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하:이슬비 남친 되고싶다.
미스틸터l인 2015-06-16 7
임무도 없어 휴게실에서 편히 쉬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슬비 남친 되고싶다."
"……뭐?"
제이는 자신이 귀가 먹은 것은 아니냐는 듯 황망하게 되물었다. 볼에 흐르는 땀하며 미끄러진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눈빛에서 제이가 얼마나 황당한 소리를 들었는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물론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서유리는 딱히 제이를 ** 않았더라도 자신이 들은 소리가 얼마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한 소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저기 세하야…? 방금 내가 뭐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엉……? ……방금 내가 뭐 말했었어?"
"……확실히 말했었지. 대장의 남자친구가 되고싶다고 말이야."
여기에 당사자인 이슬비가 산책을 나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있었으면 한참도 더 전에 이 휴게실은 더 이상 휴식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아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제이는 속으로 곱씹으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나는 확실히 들었는데."
"나, 나도 들었어."
제이보다도 이세하에게 더 가까이 있었던 서유리다. 제이마저도 한 글자 틀림없이 들어 기억했건만, 서유리라고 못 들을 이유는 없었다. 제대로 된 증인이 둘이나 나오자, 이세하는 멋쩍은 듯이 볼을 긁적거렸다.
"아… 저도 모르게 그만 입 밖으로 소리 낸 모양이네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적어도 한 글자나마 잘못 들었기를 바랬는데. 평소 소꿉친구인 우정미의 연애사업을 응원해주던 서유리로선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이 당연하고도 씁쓸한 현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정미야, 나로선 네 도움이 될 수 없었나봐….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
"그럼 이게 호들갑 떨 일이 아니야!? 너라구? 지금도 그렇고, 임무에 나가서도 질리지도 않고 줄창 게임기를 꺼내 게임을 하는, 중증의 게임폐인인 이세하라구!? 그런 네가, 게임기의 원수와도 같은 슬비와 사귀고 싶다고 말하다니! 지금까지 슬비의 손에 의해 분해된 게임기가 몇 개인지 세보란 말이야!"
"……좋아. 딴 건 몰라도 서유리 네가 평소에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었는지는 잘 알겠다."
그리 말하고 이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가 게임폐인이라는 것쯤은 자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남한테 이렇게 직접 들으면 기분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씁쓸한 기분을 돌리기에는 얘기하는 게 최고지. 이세하는 들고 있던 게임기를 내려놓고는 제이에게 시선을 던졌다.
"아저씨, 제가 한 말이 그렇게 이상해요?"
"동생,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야. 말은 똑바로……."
"제가 한 말이 그렇게 이상해요, 아저씨?"
"……음. 뭐, 평소라면 너에게 들을 일이 없는 말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지."
제이의 말을 듣고 이세하는 평소의 자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아, 정글러가 트롤이야!'라고 성을 내는 자신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확실히 누군가의 남자친구가 되고 싶다고 말할 인물상은 아니었다. 이세하는 알아서 납득했다.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딱히 사심이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사심없이 할 수 있다고? 맙소사, 누님은 대체 애한테 가정교육을 어떤 식으로 시킨 거야? 판타지식 교육을 받아도 저런 짓은 못할 텐데."
"……오늘따라 유리고 아저씨고 참 너무한 말만 하네."
난데없이 부모 욕을 먹은 꼴이 되었지만, 이세하 본인도 어머니인 서지수에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은 기억이 몇 번 없었기 때문에 딱히 대꾸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제이의 말대로 가정교육의 대부분을 판타지로 받았으니까 나름대로 제이의 말은 이해하고 있다.
"너무하고 뭐고, 대체 애가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래? 세하 너 설마 라면 잘못 먹은 거야?"
"우리 집 라면의 유통기한은 멀쩡했으니까 괜한 걱정하지 마시지."
"그럼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꺼낸 거야?"
"누가 말하고 싶어서 말한줄 아나… 나도 모르게 나온 거라고."
거기까지 대꾸하다가, 잠시 침묵하던 이세하는 볼을 긁적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최근에 이슬비 걔가 많이 다쳤었잖아."
"응, 그래서 임무 중에도 제대로 못 싸웠었지."
지금이야 제대로 퇴원은 했지만, 의사의 소견으로는 당분간은 위상력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한다. 실제대로 임무 중에 위상력 한 번 제대로 사용하려 했다가 꿰맸던 상처가 터지지 않았던가. 이슬비 본인은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주변에서 하도 말려댄 탓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사리고 있는 중이다.
"그거 때문인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침울해했었지."
제이가 말했다. 똑부러지게 행동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하루종일 침울해있던 소녀 대장의 모습에 자신이 얼마나 당황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나마 나는 기억이라고는 작게나마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던 것 정도일까.
"저번엔 제가 임무 중에 게임하고 있는데 근처에서 우물쭈물하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더라고요. 보나마나 자기 일도 제대로 못 했는데 뭔 자격으로 남에게 타박을 주느냐고 생각했겠죠."
거기까지 말한 이세하는 얼굴을 찡그렸다. 떠올리니 또 다시 울컥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냥 평소대로 혼내고 게임기나 뺏어가지, 답지않게 소심한 짓을 하니까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도 화를 내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서 빨리 원래대로 돌아오라고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주려고 했는데……."
"못 했어? 왜?"
제대로 말이 끝나지 않았지만, 저렇게 말을 끄는 것을 보면 정황상 못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서유리의 추측이 맞았는지 이세하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어색해서, 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어색할 게 뭐가 있어? 동생,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딱히 어색하고 말 것도 없다고. 누굴 위로해본 적 없어?"
"아니, 딱히 누구에게 위로를 해준 적이 없는 건 아닌데요……. 상대가 상대다 보니."
이세하가 거기까지 말하니 제이도 서유리도 이해한 듯 "아." 하모니를 내었다. 확실히 이슬비와 이세하의 평소 모습을 보면 이세하가 이슬비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습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원체 이슬비가 남에게 위로를 받을 만큼 약한 모습을 쉽게 드러내는 인물이 아닌 탓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세하와 이슬비의 평소 사이에 의한 것이 컸다. 틈만 나면 서로 티격태격거리니 누가 누구에게 위로를 해주는 모습이 쉽사리 상상가지 않는 것이다. 본인도 그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도 같이 미적지근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 테고.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 하는 거지……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더라고요."
"……대장의 남자친구였으면 쉽게 위로를 건네줄 수 있었을까, 라고?"
"비슷하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까 바보같은 생각이지만."
폭탄과도 같은 말의 의미를 알게 되자 힘이 빠졌는지 제이는 한숨을 깊게 푹 내쉬었고, 서유리는 다시 속으로 기뻐하며 우정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뭔가 묘한 반응들에 이세하는 표정을 미묘하게 하다가, 다시 게임기를 들었다. 딱히 무슨 반응을 바라고 말을 꺼낸 건 아니었기에 무슨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다시 각자의 방법으로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온 미스틸과 이슬비였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어."
슬쩍, 이세하는 시선을 잠시 이슬비에게로 옮겼다. ……어째선가 얼굴이 붉다. 다시 몸이 안 좋아지기라도 한 것일까. 잠시 인상을 구기다가, 다시 시선을 게임기로 돌렸다. 이미 몸을 너무 혹사시킨다고 주변에게 자중 좀 하라고 한 소리 들었던 이슬비다. 너무 몸이 안 좋아지면 알아서 누우러 돌아가겠지. 그렇기에 자신이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툭툭.
"응?"
게임에 집중하며 열심히 버튼을 누르고 있을 때였다. 자신의 어깨를 두들기는 손가락. 시선을 돌리니 어째서인지 미스틸이 자신을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미스틸은 웃는 얼굴 그대로, 이세하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하며 속닥거렸다.
"세하 형, 그럴 땐 보통 '이었으면 어떨까?'라고 생각하지 '되고싶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
그 말에 이세하가 눈을 크게 뜨고 미스틸을 보았다. 미스틸은 그 웃는 얼굴을 그대로 유지하며 자신을 바라 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미스틸을 잠시 보다가, 이세하는 슬쩍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두었다. ……반응들을 보아하니 아무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세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테인아, 형이 뭐 사줄까?"
"우웅? 아, 괜찮아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할 거예요. 단지……."
미스틸은 함박 웃음을 지었다. 어린아이의 순박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정에 이세하는 잠시 넋을 잃었다.
"저는 세하 형이 더 솔직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에요."
"……그러니."
미스틸의 말에 이세하는 그저 쓰게 웃었다.
속마음을 들키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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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비는 딱히 하향을 당한 게 아닙니다.
그저 제가 게임을 잠시 접었던 사이 몸을 심하게 다쳐 위상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뿐이에요!
그나저나 이과 과목 미치겠네요.... 벡터고 삼각함수고 파스칼이고 엔트로피고..... 외우다가 머리 터질 기세. 어째서 건축학에선 저런 것을 배워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