪽으로 들어갈거야. 그곳에 들어가서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고 해가 조금 뜨서 시야가 확보되면 움직이자."


"그러죠."


들려오는 그녀의 말에 들릴듯 말듯 대답하고는 그는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무래도 그의 모든 기관들 중 감정을 느끼는


기관만이 마모되어 사라진듯, 이리저리 일렁이며 희번덕거리는 청백색 손전등의 불빛만이 그의 눈에 의미없는 그 움직임을 아


무런 감흥 없이 비추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모든것을 집어 삼키듯 으르렁대던 이상한 감정들이 폭발할듯 요동쳤었지만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그의 가


슴 속은 오히려 더욱 기분 나빴다.


마치 폭풍의 전조처럼.


그때 갑자기 앞서가던 소은이 고개를 휙 숙이는것을 보고 그도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었다. 무엇을 발견한 모양인지 손전등을


급히 끄는 그녀를 따라 그 역시 손전등을 끄고 작게 그녀에게 물어보려 했지만, 그것보다도 더 먼저 그녀의 조용한 말이 어둠


속에 잠긴 그에게 전해졌다.


"앞에 움직이는 형체들이 있어. 거리는 약 500미터 쯤 될거야. 나를 따라서 천천히 움직여. 저놈들 시력이 얼마나 될 지 모르겠


으니까, 아직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옆쪽으로 돌아가자. 만약에 이쪽을 발견한 기척이 생기면 무작정 뛰자."



이 어둠속에 손전등 불빛 하나만으로 300미터 바깥의 물체를 확인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은 세하가 새삼 그녀의 능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300미터정도라면 이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숲에 손전등의 불빛은 확실한 표적이 되기도 좋았기에 최대한 신속하게 자


리를 이탈해야 했다.


차원종들 중에서 시각이 발달하지 않은 대신 후각이나 초음파따위로 상대를 인지하는 놈들이 있었지만, 전자라면 안심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더욱 위험했다. 마치 적외선 스코프처럼 움직이는 것들의 존재며 방향을 알 수 있을것이었다. 소은 역시 그


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최대한 나무들 쪽에 붙어서 포복걸음으로


움직였고, 세하 역시 건블레이드를 돌려 등에 메고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나무들이 빼곡하고 가시식물들이 상당히 많이 몸


을 긁었지만 그런것들을 방지하기 위해 위상력을 발현시킬수는 없었다. 차원종들 전부가 그런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차원종


들은 위상력자와 비 위상력자들을 어떠한 감각을 통해 인식할 수 있다고 했고, 만일 아직 제대로 밝혀진 바 없는 그 연구를 믿


는다면 위상력의 발현은 자칫하면 표적이 될지 모르는 행위였다. 위상력자들 중에서도 위상력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케이스 역


시 흔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있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팔을 짚었던곳에 무언가 뾰족한것이 있었는지 엄습하는 통증에 세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적의


행동을 주시하는 그의 본능은 소리를 듣기 위해 최대한 신경이 곤두 서 있었기 때문에 긴장상태에서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정말로 무언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미약히 들려오는것을 들었다.


하지만 소리의 근원지는 아직 멀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있더라도 어떠한 소음도 없이 정적만이 가득한 밤의 숲은 움직이는


것들의 소리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그렇기에 아직 그들이 세하나 소은을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결론지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소은 역시 눈치 챈 것인지 조금 몸


을 일으키더니 특유의 나긋나긋한 몸놀림으로 반바퀴 돌아 어떠한 소음 없이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잠시 후 구름에 반쯤 가린


월광이 그녀의 실루엣을 비추는것과 동시에 그녀는 다시 몸을 확 숙였다. 하지만 다급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발견하지 못한것 같아. 이대로 돌아서 이 산만 넘으면 시가지니까, 그곳에서 잠깐 쉬었다 가자."


"네."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며 이번에는 포복걸음 대신 몸을 최대한 굽히고 걸어가기 시작한 둘은 그렇게 얼마동안 걷다가 차원


종들의 인지 범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자 몸을 그제서야 펴고 걸음을 옮겼다.


거의 40분 가량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체감시간이 그렇다는 이야기이지, 사실상 더 조금 이동했을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인지범위 바깥으로 나간것은 확실해 보였다.


한참을 걷자 그제서야 한시름 놓은 세하는 잠깐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숨마저 쉬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이가 없어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곳에서야 한번 큰 소리가 나면 모든 숲 속의 차원종에게 표적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사실은 지금껏 생각하고 있지조차


않았는데, 세하는 척추의 마디마다 고통의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등허리가 아팠지만,


놀랍게도 소은 은 내색하지 않는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인지 그저 팔을 한번 기지개를 켜듯 젖힌것


을 제외하고는 계속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내심 대단하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허리춤을 뒤 져 손전등을 꺼내들었다. 소은 역시 손전등을 켰고, 그도 손전등을 키고서 말


없이 걸음을 계속 옮겼다.


둘이 있음에도 이 적막한 숲 속에서 말을 나누지 않는다는것은 기이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숨막히는 정적에 가득 찬 숲 속


에서 어떠한 말이라도 하고 싶어 안달이 났을것이다.


만일 이 고독 속에 남겨졌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침묵에 빠진 숲은 그 정도로 고요했다.


어떠한 잡음, 어떠한 소음조차 허용치 않겠다는듯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정적으로 숲 전체를 깔아 뭉게어 놓으려 작정한듯 했


다.


푸르스름한 손전등 불빛은 마치 유령처럼 휙 사라져버리는 주변 풍경을 두려움에 찬 손길로 훑어보는듯 흔들렸다. 차원종이라


도 근처에 있다면 위험했겠지만, 그것보다 발을 헛디뎌 어처구니 없는 최후를 맞이할 수 있는 이 산속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별


로 없었다.


"누나는 괜찮은거에요?"


무엇이 괜찮다는것인지 유추하는데 시간이 걸릴 법 한 질문이었다. 주체 없는 말이었지만, 방금 전 그에게 물었던 그녀와 같


이, 그 역시 그녀가 다른 설명 없이 알아들으리라 생각했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생각은 정확했다.


"응."


삶을. 생명을.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나 따위를 돕는데 버릴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에게 있어 득이 될 것은 하나도 없고, 또한


그러할 이유는 결코 없다.


만일 그리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위험한 장소에서 이탈해달라. 부탁한다.


이 의미를 내포하는 그 짧은 말에 똑같이 짧게 대답한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큰 후드에 가린 채 앞을 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


그는 이유 모를 감정이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고마움? 아니었다. 고마운 감정이 이토록 울렁거렸던가. 무언가에 찔리는듯 아팠


던가.


"왜죠?"


굳이 묻지 않아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해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물었다. 모든 이들이 그러하듯 확신을 얻기 위해 물


은 질문은 당연하게도 그가 생각한 그대로의 답이 돌아올 것이었다.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그는 물었다. 적막속에 그의 메아리가 울리는듯 했다.


"누나는 현재를 살아가요. 나는 종말을 향해 걸어가죠. 그건 확실해요. 알면서. 팀 페가수스가 전원 다 집결해 대항해도 승산이


없다는걸 알면서도 왜?"



그랬다. 팀 페가수스 뿐이 아니다. SS급 차원종을 사냥하기 위한 팀인 팀 그리폰 역시 그들 전원이 집결한다 하더라도 사상자


없이 격퇴는 힘들것이었다.




그리고 현재 동원될 수 있는 최고의 팀인 팀 페가수스를 데이비드는 세하에게 보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전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는점을 그는 알고 있었다. 소은의 이야기로는 확률상 5퍼센트라고 했었던가. 하


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이었다.


현실은 그 숫자보다도 더욱 절대적인 힘의 차이와 함께 절망만을 안길 것이 뻔했다. 지금껏 생사의 기로를 넘는 차원종과의 교


전과 함께 성장한 본능은 그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왜, 그 현재를 버리고 나와 같이 가려는거죠?"


물음. 질문. 끝없는 질문에 대한 확답을 얻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운 질문은 그를 좀먹는 검은 덩어리를 잠재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그를 스쳤다.


그 의미없는 질문은 그에게 똑같이 의미없는 집착을 부여했고, 그것은 생사의 기로에 놓인 그에게 한줄기 광명과 같이 빛났다


는것을 그는 말을 끝낸 후에야 드디어 깨달았다.


그것이 어떠한 대답으로 돌아오던 부질없는 종말이라는 점에서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답을 요구했다. 이유 없는


집착일지도 몰랐지만, 그저 그에겐 절실했다. 대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나는 너와 다르니까."


정적. 곧 뒤를 잇는 그녀의 말이 바람에 실려 다가왔다.


"나는 너와 다르게 현재를 지키는것이 의미 없으니까."


왜냐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올 뻔한 그의 말은 잠시 그의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고 말았다. 그 질문의 이유조차 명확히 알


수 없는 그 시커먼 무언가가계속 그의 안에서 꿈틀대는것이 느껴졌기에 더욱 그 말을 하지 않은 하나의 이유가 될 지도 몰랐


다.


"의미있는 것을 지키는것이 내겐 현재를 지키는것보다 중요해."


다시금 어둠 속에서 가만히 들려온 그 말은 어딘지 모르게 힘이 없어보였다고 생각한것은 어쩌면 그가 밤을 세워서 피곤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역설적으로 공포스럽고 괴기스럽게까지 보이는 이 숲의 정적 속 공포에 잡아먹

힌 자신의 감각기관이


오작동을 일으켰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의 말을 곰곰히 되새겨볼 시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미 포복자세로 이동하는것은 그에게 한계를 고하고 있었다. 홀스터

에 수납된 피스톨은 통째로 그의 몸을


압박하고 있었고, 온통 가시덤불에 긁히는 팔들은 이제 신경질이 날 정도로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한 참이라, 막 그녀가 일어났

을 때 쯤에는 그도


상당히 기쁜 마음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이쯤이면 될거야. 조금 더 가다보면 날이 밝을것 같으니까, 여기서 잠깐 숨좀 고르고, 조금 무리해서라도 시가지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쉬자."


소은은 그렇게 말하며 등을 나무에 기댄 채 한쪽 다리를 살짝 구부렸다. 그 긴장감 없는 태도에 세하는 내심 감탄했다. 아까 전

부터 온 몸이 무섭게 긴장하며


조그만 반응이나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과는 다르게 여유가 묻어나오는것 같았다. 그것이 그와 그녀, 재능만 가진

자와 훈련을 거듭한 자의 차이였다.


슬비가 더 성장한다면 저렇게 자신을 압도하는 것일까 하고 잠깐 생각하는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슬비와 유리의 생각은 지

금 하지 않기로 어느 순간부터


결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금 떠올리고야 마는것은 미련일까, 아니면 그저 그녀들이 자신에게 준 온기를 바라는 나약함

일까.


"무섭지 않아요?"


"무서워."


갑작스레 튀어나온 그의 말에 다시금 그녀의 목소리가 대답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금방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억양은 변화가

없었고, 더욱 그 점이 그에게


알수 없는 감정을 치솟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자, 달빛에 어른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창백한 빛에

둘러싸인 그녀는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동시에 겨울 밤 물빛 처럼 한없이 고요해보였다.


"그런데 왜...!"


순간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그가 말을 끝내지도 못했을때 갑작스레 짓쳐든 소리는 정적을 찢고 울부짖는 차원종의 것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숲이 요


동치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서 울부짖음이 날카롭게 쇄도하며 으르렁대고, 동시에 이곳저곳에서


어둠 속 장막에 가려진 형체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듯, 마치 폭탄이 터진것 마냥 모든


방향으로부터 괴기스러운 비명소리가 날아들었다.


극도로 짧은 시간만에 상황을 파악한 소은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세하 역시 그녀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희끄무레한 달빛에


의지하던 그녀의 형체를 구분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켜려 했지만, 다음 순간 그는 손전등을 집어넣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그녀의 뒤를 쫒기 시작했다. 지금 손


전등을 킨다는것은 표적이 되는 좋은 방법일 것이었다.


몇발자국 급히 뛰어나간 그는 어느새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잠깐 당황했다.


하지만 머리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는것에 놀라 고개를 들자, 믿을수 없게 나무 위로 올라간 소은의 모습을 달빛에 의지해


겨우 찾아볼 수 있었다.


가을철에 진 낙엽이 부스럭대는 소리조차 그렇게 크지 않았음에도, 어두운 시야에도 불구하고 나무 위로 올라간 그녀의 몸놀


림은 믿을수 없을만큼 정숙했다.


그리고 곧 그녀가 내려오는것과 동시에, 방금 전과는 비교할수도 없을 정도로 다급한 목소리로 소은은 그에게 속삭이듯 말했


다.


"아까 우리가 우회한 차원종, 놈들이 뭔가에 공격당했어. 그런데 내가 본게 확실하다면, 적어도 열마리 이상은 되는 그 무리가


지금 이 짧은 시간 안에 죄다 죽어버렸어."


그리고-하고 그녀가 덧붙인 말에 세하는 이를 꽉 물었다.


"알다시피, 차원종은 차원종을 공격하지 않아. 그렇다고 해서, 그걸 공격한게 네 동료인것 같지도, 내가 아는 어떤 팀원인것 같


지도 않아."


그녀가 그렇게 말하는데에는 이미 저 차원종이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미 그 짧은 만남동안 슬비와 유


리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눈치챘다는 것을 눈치 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몸을 돌리며 그녀가 한 마지막 말은 그의 심장을 전율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 차원종을 죽인 것이 누구던 간에, 이미 차원종 시체밖에 보이질 않아.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이쪽으로 정확하게


길을 알고 있거나, 흔적을 추적하는게 분명해. 이동한 흔적도 잘 보이진 않지만 아마 우리가 지났던 부분을 되짚어 오는것 같


아."


사방팔방에서 소리지르는 차원종들의 괴성에 묻힐듯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것에 담긴 경고의 의미는 너무나도 섬뜩할정도로


명확했다. 곧 있으면 동이 틀 터이지만, 오히려 그렇게 되면 더욱 위험할지 몰랐다.


추적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고 있던, 자신들의 움직임이 보인다면 그것으로 추적은 더욱 확실하게 지속될것이다. 누가 추적하


는지, 왜 추적하는지. 그리고 그 말이 믿을만 한 것인지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들이 빛처럼 빠르게 뇌리를 스쳐지나가며 수많은 잡념들이 들끓는것을 간신히 억제했다. 본능적으로 그의 근육은 무섭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손 잡아."


갑작스럽게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얼떨결에 손을 내밀자 곧장 당연하다는 듯이 그의 손을 감싸쥔 소은의 서늘한 손의 감촉


을 깨닫기도 전에 어느새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하는 그녀의 뒤를 따라 세하는 뛰어야 했다. 한치의 앞조차 무성한 나뭇잎에 가


려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런 방법으로 길을 잃지 않게 하려는것인지도 몰랐다.


그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은 어느새 조금 젖어있었다.


긴장일까, 아니면 지친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공포인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의 해답을 내기도 전에 완벽한 어둠이 둘의 주변으로 내려 앉았다. 장막이 펼쳐지듯 갑자기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온 사실에 놀랐지만,


그는 이내 그것이 나뭇잎이 달빛조차 가려버렸기 때문이라는것을 알았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악몽과도 같은 지금의 상황처


럼 한치의 앞조차 분간할수 없다는 사실은 이유 모를 공포의 이빨을 드러낸 채 그들의 뒤를 소리 없이 쫒는 것 같았다.


위상력을 이용한 빠른 기동이나 사이킥 무브를 쓴다면 즉각 그것을 감지, 혹은 인식한 적이 그들의 위치를 알아차릴것이기 때


문에 험준한 산속을 빠르게 달리는 것은 예상보다 빠르게 체력의 고갈을 고했다. 숨이 점점 가빠질 무렵, 세하는 그들의 주변


을 덮고 있던 어둠이 약간 푸른 기운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나뭇잎이 자연적인 장막을 만들어 캄캄하기만 하던 시야는 다시 밝아졌다. 밝아졌다고 하는 사실에 의아


해 하며 고개를 돌리자,


그는 여명이 어느새 차가운 푸른 빛으로 검은 장막을 날카로이 짓이기고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새벽이 온다.


"큭..."


그리고 다음 순간, 갑자기 몸이 부유감과 함께 앞으로 이동한다는것을 깨닫고 그는 소은이 그의 손을 더욱 꽉 잡고는 앞으로


위상력을 사용해 도약했다는것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세상이 휙 나타났다가 그 잔상마저 남기지 못한채 사라졌다.


어느새 산의 끝자락인지, 조금 가파른 비탈만 내려가면 예의 그 폐허가 된 도시로 들어갈 수 있는듯, 아스 팔트와 산의 흙위에


난 풀들 사이의 경계가 모호한 도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푸르게 타오르는 새벽빛에도 꿈쩍않는 강철처럼 검디 검은 그림자속에 쌓인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세하의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소은의 그 행동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깨달았을때에는, 이미 땅에 발을 디딘 후였다.


도착하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석궁을 돌려매고 전통에 넣어져있던 화살 하나를 뽑아드는 소은의 모습이 보이자, 그 역시 건블


레이드를 뽑았다.


"후퇴만 하자. 적이 우릴 쫒고있었다면, 그건 위상력을 탐지하기 이전에 시야가 확보되어 우릴 봤을거야. 이제 위상력으로 이


쪽이 들켰을테니까, 계속 위치를 바꾸면서 움직이는 방법밖에 없어."


"최대한 싸우지 말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요.'


굳이 이곳에서 힘을 소모할 재간은 없었다. 위상력이야 시간이 지나면 마치 체력이 회복되듯 자연스레 회복이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다지 빠른 속도도 아니고, 또한 그 빠른 속도를 위해서는 위상력 앰플이 필요하지만, 그 위상력 앰플조차도 결전을


위해 아껴야 할 처지였기 때문에 더욱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적이 꼭 그들을 목표로 추적한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경계해서 나쁠것은 없었다.


차원종은 차원종을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차원종끼리는 어떠한 일이 있


어도 서로를 공격한다거나, 서로를 해하는 행동은 결단코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차원종밖에 없는 숲에 도대체 누가, 어떠


한 의도로 차원종을 공격했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낮이야 다른 소음에 묻혀 교전 소리가 자극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밤은 달랐다. 차원종에게도 잠이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


았지만, 확실한것 한가지는, 이 숲의 밤은


끔찍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 상황에서는 나뭇가지가 하나 부러지는 소리만으로도 상당히 먼 거리까지 뚜렷이 소리가 전파될것


이 뻔했다.


그리고, 차원종들의 공격적 본능은 자신의 동족이 죽임을 당하는 소리로부터 튀어 나올것이 뻔했다. 거의 숲의 가장자리였음


에도 불구하고 사방에서 들려오던 포효들은 아직까지 이어지는듯 요란스러운 소리는 저편으로부터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


다.


"후방 견제를 내가 할테니까, 너는 먼저 앞서 가, 곧장 따라갈게."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경계의 빛을 띄는것을 듣고 그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다 마침 그녀가 사이킥 무브를 사용했다


는것을 알고는 위상력 회복 앰플을 건네기 위해


자신의 허리에 맨 퀵 홀스터(quick-Holster) 에 담긴 앰플을 푸르려 했지만, 그것은 소은에 의해 제지되고야 말았다.


"괜찮아. 어서."


잠깐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앰플을 다시 수납하고 건블레이드 산탄식 샷건처럼 고쳐 잡고서 비탈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도심


지에는 차원종들이 있다는것을 확인 했기에,


그것에 대한 정찰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비탈을 절반쯤 내려갔을때, 둔중한 퉁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람을 빠르게 가르는 소


리를 듣고 그는 멈춰 서고야 말았다.


석궁의 발사 소리와 함께, 거의 동시에 그녀가 두번째 석궁을 장전하는 동작이 푸른 대기 옆으로 어렴풋 비쳤다. 보이지도 않


을 만큼 빠른 재장전 후 발사.


예의 그 긴 화살이 날아감과 동시에 다시 장전. 세번째 화살을 쏘고 나서 그녀는 석궁을 움켜 쥐고 그대로 세하쪽으로 미끄러


지듯 내려왔다.


"추격자야. 내 공격 세번을 모두 피했어. 목표는 우리가 맞는것 같네, 시가지로 들어가자. 어서!"


별로 억양의 변화가 없어서 더욱 선듯 이해하기 힘들었다. 추격자? 누구의? 무엇의? 그러다 잠시 후 그가 마을에서 그 마을을


지키는 역할의 위상력자들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는걸 떠올리고 나서야 그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자신을 겨우 추스


릴 수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행동하라고 하던, 마을에서의 탈출하던 때를 생각해 본다면


아마 그녀의 독단적인 판단이라는게 가장 적절할 듯 했다. 그리고 이젠 그들을 살려보낼수 없다는 선택을 한 것임이 뻔했다.


마을에서 현대적인 교육시설이나 체계적 교육을 받지 못한 위상력자는 사실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지만, 지금 그녀


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린것을 보면 그런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미 뛰기 시작한 그녀를 따라가며 세하는 GPS의 전원을 넣었다. 날카로운 전자음과 함께 켜진 GPS에 표시되는 지도를 대강


보고는 소은에게 건네며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거리는요?"


"1km남짓 되겠네. 우리 위치를 아니까 사이킥 무브를 사용할거야."


왜 추격하는지 조차도 확실치 않은 추격자로부터 이렇게 도망친다는것은 사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


을 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SS급 차원종을 상대하기 전에 전력을 아껴야 한다는것 역시 맞는 말이었다. 사실 추격자가 그들을 왜 쫓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도 않다고 생각하는건 그 뿐만이 아니라 소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저 이쪽의 전력이 깎이지 않으면 된다. 그러려면 추적자를 따돌려야 하고, 따라서 더욱 구조


가 복잡한 시가지로의 진입이 훨씬 길이 엇갈릴 확률이 높았다.


막 모퉁이를 꺾자마자 들어오는 문을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부수고 들어가 그대로 소은을 따라 몇


층을 올라간 세하는 순간 섬뜩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것을 떨쳐내고 소은이 화살을 매


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중요한 내용이었던것 같은데.


석궁을 들고 스코프의 다이얼을 돌리며 무언가 조절하는 것 같던 소은은 다음 순간 고개를 돌려 세하를 바라보았다.


"GPS는 필요 없어. 넌 먼저 가."


그녀가 이미 장전이 완료된 석궁을 가볍게 들어 늘어뜨려 놓고 허리춤에서 GPS 단말을 꺼내 그에게 건네는 그 동작을 어떠한

감흥 없이


본 세하는 자신의 피로에 찌든 몸이 감각이 둔해져 반응속도가 느려진것인지 의심했고, 곧이어 다시 밀어 닥치는 분노에 몸이

차가워지는것을 느꼈다.


"왜죠."


"내가 저 놈을 묶어 둘게. 너는 먼저 이동해."


거의 명령조의, 완벽히 거부는 불가능할 정도로 차가운 억양이 후드의 그늘에서 가려지지 않은 입술에게로부터 흘러나오는것

을 보고 그는 천천히


이를 악물었다.


"저게 뭔지도 모르고, 내가 힘이 될 수도 있어요. 왜 먼저 가라는지 납득할수 없겠는데요."


이유조차 없는 명령은 수긍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당연히 힘을 합치는것이 추적자를 저지하는데 용이할 것이 뻔했고, 위험 부

담도 적을 것이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결정적인 무언가는 아직까지 구체화 한체 그의 머리 속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가 가면 안되는 이유는 SS급 차원종을 혼자 상대한다는 부담감도, 소은의 위험도, 그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 모든것을 포함

하는 어떤 것이었다.


그 형체 모를 이유가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거부 의사의 정당성이 입증 될 터인, 가장 절대적인 무

언가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너는 사람을 죽여본적 있니."


다음 순간, 그녀의 말이 들려온것에 대해서 그는 뭐라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대련이야 질리도록 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남을 죽이기 위해 그의 무기를 휘두른 적은 없었다. 인간을, 같은 위상력자를 죽이

기 위해 휘두르는 무기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뭐라 대답하려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저 추적자가 인간인지, 누구인지. 왜 그러는지조차

중요하지 않은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추적자로부터 전력을 아끼며 싸우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적을 제압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죽

여야 한다.


제압은 사살보다 어렵다. 따라서 그녀가 죽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명확했다. 아니, 명확하다고 느낀 세하는 그 자

리에서 얼어 붙어버린듯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는것을 느꼈다. A급 특수 요원, 혹은 보다 더욱 강하다?


계속된 경직은 결국 그에게 대답할 기회를 놓치게 만들고야 말았다.


"없다면, 도움이 되지 않아. 결정적인 순간에서 망설인다면 그건 도움이 아닌 방해물이고, 내가 생각하기엔 너를 지켜야 하는

싸움이 될지도 몰라."


지켜야 한다. 보호의 그늘. 지겹도록 밑에 있었던 그 편안하기만 한 고통의 따분함은 결국 그를 끝없는 후회로 밀어넣었었고,

지금 역시 그랬다.


결국 그에게 하던 모든 이의 말이 맞았다.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자의 고뇌는 결국 사치스러운 생각일 뿐이었고, 가장 절

실한 상황에


그 사치는 결국 절망으로 변질되어 그에게 업보라는 번들거리는 이빨을 드러냈다.


"그 정도로 강한가요."


"나 혼자 싸운다면 충분히 해볼만 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널 보호하면서는 힘들어. 그러니까, 가."


언뜻 다른 이들이 들었다면 이해조차 되지 않으리라. 하지만 세하는 그녀의 말을 이해 했고, 때문에 더욱 입술을 꽉 물었다. 피

가 배어 나오는지 쌉쌀한


혈향이 그의 입안에 퍼졌다. 그의 실력은 그녀보다 한참 아래였다. 대련에서 아무리 클래스 드레드노트의 방어를 어쩌다 뚫거

나, 권총탄정도는


본능적, 동체 시각적으로도 인지하고 피할 수 있는 기술은 사실 팀 페가수스에 원래 들어 와야 할 기본적인 요구 능력들일 것

이었다.


그를 칭찬했던 페가수스의 팀원들은 어디까지나 그의 성장이 비약적인것에 놀란것이었지, 결코 그들은 그의 능력이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아니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는 어디까지나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아이'였다.


알파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것은 이미 어렸을때부터 뼈저리게 알고 있을지 몰랐다.


따라서 그 자신이 가두어지기를 원했고, 그렇기에 그는 결국 남들이 그를 포기하기 전에 그가 그 자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 나약함의 결말은 결국 이런 식인가.


그는 손을 움직이려 했다. 움직여. 명령을 내려도 꿈쩍하지 않는 손을 간신히 비틀어 짜낸 힘으로 들어 올렸다. 애처롭게 벌벌

떠는 손은 소은이 손에


든 GPS단말기를 향해 비척비척 다가가 그것을 집었다. 그 놀랍도록 무기질적인 움직임에 놀란것은 세하밖에 없는듯, 소은은

그가 그것을 잡자마자


바로 석궁을 들고 건물 복도로 다가가 몸을 숙인 채 밖을 주시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세하는 뭐라고 인사해야 할지 몰라

잠깐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결국 그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입 안에 스며드는 혈향은 비릿해서 구역질이 나올정

도로 역겨웠다.


검푸른 하늘은 여전히 정적이었고, 그것은 자욱히 깔리는 안개에 녹아드는 새벽의 열기일지도 몰랐다.


GPS에는 그녀가 말한 위치가 어느 지점이인지 알기 쉽도록 표시해놓은 터치식 스팟(Spot) 광점이 깜박이고 있었다. 그리 가

까운 거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혼자 가기에는 먼 곳이었다.



그리고,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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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그녀가 세하를 떠나 보낸지도 20분 이상이 흐른것 같았다. 아니, 더 짧았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정적속의 예리한 감

각들은


시간을 하염없이 느리게 느끼는지, 조금만 움직이는것이 보이면 거의 반사적으로 그곳으로 석궁의 조준점을 돌리게 하고 있었

다.


어차피 산쪽으로부터 이곳 시가지를 들어오려면 우회는 불가능했다. 밤 중에는 시야에 의존하는 차원종이야 기습해서 해치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시야가 확보되는 이 시각이라면 차원종이 득시글대는 산 가장자리를 빙 돌아 시가지로 진입한다는것은 사실상 불

가능했고, 그 사이에


그녀와 세하가 어딘가로 도망가는 것인지 흔적을 놓칠수도 있었기에, 추적자로써 추구할 방법은 바로 이 길로의 진입이었다.


물론 산 반대편으로 돌아 시가지로 들어온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차원종으로부터 회피하려는 길로 돌아간다면 거의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릴 터였다.


이곳의 지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벌써 소은은 이미 대강의 구조는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공간능력은 사실상 이런 상황을

파악하는데 있어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천재적이었다. 또한 다른 곳으로 진입해 담을 넘어 들어온다 한다면, 어느새 광란에 빠진 차원종들의 신음소

리가 사라져


다시 소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산에 다시 한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올 것이 뻔했다. 잘 들리지 않겠지만, 이미 그런 쪽

에 특화된 훈련을 많이 받은


클래스 레인저나 아쳐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그녀가 상대하는것이 그녀의 짐작대로 위상력자라면, 그녀가 정확한 저격을 한다

는 사실을 알아 채고 대강의


클래스를 짐작할 확률이 컸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훈련을 받은 클로저에게는 사실 시야에 들지 않는다고 적발되지 않는게 아

니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극도로 훈련된 그녀의 청각이나 예감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천차만별로 달랐다.


-따라서, 적은 그녀가 노리고 있는 이 시가지의 입구로 들어올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다음 순간, 절반만 맞다는 조건으로 정답이라는것을 알 수 있었다.


추적자는 입구로는 들어왔지만, '걸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큭...!"


그녀가 있는 건물 층에 정확하게 포탄처럼 날아오는 검은 형태가 보이자 마자 반사적으로 그녀의 검지손가락은 방아쇠를 당

겨  화살을 발사.


적은 사이킥 무브를 사용해 그대로 그녀가 있는 곳에 돌진한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위상력자에게 위상력 회복은 쉬운 일이

아닌만큼,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전투 전부터 위상력을 소모하는 위상력자는 없을 터였다. 기습이라면 모르지만, 그녀가 이미 그가 어디로 올지 인지하고 있는

사람의 행동같지 않게 무모했다.


대부분 저격수를 상대하는 것은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해가며 최대한 몸을 사린 채 접근, 근접전을 유도하는 것일 터였다. 그런

데 절대 소모 위상력이 적지 않은


사이킥 무브를 저격수 상대에 이용한다는것은 금시 초문이었다.


명중의 감각이 손끝에 전해지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판단. 그대로 석궁을 버리고 피스톨에 손을 뻗으며 동시에 전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일련의 행동을 마쳤을때, 오랜 세월로 인해 곳곳에 금이 간 창문의 유리가 깨지며 그 형체는 그녀에게 그대

로 돌진해왔다.


몸을 옆으로 굴리며 피스톨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소은에게 피스톨을 사용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접근전에 대해서 결코 아쳐

라는 클래스에 대한


강박 관념따위는 허용치 않겠다는 듯, 정확한 사격이 이어졌다. 검은 형체는 계속해서 회피. 검푸른 하늘로부터 어둡게 가리는

실내에 가린 인영은


빠르게 복도의 사이 사이를 빠르게 가속했고, 몇발 정확히 그 형체에게 날아간 권총탄은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하는듯 푸른 불

꽃과 함께 튕겨져 나갔다.


위상력은 만능이 아니었다.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욱 강한 위상력으로 공격하면 그 위상력으로 만

든 보호장치는 간단하게


깨져버렸다. 분명 권총탄에 그녀 자신의 위상력을 불어 넣어 발사 했는데, 이 사실을 대입해 거꾸로 말하자면 그녀의 위상력은

추적자보다 동격이거나 낮다는 이야기었다.


'좋지 않아.'


권총탄은 단 한발도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착탄되지 않았음을 깨달은 소은이 탄창 교체할 시간이 없음을 알고 권총을 그 형체

에게 집어 던짐과  동시에


화살을 뽑아 들었다. 예리해서 그녀 자신조차 화살 용도가 아니라 검으로도 사용할 만큼, 화살은 예리하면서도 길었다.


다음 순간, 형체가 그녀에게 다가듬에 따라 뒤로 물러나며 화살을 한번 흔들자, 눈부신 초록빛 위상력이 화살과 그녀의 몸을


감쌌다. 다음 순간, 형체와의 격돌이 이어졌다.


-카아앙, 즈창!-


한번 휘감고, 다시 한번 맞부딛쳤을때 소은은 이미 자신이 힘에서 밀리고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제서야 얼굴을 마주하게 된


인영은 그녀보다 머리통 하나나 둘쯤, 혹은 그보다 더 큰 장신이었다.


남자가 걸치고 있는 빛 바랜 검은 하프코트는 아직까지 그가 움직인 관성을 주체 못하는지 펄럭이고 있었고, 검이라고 하기에


는 약간 짧은 쇼트 소드(short sword)로 그녀의 화살을 찍어 누르듯


압도하고 있었다. 힘 대결은 불리하다고 판단한 소은은 그대로 화살의 각도를 바꾸어 남자의 검을 흘려 보내고 그대로 몸을 돌


려 그의 머리쪽을 화살의 손잡이 부분으로 치려 했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머리에 닿은 차가운 금속에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다. 다음 순간, 총성과 함께 그녀의 머리 바로 위를 꿰뚫어버린 탄환


이 아쉬움에 울부짖었다.


몸을 회전시켜 발로 균형을 잃지 않도록, 마치 체조선수의 그것처럼 뒤로 몇번 구른 뒤 민첩하게 일어난 그녀의 눈 앞에는 남


자가 연식조차 모를 오래된 라이플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위상력덕분인지, 애초부터 가벼운 것인지 한손으로 라이플을 든 그의 손은 빠르게 그녀에게 총구를 겨누었고, 그녀는


위상력을 발 밑에 집중시켜 터뜨리듯 운용하는 방식으로 그대로 미끄러져


나갔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처럼 바닥에서 발이 거의 떨어지지 않는듯 보이는 고속이동은 연이어 발사된 라이플의 탄


환을 모두 빗나가게 만들었고, 소은은 그대로 화살을 남자의 얼굴을 향해 찔러 넣었다.


치명타라고 생각한 찰나, 남자의 라이플을 쥔 손이 소은의 어깨를 강타했다. 개머리판으로 찍어 누르듯 들어온 공격은 소은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고, 연이어 뻗는 남자의 다른쪽 손에는 쇼트 소드가


번뜩이고 있었다. 몸을 비틀어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후드의 앞부분이 조금 잘려 나가고야 말았다는것을 깨닫기도 전에


그녀는 연속해서 뒤로 몸을 날려 몇번을 공중제비를 넘은 후에야 착지했다.


서로의 거리가 약간 벌어지자 둘 다 무기를 들어 올려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남자는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서야 자세히 보니 남자의 라이플은 개머리판과 총구를 잘라 컴팩트 버전으로


휴대성을 극대화한 듯 보였다. 연식은 오래 되었지만, 총구부분에 장착된 착검은 근접무기로써의 실용성도 여실히 뽐내고 있


었다. 게다가 쇼트 소드는 더욱 기묘하게도 날이 옆으로 상당히 넓었다.


이가 빠지거나 한 부분은 없었지만, 그것 역시 상당히 낡아보였다.


한동안 팽팽히 당겨진 긴장의 끈은 계속 이어졌다. 서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소은은 화살을, 남자는 라이플과 화살을 가지고


비스듬히  선 채 라이플을 그녀에게 정확하게 겨누고, 쇼트소드를 오른팔로


거머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가 움직이기만 하면 바로 다시 격전은 시작될 터였다. 하지만, 어느쪽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것을 다른 이들이 보면 어쩌


면 이상하다 느낄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치는 놀라우리만치 길게, 계속 이어졌고, 먼저 입을 연것은 소은이었다.


"왜 우릴 쫓는거지?"


"제거를 위해서입니다."


둘의 대답은 방금 전까지 인간의 한계를 넘은 사투를 벌이던 자들의 목소리라 하기 힘들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했다. 정중하리


만치 낮고 세련된 목소리가 대답하자 소은은 공격적으로 다시 한번 질문했다.


"우리와 거래가 마음에 들지 않은건가?"


"아니오, 애초부터 거래는 없었습니다. 모두 경비대장의 독단적인 판단일 뿐이었죠."


"그래서, 우리를 잡아오라고?"


"네."


하지만-하고 남자는 잠깐 숨을 들이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여의치 않으면 사살도 괜찮더군요. 당신은 생포하기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 아까 빠져나간 그 소년하고 같이 동행해주시면


안될까요?"


이건 압박이었다. 솔직히 소은도 이 남자를 자신이 특기로 하는 장거리 저격도 아니고, 초 근접전으로는 이긴다는 확신이 없었


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더욱 세하를 빠져 나가게 했다.


만일 이 싸움에서 그녀가 진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미 SS급 차원종에게 한참 가는 도중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오래 버틸 수록 그를 남자가 추적할 확률은 적었다.


"저와의 싸움에서 질 확률을 예상하신듯 한데, 사실 저는 별로 상관 없습니다. 곧 끝날테니까요."


자만심도, 허세도 아닌 그저 담담한 사실을 말하듯 남자는 선언했다. 그렇지만 소은은 비웃지조차 않았다. 단지 더 꽉 화살을


붙잡았을 뿐이었다.


"이건 제게 있어서는 마을 사람들의 수많은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허술하게 해서는 안되겠지요."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쇄도해 오는 소은을 보고 남자는 침착하게 라이플을 조준해 연달아 탄환을 내 쏘았


다. 탄피가 미 친듯이 튀어 올라 바닥에 맑은 비명을 내지르며 떨어졌다.


하지만 소은의 방향전환은 빠르고 정확해서, 기세 좋게 발사된 탄환은 그저 허무하게 허공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어느새


라이플로 조준이 힘든 곳까지 와 벽을 박차고 대각선으로 치고 들어오는 그녀의 공격을 남자는 왼손의 라이플을 난사하며 휘


둘러 견제함과 동시에 팔을 풍차처럼 돌려 검을 연달아 내질렀다. 빠르지는 않았지만, 목표를 부술 힘이 있는 일격이었다.


라이플의 총알이 먼저 탄막을 넓게 펼치고 그 공간을 다시 한번 검이 찢어놓았지만, 이미 소은은 반원을 크게 그리며 그의 뒤


로 돌아가 있었다.


마치 빙판 위를 움직이는것처럼 빠르고도 끊임없는 움직임은 남자가 무심코 감탄할 만큼 세련되면서도 정교했다. 눈 한번 깜


짝할 사이에 그 모든 동작은 이루어졌고, 소은은 그대로 남자의 등에 화살을 찔러 넣었다. 그렇지만 우측으로 반바퀴 돌아 그


대로 왼팔로 내려치려는 공격을 시도하는


남자의 놀랍도록 빠른 움직임에 그녀는 화살을 회수한 채 뒤로 물러났다. 남자는 틈을 주지 않으려는지 라이플을 그녀에게 쏘


았다. 단 2초만에 난사는 끝나고, 총알이 없음을 알려주듯 격철이 찰칵 소리와 함께


슬라이드 스톱. 남자가 탄창을 교체하기 위해 총을 쥔 손으로 빈 탄창을 빼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소은은 빠른 찌르기로 남자


의 허점을 노렸다.



그렇지만 남자는 오른팔의 검으로 그것을 간단하게 막으며 새 탄창을 공중으로 던져 올리고는 탄창이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추


어 라이플을 옆으로 눕혀 휘둘러 탄창을 갈아 끼우는 묘기를 선보였다.


연이어 불을 뿜는 총구로부터 계속해 미끄러지듯 빠른 속도로 회피하는 소은은 직감적으로 싸움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


런 전면전은 그녀에게 있어 특기가 아니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바닥에 이리저리 깨진 채 돌아다니는 창문 옆 난간 재질인 타일조각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있는 힘껏 위상력


을 담아 차 올렸다. 산탄총처럼 팍 퍼지는 타일조각이 남자의 시야를 차단함과 동시에, 소은은 옆으로 굴러 석궁과 전통을 거


머 쥐고는 그대로 복도의 비상계단 문을 통해 빠져나왔다.


"이제는 아예 시간끌기라뇨...뭐, 상관 없습니다만."


약간 실망했다는듯 숨을 내뱉으며 남자는 천천히 라이플의 탄창을 교체하며 비상 계단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마을을 지키는


얼마 안되는 위상력자들 중 클래스 레인저였다.


그리고, 사냥꾼은 결코 사냥감을 앞에 두고 조급하게 굴지 않는다.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사냥감의 목을 추적해 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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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하늘은 점점 그 채도를 높혀가고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심해의 바다처럼 검푸른 하늘이었지만, 조금만 더 있으면 해


가 뜰 것이 분명했다.


점점 어디서부턴가 자욱해지는 안개는 몽환적이면서도 동시에 정처없이 떠도는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진혼곡만큼이나 소름


끼치도록 아름다웠다.


그를 휘몰아감고 다시금 멀어져가는 바람은 늦가을의 그것이라 뼈까지 떨릴정도로 추웠다. 한숨을 내쉬자 입김이 새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잠깐 짙푸른 하늘 사이로 멀어져가는 입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머리는 이루 말할수 없이 복잡했다. 연이은 휴식없는 행군은 그의 기력을 죄다 빼어놓았다. 가방을 뒤 져 밀봉된 비닐 팩


에 들어있는 육포를 조금 뜯어 씹자, 그제서야 배고프다는것을 꺠달을 만큼 그의 생체 리듬패턴은 정상이라고 부르기는 어려


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은


수없이 많은, 그리고 끊임없는 생각들로 인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할까.


GPS는 주황색 불빛이 점멸하는곳으로 그가 정확히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위성으로부터 일방적인 신호를 받는것인


지라 계속 연결은 불안정했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신형 GPS단말기라도, 이러한 환경속에서 위성통신이 원활할리는 없었다. 게다가 하나 더 덧붙여 생각해


보면, 과학자들이 말하는 위상력에는 전파를 방해하는 성질도 있어 그것들의 농도가 짙어지면 잘 통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가설이 맞다면 이곳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의 차원종들이 있는것일까.


생각을 그만두기를 원했지만, 끊임없는 고독은 그에게 끝없는 고뇌를 불러 일으켰다.


"그만 둬."


중얼거렸지만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이 적막한 공간은 그의 목소리조차 메마르게 집어 삼켜버리는듯 거대하고도 탐욕


스러웠다.


점점 가까워지는 광점은 GPS로 확인하는 매 순간마다 가까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로써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정말로 이게 옳


은 일일까.


팀 페가수스의 인원들도 걱정되었다. 그들은 그를 인간적으로 대우했으며, 또한 그를 알파 퀸이 아니라 그 자신 자체로 훌륭한


발전 능력을 보인다고 인정했던 동료들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 그들의 안전 역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고민 중 하나였다. 하지


만 당연하게도 그들을 이 넓은 숲속에서 추적하는것은 무리였다. 연락조차 방법이 없었다.


손이 닿지 않는 무력감은 그를 더욱 위축되게 만들었다. 혼자서 이 회색빛 폐허를 걸어가는 그는 직접 그 일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강력한 고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유니온의 독방에 갇혀 있었던 것보다도


더 고통스러운 감각은 그의 온몸을 내달리며 그의 복종을 원했다.


"그만 둬!"


고함소리. 다른 이가 보았다면 어디에 어떠한 위험 요소가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지른 고함은 자살 행위라고 생각했을 것


이었다. 그의 고함소리 마저도 어쩌면 그가 하는 발악의 일환이었을지도 몰랐다.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는 목숨은 이미 아니었다. 죽고싶다는 생각을 이미 한 두번 한것이 아니었다 SS급 차원종과의 전투라


는것은 생각만으로도 수없이 자신의 몸이 그것에게 갈가리 찢겨지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게


만들었다. 계속 도망치라는 목소리와 함께 그러지 말라고 고함치는 극과 극의 형체없는것들이 벌떼처럼 붕붕대는 소리처럼 들


리다 점차 뚜렷해지며 떠들었다.


그는 머리를 잡아 뽑을듯 거칠게 머리칼을 흐트러놓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소은을 돕기 위해 돌아가고 싶었다. 그를 대피하


게 만들었다는것은 그만큼 적이 강한 상대라는 것이다. 다른 이유에서였더라도


그녀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슬비와 유리도 걱정되었다. 거래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녀들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확신을 가지고 나가는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죽는다면. 자신이 죽는다면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 되


는가. 엄마, 검은 양 팀의 전부와 페가수스 팀원들에게도 인사조차 하지 못한 이들이 많은데. 그것조차 미련이라 치부하면 될


일이건만 그건 죽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지배한다. 온몸의 무력감이 그를 복종시키려 했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이, 어쩔 수 없는 죽음을 받아들일 그의 주변 이들이. 그


때문에 죽음의 길을 택했던 사람들이 원망할까. 슬퍼할까. 아니면?


고개 들어 하늘을 보자 도저히 끝을 알 수 없을만큼 검푸른 하늘이 그에게 무표정으로 대답하듯 무뚝뚝한 회색빛 구름 몇점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제발...그만해."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조차도 모른 채 저물어 가는 별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흘러나온 말은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하는


것임을 그는 찬 바람이 한번 그를 스쳐 지나갔을때 깨달았다.


후회라는 감정은 너무나 많이 그를 훑고 지나가 이제는 익숙했다. 내장이 녹아 내릴것만같은 죄책감은 어느새 그를 반 이상 먹


어 치운것처럼 포만감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이젠 어떻게 되던 그의 업보일 것이며, 그의 나약함에 대한 댓가일것이다.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엄마로부터 도망치던 그 순간부터?


나 자신을 포기하던 그 순간부터?


그것도 아니면, 내가 그저 평범하기만을 바랬던것이 잘못이었을까.


"하하..."


씁쓸한 웃음이 비척비척 그의 갈라터진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오랫만에 움직이는 입술이 다시 터져 따가운 감촉이 그에게 찌


릿 전해져 왔다.


그래, 어쩌면 그는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이제 결심했다.


"더 이상 나를 가지고 놀지 마라."


가슴속에서 포효하며 몸을 뒤트는 검은 짐승에게 명령한다. 이것은 그가 자초한 일이었다. 힘이 없었고, 안이하게 그 결과를


예측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라 속이 후련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고통받아야지. 그렇지만 그것은 그 혼자만이 아닌 다른 이들을 끌고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할 때부터.


아니, 이미 그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있음을 알고서도 나약한 자신을 방치해 결국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단 한번도 한계를 넘어보려 하지 않은 그 자신부터가 이미 명확한 원인이었다.


"내가 원한 일이었어."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디서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는지. 이제 그는 깨달았다. 그 자신이 이러한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면


왜 노력을 했겠는가.


그 자신이 이러한 나락으로의 추락을 안배할 수 있었음에도 끝까지 발버둥을 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


아무런 이유 없는, 아무런 의미 없는 대꾸를 하며 그는 그 자리에 멈춰 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제 그는 어떻게 할지 마음을 정했다.


이미 그는 어떻게 할지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 이세하는 그가 할 일을,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아니, 검은 양의 모두를 구하러 가는 그 순간부터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는 다음 순간 발걸음을 옮겼다.




















"헉...하악..."


가쁜 숨을 내쉬는것은 오랫만이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 주저 앉았다. 위상력의 소모는 예상 외로 커지고 있었다. 위상력을 보


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위상력 앰플을 꺼내던 그녀는 손가락에 집히는 병이 너무나 가벼움을 깨닫고 급히 자신의 혁


대를 더듬어 앰플을 들어보자, 금이가 깨져 내용물이 하나도 남지 않은 텅 빈 앰플 통만이 보였다. 아까 다 피했다고 생각한 남


자의 라이플 탄환중 하나가 앰플을 박살냈을 것이었다. 다행히 옆에 있는 신체 회복 앰플은 아직 멀쩡했다. 그렇지만 위상력의


보급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치명적이었다.


벽에 기대어 무너진 틈 사이로 보이는 건물 밖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남자에게서 도망쳐 무작정 달리던 도중 근처의 고층 건물


로 들어와 계단으로 대략 20층까지는 올라온 듯 했다.


옥상까지 외형적으로는 멀쩡한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유리조각과 전등, 각종 타일들이 깨져 널브


러져 있었다. 이런 곳에도 차원종이 살 충분한 공간이 있었기에 그 점도 조심해야 했지만, 그녀에게 더 큰 위협은 일단 그녀와


세하를 쫒는 남자였다. 그가 그녀를 쫒지 않고


그대로 세하를 쫒을 확률이 있었지만, 그러려면 그녀에게 뒤를 공격당할 확률이 있었으므로 그렇게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터


였다. 그러므로 그는 그녀를 찾아 올것이었다.


물론 이 많은 건물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녀를 찾아낸다는 것은 어려웠고, 남자의 클래스는 무엇인지 몰라도 상대를 탐색-저격


하는 소은의 감각을 능가하지는 못할 터였다.


거리가 멀수록 그녀에게는 유리했다. 벨트를 뒤 져 아까 포기했던 권총이 사라지고 남은 빈 홀스터를 풀러 땅에 내려 놓았다.


어차피 이제는 필요도 없는 물건이었다.


허리를 보니 나이프 한자루, 앰플, 그리고 손전등정도밖에 없었다. 석궁과 전통을 확인해보니 전통에 남은 화살은 총 열발 남


짓이었다. 석궁에 한발을 걸어 장전하며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조금 있으면 다시 닥칠 격전을 준비하는 자 치고는 너무나 침착한 태도였다. 분명 남자는 이 골


목 어딘가의 길로 지나갈것이 뻔했다.


그때를 노리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스코프의 배율을 조절했다. 닿고 낡았지만 너무나 익숙한 석궁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어깨에 견착하고 땅에


엎드렸다. 엎드려 쏴 자세로 건물의 틈 밖을 바라보았다. 사거리의 안편에 위치한 건물은 그녀가 방향을 많이 틀어 올라온 건


물로, 방금전 격투가 있었던 건물로부터 네 블록쯤 대각선방향에 위치해있었다.


조준점을 겨누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남자를 탐색하기 위해 온몸의 감각들이 바짝 긴장하는 감각을 느끼며 그


녀는 방금 전의 격투에 대해서 냉정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 그의 무기는 날이 넓은 숏소드와 라이플 한정이었다. 하지만 몸에 코트를 걸쳤기에 그녀처럼 몸 어딘가 권총이나 보조


무기등을 수납하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조금 후면 아마 남자는 사거리에 몸을 드러낼 것이었다. 그때 그녀의 뇌리에 방금 전 그녀를 습격하던 남자의 정확한 위치 파


악이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있는 건물, 층수, 그녀가 있는 정확한 방향을 향해 튀어 나와 사이킥 무브로 돌격하며 공격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다음 순간, 어른거리며 움직이는 형체를 스코프 안에 포착한 그녀는 신속하게 탄도학을 계산. 영점이 정확하게 맞추어


진 조준점의 보조선에 맞추어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에 걸려있던 잠금장치가 풀어지고, 그녀의 위상력이 전달. 화살의 날부분이 녹색빛을 띄는 그 순간, 석궁에 걸린 발사장


치가 무시무시한 위치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전환.


있는 힘껏 당겨졌던 로프가 드디어 해방이라는듯 정숙한 포효로 환호했다. 음속의 속도로 날아가는 화살은 운동에너지를 극대


화 하기 위해 설계되고 만들어진 유니온의


기술적 정수인 클로저들의 무기가 모두 그렇듯, 치명적인 속도와 파괴력을 자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남자의 몸에서 흘러


나온 백색의 빛이 순간 일렁이는듯 싶더니, 곧장 건물쪽으로 달려왔다.


분명 화살은 그에게 확실히 명중할만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급히 그녀가 배율을 확대해보니, 남자가 있던 자리에는 화살이


없었다. 화살이 남자에게 명중한 것일까.


막 남자에게서 흘러나온 채 잔상을 남기며 이리로 달려오는 그의 모습은 이제서야 위상력을 개방해 제대로 할


마음이 있다는듯, 아까까지만 해도 전투 시에 위상력을 발현하지 않았던


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막 건물의 앞까지 달려온 남자는 그대로 계단 쪽으로 들어갔다. 그것을 확인하고 소은은 석궁


에 한발을 다시 장전하고 총구를 입구 쪽으로 돌렸다.



방금 전의 전투 개시때 사이킥 무브로 이동한것 때문인지 이번에는 사이킥 무브가 아니라 건물의 아래부터 위로 올라올 심산


인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는 당연하지만 작동불가. 계단쪽에서 올것임이 뻔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모든 예상을 뒤로하고 목소리는 그녀의 귀 옆에서 들렸다.


"찾았군요."


"큭-!"


엄습하는 통증에 왼쪽 어깨를 부여 잡으며 그대로 왼쪽으로 몇번 땅에 손을 짚으며 굴렀다. 거리가 약간 벌려진것을 확인하자


마자 남자는 현관쪽으로 들어오는 척 하며 그대로 다시 한번 사이킥 무브로 부서진 벽 틈 사이를 통해 그녀의 후방을 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왼쪽 어깨에 타오르는것 같은 통증에 손을 가져다 대보니, 길쭉한 물체가 사정없이 박혀있었다. 그것이 뭔지 알아보기 위해 그


녀는 몇번 물체를 만져보았고, 남자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 제게는 필요 없는 물건인지라."


그제서야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까 쏘았던 그녀의 화살은 남자에게 명중하지 못했다. 남자는 낚아 챈


것이다. 남자의 손에 낀 장갑을 바라보자 약간 찢겨진 손바닥 부분이 그 사실을


여실히 증명했다. 위상력조차 쓰지 않고, 그 음속에 가까운 화살을, 손으로.


"그럼, 물건도 돌려 드렸으니, 사냥을 시작하겠습니다."


화살을 그대로 뽑아 땅에 팽개친 그녀는 그대로 성한 오른 손으로 석궁을 겨눠 화살을 내 쏘았다. 다시 한번 날아가는 화살은


이번에는 남자에게 날아가던 도중 진로가 갑자기 바뀌어


천장으로 날아가 그대로 박혔다. 남자가 숏 소드로 그것을 쳐내었다는것을 깨달았을때, 소은은 내심 놀랐다. 하지만, 동요의


기미 없이 그녀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왼 손을 뒤로 돌린 채 한 손으로 화살을


겨누었다. 레이피어와 같이 상대의 목을 겨눈채로 다시한번 심호흡을 하며 위상력을 끌어 올렸다.


"어딜."


갑작스럽게 닥 쳐온 나직한 목소리에도 그녀는 빠르게 반응했다. 그대로 화살을 돌려 눕히며 날아든 소트 소드를 옆으로 흘려


내 반바퀴 돌아 남자의 팔 간격 안으로 들어갔다. 몸 안쪽으로의 무리한 공격은


자칫하면 자신마저 다칠 수 있기에 남자도 조심스러울것이 뻔했다. 그대로 화살을 빠르게 찔러 남자의 심장을 노렸지만, 둔탁


한 충격과 함께 화살이 옆으로 퉁겨져 나가는것을 깨달은 그녀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기울였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목이 있던 부분을 할퀴며 지나간것은 라이플의 총탄이었다. 재차 몸을 유연하게 회전시키


며 두번의 일점타격. 한번은 숏소드에 공격이 튕겨 나갔지만, 그대로 회초리처럼 달라붙는


그녀의 검술은 생각보다 큰 파괴력을 자랑했다. 남자의 코트의 깃부분을 잘라낸 소은의 화살은 초록색 잔상을 남기며 그물처


럼 촘촘히 그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남자의 힘 있는 일격을 흘려내는 그녀의


몸놀림은 보통 사람이라면 생각할수도 없을만큼 민첩했다.


"대단하군요."


라이플을 크게 휘둘러 그녀와 거리를 번 남자는 잘려나간 옷깃부분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 솔직한 경탄이 담긴 말은 적대가

별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정중했다.


"더 이상 생포할 생각은 접어야 겠습니다."


다음 순간, 소은은 발밑에 위상력을 집중시켜 남자의 뒤로 돌아갔다. 전투 중에 하는 말은 아무런 효과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적은 이미 오래 전이었다.


마치 스케이트를 타듯 위상력을 지지대삼아 앞으로 미끄러져 나가는 그녀의 움직임에 남자의 라이플이 반응. 라이플이 잇달아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소은은 옆으로 화살을 휘둘렀다. 장신의 남자이니만큼 체구가 작은 여자를 상대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


었다. 소은은 여자치고는 그렇게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조준이 쉬울리가 없었다.


다시 한번 그녀가 옆으로 돌아 그의 등을 보았을때, 그녀는 어렴풋한 승리를 예감했다. 그렇지만 다음 순간, 그가 아직까지 위


상력을 발현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했을때에는, 이미 그녀의 몸이 벽에 처 박혀 있었다.


"윽..."


고통어린 신음소리가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강력한 충격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 입 안에서 피맛이 감돌았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몸을 옆으로 굴렸고, 그녀가 있던 자리를 탄환이 꿰뚫었다.


방금 전과는 다르게 하얀 잔상이 궤적을 남기는것을 보아 위상력이 담긴 탄환이었다. 남자는 말없이 그녀에게 그대로 돌격했


다. 하얀 빛이 그의 쇼트 소드에 일렁이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판단, 소은은 그대로 몸의 중심을 무리하게 옮기며 허리를 뒤 틀었다. 그렇지만 남자가 내지른 공격을 수직 내리치


기에서 중간에 갑자기 날째로 옆으로 궤적을 바꾸었고, 소은은 예상치 못한 검 면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한 채 쇼트 소드의 옆


면에 맞고 다시한번 벽에 날아가 부딛쳤다 부딛히는 순간 몸을 고양이처럼 비틀어 충격을 최소화 시켰지만, 발목 뼈가 약간 이


상했다. 심상치 않은 괴력이었다.


남자는 느긋하게 라이플을 위로 던져 올렸다. 라이플에서 떨어진 빈 탄창 대신 마치 묘기를 부리듯 탄창을 두번째로 던져 떨어


지는 총을 휘둘러 탄창을 다시 끼워 넣는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능숙했다.


라이플이 다시 그녀를 겨누었다. 소은은 다시 위상력을 터뜨려 회피기동을 하려 했지만, 다음 순간 허리에 찢어지는듯 한 통증


을 느낀 채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방 밖으로 미끄러져 밀려나갔다.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음에도, 명중한 탄환 두발이 그녀의 체내를 헤집고 내장을 꿰뚫어 놓았다. 지체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 허리춤에 신체 회복엠플을 꺼내들었지만, 그 파우치가 비었다는 사실에 그녀는 경악했다.


"이걸 찾으시나요?"


남자의 손에 들린 앰플을 보는 순간, 아까 그녀가 남자에게 검을 맞고 날아가던 도중 남자가 그것을 빼앗았다는것을 깨달으며


소은은 이를 악물었다.


예상 외로 실력 차이가 너무 큰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 그녀는 위상력을 아껴야만 했다. 어쩌면 진심으로 그녀가 남자와 상대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대등한 전투, 혹은 우월한 전투가 될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은 앞으로의 가장 중요한 싸움인 SS급 차원종을 상대하는데에 있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지 몰랐다. S급 차원


종을 상대하는데만 하더라도 위상회복 앰플을 열병 넘게 큐브 훈련 시설 안에서 사용한 적도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상회복 앰플은 당연히 그것보다 턱없이 모자랐고, 게다가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위상 회복 앰플도 없


었다. 따라서 이 싸움은 원래부터 그녀에게 불리했다. 남자 역시 사이킥 무브를 두번이나 사용했지만,


그녀 역시 작전 도중에 한번도 위상 회복 앰플을 사용하지 않았었고, 마지막 싸움을 위해 비축하던 위상 앰플들은 대부분 세하


의 배낭에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화살을 움켜 쥐고 그대로 돌격했다. 직선적인 찌르기. 간결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만큼 빨랐다. 남자는 불의


의 일격에도 침착하게 검을 옮겨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소은이 더 빨랐다.


그대로 레이피어는 남자의 허리를 찔러 들어갔고, 그대로 그녀가 힘을 주어 옆으로 당기자, 남자의 살점을 뜯어 내며 빠져 나


왔다. 남자의 나지막한 신음 소리와 함께 그녀는 두번째 연격을 몸을 비틀어 날렸다. 두번째는 남자의 어깨에 명중. 아쉽게도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둘 다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는 부분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그녀의 일격을 받고만 있을수는 없다


는듯, 남자는 몸을 비틀며 기합성과 함께 발차기로 그녀를 가격했다.


다시금 몸이 뒤로 날아가는것을 느꼈지만 이번엔 소은도 대처를 할 시간이 충분했다. 위상력으로 몸의 균형을 잡은 채 땅에서


발을 떼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돌진. 원거리 무기가 없는 그녀로써는 라이플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남자에게 붙어서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눈앞을 지나간 흰색 빛무리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이미 늦은 후였

다.


"으윽..."


그녀는 자신의 배를 만졌다가 손을 떼자 손에 한가득 묻어 나오는 진득한 피들을 보고 고통을 참기 위해 애썼다. 상처는 깊었


다. 움직이기 위해 발에 힘을 주려 했지만, 그조차 되지 않는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쓰러졌다. 남자는 일부러 그 자신의 공격과 방어 속도를 시간차를 두고 받아내는 둥 원래의 실력보다 늦추고 있었다. 이 일격


한번을 위해서.


그리고 그의 전략은 정확하게 들이 맞은 셈이었다.


"사실 저는 클래스 레인저지만, 근접전이 주특기인 특이한 케이스라서 말이죠. 뭐, 마을에 충분한 자금이 없으니 이렇게 라이


플과 칼로 대신 무기를 삼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보아하니 클래스 아쳐나 레인져 중 하나이신것 같은데 말입니다. 저 말고


다른 레인저 계열의 클래스가 이만큼 접근전에서 특기를 보인적은 한번도 못봤습니다. 솔직히 말해 경탄스럽군요."


그는 그대로 라이플의 탄창을 교체하며 말을 이었다.


"뭐, 거의 다 끝났으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저는 사실 하나 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한번쯤 어떻게 제가 당신들을 정확


히 따라왔는지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다른 시간도 아니고 한밤중 숲인데."


그의 말을 듣고도 소은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뇌가 타버릴정도로 아픈 그 감각에 집중하느라 남자의 말은 거의 들리지조


차 않았다.


"저는 위상력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그 위상력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수 있어요. 뭐, 선천적으로 태어난 거긴 하지만, 여러분같


이 위험한 탈주자들을 추적하는데에는 최고죠. 이제 저는 당신을 처리하고 나서 그 소년을 따라갈겁니다. 아쉽지만 그쪽에서


어떤 작전을 세웠는지도 짐작이 가고, 아무래도 틀린 모양입니다만."



소은은 그의 말을 듣고 마음속 깊이 몰려오는 허탈함에 한숨을 쉬었다. 선천적으로 위상력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어쩌다


가끔 위상력자들 중에 그런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으로 위상력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면, 세하를 먼 발치에서만이라도 봤다면 그의 위상력을 이미 기억하고 있을 것임이 뻔했


다. 그가 세하를 추적하기란 사실 누워서 식은 죽 먹기와도 같을 것임이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심으로 아쉽다는 말투는 정직하게도 그 이상의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정말 아쉽다는 말인듯 남자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정말 전력을 다해 저와 싸우셨다면 동등한 싸움이 되었을텐데요. 왜 싸우지 않은건지 저는 잘 모


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같은건 없으십니까?"


끝까지 정중하게 물으며 숏소드를 옆으로 휘둘러 피를 뿌리는 그의 얼굴은 여전히 표정변화가 거의 없었고, 억양도 마찬가지


였다.


"글쎄."


소은의 그 말을 듣고 뭔가 말이 이어지리라 생각한 모양인지 남자는 잠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는것을 알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금방 끝날겁니다."


다시금 그의 숏소드가 흰 빛을 띄었다. 그 겨울의 눈처럼 흰 백색을 보며 소은은 문득 세하가 어디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잘 가


고 있겠지.


그리고 그녀는 가슴 깊이 무언가가 체념하듯 고개 숙이는것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 자신이 그


소년에게 어떤 이유로 그렇게 도움을 주었는지, 마을에 와 그에게 쓰러졌을때


느꼈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에게 먼저 가라고 말할때 느꼈던 이상한 감정들은 사실 이미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었


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건 절대로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었다.


그 소년에게는 빛이 있었다. 자신의 그림자가 얼마나 막강한지, 자신의 나약함이 얼마나 막대한지 알면서도 그는 그 자신을 위


함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 걸었다.


지금쯤 그는 SS급 차원종이 있는 장소로 걸어가고 있을 터였다. 그래, 그녀의 임무는 이곳에서 끝이었다. 그녀 자신이 소년을


위해 돕는것도 여기까지였다.


죽음은 두렵지 않았다.


고통조차 너무 많이 느껴본지라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큰언니가 죽을 때 얼마나 자신의 힘 없음을 한탄했었던가.


소년이 자신과 같은 길을, 자신에게 자조하며 소중한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씁쓸함을 느끼며 파멸의 길로 걸어가려 한다는 사


실에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픈 충동으로부터 시작된 감정은 이렇게 그녀의 목숨조차 앗아갈정도로 크게 번졌었던


가 하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던-그것이 아무리 자신의 언니를 유린하고 처참하게 눈앞에서 죽여버린 인간들이라고 하더라도-것은


결국 이러한 결과를 맞을 원인의 시작인지도 몰랐다. 사람을 죽인다는것은 결국 자신조차 그렇게 될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


다는건 아닐까.


소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얗게 뿜어 올라가는 입김이 그녀의 시야를 부옇게 만들었다.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다 사라지는것


이 그녀의 마지막 숨이 될 터였다.




"편히 쉬세요."


그리고, 남자는 검을 치켜 들었다.




그렇게, 소은은 점점 멀어져가는 의식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닥 쳐."


으르렁대는 말투가 귀에 익다는것을 알고 소은은 소스라치게 놀라 눈을 떴다. 몸을 마비시킬정도로 극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먼저 경악이 찾아왔다.


푸른 너울이 물결치며 그녀를 감싸안듯 퍼졌다. 어두운 실내에서 밝게 빛나는 푸른빛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대로 복도를 지나


쳐 벽에 강력하게 부딛힌것이 남자가 누군가에 의해 힘으로 밀려 나가 벽에 처박힌것이라는것을 깨닫고 그녀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과 입을 움직이려 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벌써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영은 벌써 폭사하듯 뿜어져 나오는 푸른 위상력에 일


렁거리는 건블레이드를 한번 옆으로 뿌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푸른 빛무리가 강하게 요동쳤다. 그의 손 안에서 건블레이드의 탄피가 배출되고, 장전 레버가 다시금 제자리를 되 찾았다.



순간 앞으로 뛰쳐 나가며 다시 한번 건블레이드를 격발. 산탄총의 그것과 같이 사방으로 격출되는 탄환이 공간을 찢어놓고 남


자에게 쇄도했다.


남자가 그것을 위상력을 급히 전개해 옆으로 피하자 마자 쉴 틈을 주지 않고 검은 인영은 그에게 빠르게 날아갔다. 건블레이드


를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사선으로 베었으나, 남자가 자신의 숏소드로 막고 그대로 라이플을 그에게 겨누자 그것을 건블레이드를 잡고 있지 않은 왼팔


로 쳐내고 발을 걸어 남자의 균형을 잃게 한다음 거칠게 그를 몰아 붙였다.


"...이세하!"


당혹감인지, 아니면 애타는 부름인지도 모를 정도로 미약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렸다. 그렇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공중에 몸을 띄운채 앞으로 날아가 남자가 연이어 쏘아대는 탄환을 회피. 그대로 품에 파고들어 건블레이드


를 휘두르자 남자는 급히 몸을 뒤틀어  피했지만, 그의 왼쪽 어깨죽지부분에


건블레이드가 훑고 지나가며 큰 상처를 입혔다. 건블레이드에 묻은 피를 털어낼 새도 없이 바로 방아쇠를 당겨 격발. 정확하게


노린 발사는 남자의 라이플을 부숴놓았다.


직후, 탄환이 다 되었다며 배출되는 빈 산탄 쉘(Shell)이 둔탁한 소음을 내며 떨어졌다.


그대로 탄창을 교체하지도 않고 허리에 수납되어 있던 피스톨을 꺼내어 몸을 굴려 공격을 회피하는 남자에게 풀 오토 사격.


그렇지만 남자도 만만하게 당하지는 않았다. 그대로 벽을 박차며 좁은 복도에서 공격을 회피한 다음 부서진 라이플을 던지고


손을 벨트로 가져가 빠르게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이 투검에 쓰이는 작은 나이프라는것을 깨닫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그의 건블레이드는 그것을 튕겨내었다. 그렇지만 남자


가 노린것은 건블레이드로 막으며 그의 시야가 가려진 '틈'이었다.


흰색 빛무리가 포효하며 그대로 세하에게 쇄도했다.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다른 숏소드 한자루가 더 들려 있었다.


"하압!"


짧게 끊는 기합소리와 함께 남자의 흰색으로 빛나는 칼이 세하를 내리 찍었다. 세하는 권총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라는것을 깨닫고 탄창 교체를 포기 한 후 ,권총을 버리고 닥 쳐들어오는 남자의 검을 막았다. 하지만 그의 허리쪽으로 날


아들어오는 다른 하나의 검을 미처 대응하지 못한 대가로 엄청난 고통과 함께, 흰 빛무리를 남기며 남자의 검은 꽤 큰 상처를


남겼다. 머릿속을 타고 흐르는 세포 하나하나가 아프다고 고함지르는 감각이 그의 뇌를 지배했다.


"큭...!"


잠깐 남자와 떨어져 대치상태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소은은 세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옆구리에는 신경조


차 쓰지 않고 건블레이드를 비스듬히 눕힌 채 적을 겨누는 그의 등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게 작전이었습니까? 대단하군요. 예상치도 못했습니다. 분명 제가 느끼기로는 벌써 저 먼곳을 움직이고 있었는데요."


남자는 살짝 웃었다. 소은에게 입은 상처와 세하에게 입은 상처가 만만치 않게 고통스러울 것임에도 여유가 있어보였다.


소은은 작전이라는 그의 말에 아픈데도 불구하고 살짝 실소를 머금었다. 그건 작전같은게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에서야 깨달


았다. 그가 정말 가란다고 갈 인물이었던가.


하면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하면 자신이 고통받을걸 알면서도 그는 지키려 했다.


그래, 그는 지금까지 그렇게 행동했고, 지금 이것 역시 그는 그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림자에 가린 어두운 상황이라도 그는 이를 악물고 결단코 지켜낼 것은 끝까지 지켜냈다. 검은 양팀을 구하기 위해 가


라는 말은 소은 자신이 한 조언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말로 그곳으로 떠났을때에는 내심 놀랐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그런 용


기있는 행동은 어쩌면 그녀가 10년전에 했어야 할, 미련같은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큰언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그렇게 했어야 했지만, 나가면 자신 역시 같이 고통받고 죽을것이라는 공포에


질려 꼼짝하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저 소년은 달랐다. 지금 이 순간도, 그는 이 자리에 당연하다는듯 그녀의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다음 순간 남자가 말했다. 차가운 공기에 그의 숨결이 닿아 하얗게 변했다. 그때, 세하가 남자의 얼굴이 살짝 미소를 띈다고 생


각했을 때는 이미 남자가 땅을 박찬채 그에게 쇄도하는 중이었다.


"저로써는 수고를 덜은 셈이군요."


갑자기 빨라지는 남자의 검에 세하는 깜짝 놀라 검을 비틀어 그것을 막았다. 하지만 쳐내어도 다시 금방 자석처럼 그의 건블레


이드를 견제하는 검은 두 자루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빈틈을 귀신같이 파고 들어와 그의 숨통을 노렸다. 연이어 불꽃이 사방에서 터져나가며 끊임없는 공방이 이루어


졌다. 흰 빛은 양쪽으로 현란하게 움직였지만,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푸른 빛무리에 번번히 막혀버렸다. 푸른 너울 역시 여러번 치명적인 공격을 노렸지만, 그때마다 흰 빛이 뻗어나가


그것을 저지했다.


막 옆을 파고 들어오는 검을 쳐낸 세하는


다음 순간 반대쪽 어깨로 쇄도하는 검을 그는 몸을 숙여 피해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마치 저글링을 하듯 남자가 숏소드 하나


를 위로 던짐과 동시에 벨트에서 단도를 꺼내 그에게


투척하는것을 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대로 오른쪽 가슴에 맞고 말았다.


"커흑...!"


고통에 찬 신음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는 틈을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그대로 쇄도하는 남자의 기세에 놀라 세하는 다시 한번


건블레이드를 치켜 들었지만, 순간 욱신거리는 오른쪽 가슴때문에 반응이 다시 한번 늦고야 말았고, 그 댓가는 참혹했다.


"컥..."


그대로 달려와 어깨로 세하를 밀친 남자는 그의 발을 밟으며 동시에 어깨를 다시 부딛쳤다. 충격이 뒤로 빠지지 못한 채 고스


란히 그에게 전달되자 내장이 흔들릴정도로 강렬한 타격이 그에게 고스란히 들어갔다.


시야가 심하게 흔들리며 그는 소은이 있는 벽쪽으로 나가 떨어졌다.


"이세하!"


옆에서 부르는 목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대로 그는 일어 서야만 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일어 서자


바로 앞으로 돌격해 오는 남자가 보였다.


그렇지만 그 남자의 목표는 의식이 맑지 못한 그가 봐도 그쪽이 아니었다. 남자의 목표는...


다음 순간, 그의 몸에 파고는 날붙이는 정확하게 왼쪽 어깨를 찔렀다. 불로 지지는것 같은 통증과 함께 피가 강처럼 흘러 내렸


다. 온몸이 피로 물들여진것 마냥 미끄러웠다.


남자는 소은에게 달려들었고, 반응이 늦어 정확한 무기의 위치를 모르는 채로는 그 공격을 막아낼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남자


의 진로에 온 힘을 다해서 끼어 들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세하는 그대로 건블레이드의 자루 쪽으로 강하게 남자를 향해 휘


둘렀고, 남자의 왼 팔에 정확하게 맞은 그 공격은 남자의 팔을 부러뜨렸는지 끔찍한 소리와 함께


남자의 팔이 기괴한 각도로 뒤틀렸다. 하지만 남자는 건블레이드가 가격한 방향의 반대쪽 그대로 반바퀴 회전해 그를 발차기


로 걷어 찼다.


그의 부츠 뒤축이 세하의 오른쪽 가슴에 박힌 단검을 걷어 차며 상처를 더 벌려 놓았다. 세하는 고통에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자


기 자신을 호되게 채찍질했다.


지금 정신을 잃으면


그 뿐만이 아니라


뒤의 소은까지 위험하다.


그렇지만, 그런 그의 다짐이 무색하게, 하얀 호를 그리며 남자의 숏소드가 그의 상처입은 허리쪽을 다시 한번 베고 지나갔다.


옅었지만, 베였던 곳을 한번 더 베이니 더욱 고통스러웠다.


건블레이드의 탄창은 이미 소진되었지만, 탄창을 교체할 틈도 없이 몰아 붙이는 남자때문에 교체는 불가능했다.


상황은 점점 그의 열세로 기울고 있었다.









한검은 계속해 쉼없이 건블레이드를 휘둘러 자신의 공격을 쳐내는 소년을 보고 내심 놀랐다. 위상력의 질도, 위상력의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의 수준이라면 상당히 준수한 클로저일 것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자신은 전혀 소년에게 질 걱정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무르군.'


여러번 이미 소년은 치명타를 넣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차도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아는것 처럼 보였


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그가 소년과 검을 맞부딛혔을때, 그는 완강히 버티는 힘을 느꼈지만, 살의를 느끼지는 않았다. 분명 그


의 기술은 뛰어났지만, 한검 자신보다 뛰어난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소년 자신의 위상력이 바닥나기 전에 한검을 제압해야지만 그의 승리로 끝날 것이었다.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목숨이 위험한 심장이나 목등은 계속 해서 피한 채 다른 곳에 피해를 입히려 하는 소년을 보고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저 소년은 사람을 죽일 마음은 없는 온실 속에서 자란 클로저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조금만 잘못하면 마을 전체의 사람들이 위험했다. 이곳,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그는 생존을 위한


살육에 익숙해 져야만 했다. 그의 성장은 피묻은 검과 함께였고, 죽음을 수없이 많은 차원종들에게 겪어 보았다.


방금 전까지 싸우던 여자는 전혀 막힘없이 숨통을 끊기 위한 날카로운 공격을 해 왔었 다. 하지만 이대로 간다면 결국 이번 사


냥 역시 그의 승리일 것이었다.


다음 순간. 남자는 소년이 휘두른 건블레이드가 크게 호를 그린다는 사실을 알고, 몸을 비틈과 함께 그는 그대로 다른 한쪽의


숏소드를 치켜 들었다.


그의 승리였다.






눈 앞에서 올라간 검이 자신을 노리는것을 알면서도 세하는 도저히 자신의 건블레이드로 방어할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아까 전부터 계속 된 공격을 감행했지만, 자잘한 상처만 남길 뿐, 전혀 치명상을 입히지 못함을 알고 있었다.


그의 동료인 소은을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놈이다. 죽여야 한다. 제압할 만한 실력은 아니다. 어서 해라.


사람을 죽인다는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꾸만 어긋나는 자신의 검의 궤적에 저항하지를 못


했다.


과연 옳은 것일까?


과연 괜찮은 것일까.


이 남자 역시 마을을 지키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 남자 역시 가족이 있고 사랑하는 이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이


결심한 것들이 눈앞에서 공격을 받아 치는 남자의 숨통을 끊어 놓으라고 명령하면서도 그의 마지막 양심이 그의 손을 멈추었


다.


이러면 안된다는것을 알면서도, 계속 해서 그는 결정적인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이미 늦었음을 남


자의 검이 도저히 방어하지 못할 위치에서 날아오는것을 보고 깨달았다.


후회를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소은을, 유리를, 슬비를, 검은 양을, 팀 페가수스를, 그리고 엄마가 그의 머릿속을 맴돌


았다.


단편적인 기억들이라도 불구하고 그들의 웃는 얼굴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하얗게 환호하는 검광이 그의 눈 앞에 쇄도하기 직전,


격전을 벌이던 둘 중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 한번 더 일어났다.



세하의 의 시야가 갑자기 흔들리며 그의 앞으로  형체 하나가 초록빛 빛무리를 흩뿌리며 그대로 그 검을 걷어 내버렸다.


늘 쓰고 있던 후드는 거의 넝마조각이 되어있었고, 몸에서 피가 자신보다도 더 많이 흘러 내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의 앞에 화살 하나를 움켜쥐고 서있었다. 고통에 절어있는것 처럼 비틀거렸지만, 소은은 후드가 벗겨진것도 아랑곳하지 않


고 그대로 남자의 다음 공격을 받아내었다.


"소은누나!"


뒷모습.


뒷모습 따위는 싫은거다. 어머니의 그늘에 보호받았고, 숨었으며 결국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약함


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던가.


그리고, 그는 믿을수 없을정도로 갑작스레 가슴속 깊은곳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거무튀튀한 짐승이 울부짖고 있다는 사


실을 깨달았다.


그래, 그거였다. 타인에게 멸시 받고 고통스러워 하는 일을 두려워한게 아니었다. 타인에게 존중받지 않는 일이 두려웠던것도,


숭배받고 싶은 야망이 있던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는 알파퀸의 아들이 아니라 그 자신이고싶다는 나약한 심정으로 게임속으로 도피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토록 비참한 결과를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것을 그는-


그래, 알고 있었다.




그대로 세하의 앞을 막은 소은에게 거칠게 공격해 나가던 한검은 순간 자신의 몸이 붕 떠서 날아간다는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것이 분명 치명타를 입었을 소년의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것을 깨달았을때에는 어쩌지도 못한 채 그대로 벽에 부딛힌 후였다.


어찌나 강했던지 시멘트가 금이 가고, 부옇게 쌓인 먼지가 눈처럼 휘날렸다.


그대로 벽을 뚫어버리지 않은것이 이상할 정도로 강한 충격에 이어서 눈앞으로 날아오는 건블레이드를 막기 위해 눈보다 먼저


빠르게 반응한 손이 양 검을 교차시켜 방어 자세를 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푸른 색 위상력을 마치 울부짖듯 뿜어내는 건블레이드는 아무도 앞길을 막지 못한다고 선언하듯 그대로 그의 검 한자


루를 박살내고, 다른 한쪽의 검을 그대로 빗겨 쳐 날렸다.


그리고 두번째로 휘몰아 친 검이 그의 팔 한쪽을 반정도 잘라내버린것을 느끼자, 그제서야 세하는 검을 멈추었다.


고통에 낮게 신음하는 남자는 넘어진 채 그의 발 밑에 깔려 있었다. 잠깐 세하는 고민하더니 이를 악물고 혁대에서 서바이벌


나이프를 꺼내어 남자의 다리에 쑤셔 박았다.


"크허억!"


강렬한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를 뒤로 하고 세하는 그대로 혁대에 든 회복 앰플을 꺼내고 남자의 코트 안쪽을 뒤 져 회복


앰플을 찾아 자신의 혁대에 찼다. 상처를 회복해서 그들을 다시 공격할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화살조차 놓지고 쓰러진 소은에게 달려갔다.


급히 무릎이 까지는것도 모른채 바닥에 꿇어 앉아 그는 앰플을 그녀의 입에 조금씩 붓고, 어느새 다 사라진 앰플 통을 집어 던


지고 다른것 하나를 꺼내어 그녀의 상처 부위에 부었다.


그녀는 정신을 잃은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맥을 짚어보니 조그맣게 맥동이 느껴졌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내장이 흘러 나올정


도로 심한 상처였는데다 출혈도 심했고, 그를 지키기 위해 위상력을 강제로 발현해 끼어들었으니, 기절한것은 당연한 일인지


도 몰랐다.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그에게 도움을 주고,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면서까지 그를 도운 그녀에게 그 이상으로 어떠한 말을 해야 할지, 그 자신조차도


확신하지 못했다. 잠시동안 기도하듯 그녀의 핏기 없는 얼굴 옆에 꿇어 앉아 있는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는 자리에서 건블레이드를 잡고 일어나 고개를 돌려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뭔가 말하려는듯 입을 열었지만, 그것보다 세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신이 우리를 쫓았다는건 우리가 SS급 차원종을 사살하겠다는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은것 같은데, 지금 담보로 남겨둔 내 동


료들은 어떻게 된거죠?"


"글쎄요...큭...명령을 받았을때는 보류라는것을...크윽...보아 죽이거나 쫓아내지는 않을겁니다. 커헉...둘다 위상력자니까, 어


쩌면 지금쯤 감금당해있을지도 모르...큭..."


남자는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나이프가 박힌것은 그만큼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세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녀들을 구해


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지만, 어차피 그녀들을 구한다고 해봤자 같이 SS급 차원종에게 죽으러 갈 뿐이었다. 그래, 그럼 안되었


다. 그녀들은 죽으면 안된다.


이미 그를 따라온 시점부터 어떤 각오를 하고 있는지는 뻔했지만, 그로써는 용납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의 '업보'였다.


결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난 당신을 살려두겠어요. 돌아가서, 내가 SS급 차원종을 이곳에서 없애겠다고 전해요. 그러면 그쪽에게도 SS급 차원종이라


는 재앙이 사라지니 좋을거고, 그렇게 될 경우두명은 풀어 달라고 하세요. 절대 이곳의 비밀을 말하지 않을 애들입니다. 그리


고, 만약 풀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이 숲에는 동료들이 있습니다. 모두 다 대한민국 직속 관할 정예 팀으로써, 결국


그녀들을 구하라는 명령 때문에 수색 중 마을을 발견할게 뻔하지요. 그러면 탈환하기 위해 마을 사람 여러분을 모두 전멸시켜


야 할지도 모릅니다.그러기 전에 풀어주는게 좋을거에요. SS급 차원종만 내가 없애면 그 정예팀들도 돌아가니까. 돌아가서 내


말을 전하세요."


SS급 차원종이라는 말에 남자는 잠깐 움찔거렸지만, 이내 조용히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들었다. 세하의 말은


경어였지만, 명백한 명령조였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막 세하가 건블레이드를 챙기고 자신의 팽개쳐뒀던 배낭과


소은의 석궁등을 챙겨 메고, 소은을 조심스럽게 안아들때, 그의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해서 말입니다만...당신, 여기에서 독을 가진 차원종같은거에 당한겁니까?"


뜬금없는 그의 말에 세하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그 영문모를 말에 그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독을 가진 차원종이라는것


은 만나보 지도 못했다.


입은 상처라고는 어깨에 입은 그 검은 차원종에게 스친 상처들 뿐이었지만, 그것때문에 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앗다.


"아뇨."


"...그럼,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SS급 차원종과 결전을 결심하신거면 빨리 하시는게 좋을겁니다."


뜬금없는 남자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남자는 다리에 박힌 나이프를 이를 악물고 빼더니 잠깐 신음성을 내며 말했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위상력을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능력으로 당신들을 쫓았죠. 하지만 지금 당신은..."


남자는 잠깐 고통에 숨을 몰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독에 감염된것 처럼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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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과드려야 할 점이 있어 죄송합니다. 27화 작성을 어제 밤부터 한숨도 자 지 않고 했는데, 그게 이젠 한계를 고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모자라는 실력이 피로감때문에 더 심하게 망가지네요...하...


이제 27화(2)에서 다음 마지막 이야기로 뵙겠습니다.


읽으면서 즐거우셨다면 댓글로 지적이나 감상평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ㅠㅠ




또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자작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아래는 샘플 주소입니다. (진짜 브금 어떻게 넣는질 몰겠습니다....아시는분 계신지...ㅠ)


http://bgmstore.net/view/WbX18




아래는 Key님께서 보내주신 일러스트 중 하나입니다. 곧 통합본에 들어갈 일러스트들 많이 기대해주세요!




2024-10-24 22:40:0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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