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14-

이케아라 2015-07-09 5

미국에서 자동차를 잃는 다는 건 망망대해 안에서 배를 잃는 것과 비슷하다.

드넓은 국토를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개발되지 않은 지역이 워낙 많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이동수단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대로 움직임을 봉쇄당하고, 미개발 지역인 만큼 위상력 억제기가 설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원종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 직면한 유니온의 클로저들은 부서진 항공기를 망연히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후우... Mr.제이. 귀환수단이 없어진데다가 차원종들의 매복으로 적들이 우리들의 동향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대로 작전을 감행해봤자 피해가 커질 확률이 농후하기 때문에 저희는 일단 유니온측에 구조를 요청해볼 생각입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유니온의 푸른색 정식 요원복을 입은 A급 클로저가 그렇게 질문을 던져왔다.

A급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일일이 물어오는 자세에 제이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의 말을 부정하며 대답했다.

 

"유니온에 구조를 요청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군."

 

"어째서죠?"

 

"테러리스트들이 차원종을 미리 소환해서 우리를 공격했다는 건 우리가 쳐들어올 시간을 전부 알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여기서 구조를 요청해봤자 희생자만 더 늘어날 뿐이야."


"하지만... 그대로 작전을 수행하는 게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적들이 우리들의 계획을 알고 있다면 저희들의 퇴로를 막기보단 작전에 방해가 되는 함정을 더 깔아 놓았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우리들을 습격한 차원종은 수천단위가 넘는 대군이었어. 그렇다면 녀석들은 이번 공격으로 우리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우리들의 피해는 극히 미미해. 이건 놈들도 상정하지 못했을 거야. 그렇다면 괜히 유니온에 지원을 요청해서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 보다 적의 전력이 격감한 지금 작전을 수행하는 게 나을걸."

 

아무리 칼바크의 가방이 차원종을 소환할 수 있게 만드는 물건이라고 해도 위상력 억제기가 빽빽하게 설치되 있는 미국에선 그 효력이 크게 반감된다. 그렇다면 테러조직은 이번에 항공기를 습격한 차원종을 소환하기 위해서 대량의 가방을 소모했을 테고, 그만큼 적의 전력이 크게 줄었을지도 모른다. 제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나본지 A급 클로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사실 제이는 테러조직과 유니온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유니온에 지원을 요청했다가 오히려 공격을 받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다른 위상능력자들을 설득한 것이지만 그걸 알리가 없는 다른 클로저들이 제이의 말에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유니온에 지원을 요청하는 건 보류하도록 하겠습니다. 테러조직의 소굴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 사이킥무브로 이동한다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겠군요. 문제는 그에 대한 위상력 소모인데..."

 

위상능력자는 훈련생시절부터 '사이킥무브'라는 이동스킬을 마스터해**다.

신체를 위상력으로 강화시켜 이동속도를 빠르게 만들거나, 위상력을 염력처럼 이용해서 비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 스킬은 빠른 시간 안에 전투에 합류하거나 이탈할 때 주로 쓰이는 기술이지만이**리가 길수록 그에 대한 위상력 소모도 많아지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으론 사용하지 않는 기술이다. 아무리 목적지에 거의 다 도착했다곤 하지만 수Km에 달하는 거리를 위상력에만 의존해서 이동했다간 차원종과의 전투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전황에 대해 고민을 나누고 있었을 때, 검은 양 팀의 유리와 테인이가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아저씨들~! 여기 군수용품 같은 게 되게 많이 있어요!"

 

"...!"

 

뜻밖의 희소식에 제이를 비롯한 지휘관급 클로저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요원들 중에서 부상이 가벼운 사람들이 주변에 차원종이 남아있는지, 부서진 기체 안에 쓸 만한 물건이 남아있는지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는데, 비행기는 차원종들의 공격을 받은 탓에 너덜너덜한 상태였지만, 내부는 큰 피해를 면했나본지 그럭저럭 괜찮은 내구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그중에서도 가장 튼튼하게 설계된 창고는 안에 보관 돼있던 물품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유리와 테인이가 말한 군수품들을 확인한 A급 클로저들의 얼굴이 희망적으로 바뀜과 동시에, 제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다름이 아니라 유니온과 테러조직에 관해서 생각에 잠겨있었던 것이다.

 

'테러조직이 우리들을 습격한 시점에서 유니온과 그들의 연관성은 기정사실이 되 버렸군. 이제 두 조직이 협력관계였는지, 아니면 이중스파이가 있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만 확인하면...'

 

아무리 유니온이라도 이 정도나 되는 위상능력자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을 정도로 멍청하진 않을 것이다.

차원종과의 유일한 대항수단인 클로저들이 죽어버린다면 그 나라에 있어서 터무니없는 피해가 가해지기 때문이다.

자기 밥그릇만은 반드시 지켜내는 유니온이기 때문에 테러조직이 유니온에 스파이를 보냈다는 것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예리한 눈빛으로 깊은 생각에 빠진 제이는 자신들의 발치에 널려있는 낙하산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비행기에 이어서 낙하산이라니...'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고소공포증환자의 한숨이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에서 흩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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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하는 위상능력자가 된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정식으로 클로저가 되어 전선에 투입 된지는 1년도 채 안됐다.

미성년자에 불과한 세하가 전선에 투입된 것 만으로도 이상한 일인데 이 짧은 기간 동안 수천마리가 넘는 차원종을 도륙하고, S급 차원종을 2마리나 격퇴했으며, 전투 중 2번이나 의식을 잃었다. 차원종의 재앙인 서지수 못지않게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클로저 이세하는 몽롱해져있는 정신을 조금씩 일깨우며 천천히 의식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우욱...!"

 

타들어가듯 숨통을 조여 오는 고통 때문에 세하가 무심코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문득, 반사적으로 입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방해 받아 주위를 둘러봤다.

 

'이게 뭐야!'

 

세하는 자신의 양손을 보고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흑색으로 빛나는 금속이 자신의 손을 봉쇄하고 있었고, 몸은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부유감에 휩싸여있었다.

마치 십자가에 매달려 형벌을 받고 있는 기분이다.

 

"이제야 눈을 뜬것 같군."

 

침착하고 무거운 음색을 띈 목소리가 전방에서 들려왔다.

듣자마자 목소리의 주인을 파악한 세하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파란색과 검은색을 바탕으로 염색되어있는 깔끔한 정장과, 하얗게 변색된 머리카락, 얼굴곳곳에 남아있는 잔주름이 인상적인 중년의 클로저 제임스 로빈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앞으로 오고 있었다.

 

...으득

 

세하가 입을 꾹 닫은 채 이를 갈았다.

얼마나 세게 이를 물었는지 제임스의 귀에도 선명히 들렸을 정도였다.

무시무시한 분노를 쌓아가는 세하를 보고 제임스가 어깨를 으쓱이며 그를 타일렀다.

 

"너무 그렇게 노려보진 말아주게. 나이를 먹다보면 그런 적의가 담긴 시선에 예민해지거든. 나도 모르게 활 시위를 잡아당길 정도로 말이야. 그러니 섣부른 짓은 삼가 해줬으면 좋겠군."

 

"......아저씬 참 대단한 사람이시네요."

 

이제는 질릴 대로 질린 표정을 지으며 세하가 빈정거리듯이 대답했다.

검은 양 팀을 미국으로 호출해서 방위임무를 떠넘긴 것과, 테러조직을 소탕하는데 협력하라고 한 것. 여기까진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려 먹는 건 불변의 진리나 다름없으니까. 하지만 자기를 붙잡아 십자가형에 처하게 한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지금 상황을 정리해가는 세하를 보고 제임스가 엷게 웃으며 말했다.

 

"한국인들은 특이한 방식으로 사람을 비꼬는 재주가 있었군. 칭찬해줘서 고맙네."

 

"......"

 

태연하게 자신의 말을 넘겨들은 제임스를 보고 세하가 지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세하는 착잡한 표정으로 제임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제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 난 그렇게 박정한 사람이 아닐세. 자기가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억울함이 덜할 테니 내 차근차근 말해주겠네."

 

이제 와서 생색을 내는 제임스를 보고 세하가 혀를 찼지만, 이내 포기하고 얌전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자기가 아무리 항의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얌전해진 세하를 보고 제임스가 입을 열었다.

 

"차원종이 어떤 식으로 소환되는지 알고 있나?"

 

"위상변곡률이 높아지면 그곳에 차원 문이 생성 되서 그 틈으로 차원종이 건너오는 식이었죠."

 

아무리 세하가 클로저 업무보다 게임을 중시한다고 해도 그 정도 상식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미묘한 표정으로 세하의 말을 수정했다.

 

"그렇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소환되는 차원종은 기껏해야 B급 정도의 하위 차원종밖에 없지. 그보다 더 급이 높은 차원종들은 특수한 방법을 쓰지 않으면 자연적으로 소환되지 않아. 예를 들면... 강남에 출현했던 A급 차원마수인 말렉은 위상력을 감소시키는 구속구를 착용해서 우리 차원으로 넘어왔고, 크리자리드 타입의 차원종은 B급에서 A급으로 **하는 방법으로 차원을 넘어왔지. 일개 A급 차원종의 출현방식이 이렇게 까다로울 정도인데, 그보다 훨씬 더 높은 S급 차원종은 어떻게 차원을 넘어오는지 알고 있나?"

 

세하는 강남에 출현한 두 마리의 S급 차원종을 떠올렸다.

아스타로트는 헤카톤케일이 방출한 위상력에 의해 데미플레인과 함께 소환됐고, 모든 일의 화근이라고 할 수 있는 헤카톤케일은 시체를 운반해서 갖다 붙힌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S급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강남에서의 경험으로 S급 차원종이 어떤 방식으로 소환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S급 차원종은 같은 S급 차원종이 우리차원에 있을 때만 차원을 넘나들 수 있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의외로 이해가 빠르군."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하는 제임스를 보고 세하가 표정을 불쾌하게 일그러뜨렸다.

하지만 간단하게 세하의 감정을 무시하고 제임스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차원전쟁시절엔 수많은 S급 차원종들이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유린했지. 자네의 어머니인 알파퀸을 포함한 수많은 클로저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준 덕분에 전쟁은 인간들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언제 다시 일어날지도 모를 차원종의 침공을 두려워한 유니온은 S급 차원종의 잔해를 수집해서 오랜 시간동안 연구를 계속 해왔지."

 

제임스는 자기 뒤에 진열 돼있는 S급 차원종의 잔해들을 가리켰다.

수 미터에 달하는 깃털, 비늘, 부리, , 껍질... 모두 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강대한 힘을 내뿜고 있는 생물의 잔해들이다.

 

"S급 차원종의 잔해로 무기를 개발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유니온은 그보다 더 대단한 사실을 알게 됐지. 이 물건에 자네가 품고 있는 차원종의 위상력을 주입시킨다면 S급 차원종을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무슨...!"

 

이번만큼은 세하도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차원종의 침공을 두려워해서 연구를 지속한 주제에 스스로 차원종을 불러들이다니... 멀쩡한 정신이 박혀있는 인간이라면 상상조차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아니 유니온은 왜 S급 차원종을 소환하려고 하는 거 에요? 강남에서 있었던 일을 모르시는 거 에요?!"

 

헤카톤케일과 아스타로트의 침공으로 인해 강남뿐만 아니라 신 서울 일대가 끔찍한 폐허로 변해버렸다.

주변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빠른 시간 안에 복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곤 해도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물며 세계최대의 도시인 뉴욕한가운데에서 S급 차원종이 소환되기라도 한다면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없는 막대한 피해가 전 세계를 강타할 것이 분명하다. 격정적으로 감정을 분출하는 세하를 보고 제임스가 담담하게 말했다.

 

"자네는 위상능력자의 지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전쟁이 끝난후, 우리들에게 도움만 받았던 민간인들은 구해준 은혜도 모르고 자기들 잇속만 챙기는데에만 열중했지. 누구도 우리의 고생을 알아주지 않았어. 그건 2세대 클로저인 자네도 마찬가지지. 자네는 위상능력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적이 없는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냉담한 목소리로 말하는 제임스를 보고 세하의 말문이 막혀버렸다.

제임스는 조용해진 세하를 보고 그를 설득하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180도 변해버린 그들을 보고 나를 비롯한 위상능력자들은 그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을 정도의 살의를 느끼며 살아왔네. 평소엔 돌맹이를 던져대며 우리를 괴물 취급하는 주제에 위험에 처하면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추잡스럽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웠는지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지금까지 계속 담담하고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이어갔던 제임스가 처음으로 분노의 감정을 터트렸다.

그의 눈엔 지금까지 역으로 차별을 받아온 위상능력자의 비애가 진하게 내재되어 있었다.

처절하게 자신의 과거를 알려주는 듯한 노년 클로저의 눈동자를 바라본 세하는 복잡한 감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 강남에 헤카톤케일을 소환시킨 신 서울의 전()지부장과 벌처스는 위상능력자의 권위를 회복하기위해 그런 일을 벌였다고 들었네. 물론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이유가 더 컸을 테지만 말이야."

 

조용해진 세하를 보고 제임스가 억지로 감정을 추스리며 말했다.

 

"유니온도 위상능력자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노력해왔네. 하지만 대책을 세울 때마다 민간인들은 전보다 더 심한 짓을 일삼을 뿐이었어. 그렇다면, S급 차원종을 뉴욕에 소환해서 위상능력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무지한 일반인들에게 똑똑히 각인시켜주고야 말겠네."

 

확고한 부동의 의지를 내세우며 말한 제임스를 보고 세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자신의 위상력이 흡수되고 있는 걸 몸으로만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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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족한 필력으로 봐선 못해도 20편이상의 내용이 나오겠네요 하하; 매번 소설을 쓸때마다 세린이랑, 테인이랑, 유리를

제외하게 되서 마음이 아픕니다. 스토리상 별다른 역할을 하는 애들이 아니라서... 그러고 보니 제 소설의 조회수가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드라고요. 분발하겠습니다;;

 

 

 

2024-10-24 22:36: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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