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양떼 -18-

PhantomSWAT 2015-06-01 8

*[주의] 전편이 있습니다.


전편을 보시면 이해가 더욱 잘 되실겁니다.


이 작품은 '엘세이드' 와 'PhantomGIGN' 의 합작입니다


          

          


           [흩어지는 양떼 -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436



           [흩어지는 양떼 -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459



           [흩어지는 양떼 -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7&n4articlesn=1469



           [흩어지는 양떼 -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3&n4articlesn=1574



           [흩어지는 양떼 -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09


          

           [흩어지는 양떼 -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2&n4articlesn=1633



           [흩어지는 양떼 -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652


          

           [흩어지는 양떼 -8-]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4&n4articlesn=1701


          

           [흩어지는 양떼 -9-]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1744


       

           [흩어지는 양떼 -10-]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865



           [흩어지는 양떼 -11-]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1958



           [흩어지는 양떼 -12-]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046



           [흩어지는 양떼 -13-]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123



           [흩어지는 양떼 -14-]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497



           [흩어지는 양떼 -외전-]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2264



          [흩어지는 양떼 -15-]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sn=2790




          [흩어지는 양떼 -16-]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065



          [흩어지는 양떼 -17-]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pageno=1&emsearchtype=Title&strsearch=%ed%9d%a9%ec%96%b4%ec%a7%80%eb%8a%94+%ec%96%91%eb%96%bc&n4articlesn=3244






--------------------------------------------------------------------------------------------










"지금부터, 팀 검은양에 긴급 은밀작전 진행을 위해 모든 상황을 클로저 특례헌법 1조 2항의 행동 강령에 따라

 리더인 저 이슬비가 모든 작전지시를 내리겠습니다.

 긴급은밀작전의 수행 시 적용되는 모든 조례들은 조례사항에 명시되어 있듯 정부에게도 적용될것이며,

 지금부터 긴급 은밀작전의 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평소보다도 더욱 사무적으로 변한 슬비의 단호한 말이 실내 분위기를 단박에 엄숙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유리는 그 갑작스러운 말을 재빨리 받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주변을 휙휙 둘러보더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을 반영한 떨리는 목소리로 곧바로 질문을 던졌다.


"슬비야. 은밀작전이라니...? 수습요원인 우리한테 그런 고위급 임무가 내려올리가 없을텐데..."


유리의 말이 끝나자 슬비는 미소를 짓더니 질문에 대한 답을 시작했다.


"맞아. 우리같은 수습요원에게 작전 중 최고 난이도에 속하는 은밀작전은 일반적으로 내려올수가 없어.

하지만 이번 작전은 공식적인 것 이 아니야."


"공식적인 작전이...아니라니, 그게 무슨말이야?"


유리가 재차 되묻자 실내의 공기는 더욱 어두워 졌다.


일체 표정에 변화가 없던 제이는 안경을 다시한번 고쳐 올렸고.


미스틸테인은 입을 앙다문채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대답은 역시 침묵을 고수하는 그 둘이 아닌, 슬비에게 돌아왔다.


"검은 양 전원은 잘 듣고 명심해 주세요. 이번작전은 유정 언니 에게도 보고하지않을꺼에요.

이번 작전은 우리 검은양팀이 독단적으로 활동하게 될겁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이가 기다렸다는듯 조금 급한 기색으로 말을 꺼냈다.


"그렇게 되면 징계로 끝나지 않을꺼야, 리더. 전원이 세하처럼 감옥.."


제이는 서슴없이 말을 잇다가 어느순가 문득 자신이 무슨말을 하고있는지 알아차리고는 말을 끊었다.


하지만 슬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 제이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더이상 말을 이을 기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다시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아저씨. 제가 왜 이 작전을 말씀드린 것 같나요?"


슬비의 질문에 제이는 무언가를 깨달은듯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눈을 예의 그 노란 코팅된 고글 속에서 찌푸렸다.


"리더...설마...세하를...!"


"맞아요. 난 세하를 도와서 SS급 차원종을 섬멸할거에요."


그녀의 거침없는 대답의 무게가 모두를 짓눌러 침묵케 했다.


말은 더없이 가벼웠지만, 진의는 그것따위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결의와 각오를 담은 행동의 전조였다.


그 조용히 달아오른 실내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식혀보려는 듯 유리가 황급히 재차 질문을 던졌다.


"스...슬비야. 수습요원인 우리가 어떻게..."


더없이 현실적인 말이라 생각하며 자신이 한 질문에 자신마저 설득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애써 눌러버리고는 유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는 슬비를 처다보았다.


그렇지만 그녀의 아름다울정도로 푸르게 빛나는 색소잃은 눈은 결코 망설임이나 미련따위가 없다는 것을 유리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어쩌면 그냥 자살하러 간다고도 말할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어때서?"


잠깐 말을 끊고 그녀는 좁은 방 안에, 딱 그정도 인원이 들어갈 만한 실내에 앉아있는 이들을 한번 스쳐지나가듯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미 죽었어야 하는데."
 
그녀의 말은 이미 그들의 마음 한켠에 벌어진 상처를 더욱 아프게 찔렀다.


비단 그녀 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그녀보다 더욱 슬퍼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슬비는 떠올렸다.


지리산에서 그들에게 잊을 수 없는 뒷모습으로 허물어질 듯 한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주던 그의 뒷모습을.


그 손을 내밀기까지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고민이 그를 괴롭혔을지는 불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걸 우리에게 말하는 이유는, 뭐지? 너는 우리에게 말하지않고 혼자갈수도 있을텐데."


제이는 안경을 다시한번 추켜 올려 고쳐쓰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재차 말했다.


"알다시피, 리더에게는 이 결정을 우리에게 작전으로써 언급했기때문에, 만일 처벌이 내린다면 아마 세하와 동격,

혹은 그 이상의 벌이 내릴거고,

그건 우리에게도 강도가 조금 약하던, 동일하던 간에 마찬가지로 적용될게 뻔해.

다른 이들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내린 판단이었다면 우리와 상의 한번쯤은 내려 보았어야 하는게 아닌가, 리더?"


평소 그 치고는 상당히 날카롭게 상대를 매도하는 식의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슬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맞아요. 혼자갈 수 도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나에게는 검은 양의 리더로써가 아닌, 우릴 구해준 이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이슬비라는 이름로써 도움을 바라는거에요.

그리고, 만일 이 작전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것도 좋아요.

저는 긴급 은밀작전을 단독으로 판단해 결정한 명령 강제권을 가진 리더지만,

여러분에게 강제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사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날 따라오지 말아요.

이 작전 에 대한 대화가 끝난 시간을 기점으로 이 곳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는 것으로써, '리더의 강제 명령권으로 따라간 사람' 이외에 '제가 남으라고 명령한' 사람들은 전부 안전할테니까요.

이 일이 어떻게 끝나던 간에 작전 자체의 위험을 제외하면 처벌은 저 혼자 받습니다."


순간 미스틸테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누나, 안돼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거에요.

만약 SS급 차원종을 사살하는걸 성공해서 누나만 혼자 처벌 받는다고 해도, 그렇다고 세하 형이 그걸 좋아할 리도 없잖아요!"


슬비가 그말을 듣고 미스틸테인이 앉아 있는 쪽을 돌아보았을때,


미스틸테인은 그녀의 눈과 맞닥뜨린 후, 도저히 그녀의 마음을 돌려 놓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니, 내가 언제 걔를 생각해서 간다고 했니?"


순간, 실내가 조용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슬비는 지금까지 입에 담아 굴리며 수없이 예행연습을 거쳐 왔던 문장을 숨조차 한번 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옛 리더로써 그 불쌍한 게임 폐인을 구하러 가는 것 뿐이야.

아무리 헤어질때 끝이 좋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동료였었으니까.

정확히는 리더인 내 사적인 감정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검은 양 팀의 전원에게 작전 선택의 자유를 준 거란다, 테인아."


그렇게 말해버리고는 마치 얼음 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주변을 향해서 그녀는 도도해보이기 까지 하는, 강한 의지가 서린 두 눈을 한명 한명에게 맞추며 말했다.


"지금, 작전을 따르지 않을 사람은 이유는 묻지 않겠으니, 잠깐만 나가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원망을 결코 누구에게도 없을것입니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더욱 중요한 법이니까요.

그리고 내게는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이나, 나를 필요 이상으로 대해주던 사람은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으니,

그만큼 가볍게 작전을 수행하러 갈거에요.

 하지만 짊어진 사랑의 무게가 많은 사람은 기꺼이 남는것을 리더로써 허가하겠습니다."


정적.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수천갈래로 빛을 투영시키며 산산히 부서져 내리듯


침묵하는 방 안의 이상하리만치 날카로우면서도 동료애라 부를 수 있을 만한


의지가 점점 짙어져 가는 것을 느끼며 이 자리에 있는 네명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그리고 어떤 판단을 할지, 미스틸테인은 왜인지 모르게 알 수 있었다.


일분, 이분, 삼분이 흘러도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리고 점점 고양되어가는 실내 분위기가 침묵을 밀어내려 하는 그 절묘한 순간, 그 상황을 맞추어 유리가 입을 열었다.


"나...나는 가고 싶어."


모두의 시선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채로 그 긴 머릿칼을 고개 숙여 고의 아니게도 슬퍼보이는 얼굴을 가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미스틸테인이 도저히 말을 붙여볼 만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어린 그의 눈에서 조차 비단결 같은 칠흑의 머리에 깃든 고뇌의 조각들은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그렇지만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던 슬비마저 잠시 말을 잊게 만드는 그녀의 결의 아닌 결의는 입을 연 제이에 의해 공격당했다.


"제정신이야? 동생, 너에게는 네가 그렇게 지탱해오던 가족들이 있어."


침묵, 그리고 관조하며 일관하던 정적만이 다시 그들 주위를, 정확히는 제이와 유리의 주위를 둘러 쌌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맞아요, 아저씨. 하지만 내게는 그 가족들 만큼이나 세하도 소중해요.

내가 이렇게 슬퍼 할 수 있는, 그리고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 애 때문인걸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더없이 소중한 것을 잃는 사람의 눈을 보았고,

 

진저리가 날 정도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미스틸테인은 그저 침묵으로, 슬비가 그러하듯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유치하게까지 들리는 인간의 감정론을 얼마나 많이 겪어 봤던가.


자신의 기억을 ** 봐도 그것의 끝이란 결국 부서져 내리는  소중한 것 들을 조금이라도 그러모아보려 몸부림치다 죽어 넘어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 뿐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움직이지 않는 입을 움직여 저들을 말려야했다.


신물이 올라올정도로 겪어온 소중한 이들의 파멸을, 자신은 뼈져리게 알고 있지 않은가.


독일에서 탄생해 인간으로써의 취급을 받고, 차원종의 힘을 가진 두려운 이로써 취급받는것이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런 식으로 연구원들에게, 즉 자신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에게 최소한의 인간적인 가치를 부여받은 그였기에,

더욱 인간의 마음을 공감 할 수 있었다.


그것이 만일 인간일 수 밖에 없는 부모와 같은 존재인 연구원들에게 부닥친 인간의 상처와 뼈밖에 남지 않은 앙상한 정의일지라도. 그렇지만 그가 다시 입 밖으로 내보내는데 성공한것은, 너무나도 어렸을 적부터 경험해온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표현해 들려주기에는 안타까우리만큼 적었다.


"세하 형이 정말 그걸 좋아 할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 무언가 더 말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조금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나는 병기에요. 이미 알다 시피, 독일의 연구소가 내 요람이었어요. 차원종에게 대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클로저의 위상력을 담아 배양한 인간 병기라고요.

하지만 난 병기로 태어나서 인간으로써 길러졌어요.

그래서 그들의, 여러분들의 아픔을 이해 할 수 있어요."


무언가 더, 보충해야했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결국 파멸 뿐이에요.

나는 내 부모님들에게 닥친, 인간들 끼리의 더러운 싸움에서 밀려난 수하의 인간들이 어떠한 일을 당하는지 봤어요.

그리고 여러분과 비슷한 일들도 정말이지 신물나게 많았단 말이에요!"


더, 더 말해야 한다. 이정도로는 그의 전달 능력이 조악하다는 결론만 그들이 내릴 뿐이었다.


"무언가, 더 좋은 방법은 없어요?"


간절하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미스틸 테인 그의 대답마저 반영된 의견을 모두 대표해 말하듯 슬비가 즉답했다.


"아니."


결국 이것이었다.


인간의 사랑은 결국 파멸로 치달을 뿐이었다.


시작이 어떠했던 결과는 참혹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미스틸테인은 문득 비명지르고 싶어하는 자신의 조그만 몸을 깨달았다.


"하지만, 테인아."


막 비명지르려 하는 몸을 비틀어 간신히 억눌렀을때,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랍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은 슬비도, 제이도 아닌 유리의 것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몸을 던져 가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존재는 그리 하면서까지 지켜나간단다.

아마 그렇게 미련한 생명체는 넓은 우주 상에도 없을거야. 그렇지 않니?"


그녀 답지 않게, 정말로 그녀 답지 않은 비유법이었지만, 그것을 깨닫기 전에 먼저 밀려오는 슬픔의 물결이 그를 밀고 지나갔다.


"네. 정말로 그래요."


그렇지만 그녀의 그런 말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미스틸테인 자신 역시 깨닫고 있었다.


세하가 그들을 구한것은 모든것을 버릴 각오가 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만큼 그들을 구하고 싶었고, 또한 그들을 구함으로써 자신이 사지로 몰릴 충분한 각오가 있었기 때문일것이라는것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서있는 이들은 그가 구하려 했던 자신의 모든것을 내던지고 죽어가는 은인을 살리려 함이라.


그렇지만 과연 둘 중 누가 더욱 올바른 선택이며 지향해야 할 길인지 판단 할 수 있는것은, 신만이-

아니.

미스틸테인은 그 조그만 손을 꽉 움켜 쥐었다.


신조차 불가능할것이다.


저렇게 남을 위해 희생하려 드는 인간이,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인간들의 의지에 대한 무게를 도대체 어떠한 저울이, 어떠한 심판이

측정 할 수 있겠는가.


망설일꺼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였다.


이 자리의 그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이 작전에서 빠져서 여기에 남지."


망설임 없이, 그저 담담하게 말하며 일어서는 제이는 문 쪽으로 다가가며, 그 서글플 정도로 기다란 장신의 등으로 말했다.


"모두 은밀 작전 행동을 떠난다면 정부측에서도 당연히 의도를 알아 채겠지.

나하고 미스틸테인이 남겠어. 아직 경험이 많다 하더라도 어린아이까지 챙기게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이곳 지부장하고도 대화가 통하는건, 이곳에서는 내가 적임일것 같으니 말이야. 나는 너희들이 하는 말, 작전들,

그 어떤 것도 못들은거야, 리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아저씨. 이곳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지 않나요? 그저 평범하게 갑자기 열린 차원문이 위상탐지기에 적발되지 않아서 긴급히 피해가 나오기 전에 보고 없이 급히 퇴치작전을 수행하러 정예 인원 둘이서 며칠간 자리를 비우는것 아니었나요?"


"그래, 네 말이 맞아, 리더."


입을 딱 벌리고서 둘을 쳐다보던 미스틸 테인은, 문득 문 밖으로 나가는 제이와, 그 등을 바라보는 슬비, 그리고 고개를 살짝 숙인채로 의자에 기댄 검을 어루만지는 그녀를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그가 문고리를 막 잡았을때 유리가 아직도 고개를 숙인채로, 조용 한 방 안이었기에 들릴 법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아저씨."


"그래. 건강이 제일이야. 잊지 마라, 얘들아."


어쩐지 그 모습에서 뭉클한 어떤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며 테인은 문 밖으로 사라져 가는 그의 등을 보고 달려가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릴 적, 그를 아껴주던 이들의 등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사실 하나가 그리 하게 만들었다.


문은 낡은 경첩 소리를 내며 닫혔고, 그렇게 남겨진 이들의 마지막 결정은 내려졌다.


그 결과가 의미 없는 파멸이던, 버둥거리는 벌레의 마지막 움직임과 같은 허무함일 지라도 그것을 알면서도


몸부림치기를 택한 네명의 결의는


그 싸구려 목재 향만 진득하니 묻어나는 실내에서 뭉클뭉클 피어오르고, 가라앉을 뿐이었다.






--------------------------------------------------------------------------------------------------------





"여기서 멈춰."


복면에 파묻힌 목소리가 차안에 울려 퍼졌고 곧 이어 덜컹거림과 함께 내부에서 들었을때도 굉장히 큰 엔진음을 내며 가던 차가 멈추었다.


"내려라."


속박은 여기까지라는듯이 굳게 닫힌 장갑차의 문이 열리고, 문 옆에 특수 고정장치로써 고정시킨 건블레이드의 고정이 자동으로 풀렸다.


잘 움직여지지 않는 발을 옮겨서 내리자 주변의 풍경이 보였다.


안개석으로 희미하게 부서지고 박살난 도시가 가려진 창문으로는 보여지지 않던 그의 눈에 적나라하게 그 몸뚱이를 드러내었다.


놀랍게도 그 차원종으로 인해 인류에게 방치된 시기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덩굴식물은

아스 팔트의 노면을 뚫고 건물을 타고 올라가 성장했으며

나무들은 가을에 물든 단풍 색으로 찬란히 빛났다.


그리고 조용하기까지 한 그곳은 누구나 그리 부르듯, 말 그대로의 차원종들로 이루어진 지옥이었다.


제 3차 경계선까지 걸어서 지나가자, 장갑차가 대기하고는 그를 태워 이곳까지는 보내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행동에서도 알 수 있듯, 특수 위상방탄처리된 이 차량조차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 바로 이 바리게이트의

밖이리라.


최종 게이트라고 불리는 1차 바리케이트인 이곳은 신서울과 떨어진 구서울을 경계하듯 세워져 있었고,


그 경계 속의 중앙인 곳에서 차는 멈추었다


"SS급 차원종을 찾아서 섬멸하라."


운전석이었을 쪽에서 들려온 말이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하는 장갑차의 엔진소리에 묻혀 사라지고, 멀어졌다.


곧 이어 장갑차의 문은 자동으로 굳게 닫혀버리고 다시한번 육중한 소리를 내며 장갑차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 뒤에는 없다는 얘기네. 섬멸했다고 하더라도 돌아오라는 말이 없었으니 죽으라는 소리인가? 하하..."


자욱한 안개 속에 홀로 남아서서 자조하듯 웃음을 흘렸다.


물론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 틀림 없었지만, 무너질듯 한 의식속에서는 그런 자조도 마치 사실처럼 그의

날카로운 신경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었다.


상념을 떨치고, 마침내 발걸음을 옮기자 새로운 세계가 그를 환영하듯 더욱 짙은 안개로써 그를 환영했다.


그에게 있어 주어진 보급품 중에는 GPS 장치가 있었고, 폐허가 된 이곳 지리가 나름 최신의

데이터 베이스로 남아있어 쓸만한 것이었지만, 그는 굳이 그것을 보 지 않았다.


그저 정처없이 떠도는 망령같이 마낭 안개 속에 펼쳐진 발밑에 조각난 아스 팔트 도로로 걸음을 옮겼다.


그 GPS 단말기에는 분명 예상 SS급 차원종의 위치가 몇군데 나와 있었을 테지만, 그에게는 그 사실을 인식

하고 있었음에도 그다지 단말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안개속을 떠돌면, 결국은 죽으리라.


차원종이 덮치던, 쳬허가 되어버린 건물이 머리 위에서 무너지던, 혹은 이렇게 떠돌다가 자신도 모르게

SS급 차원종을 만나던 죽으리라,

어쩌면, 걷다가 그냥 사라질지도 몰랐다ㅡ그런 생각이 들자 갑작스레 머릿 속을 마치 필름처럼 돌아가며

검은 양의 본부 안쪽 모습이 보였다.


운다.


모두 울고 있다.


들여다 보인 방 안에서 유정이, 유리가, 슬비가, 미스틸테인이, 제이가 울며 한숨 짓는다.


자신이 그 정도로 소중하길 바란 망상속의 망상인 것을 깨달았을때, 다시 한번 다른 장면이

몽환적이기까지 한 안개에 투영되었다.


웃는다.


검은 양의 본부에서 제이는 컴퓨터로 바둑을 두며 다리를 흔들다가 테인이 그림이 삐뚤어 진다며


짜증내듯 투정부리고, 유리는 편의점에서 산 것 같은 샌드위치인지를 물고 무언가를 작성하는 슬비에게


장난을 걸어 보 지만, 그녀의 염동력에 의해 갑작스래 날아온 연필자루에 머리를 얻어맞고는


들켰다며 헤실헤실 웃고, 그런 유리를 보며 슬비는 쿡 하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런 넷이 펼치는 양동 혼란작전에 빠져 작전 브리핑 개시를 알리려 들어온 유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난처하다는듯 엷게 웃는다.


그리고 그 지나칠 만 큼 행복한, 그리고 너무나 일상적인 광경 속에는 완벽하게도 그만이 결여되어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신이 바라고 있다는것을 알고 그도 기어코 웃고야 말았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죽은 후의 세계는 이랗게 행복하길 바랬다.


아름답기에 그 가치를 망각해 가는 기쁜 일상을 지내고, 미래에 닥칠 위험을 생각하기 보다는, 웃으며


극복하던 그때 그 시절에서 완벽히 자신만 빠져버리면, 그렇게 타인에게 괴로움을 안기지 않으면

더없이ㅡㅡ


순간, 몸이 움찔 했다.


극도로 훈련한 성과에 따라 단련되어있는 오감이 무언가 있음을 알려왔다.


이미 손은 건블레이드의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세이프티 그립을 잡고 검신을 반쯤 뽑은 후였다.


그리고 그 기척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안개에 의해 시야를 넓히지 못하는 것 이 한탄스러울 만큼

협소한 시각보다는, 청각을 이용했다.

울부짖으며 내지르는 고함소리, 짐승의 그것과 같은 성난 포효는 틀림없는 차원종의 기척이었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니 하염없이 안개 속을 걷기만 했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폐허가 된 시가지 안으로

이미 상당히 깊이 들어온 후였다.


당황하는 몸을 억누르며 건블레이드의 익숙한 손잡이와 방아쇠를 잡아 안정감을 얻으려 했지만,


오히려 그에 반해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괴성소리가 그의 온 방향에서 들려왔기에 터질듯한 긴장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크에에아아아악!"


마침내 가장 먼저 도달한 놈이 불쑥 나타나 그의 정면으로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왔다.


전체적인 생김새는 마치 개와 닮았으나, 칼날같이 길죽한 이빨과 황소만한 몸집과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꼬리와 발들은 놈을 개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없게 만들었다.


식별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브르 독(saberㅡdog)으로써, 개를 지칭하지만 말이었다.


차원문에서도 출현 시 무리로써 나와 집단행동을 한다고 알려진 놈들이었기에 그 흉측한 모습을 본 그는

왜 그리 많은 차원종들이 다가왔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이들은 하나하나가 B급 차원종보다도 강력한 전투력을 지녔기에 무리 전체를 소탕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전력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기세 등등히 도약해 그를 덮친 사브르 독은 정확하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공격 궤도에 이상하리만큼

미묘한 차이로 빗나가 스쳐간 인간을 보며 날카로이 세운 발톱으로 지면을 긁어 제동을 걸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뛰어들려 했으나, 놀랍게도 다리는 움직여지지 않았다.


차례차례, 자신의 발과 다리, 허리와 목이 잘려져 나가있는것을 확인하고 사브르 독은 죽어가며 이미

자신이 도약했을때부터 몸은 잘려나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대로 혀를 빼어 문 채로 고꾸라져 버렸다.


그 일이 끝난 후 몇초도 지나지 않아 뒤이어 두 놈이 동시에 뛰어들었을때, 그들은 눈 한번 깜짝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목표로 삼은 인간은 도저히 어디로 깄는지 찾아볼 수도 없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


뒤에서 블레이드로 한 놈을 베어버림과 동시에 옆으로 뉘인 검 째로 몸을 뒤틀며 산탄을 격발해

나머지 한 놈을 그가 산산조각을 내어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둘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한놈이 옆을 노리는것을 고개 돌리는것 조차 하지 않으며 바로 검의 궤도를 급격히 꺾어 총구를 그리로 향하고는

두번째 격발.


무언가 질긴 고깃덩이가 박살나는것을 느끼며 한번에 전 방향이서 뛰어들어오는 다섯마리의 사브르 독을 오로지 감으로써 인지하고는 그는 위상력을 그대로 끌어 모아 검에 흘려 보내었다.

단숨에 검에 푸른 너울이 휘몰아 쳤고, 그 강렬한 잔상이 그들의 망막에서 사라지지도 않았을 무렵에는 그들이 시끄럽게 짖던 소리가 가득하던 그곳에는 푸른 잔상이 회색빛 안개와 총구에서 흘러나오는 새하얀 연기를 조용히 가리며 오로지 침묵만이 내려앉았다.


그렇지만 그는 경계를 풀지 않고 전방을 주시했다.


분명 넷은 베는 감촉이 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한마리는 베이지 않았다.


분명 놓쳤던 것이며, 자칫 잘못했다가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일임이 명확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지극히 짧은 순간에 무엇인가가 정확하 놈을 죽였던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도움이었는지, 그를 사냥감으로써 인식하는 고위급 차원종인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 경계심은 다음 순간 들려온 말에 의해 눈 녹듯 사라졌다.


"쏘지 마. 아군이야, 이세하."


한치앞도 보이지않는 안개속이서 들린 말에 한참동안 멍하니 그곳을 바라보자 갑자기 불빛이 깜빡 거리더니 형체 둘이 이리로 걸어왔다.


안개에 가려 잘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치는 실루엣만으로도 그가 짐작하는 얼굴임을 알 수 있었다.

 

"너...너희들이 어떻게...!"


그는 겨누던 건블레이드를 천천히 내렸다. 세상을 양단하듯 가리던 건블레이드가 사라지자, 이리로 그새 조금 더 다가온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야. 이세하"


분홍색 머리에 항상 새침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던 그녀를 여기 까지 와서 볼 수 있을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세하야! 우리들이 늦어서 미안해!"


마치 달려들듯 그를 끌어 안는 두번째 실루엣도 이제는 누구인지 명확했다.


긴 칠흑같은 머릿칼이 뺨을 찰랑찰랑 간질이는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서유리. 이슬비."


이 뼈에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들을 다시 볼수 없을것이라고 불안해하며 여기까지 왔었다. 그렇지만 불안해 하던 일이 결국은 현실로 일어나지 않듯이, 절망 끝에 도달해서 보이는 것 은 지나간 고통이 아닌 새로운 희망임을 아직은 모르는 그였기에,

회색빛 안개처럼 몽환적일만큼 황홀한 두 얼굴이 환상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손을뻗었다.


그렇지만, 손이 닿은 곳은 연기처럼 흩어지는 아쉬운 허공이 아니라,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아 준 너무나도 부드럽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두명의 손이었다.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것 같아 그 온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건블레이드 마저 놓치고는 그 손을 붙잡았다.


아아, 그래. 그저 이것이었다.


그저, 이 온기가, 체온이, 따듯한 한줄기 다정함만이 필요했다.


그것이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아무리 미약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다정함에 갈증을 느끼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웃어버릴정도로 너무 체온에 목이 말랐고, 사람의 온기가 고팠다.


"자...잠깐! 뭐하는 짓이야!"


슬비가 깜짝 놀라 힘을 주어 잡는 그의 손에서 빠져 나오려 했지만, 이내 자신처럼 손이 잡힌 유리는 조용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그녀는 그저 눈을 감은채로 그의 손을 다른 한손마저 덮어 그 몽환적일 정도로 아련한 회색빛 안개 속에 그의 떨리는 손을 잡고 있었다.


문득 그 헌신적이리 만치 고결한, 그렇기에 아름다운 그 모습에 같은 여자였지만 시선을 빼앗길 뻔 한 자신을 추슬러 세우고는 다시 눈 앞의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평소 같았으면 도저히 용납할 만큼의 행동 범위를 넘어버렸지만, 이번 한번 만큼은 그녀조차도 그를 나무랄 마음은 없었다.


그녀가 눈 앞을 바라보았을때에는 놀랍게도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검은 요원용 장갑에 둘러쌓인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끼고, 그가 오열하듯이 이를 다문것을 보았기에,

도저히 목구멍까지 넘어온 말을 그에게 건넬 수 없었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바스라질 듯 한 마음 속의 지지대를 찾은듯 필사적으로 힘주어 잡는 손이 너무나 애처로웠다.


"아...아..."


탄식, 그리고 끝없이 새어나오는 그것이 흘러넘치는 그의 살짝 벌어진 메마른 입술은 아래로 일그러졌다.


살짝 긴 머릿칼에 가리어 회색의 공간 속에 묻힐듯 사그라든 그의 두 눈이 위치한 곳은 그늘져 그가 어떤 표정인지 알아** 못하게 막아 버렸다.


쓰라린 상처를 참는듯, 고통의 아픔을 묵묵히 인내하는 듯 너무나 힘겨운 그의 모습은 그 회색빛 안개에 휩싸여 더욱 그를 작아보이게 만들었다.


정적이 찾아들었지만, 그것은 결코 숨막히는 침묵으로써 다가오지 않았다.


비로소 참았던 숨을 들이 쉬는듯, 달콤하리만치 밀려오는 어떠한 종류의 안도감에서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감싸는것은 분명

그에게 다른 팀으로써의 강제 발령이 난 이후 처음으로 그들에게 찾아온 일종의 안식의 순간임에 틀림없었다.


"왜..."


드디어 침묵이 조용히 막을 내리고, 그는 그것보다도 조용히 말을 이었다.


"왜 온거야. SS급 차원종의 사살이라는 단독 임무를 받은 것은 나야.


너희들까지 이런 일에 휩싸이게 만들 수는 없어. 돌아가 줘."


거의 애원이라 할 정도로 절박한 그의 말에 유리도, 슬비도 대답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직도 무릎을 꿇은채로 그녀들의 손을 놓지 않고 말하는 그의 말은 생각 이상으로 그녀들에게 거부의 의사를 표명할 의지를 사그라들게 만드는 것에 일조했다.


부서져 버릴 듯 약하면서도, 그런 주제에 말 속에 숨은 강한 의지를 느낀 순간, 유리는 감았던 눈을 뜨고 무릎 꿇은 그에 맞추어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그녀가 얼굴을 들여다 보는것을 느끼고 그 역시 고개를 들어 유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렇게 널 내버려 둘 수는 없어서 따라 온거야.

세하야, 네가 그렇게 구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너를 구하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니?"


천천히 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슬비 역시 그녀처럼 무릎을 구부려 그의 눈보다는 조금 위에서 그의 머리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너만 고집 부려서 우리를 구하고는 멋대로 죽으러 간다는걸 우리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이세하."


마음 속에 죽 담아 왔던 그 말을 마치자 마자 갑작스레 그가 고개를 쳐 들었기에,

손을 붙잡고 있던 유리와 슬비는 퍼득 그 서슬에 놀라 뒤로 몇 발자국 물러 섰다.


그렇지만 그의 눈에 담긴, 어떠한 말로도 표현하지 못할 만큼

맑은 검은 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그녀들에게 강압적으로 돌아가라 한 말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너희들을 잃을 거라 생각했어...그리고 엄청나게 고민했단 말야...

죽는 것과 너희들을 돕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것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 너희들은 모를거야."


마치 자조하듯이 쓴웃음마저 담으며 말하는 그의 얼굴을 두 소녀는 바라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그 말 하나로써는 도저히 표현 못할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한 소년에게 전해 줄 가장 최선의 감사인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여길 왔다니."


그는 더욱 쓰게 웃었다.


어쩌면 그 역시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몰랐다.


그 반대의 상황이 되어도 이들은 자신을 구하러 오리라는 것을 아는 것은 아마 그가 아니라면, 검은 양의 일원이 아니라면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을 자신은 애써 잊으려 마음먹은 지도 몰랐다.


"어쩌면 우리도 너처럼 떼를 쓰고 싶을 때가 있는지도 모르지?"


살짝 웃으며 그에게 다시 한걸음 다가간 유리는 마침 생각 났다는 듯 그에게 맞추어 다시 한번 무릎을 굽혀 그의 눈을 보았다.


그 검은 눈 안에 들어 있는것은 고독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이제 그녀는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생각과 고민 속에 헛돌았다는것을 깨달은 그의 눈에는 그 어떠한 고통도 담겨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세하야. 잊어버린거."

 그녀는 주머니에서 꺼낸 검은색과 하얀색, 그리고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탈착식 패치를 꺼내어 세하의 아무것도 없는 어깨완장에 검은양 패치를 붙여 주었다.


마치 그것이 고통에 무릎꿇은 자에게 손 내미는 자의 모습같아 슬비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검은 요원복을 입고 있고, 유리가 흰 블라우스 차림의 요원복을 입고 있었기에 느낀 단순한 시각적인 효과일지 몰랐지만, 그것에는 분명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소속감없는것보다는 이게 더 좋지?"


미소짓는 유리의 표정에 세하는 아무 말 을 이을 수 가 없었다.


이들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따라 죽겠다 기꺼이 따라왔다.


도저히 이길리 없는 상대에게 내려진 사살 임무는 그저 불 나방이 불 속으로 날아가는것 이상의 무언가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지옥같이 날름거리는 화염 속에서도, 어쩌면 혼자인 것보다는 둘인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무심코 생각했다.


그것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안이하면서도 이기적인 감정일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그것마저도 판단하지 못하도록

부옇게 흐려져 버린 사고가 그 따듯하면서도 한없이 작은 체온에 몸을 맡기도록 만들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 하려는 자신을 보고 호되게 질책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는 더 이상 말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화제를 돌리기로 결심했다.


"그럼, 안개가 걷힐때까지 조금 다른 장소에서 쉬다가 야영 장소를 정하고서 이동하자."


거의 체념한,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드디어 발 디딜곳을 찾은 듯 한 그의 목소리에는 평온함마저 깃들어있었다.


그의 말에 알겠습니다, 정식요원님! 이라고 말한 채 세하처럼 배낭을 짊어지고서 그의 뒤를 따라가는 유리에게 도저히 못말린다는 듯 얼굴을 몇번 내저은 채 걸어가는 세하의 등을 본 슬비는 조그맣게 말했다.


"다행이야. 무사해보여서."


그렇게 그들은 그 끝없는 안개 너머로 천천히, 그리고 결코 멈추지 않은채로 사라졌다.


그들이 어떠한 결정을 내렸던, 그들이 무엇을 하기로 결심했던 시간은 멈추지 않고 그저 빠르게, 완벽한 귀결을 향해 움직였다.





---------------------------------------------------------------------------------




안녕하세요. 팬텀입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뵙네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문학깡패 엘세이드님이 콘테스트에 나가신다는 소식에

동료이자 파트너인 저 팬텀이 홍보를 해드려야죠!


아무튼 여기로 가시면 문학깡패 엘세이드님의 작품을 보실수 있으십니다.


[단편] 늑대개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categorysn=3&n4pageno=2&n4articlesn=3430


[단편] 석양

http://closers.nexon.com/ucc/fanfic/view.aspx?n4articlecategorysn=3&n4pageno=3&n4articlesn=3395


아까전에 한분이 콘테스트 나가실꺼냐고 질문하셨는데

물론 저도 시간이 나면 작성할꺼에요. 지금은 시험기간에다가 모의고사도 봐야해서...



그럼 다음주에 엘세이드님의 19화로 다시 뵙겠습니다.

굿나잇~



2024-10-24 22:28:0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