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하늘을 날다
PoH 2014-12-31 0
그녀는 올려보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남보다 아래가 되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주목받아야만 했다.
우러름받아야 했다.
최고여야 했다.
지배해야 했다.
남들보다 뛰어난 지성도 있었다. 암암리에 다른 사람들의 리더가 될만한 리더쉽도, 은은한 카리스마도. 거기에 걸맞는 월등하게 빼어난 외모도 지녔다. 누구보다 우월한 집안도, 거기에 딸려있는 권력도 재화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 적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보 같은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는데. 어떤 녀석이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뭐야.
엄청나게 먼 거리를 푸른 불꽃을 뿜으면서 날아가는 거야. 잠시 멍하니 보고 있었다니까.
그게 너무 기억에 남아서, 그걸 할 수 있을 때까지 정말 별 짓거리를 다 해봤었어.
그걸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비로소 깨달았을 즈음엔 배알이 뒤틀리더라고?
언제나 멍청하게 게임기나 들여다 보고 있는 자식도, 아는 건 먹는거 밖에 없는 돼지같은 년도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는거야?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내가 뭐가 부족해?
내가 뭐가 부족하냐구?
내가 뭐가 부족하냔 말이야!
-
고치 속에서 나는 눈을 떴다.
여전히 단단히 뭉친 고치는 나를 풀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이 고치는 나를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걸.
애쉬와 더스트. 재와 가루라는 멍청한 이름을 가졌던 녀석들이 나에게 준 유일하고도 가장 위대한 선물.
"아냐... 그건 선물이 아니야..."
땅에 묶여 반 쯤 쪼그라든 고치 속에서. 쥐어짜내는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몇시간 전, 멍청하게 나에게 덤비던 녀석 중 하나다.
나에게 주사 같은 걸 쏘던데, 하여튼간에, 이상한 것만 잔뜩 생각해낸다니까.
그런 바보들에게 왜 도대체 그런 힘이 갔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뭐, 이제는 이해할 필요도 없지만. 이 고치가 나를 나비로 만들어 주는 날. 그 바보들을 전부 찢어죽일 수 있을 테니까.
파직!
좀 더 쪼그라드는 소리와 함께. 고치 속에서 간간히 들려오던 맥동이 끊겼다.
또 하나 죽였다.
"킥..."
작게 비틀어진 입에서 유쾌한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당연하잖아. 어찌 유쾌하지 않으리.
또 하나를 양분으로 삼아 내가 진화하는 것인데 말야.
그러나 겨우 아저씨들로는 감질난다. 아무리 희안한 무기를 써댄다고 해도 이들은 그저 그런 쓰레기들일 뿐.
좀 더 먹음직한게 필요하다.
마침, 공원의 반대편에서 멋진 기운이 느껴졌다. 숫자는... 셋.
"그래... 오는구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이번에는 반드시 먹어치울 거야.
찢어버리고 먹어치운 뒤에. 재앙의 새와 같이 훨훨 날아서 너희를 멸망시켜 줄게.
"거기까지야!"
드디어 다가왔나. 나는 한참 전부터 느끼고 있엇는데.
나는 느긋하게 동체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역시 익숙한 얼굴이다... 그리고 언제나 부숴버리고 싶은 얼굴이기도 했다.
"이제 멈춰, 하나야! 더 이상 계속하면 너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돼!"
얼굴에 자연히 미소가 번진다. 내가 원하는 것인데 왜 자꾸 방해하려 드는 걸까?
"이세하. 너 말이지... 지금 날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넌 인간이니까."
너무 뻔한 일반론을 설파하는구나. 바보다워.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너는 왜 그런 최상의 결과를 낳는 일을 그만두라고 하는 거야?"
"최상의 결과라고? 네가 차원종이 되어서 사람들을 학살하고, 도시를 파괴하는 범죄자가 되는 게?"
"이것 봐. 이세하. 차원종에게 인간의 법률이 통용될거라 생각하니? 정말 바보라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이세하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아. 보기 좋다 그런 표정.
"너는 아직 인간이야! 차원종이 아니라고!"
"대답이 궁하구나?"
국어는 잘 하기에 말은 잘 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아. 아. 이런 유치한 말장난 시시해. 시시하니까.
죽여버릴래.
차라라락 소리를 내며 나의 동체가 움직인다.
내 전의를 읽었는지 이세하가 뭔가를 말하려다 말고 무기를 들어올린다.
그것에 맞춰 내 몸이 날아 이세하를 꿰뜷을 기세로 팔을 휘두른다.
팔이 휘둘러진 곳에 이미 이세하는 잔상만 남기고 없어진 상태였지만 개의치 않고 팔을 빙글빙글 휘둘렀다.
"큿..!"
예상대로. 등 뒤에서 쥐**처럼 날 노려보려다 팔에 맞고 혼자 나가떨어져 버린다.
재바르게 동체를 돌려 땅에 쓰러진 이세하를 향해 실을 토해낸다.
위기를 눈치챘는지 이세하는 몸을 겨우 굴러 실을 피해냈지만 크게 빈틈을 드러냈다.
동체가 날아 간단하게 이세하의 위에 서고. 팔을 휘둘러 이세하를 벤다.
이세하가 피할 수 없음을 알고, 눈을 절망으로 물들인 채 의미없는 방어자세를 취한다.
"악!"
내 동체에 강렬한 통각이 느껴진다. 등 뒤에서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또 익숙한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피해!"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한 이세하가 내 시야에서 빠르게 벗어나 사라진다.
안돼! 내 먹잇감!
"자아아아!! 간다아아!! 유리님 스페셔어어어얼!"
등 뒤에서 다시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진다. 칼로 베이는 감각이 온 고치를 뒤덮는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아아아아아!
"우자아앗!"
경쾌한 기합과 함께 베어진 내 육체는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쳐박혀진다.
고통에 패닉이 된 내 몸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은데 제대로 도망칠수가 없다.
한참을 쳐박혀 있다가. 겨우 다시 정신이 들었다.
미워. 날 이렇게 아프게 한 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릴거야. 전부 죽여버린다!
동체를 돌려 나를 땅바닥에 쳐박아놓고 화기애애하게 서로를 꾸중하던 셋에게 실을 토한다.
실은 전부 맞지 않는다. 도리어 둘이 나를 향해 달려들어 온다.
가까이 오지 마!
팔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그들을 위협할 기세로 앞으로 전진해 날았다. 그러나 또 둘은 피해버린다.
정말... 피할 줄만 아는 놈들!
거기 서.. 거기 서!
거기.....
나는 땅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잠시 생각을 멈추고 하늘을 본다.
... 버스가 떨어진다....?!
쾅 소리를 내며 내 몸을 또 끔찍한 고통이 덮친다.
그마아아아안!
버스에 밀려나가며 또 쳐박혀진 나를 앞뒤로 둘이 포위해선. 나를 베어낸다.
"아파아아아아아아 그만둬어 그만둬 그만둬 그만 그만 그만 그만둬 그만! 그마아아아아아안!!"
"이게 너를 돌려놓는 방법이야!"
누구의 말일지도 모르는 말이 들려온다. 미칠 거 같다. 아프다. 아파. 아프다고...
너희들은 지금 태어나려는 아이를 때리고 있는 거란 말이다!
나-아이-를 가만히 놔두라고!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내 분노가 하늘로 쏘아진다. 하늘에서 나의 분노가 그들에게 쏟아져내린다.
그건 불꽃이었다. 보랏빛 불꽃.
내가 어떻게 해도 만들어 낼 수 없었던 불꽃.
그 불꽃을 피하기 위해 그들은 또 쥐**처럼 움직인다. 그러나 어림도 없다, 모조리 죽여버릴 테다.
내 분노를 실어 보랏빛 불꽃을 떨어뜨린다. 또 떨어뜨린다.
계속 떨어뜨린다.
내게 이렇게 수모를 맛보여? 너희가 잘못한 거야!
내가 다시 날아오른다.
고치가 조금씩 금이 간다.
실금이었던 것들이 내가 분노를 발산하면서 계속해서 뜯겨진다.
머지 않았다. 정말로..
내가 나비가 되는 날이 멀지 않았어.
너희를 먹지 않아도 될 거 같아. 대신 나의 첫 제물들이 되어주면 완벽할 것 같네.
내 얼굴에 미소가 다시 번진다.
높이 날아오른다. 날아오를수록 몸이 뜨거워져서 빨리 이 고치를 벗어버리고 싶다.
더 높이 날아오른다. 고치가 벗겨지는 느낌이 든다.
좀 더 높이 날아오른다. 좀 더. 좀 더. 좀 더.
분노가 빠지고. 황홀한 감각이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아.
이 좋은 걸 저 애들은 왜 방해하려고 했을까?
"왜냐면, 너는 인간이기 때문이야."
한없이 높게 날고 있어야 할 내 시야 앞에 이세하가 나타났다.
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머리가 새하얘졌다.
강렬한 폭발이 다시 나를 땅에 내동댕이 쳤을 때. 나는 내가 그렇게 높게 날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상이었다고? 전부?
아냐. 고치의 금은.. 이 고치는 날 해방하려 하고 있어.
방금의 것이 환상이었더라도 또 날 수 있다고! 날 거야. 날 거라고!
내 몸을 빙 둘러서 붉은 마법진같은 오성이 땅에 새겨진다.
"결전기! 유리 스타아아아아!"
이번엔 진짜 붉은 불꽃이 내 몸을 감싼다.
내 고치를 전부 태워버린다.
이미 머릿속은 깔끔하게 새하얘졌다. 생각하기엔 너무 아프다.
터지는 폭발에 또 내 고치는 부숴져 가고. 점차 몸이 허물어진다.
**가 아니라 붕괴였다. 내 몸이, 내 힘이 없어져 가고 있었다.
"그만... 그만... 그만둬... 그만........"
그런 말을 흘리고 있을 즈음에.
나는 완전히 인간의 몸으로 돌아와 땅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
"괜히 구해줬을까?"
유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는 동의 할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신서울을 위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었지만 저 유하나라는 소녀 개인에게 있어 그건 크나큰 불행이었을 것이다.
클로저라는 특수한 존재들을 부정하고 시기했던 소녀에게 클로저를 뛰어넘을 수 있었던 기회를 부숴버렸다.
"동정하지 말아. 그건 당연한 일이었어. 저 아이가 잘못된 거야."
옆에서 슬비가 말했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채 얼마 날지도 못하면서 몸을 버둥거리며 기괴한 팔들을 날개처럼 퍼덕이던 모습을 보면 말이지.
정말로 날고 싶었던 것 같아서. 그녀석.
"하는 말들이 죄다 20세기의 우생학자 같았던 만큼.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것과 비슷할 정도로 험한 꼴을 당했으니, 우리가 그걸 미리 해 줬다고 쳐 두도록 해. 여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쟤의 몫이겠지만."
슬비가 그렇게 말하며 먼저 앞서나간다. 그 뒤를 유리가 "우생학이 뭐야? 소랑 관련된 거야?" 라고 물으며 힘차게 뒤따라간다.
그렇겠지만, 나도 어릴 때는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던 적이 있어서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도 밤의 대공원을 천천히 빠져나간다.
나방 한마리가. 매달린 전등 근처를 파닥이고 있었다.
-
이젠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