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세하의 위상력 -13-

이케아라 2015-07-01 6

슬비의 위상력은 중력과 염동력에 특화된 이능의 힘이다.

자신의 무기인 단검을 공중에 띄워 올리고, 그것들을 조작해 적을 섬멸하는 타입의 전투가 특기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중력이라는 사기적인 힘을 다루는 그녀에게 단검만을 이용한 전투방법은 있을 수 없다.

필요에 따라선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맹이도 강력한 무기로 변환시킬 수 있고, 힘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면 아주 멀리 있는 물건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Wow......"

 

슬비의 명령을 받아 전투지역에서 이탈한 다수의 클로저 들이 입을 벌린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수많은 차원종과 교전중인 지금 정신을 놓아 버리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시야에 비친 광경을 계속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시야를 가득 채운 광경은 자기 의지를 지닌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흰색의 구름. 그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푸른 번개. 그리고 드라이아이스처럼 냉기를 내뿜는듯한 상공을 포함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일도 흔치않은 이런 상황을, 일개 클로저가 일으키고 있었으니 놀라는 것도 당연할 수밖에.

 

"대단하군."

 

유일하게 태연한 자세를 고수하고 있던 제이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짧은 감상을 입에 담았다.

 

'구름을 조작해서 이 일대의 상공을 구름 투성이로 만들어버리고, 그곳에서 생성된 얼음덩어리(우박)들을 중력을 이용해 천천히 떨어뜨린 뒤, 일정 고도에 도달하면 일제히 낙하시킨다... 게다가 혹시 모를 공격력 부족에 대비해서 번개까지 생성시켰어. 저 나이에 지수누님이나 일으켰을법한 규모의 자연재해를 일으키다니... 역시 데이비드 형이 눈독들인 클로저답군.'

 

날카로운 추리력으로 슬비의 행동을 분석한 제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슬비는 자신의 위상력으로 상공을 조작한 뒤, 구름에서 생성된 우박과 벼락으로 차원종들을 일망타진할 속셈인 것이다.

 

'물론 저 차원종들은 기껏해야 D등급 정도 일 테니까 자연재해라면 충분한 타격을 줄 수 있겠지. 하지만...'

 

제이는 슬비가 서있는 지형주변을 둘러봤다. 육안으로 확인하기엔 슬비의 모습이 너무 작게 보였지만, 그녀가 서있는 부근이 본인의 공격범위 내에 있다는 것 정도는 금방 알 수있었다.

 

"자연재해로 폭격될 장소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어쩌자는거야?"

 

지금 슬비의 행동은 차원종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필살의 공격을 가하는 행위였지만, 그 공격에 자기까지 포함시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유니온 본부에서 제임스의 말에 속아 넘어간 것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앞뒤 안 가리고 공격을 날리려는 것도 그렇고... 제이는 슬비의 미숙함에 쓴웃음을 지으며 다리에 위상력을 가득 담았다.

 

"흐읍!"

 

자신의 다리에 희미하게 깃 들린 위상력을 체크한 제이가 땅을 강하게 딛은뒤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제이는 뛰어난 위상구현력과 10년 넘게 쌓아올린 경험을 갖고 있는 S급 클로저였지만, 유니온에서 강제로 시행한 실험의 후유증 때문에 그의 능력은 C급 이하로 급감해버렸다. 하지만 실력이란 건 1할의 스펙과 9할의 경험으로 이루진다는 말이 있듯이, 차원전쟁 생존자인 제이는 그 누구보다 뛰어나게 위상력을 구현 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일변하는 주변의 광경과, 그 크기를 점점 확대해가는 자신들의 리더의 모습을 보고 제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주먹에 깃든 푸른색 위상력이 슬비의 몸을 살짝 건드린 뒤, 그대로 강한 인력을 발동해 슬비를 끌어당겼다.

 

"제이 씨?!"

 

갑작스런 제이의 개입에 슬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슬비는 이제 막 스킬시전을 마쳤기 때문에 상당히 지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제이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채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그녀를 질책했다.

 

"무모한 짓은 삼가 하라고 대장!"

 

"무모한 짓이라뇨! 이건 앞으로의 전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전략...! 아야!"

 

힘들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제이의 말에 전력으로 항의하려던 슬비가 말하던 도중에 혀를 깨물어버렸다. 안전지대에 도달한 제이가 나름대로 천천히 착지를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슬비의 혀 씹기(?)를 방지하진 못했나보다.

 

"휴우... 이 정도 왔으면 괜찮겠지."

 

제이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방금 전까지 슬비가 서있었던 대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경을 지켜봤다.

후두둑 소리를 내며 차원종들을 유린하고 있는 굵은 우박, 고막과 안광을 파열시킬 듯 한 무수한 번개.

어쩌다가 우박과 번개를 피한 차원종이 다른 클로저들을 공격하기위해 몸을 날렸지만, 그런 소수의 차원종들은 유니온의 클로저들이 손쉽게 소탕할 수 있었다.

 

수백, 수천 단위에 달하는 차원종을 일격에 소멸시켜버린 검은 양 팀의 리더 이슬비는 기절하듯 그 자리에 쓰러져버렸지만.

-------------------------------------------------------------------------------------------

 

(30분 뒤)

 

 

"대장. 그 기술의 발상자체는 훌륭했지만 방법이 좋지 않아. 자기까지 공격대상에 포함시키면 큰일 난다고."

 

팔짱을 낀채 질책하는 말투로 비판하는 제이를 보고 슬비가 고개를 숙이며 죄책감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지어보였다.

검은양 팀을 포함한 대부분의 클로저들은 갑작스런 차원종 습격 때문에 그에 대한 뒤처리를 하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상처를 치유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유리와 테인이도 슬비의 공격에서 벗어난 차원종들을 처리하느라 자잘한 상처를 입었나본지 의무관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나마 위상력에 소모로 그친 슬비와 제이는 둘이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방금같은 상황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있는 방법은 대규모범위의 공격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그런 공격을 날리기 전에 자신을 현장에서 빼내줄 요원을 곁에 두는 게 더 좋았을 거야. 왜 자기희생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한 거지?"

 

슬비가 시전 했던 기술은 고도의 위상컨트롤과 방대한 양의 잠재력을 소유한 클로저 만이 실행할 수있을만한 대규모 기술이었다. 하지만 슬비는 구현력과 컨트롤은 대단할지 몰라도 잠재력만큼은 초라한 수준이기 때문에 방금 전과 같은 인위적인 자연재해를 발생시켰다간 위상력이 바닥나서 빠른 시간 안에 그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을 보완하기 위해 곁에서 자신의 도주를 도와줄 클로저를 곁에 뒀어야 했을 텐데 슬비는 주변의 모든 클로저들에게

안전지역까지 철수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공격을 실행하는 본인만 적 진영에 남아 있으려 했다.

제이는 슬비의 그런 행동 때문에 그녀를 추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제가 그 상황에서 피신을 도와줄 요원을 한명 대기시켰다가 위상력이 불발로 그쳤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도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만에 하나 최악의 상황을 대피해서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저 혼자 독단적으로 일을 실행에 옮겼던 겁니다. 혼자 남으려했던 것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상황이 왔을때 똑같은 짓을 안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 사죄하면서도 자신의 태도에 대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단언하는 슬비를 보고 제이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일단 그걸로 됐다. 하지만 더 좋은 선택도 있다는걸 자각했으면 좋겠어. 대장."

 

손을 흔들며 자리를 뜬 제이는 어른의 충고를 날려주며 지휘관급 요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직 울프팩의 요원이라는 점이 이번 작전에서 제이에게 뜻하지 않은 직위와 책임을 물려줬기 때문에 작전을 수정할 때도 검은 양의 리더인 슬비가 아니라 제이가 참석해야했던 것이다.

 

"......"

 

대규모 기상변화를 일으킨 탓에 위상력을 일시적으로 전부 소모해버린 슬비가 쓸쓸한 표정으로 저 멀리 아직도 주둔해있을 테러조직을 노려봤다.

--------------------------------------------------------------------------------------------

 

유니온 본부의 최하층 비밀 실험실.

비밀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주제에 수많은 유니온의 박사들이 흰 가운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채 분주하게 움직이며 화면에 띄워져있는 복잡한 문자들을 읽어나가고 있었고, 각자 조용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무언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적인 박사들의 조용한 대화소리로 가득한 이 거대한 실험실에서, 검은 양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한 검은색 코트와 흰털로 장식된 의상을 입은 세하가 식은땀을 흘리며 눈앞에 있는 제임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이제 슬슬 절 여기까지 데려오신 이유를 설명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세하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퇴원수속을 받고 치료약을 수령한 뒤 병실에서 휴식을 취하려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제임스의 호출을 받아 최상층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제임스의 사무실에 설치되어있던 엘리베이터로 최하층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세하의 손엔 아직도 병실에 갖다 놓지 못한 1주일분의 위상치료약이 들려있는 상태였다.

 

". 미안하네. 워낙 바쁜 상황이라 다짜고짜 끌고 와버렸군. 지금부터 내가 자네를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할 테니 잘 들어주게."

 

"...? ."


세하는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세하의 행동을 확인한 제임스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곳은 유니온의 박사들이 위상력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곳일세. 연구시설이라면 다른 층에도 많이 있지만, 이 최하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실험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박사들에게도 이곳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져있고, 클로저도 S급요원이 아니라면 파악하는 것도 불가능할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이 요구되어 있네."

 

"그런 중요한 곳을 저 같은게 들락거려도 되는 건가요?"

 

세하가 불안한 표정으로 그렇게 질문하자, 제임스는 안심시키듯 대답했다.

 

"자네 같은 유능한 인재라면 괜찮을 걸세. 게다가 자네는 이런 말을 서슴없이 밖으로 내뱉을 정도로 경솔한 인물이 아니잖나?"

 

"...그렇죠."

 

자신에게 우회적인 협박을 던지는 제임스를 보고 세하가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세하의 태도를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은 제임스는 특출 나게 거대한 실험실 문에 출입증을 갖다 대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곳이 철저하게 숨겨져 있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주 위험한 물건을 보관하고, 그에 대한 연구와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일세. 자세히 봐주게나."

 

실험실의 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세하는 제임스의 말대로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방안에 보관되어 있는 물체를 노려봤고...

 

"...!"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질러버렸다.

그의 눈앞에 보관돼있던 생물의 깃털로 보이는 물체였는데, 3M너비와 4M정도 되는 높이를 지닌 직육면체 모양의 유리관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한 깃털이었다.

 

'이런 깃털을 가진 생물이라면 대체 얼마나 거대한 거지?'

 

세하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깃털을 쳐다보고 있었을 때, 제임스가 설명을 이었다.

 

"이건 차원전쟁 당시 출현했던 S급 차원종의 잔해일세. 워낙 강학 위상력을 내뿜는 물질인지라 자체적으로 힘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런 식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이지."

 

수십억의 피해자를 내버린 인류역사 최악최흉의 재난인 차원전쟁 속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던 S급 차원종의 이름이 거론되자 세하가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S급 차원종과 싸웠을 때가 떠올랐나보군.'

 

"...."

 

제임스의 쓴웃음이 서려있는 말에 세하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전쟁 당시에 S급 차원종과 자주 만나봤으니 그 심정 잘 아네. 위상능력자가 됐을땐 나름대로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놈들을 보는 순간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알 수 있었지. 왜 고대인들이 전설이나 신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공상속의 동물을 두려워하듯 묘사했는지 그 제서야 알게 됐었어."

 

"이제는 공상이 아니게 됐지만요."

 

세하가 시큰둥한 말투로 그렇게 맞장구 쳤다.

물론 S급 차원종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느껴졌지만, 자신들을 미국의 붙잡아두고 부려먹고 있는 남자가 자기 무용담을 늘어놓고 있었으니 살짝 짜증이 날 수밖에.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세하의 말을 흘려들은 제임스가 화제를 돌리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왜 우리가 이런 위험한 물건을 보관하며 연구하고 있는지 알겠나?"

 

"벌처스처럼 이 깃털을 이용해서 강력한 무기라도 개발하시려는 것 아닌가요?"

 

세하의 말에 제임스가 엷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용도로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S급 차원종의 잔해라는 건 워낙 가공하기 힘든 일이라서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네. 이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거지."

 

"다른 용도가 뭐..."

 

세하가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지려고 했지만, 중간에 말이 끊겨버렸다.

자신의 가슴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커헉...!"

 

순식간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고, 성대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가 감전이라도 된것처럼 부들부들 떨렸다.

난생 처음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세하가 저절로 인상을 찌푸리며 제임스를 노려보자,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의 앞에서 설명을 늘어놓고 있던 제임스가 언제 꺼냈을지도 모를 화살을 자신의 가슴에 찔러놓은걸 봤기 때문이다.


그는 손에 들려있는 화살을 점점 깊숙이 집어넣으며 말했다.

 

"S급 차원종의 위상력을 몸에 담고 있는 자네와, S급 차원종의 잔해가 만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말 기대 되는군."

 

방금 전까지의 살가운 태도를 순식간에 전환시킨 제임스가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으며 자기 손에 들려있는 화살을 빼냈다. 작은 피분수가 세하의 옷을 빨갛게 더럽혔고, 그는 키텐의 공격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감각을 되살리며 천천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

슬비가 기상을 조작한다는것 제가 멋대로 집어넣은 설정이지만... 그렇다고 위성을 낙하시켰다간 그에대한 후폭풍을

처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자연재해를  일으킨 걸로 했어요. 솔직히 우주권을 떠돌고 있을만큼  멀리 떨어진 위성을 낙하시키는것보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조작하는게 더 신빙성있을것 같아서...

(제가 진지충이다보니 이런거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내일이 시험이네요...다음주 화요일이면 시험도 완전히 끝날테니 실컷 글을 쓰고 싶습니다 ㅠㅠ

추천까진 안바랄테니 조회수라도 올리게 로그인 하고봐주세요... (비굴)

 

2024-10-24 22:29: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