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아이

아우둠라 2015-07-04 2

 "더 발악해봐, 이세하. 슬슬 재밌어지려 하던 찰나에 그만두는 거야?"


 양복처럼 정식 복을 깨끗하게 빼입은 차원종이 내 목에 칼을 겨누었다. 반박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꽉 쥐어 떨리는 두 손만이 내 말을 대변하였다. 위아래로 날 훑어보던 차원종의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차원종은 내 목을 겨누던 차가운 칼을 거두었다. 그리고 양 무릎을 굽혀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꿈에서도 나올 것만 같은 붉은 눈이 날 똑바로 바라보았다.


 "솔직하게 말해봐, 이세하. 살고 싶지? 강해지고 싶지?"

 "..닥€쳐. 설령 살고 싶다고 해도 너 같은 놈과 손을 잡지는 않을 거야."

 "어째서지?"


 차원종의 말에 난 말문이 막혔다. 왜지? 엄마한테 혼날까 봐? 저들은 악이니까? 세상을 멸망시키기 때문에?


 난 왜 저들과 손을 잡지 않는 거지?


 잠시 고민하던 중, 나온 답은 하나였다. 교과서적이고 당연한 말이었지만, 딱히 다른 말이 생각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차원종의 말에 설득당하고 있는 날 부정하고 싶었다.


 "..너희들은 악이야. 너희같이 민중을 위협하고 안정된 세상을 파괴하려는 놈들과 같은 사람이 되긴 ㅅ..!"


 난데없는 차원종의 방해에 내 입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막혀버렸다. 반사적으로 두 손으로 차원종의 팔을 붙잡았다. 내 입을 막은 차원종의 오른손이 매우 차가웠다. 그 손의 느낌은 마치 내 의견에 모순이 많다는 기분을 들게 했다. 차원종의 붉은 눈이 수채화 물감을 뿌린 듯 더욱 붉게 보였다. 양쪽 입꼬리가 올라간 차원종이 날 비웃듯이 쳐다보았다.


 "이세하. 이것은 게임이 아니야. 세상에 있는 세력이 단순히 레드 팀, 블루 팀으로 나누어진게 아니라고."


 넌 아까도 그렇게 말했어. 하지만 그 말은 입속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못했다. 차원종의 팔을 잡은 내 두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차원종은 내 표정과 손을 보더니 기분을 읽기라도 한 듯 다시 빙그레 웃었다.


 "아까도 같은 말을 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그때 나는 죽고 있었지만 난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의 넌 뭐지? 이 손을 보니 알 수 있겠군. 넌 죽음의 고통이 어떤 건지 수 십 번도 더 느껴봤을 테지. 창자가 끊어지고, 안구가 튀어나오고, 너희가 흔히들 부르는 '차원종'들의 창살에 몸을 관통당하는 고통스러운 느낌. 심지어 기분마저 더럽겠지."


 맞다. 전부 사실이다. G 타워까지 올라오면서, 부활 캡슐을 많이 썼다. 차원종들과의 전쟁은 고달팠고, 학교보다 거리를 더 자주 뛰어다녀서 항상 몸이 피곤했다. 원치 않은 힘을 얻었다는 이유로 난 끝없이 굴려지고 또 굴려졌다. 근데 이렇게 힘들게 싸워온 나를, 사람들은 과연 기억할까? 엄마의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날 찾아줄까? 아니, 그러지는 않을 거야.

 내 생각이 처음보다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저들은 악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내 본분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나무가 뿌리째 뽑히듯이 내 생각은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래. 세상이 게임은 아니지만, 우리가 악이고 너희가 선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 거야. 하지만 잘 생각해봐. 너희의 소속은 유니온이지. 그 유니온이 너희에게 해준 것이 뭐지? 기껏 해봐야 미성년자들을 전쟁에 끌어들인 것밖에 더 있어? 한창 친구들과 놀아야 할 너희를 죽을지도 모르는 전쟁터에 보낸 것은 유니온 아니야?"

 "너희만 없었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


 두 손에 힘을 가득 쥐어 겨우 차원종의 손에 벗어났다. 하지만 차원종은 다시 입을 막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손을 내게서 빼냈다.


 '차원종 놈들만 없었어도 우리도 평범한 학교생활을 했을 텐데..!'


 분한 마음에 차원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차원종의 붉은 눈은 붉은색 호수 같아서, 금방이라도 빠질 것만 같았다. 차원종의 웃음이 더욱 깊어졌다.


 "아하, 그것도 그렇겠군. 그럼 이세하. 한 가지만 물어보자. 우리가 없었을 때 세상은, 안정되어 있다고 확답할 수 있어?"


 차원종의 질문에 이를 갈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난 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 라고.


 "이세하. '안정'은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말하는 게 아니야. 일정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의미하지. 결국, 우리도 세상을 다른 의미로 안정시킨다고 할 수 있어. 그런 도중에 우리는 너에게 가능성을 보았고, 제안을 한 거야."


 "마지막으로 묻지. 이세하, 우리와 같이 세상을 안정시킬 생각 없어?"


 그래, 이제 지쳤어. 더는 힘들게 살고 싶지 않아. 힘의 한계를 느끼고 싶지 않아. 악마를 죽일 수 없다면, 내가 악마가 되겠어. 썩어빠진 어른들을 내 손으로 직접 고치겠어.

 막상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대답할 때까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와 손을 잡겠어."


 확답을 얻자 차원종은 코웃음을 치며 사라졌다. 그의 옷, 건 블레이드, 그리고 붉은 눈까지 전부.


 '이름없는 군단의 군단장 이세하. 새로운 주인을 섬기게 된 것을 치하하노라.'


 애쉬와 더스트의 말이 머리에서 울리더니 눈에서 살짝 고통이 느껴졌다. 잠시 신음을 내며 두 눈을 감은 후, 다시 떴다. 적막이 흐르는 큐브 구석에 떨어져 있는 나의 건 블레이드를 주웠다.


 건 블레이드에 비친 내 눈의 색깔은 붉은색이었다.

2024-10-24 22:36:1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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