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강고의 일상 -프롤로그 1-

이연리 2015-06-13 0

........칠칠치 못하게 하품이 나왔다.

이번 새 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며 잘랐던 숏 컷은 2개월이나 지난 지금, 어느정도 길어져있었다. 덕분에 이제 종종 남자로 오해받는 일은 없어졌다. 아니, 애초에 치마를 입고 있는데 남자라니......실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 어느 정도 내 잘못도 있다고 한다면 무릎까지 덮는 코트를 입고 있다는 것 정도 려나.......게다가 이렇게 어두우니 가끔 교복을 착각받을 때가 많기 때문에

잠깐, 어쨌든 코트 아래에 보이는게 맨다리라면 여자인거 확정 아냐? 다들 눈이 안 좋은 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퍽 안 좋아졌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늦게 끝나는 학원은 여기밖에 없을 거야.

같은 아무래도 좋을 불평을 하며 조용히 버스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평소보다 일찍 끝난 거다

원래는 날짜가 거의 바뀌기 직전쯤에 끝나는 게 정상인데, 집에 일이 있다고 거짓말했기 때문에 오늘만 선생님이 사정을 봐주어 일찍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 예전부터 곤란한 상황 같은 게 닥치면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게 아예 하나의 성격이자 아이덴티티로 굳어버려서 정말 의식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오는 건 큰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워낙 오래되서 그런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한 밤의 도로는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어 한산하고 조용했다

가끔 치킨배달처럼 보이는 오토바이가 쌩하니 지나갈 뿐. 그러는 도중 갑자기 뒤쪽에서 침묵을 깨는 왁**껄한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교문에서 몰려나오고 있었다.

곧 그 무리는 천천히 걸으며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있는 버스정거장까지 오더니 몇몇은 인사를 한 뒤 다른 길로 빠지고 몇 명은 계속 이야기를 하며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뭔가 가까이 가기 힘든, 그런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무리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리기를 한참. 마침내 저 모퉁이 너머로 버스의 헤드라이트가 반짝였다.

손을 흔들어 정차신호를 보내고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든다.

한층 더 시끄러워진 고등학생 무리들을 힐끗 돌아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버스를 타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 버스를 타는 사람과 타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인사하고 다시 몇 명은 계속 버스를 기다리고 무리에서 나온 몇몇 학생들은 나와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 전에 잠시, 한 학생이 버스를 타기 전에 모두가 그 학생에게 인사를 하는 진풍경을 보았다. 하도 목소리가 겹쳐서 이름은 들리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학교의 아이돌이나 인기인같은 역할인가보다.

버스에 올라타 앞자리에 앉아 할 것도 딱히 없어 가로등만이 규칙적으로 지나가는 밤거리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사는 집은 여기서 버스를 타도 25분이나 걸리는 아주 먼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연히 아는 사람이 같이 탄다같은 상황은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야 걸어가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니...... 하지만 쓸쓸한건 쓸쓸한거다.

밤늦게까지 학원에 박혀있다가 혼자 고등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건 좀 무리다. 나도 한창 친구들과 떠들 나이라고.......그래서 저번에 친구한테 같이 다니지 않을래? 라고 물었더니 단칼에 거절당했다. 매정하고 무심하고 차가운놈 같으니라고.....

쓸쓸해........”

앞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처박고 혼자 중얼거려봤다.

만일 이렇게 매일같이 혼자 쓸쓸하게 버스타고 밤늦게 귀가 하는 여중생이 있었다면 동정의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다만 그 여중생이 나라는 점만 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목에 감은 머플러가 중력으로 인해 목에서 반 바퀴 풀려 차체의 진동에 따라 천천히 흔들렸다.

버스는 계속 전진과 정차를 반복했다.

슬슬 정차하지 않고 지나치는 역들이 늘어날 때 쯤 어느샌가 손님들이 거의 전부 내렸다. 한산해진 버스 안을 돌아보니 아까 그 고등학교의 학생 한명과 나밖에 안 남았다

내심 마음속으로 누가 먼저 내릴지 궁금해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자 곧 내가 내릴 정거장이 다가왔고

미리 뒷문에 가서 정차벨을 누를 준비를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밖의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고등학생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였다.

등 뒤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버스가 만들어낸 돌풍을 느끼며 역 바로 앞의 신호등에서 길을 건너기위해 대기하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조심스레 콕콕 찔렀다. 뭔가 하면서도 돌아보니 아까 그 버스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그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안 내리는거 아니었나? 아니면 내가 뭐나 놓고 내린게 있어서? 그런생각이 잠시 들었다.

, 혹시 이 사람은 최대한 앉아 있다가 아슬아슬할 때 일어나는 타입인가? 나도 예전에 그랬지만 지하철에서 내릴 때 그대로 타이밍을 못 잡고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린 후에는 이렇게 미리 일어나 있는게 습관이 되었다. 어깨를 찔린 이유를 알 수 없어 둔해진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이 사람을 알던가였다

아니다, 난 이사람을 모른다

그다음에 떠오른 생각은 이렇게 생긴 사람이 우리동네에 살았던가? 라는 순수한 의구심 100%였다

그리 넓지도 않은 마을인지라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거의다 얼굴을 꿰고 있을텐데......... 특히 중딩 고딩이라면 더욱더.

이 고등학생이 이 동네에 사는지는 둘째치고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왜냐하면 아까 버스에서 슬쩍 볼 때는 몰랐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엄청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한번이라도 이 얼굴을 봤으면 잊지 못할 것이다.

여자치고는 제법 큰 키에 허리까지 오는 긴 흑발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커다란 눈은 별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반짝였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띄고 있는 그 모습은 남자라면 열이면 열 싹다 눈이 하트모양으로 체인지 돼서 헤벌레 하고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었다. 같은 여자인 내가 봐두 두근거릴 얼굴이다. 무엇보다 한 가닥 머리카락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있는게 굉장히 당겨보고 싶게 생겼다. 이게 이 사람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아니, 그전에 제법 두꺼운 동복위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가슴이 크다. 부러워.....

“.........”

초면부터 예의와 개념이 가출하는 상상을 하다가 머리를 붕붕 휘둘러 떨쳐내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상황을 인식하고 상대방의 외모를 스캔하고 감상까지 계산하는데 걸리는 시간 약 1. 10초나 되는 것처럼 긴 1초의 침묵을 깨고 나온 그녀의 말은

안녕!”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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