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의 과거회상[단편]

계란튀김정식후루룹 2015-06-20 1

 

 어릴 때의 나는 꽤 개구쟁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나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은 무조건 아줌마, 아저씨였고. 벌레 같은 걸로 동네 사람들을 자주 놀라게 해주고는 했다. 그러면서도 꿈은 의외로 평범하게, 번듯한 식당을 차리는 것이었다그런 나의 평범한 일상이 사라진 것은, 차원의 문이 열리면서였다.

 갑작스럽게 열린 차원의 문은 수많은 차원종들을 토해냈고, 차원종들은 내가 살던 마을을 초토화 시켰다. 그 결과, 마을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5명이 전부였다그리고 그 5명 중에 내 가족은 없었고 말이다. 마을이 초토화된 이후로 나는 위상력 이라는 것을 각성했다.

 그리고 위상력을 사용해야만 차원종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나는 강제로 UN의 산하기관인 유니온 이라는 곳에 소속되었다사실 그때는 내 가족, 친구, 이웃들이 죽었다는 것에 공황에 빠져서 그냥 멍하니 UN의 직원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에 뭐라는 건지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즈음에는, 울프 팩 이라는 유니온의 부대에 내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그때 당시에는 아직 클로저라는 용어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부대는 대차원종 부대로 불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다. '서지수' 내가 유일하게 아줌마라고 부르지 못했던 굉장한 누님이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첫 만남 때부터 뭔가 비범했었다. 마을 사람들의 죽음에 침울해 있던 나를, 자신을 아줌마라고 불렀단 이유로 두들겨 팬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녀 말고도 많은 사람이 생각났다근호 아저씨, 규태 아저씨, 시현 형, 나래 아줌마, 지은 누나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데이비드 형도 그때 만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당시에 데이비드 형은 울프 팩 부대의 작전참모였다.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자 충격을 받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시간이 흘러 호칭을 형으로 고쳤을 때는 정말 많이도 좋아했었다. 하여간 그렇게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울프 팩 부대는 전선에 배치된 첫날부터 임무에 들어갔고,

 첫 임무에 화려하게 실패하며 부대원의 절반이 죽어버린다생각해보면 미숙했던 그때의 내가 살아난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기적에 가까웠다. 울프 팩 부대의 임무 실패는 충격적이었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실패한 게 당연하기도 했다.

 울프 팩 부대의 부대원들은 모두 나처럼 위상력을 각성한 지 한 달도 안 된 풋내기 들 이었고, 차원종들은 본능에 싸움이 각인 되어있는 노련한 전사였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울프 팩 부대는 만들어진 지 삼 일 만에 해체될 뻔했지만당시에 제대로 체계가 잡히지 않아서 위상능력자를 써먹을 곳이 없었던 유니온은, 새로 들어온 위상능력자들을 모조리 울프 팩 부대에 욱여넣으며 울프 팩 부대의 해체를 막았다.

 그리고는 첫 임무의 반복이었다. 우리는 위상능력자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전장에 내몰렸고, 항상 부대원의 절반 이상이 전사하는 상처뿐인 승리를 하고 돌아왔다그런 울프 팩 부대가 변화는 누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계속된 싸움으로 위상력에 활용법에 대해 스스로 깨우친 누님은, 위상력을 가진 일반인에서, '차원종의 재앙'으로 변해버렸다.

 그 뒤로는 싸움의 양식이 달라졌다누님은 부대원들에게 스스로 개발한 위상력 호흡법이나 다양한 위상력의 응용법을 알려주었고, 그 결과 47번째 임무 만에 울프 팩 부대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이 임무를 마치고 귀환했다. 그날 이후로 누님이 알려준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부대원들은 새로운 기술들을 마구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한없이 밀리기만 하던 인간들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자 위상능력자들은 늘어나기 시작했고, 위상능력자들의 숫자가 많아지자 자연스럽게 위상능력자들의 권위가 올라갔다. 그렇게 문을 닫는 자 라는 뜻의 클로저 라는 용어가 만들어졌고, 울프 팩 부대는 울프 팩 팀이 되었고, 데이비드 형은 작전참모에서 관리요원으로 바뀌었다.

 클로저들의 숫자가 충분해지자 울프 팩 팀의 뒤를 잇는 많은 팀이 창설되었다. 만들어진 지 하루 만에 전멸당하는 팀도 있었고, 울프 팩의 옆에서 나란히 서서 함께 싸우는 팀도 있었다. 그때부터 체계적으로 요원들을 관리하기 위해 요원들에게 코드명이 부여되었다.

 누님은 '알파 원'이라는 코드를 받았고, 나는 'J'라는 코드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전쟁이 심화되며 인간과 차원종은 일진일퇴를 반복했고, 싸움은 그렇게 고착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알 수 없는 이유로 차원종들의 진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아스타로스의 반란 때문인 것을 알았다]그것을 기회로 울프 팩 팀을 비롯해 20여 개의 팀의 결사부대가 결성되고, 우리는 차원종들의 심장부로 진격했다.

 그때의 싸움으로 누님은 알파 퀸 이라는 전설의 클로저가 되었고, 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전쟁은 인간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나는 원래 전쟁이 끝나면 모아놓은 돈으로 식당을 차릴 생각이었지만, 마지막 싸움에서 입은 부상이 커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유니온에서 요양을 하기로 했다. 누님은 전쟁이 끝난 후에 아이를 하나 가지고는 출산 휴가를 가졌고, 데이비드 형은 울프 팩의 관리요원을 경력으로 인정받아 보다 높은 직책으로 진급했다.

 그리고 유니온에서 요양을 하던 나는                                                                                                                                                                                                                                                                                                                             

 그렇게 위상력의 대부분을 잃고. 신경성 위염, 스트레스성 편두통, 빈혈, 류머티즘 관절염 등 수많은 질병을 가져 약물 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는 몸이 돼버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유니온은 내 의사를 물어** 않은 채 강제 퇴역시켰다나는 그렇게 퇴역한 뒤, 내 꿈이었던 식당을 차리기는커녕.

 약국에 매달려 내 퇴역 금과, 모아놓았던 돈을 약에 쏟아부으며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고 있었다.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온전치 못한 정신에 망가진 몸은 나에게 절망을 주었다하지만 살고 싶었기에 발버둥 쳤다. 약을 먹으며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어떤 때는 약을 잘못 먹어서 몸 상태가 더 심각해지기도 했고, 약을 깜빡해서 다음 날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약을 먹는 것이 어느 정도 습관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위상력에 매달렸다. 위상력을 잃어버렸다는 게 너무나도 억울해서, 슬퍼서, 화가 나서, 누님이 알려주었던 위상력 호흡법을 고쳐서 위상력을 늘리려 발버둥 치고, 가지고 있는 위상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가 효율적인 위상력의 사용법에 대해 어느 정도 틀을 잡고, 그와는 대비되게 바닥을 기는 통장 잔액이 눈앞에 보였을 때. 누님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그리고 그 전화는 전쟁 후유증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나를 전장으로 향하게 했다. 프로젝트 검은 양. 차마 누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는 검은 양 팀에 들어갔다.

 무기력했고, 전혀 의욕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데이비드 형이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 라는 걸 알았지만, 없던 의욕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 목적은 약값이었고, 솔직히 검은 양 팀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이 없었다그리고 애들을 만났다. 웃고, 떠들고, 화내고, 쑥스러워하고

 싸움이 싫다는 나의 전쟁 후유증은. 어느새 평화를 원하는 나의 신념이 되었다. 약값을 벌기 위한 임무는 애들을 지키기 위한 임무가 되었다. '애들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어'라는 마음은 '애들만큼은'라는 마음으로 변했다.

 

 "제이 아저씨. 유정이 누나가 부르는데요?"

 "미스틸.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야."

 ". 앞으로는 형이라고 부를게요. 제이 아저씨."

 ""

 

 옛날에 데이비드 형이 하던 말을 지금은 내가 그대로 하고 있다. 그리고 옛날에 내가 하던 말들은 애들이 그대로 하고 있고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 애들도 나를 형, 오빠라고 불러주는 걸까?

 

 "아저씨. 언니 되게 화난 거 같은데요. 빨리 가봐야 되지 않아요?"

 

 왠지 애들은 시간이 흘러도 나를 아저씨로 부를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아저씨로 불리든, 형이나 오빠로 불리든, 그저 지금의 이 느낌을 나중에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제이 씨이!!"

 

 이크. 아무래도 생각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유정 씨를 달래러 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이의 과거를 제가 상상한 겁니다. 그리고 중간의 검은 부분은 오류라던가 그런 게 아니라 고의로 해놓은 부분입니다.

2024-10-24 22:28:55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