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커(Striker) - 1~5 (서장 : 스트라이커(Striker)

k41414 2014-12-19 12

 
 서장 : 스트라이커 

 * * *

 1.

 "버스트 액셀레이션?"

 이기고 있던 골드 승급전에서의 타의적 닷지는 직접 뼈를 맞은 것처럼 치명적으로 아팠다. 안 그래도 내가 캐리하던 게임, 내가 빠지면 우리편 똥싸개들이 지고 나서 내 탓이라며 우리 부모님 안부를 묻고 리폿하는 장면이 뻔히 그려지는 중에도 일단 급한 일이라고 해서 승급전 던지고 왔다. 

 아무튼 엄청엄청 급하다고 하니, 칼에 찔려도 속행하라는 골드 승급전보다 업무라는, 롤이 뭔지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귀감이라고 감탄할 필사의 의지로 승급전을 닷지하며 현장에 도착한 내게, 우리 팀 관리요원인 유정 누나는 날 보자마자 구슬 크기의 새빨간 큐빅 비슷한 물건을 내게 내밀었다. 받아서 가만히 집고 돌려보니 눈이 나쁘면 제대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작은 글씨로 '버스트 액셀레이션'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도 훨씬 긴장되고 초조해보이는 얼굴인 유정 누나는, 고개를 과장스레 세네번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째 고개 끄덕이는 것도 급해 보인다.

 "눈썰미가 좋네! 맞아, 세하야. 그 엘리트 모듈 '버스트 액셀레이션'은 네가 사용하는 건 블레이드의 버스트 코어에 장착하게 되면, 버스트 코어의 양자 집약 가속률이──"
 "저기요, 가동 원리같은거 설명해줘봤자 모르거든요? 지금 누나 얼굴만 봐도 상황이 엄청 급해 보이는데 간략하게 중요한 이야기만 해주시면 안될까요? 일단 버스트 코어에 장착하는 물건이라는 거잖아요."

 얼굴만 봐도 식은땀이 뻘뻘 흐르는게 엄청 급한 상황인데 설마, 했는데 또 평소 버릇 나온다. 작전 때마다 맨날 보는 얼굴인 이 20대 후반 독신 누나의 설명은 '전원 코드를 꽂으시오', '전원 버튼을 누르시오' 같은 별 필요치도 않은 내용만 잔뜩 쓰여져 있는 매뉴얼 같다. 심지어 본인이 엄청 급하다고 얼굴에 진하게 써놓은 지금까지도 평소처럼 쓸데없는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다. 긴급상황에서의 브리핑이라는 것은 자기소개를 생략하고 메뉴얼을 전부 다 읽는 게 아니라고.
 
 "아, 응……, 뭐, 그런 거야. 버스트 코어에 장착하면 건 블레이드의 발포 효율이 좋아져……, 뭐, 이런저런 부분에서."
 "흠. 그래요? 그건 알겠고. 그래서 작전 브리핑은요? 급해 보이는데 빨리 해줘요."

 ……거 봐. 이렇게 간략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그래, 알겠어. 본래라면 '검은 양' 팀 모두가 모여야 브리핑을 시작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정말 급한 상황이니 다른 건 모두 생략하고 바로 브리핑할게. 지금까지 미 통제구역이었던 강남역 외곽 도로에 갑자기 차원종이 무더기로 출현했어. 일단 인근에 있던 민간인은 거의 다 구출했지만……."
 "오케이, 알겠어요. 그러니까 강남역 외곽 도로에 갑자기 나타난 그 차원종을 처리해달라는 거죠? 단순한 이야기인데 뭐가 그리 급해요?"
 "아니, 그게 아니야."

 유정누나의 눈가에서 걱정스런, 어쩐지 자책하는 빛이 보였다. 어떤 의미인지, 유정누나는 힘없이 눈을 가늘이면서 말했다.

 "재래전력이 통하지 않는 C급 이상 차원종들의 저항에 구출 작전을 진행중이던 군경요원들이 여럿 중상을 입는 상황이 벌어졌어. 그렇게 군경요원이 어쩔 수 없이 철수하는 와중에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 세하야, 세하야!!!"

 * * *

 "이거나 먹어라!!!"

 여유따윈 없었다. 그저 길게 죽 늘어서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설치류가 두발로 선 것 같은 모습의 스케빈저형 차원종 놈들이 거슬려, 양손으로 쥔 건 블레이드를 전방으로 길게 찌르며 발포했다. 전방에 푸른 폭발이 자욱한 폭연을 만들며 작렬하고, 직선으로 군집한 놈들의 바리케이트를 양 옆으로 갈라버린다. 고작해야 손톱으로 싸우는 원시적이고 가소로운 놈들이 마치 군부대라도 되는 양 일정 간격으로 밀집해 내 앞을 막아서려는 그 모습이 지금따라 어쩐지 더욱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좀 더 빠르게!

 왜 이리 정신 없이 뛰고 있는지, 솔직히 말해 나도 잘 모르겠다. 유정누나가 이 앞에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는 말을 들려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난 이미 특경대의 거슬리는 사이렌 소리를 저 멀리 뒤로하고 내달리고 있었다.

 왜? 다른 사람들이 걱정되어서? 매 작전마다 전력으로 임하는 슬비도 아니고, 매일 진지하지 못하다고 지적이나 받는 내가? 

 "챠앗!!!"

 싱크홀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밤이라 그런지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 구멍의 나락이 눈 앞에 최소 직경 3M는 넘는 규모로 벌어져 있었다. 어쩐지 머뭇거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력으로 도약하며 올려든 검 블레이드를 수직으로 내려친다. 착지하는 위치에 새빨간 오징어 같은 차원종 놈이 눈알을 껌뻑거리며 내게 무언가를 쏘아내려다가 그대로 베어져 꾸물거렸다. 블레이드의 검신에 달라붙는 것 같은 찐득찐득한 소리가 혐오스럽다.

 그렇게 눈을 들고 바라본 전방. 다음은 누구냐, 라고 생각하며 눈 앞을 바라본 그 순간에, 본능적으로 멈칫한 손에서 건블레이드를 떨어트릴 뻔 했다. 

 말도 안 돼.

 하나, 둘, 열, 이십──, 세는 의미가 있는 거야, 이 숫자는?!

 "이런, 너무 많아!!!"

 듣는 사람도 없는데 건블레이드를 고쳐쥐면서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는지는 모르지만, 평범한 차원종 발생과는 무언가 규모가 다르다.

 욕짓거리를 내뱉어도 이미 늦은 걸까. 뛰쳐나가기 전, 유정누나가 아직 대피시키지 못한 민간인이 차원종에게 고립된 긴급 상황임에도 날 무작정 재촉하지 않았던 건 단순히 유정누나가 짜증나는 설명충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을 이미 파악하고 내게 설명해주기 위해서였을까.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는데, 후회해도 늦다. 너무 늦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넘어온 구멍을 돌아 전력으로 도망칠 것이냐면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모른다.

 대체 왜 이렇게 평소답지 않게 이 작전에 모든 것을 걸고 전력을 다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른다.

 그것이 단지, 내가 지금까지 맡아왔던 작은 작전과는 달리, 처음으로 아무 잘못이 없는 다른 누군가가 휘말린데 대한, 지금까지 나도 모르고 있던 사람의 목숨에 대해 느낀 모종의 위기감 같은 것인지, 그 누군지도 모르는 누군가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인지, 그런 것도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이 자리에는 지금 내가 있고, 또한.

 "……그 누군가를 구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도 있는 거고."

 보이드.

 껌뻑거리는 눈알과 끼릭거리는 소리가 굉장히 혐오스러운 차원종 놈들로, 통상적인 형태는 내가 아까 베어버렸던 오징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놈들이다. 그런 보이드 개체들의 평균적인 모습보다 눈알이든 몸집이든 배는 커다란 보라빛 보이드 놈들이 전방에 적어도 스물 이상 군집하고 있다. 아마 이놈들도 어느어느 보이드라고 분류되어 있는 놈들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는 보이드라든가. 하지만, 그딴 건 중요치 않다. 다만, 필요하다면.

 "쓸어버려랏──, 폭령검!!!"

 벨 뿐이다!!!

 * * *

 2.

 "크으, 힘들어……."

 ……똑같은 말 또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있지, 유정 누나. 이건 무더기 수준이 아니잖아요.

 정신을 차리고 스마트폰을 내려다 봤을 땐 내가 강남역에서 내달린지 어느새 1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적당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베어넘기고 정신 없이 뛰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멈춰선 주위에 차원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게 없는 내게 괜히 분해져 나는 내 옆에서 파괴된 채 깜빡깜빡 불빛이 점멸하는 음료수 자판기를 발로 걷어찼다. 음료수를 고정하는 부분이 망가져 있었던 탓일까. 내가 자판기를 걷어찬 바람에 자판기가 난데없이 음료수를 토해냈다. 오, 하고 놀라 집어보니 녹차였다. 

 "자판기를 부숴버릴까……."

 망가진 견본품 목록에 콜라가 보여 그런 충동이 들긴 했지만, 근처에 아직 작동중인 CCTV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애써 참으며 녹차 캔을 따서 마셨다. 냉장 기능이 망가졌는지 미지근했다. 자판기가 파괴된 것은 자판기의 차가웠던 음료수가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 그 말인 즉, 상황이 벌어진지 이미 한참이 지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까지 자신한테 분해 뜨겁기만 했던 머리가 제멋대로 차가워졌다. 그 뿐인가. 위험에 처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누군가가 이미 어떻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생각도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 차였다.

 사박!!!

 "읏!"

 분명히 들었고, 분명히 봤다. 내 눈 앞 수풀가가 일순 바람에 흔들렸다기에는 비정상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소리를 낸 것이다. 눈가가 싸늘하게 식었다. 건블레이드를 높이 들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은신인가. 차원종은 분명히 지능이 존재한다. 마치 군대처럼 군집해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대적하기 위한 진영을 짜거나 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개중에 상위 차원종중에는 외모까지 인간과 같아 쉽게 구별할 수 없는 놈들까지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설마 이게 그런 상위 차원종……?

 그런 생각에 다다르니, 일순 머리에 긴장이 내달리고, 먼저 선수를 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했다. 망설이지 않는다. 자, 간다!!!

 "먹어라아아──!!!"
 "꺄아아아앗!"
 "엥?"

 건 블레이드의 발포 기능을 작동시키고, 정면을 향해 공파탄을 격발하기 직전에 들려온 웬 여자애의 비명이 내 발포를 붙잡았다. 분명히 여자애 비명소리였다. 그것에 당황해 건 블레이드를 내리고 수풀쪽으로 뛰쳐들어가 그 안쪽을 살폈다. 거기에는 몸을 웅크린 채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는, 내 또래거나 나보다 한 두살 어려보이는 가녀린 인상의 여자애가 있었다.

 "찾았다……, 너……?!"
 "엣……?!"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탓에 거의 반쯤 포기 상태였다 찾은 민간인이었기에, 내가 생각해도 좀 꼴사납다 싶을 정도로 큰 목소리가 나왔다. 나도 이런 일에 흥분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고 나도 모르게 조금 멋쩍어 헛웃음을 흘릴 때, 그 소녀는 눈을 크게 뜨면서 말했다.
 
 "사, 사람이에요?"
 "그럼 뭐겠어. 차원종으로 보여?"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바라보자니 괜스레 지금까지 고생한데 대한 짜증이 몰려와서 나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말해버렸다. 그런 말투 탓인지, 소녀는 내가 말할 때 몸을 살짝 움찔, 하고 떨었다. 그 모습에 괜히 죄책감이 들어, 나도 모르게 나 자신에게 싫은 신음이 나왔다. 그리고, 이딴 건 낯뜨거운데…….

 나는 일단 수풀 속에서 다리가 풀린 채 주저앉아 있는 소녀에게 장갑 낀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아무렇게나 말했다.

 "시간 없으니까, 일단 나가자. 나, 너 때문에 한 닷지때문에 잃어버린 RP 다시 올려야 되니까 시간 없어."

 * * *

 겉보기와 운동신경은 완전히 다른 슬비나 유리와는 달리, 민간인 소녀는 가녀린 겉보기 그대로였다. 위상력으로 각력을 전혀 강화하지 않았음에도 뛰는 속도가 나보다 두 배는 느려, 도무지 주위에서 덤벼오는 차원종을 무시하고 피해가며 도망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조우하는 차원종을 하나 하나 전부 베어버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내 건 블레이드는 차원종 놈들이 흩뿌리는 더러운 체액 같은 것으로 반쯤 범벅이 되어버렸다. 통상적인 금속에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차원종 놈들의 체액 특성상 내 건 블레이드는 이대로 가면 정상적인 상태가 유지될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쩔 수 없지 않는가. 귀찮다고 해서 작전의 목적이었던 이 민간인 여자애를 버리고 갈 수도──!!!

 "야, 숙여!!!"

 윽!!! 이번엔 뒤쪽이었다. 깜짝 놀라 자리에서 주저앉는 소녀를 그대로 뛰어넘어 뒤에서 거대한 도끼를 내려치는 커다란 차원종,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우 같은 느낌을 주는 차원종인 트룹의 공격을 받아쳤다. 힘과 힘이 부딪쳐 놈이 잠시 움찔하는 그 순간에 재빨리 검을 빼 놈의 가슴팍에 꽂아넣고 그대로 발포했다. 푸른 폭발이 폭풍을 동반하며 작렬했다.

 "꺄아앗!!!"
 
 소녀가 비명을 지르고 몸을 한층 더 움츠렸다. 나는 그런 소녀의 얇은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외쳤다.

 "솔직히 이젠 나도 힘들다고!!! 시간이 없어, 빨리 가자!!!"

 짜증스런 목소리로 아무렇게나 나오는 대로 주어섬기고, 나는 주저앉아 있는 소녀를 그대로 일으켜 걸음을 재촉했다. 일단 한 명을 구해내긴 했는데, 몇 명이나 구역 내에 더 남겨져 있는 거야……?! 나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그렇게 숨이 더욱 거칠어질때 쯤, 갑자기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니, 울린게 아니라 이제서야 느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급해서 지금까지 느끼고 있지 못했는데, 부재중 통화가 무려 121통이었다. 발신자는 전부 김유정. 내가 속한 대 차원종 클로저(능력자) 팀, 검은양의 관리직인 유정누나였다. 오른손으로 건 블레이드를 강하게 쥐고 주위를 경계하며, 나는 왼손으로 쥔 스마트폰의 통화 기능을 조작했다.

 "여보세요, 유정 누나?"
 『이세하!!!』
 "윽?!"

 귀가 터지는 줄 알았다. 익숙한 새침한 목소리인데 어쩐지 물기가 담겨 있는 것은 기분 탓일까. 같은 '검은양'의 팀원인 슬비였다.

 "뭐, 뭐야?! 왜 네가 유정 누나 핸드폰으로……."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네가 혼자 작전 지역 깊숙히 뛰어들어갔다길래 널 찾다가 나도 모르──, 아, 아니,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쩐지 평소의 슬비답지 않게 거칠고 급한 목소리였다. 거기에 나도 모르게 놀라 눈을 껌뻑거리고 있자하니──, 크악?! 또 보이드냐!!! 건 블레이드를 잡은 손에 힘을 더 세게 줬다. 한 손으로 휘두르면 힘든데, 이거!

 『그, 그래서 대체 어디까지 간 거야?! 너는! 그리고 왜 찾기도 힘들 정도로 멀리 가버린 건데!』
 "뭐랄까, 좀 통제구역 안까지 와 버렸어. 그리고 왜 갔냐고 물어본다면 작전 때문인게 당연하잖아! 이렇게 뒤에 생존자도 찾았고──"
 『뭐야? 생존자를 찾았어? 다행──이 아니라 그렇다면 지금 바로 귀환해야 할 거 아니야!』
 "응? 뭐야, 다른 생존자도 찾아야지, 뭘 바로 귀환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인근에서 갑자기 신원이 사라진 사람은 여자애 한 명 밖에 없단 말이야! 분명히 유정 누나가 브리핑에서──』
 "으……."

 한 명이었냐.

 나, 브리핑, 다 못 들어서 몇 명인지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네…….

 아무튼, 슬비의 잔소리가 어째 무지 길어져서, 나는 일단 아무렇게나 귓가에서 스마트폰을 뗐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세하!!! 같은 신경질적인 높은 소리가 이어지기에, 나는 일단 통화 종료를 누르면서 주머니에 스마트폰을 아무렇게나 쑤셔넣었다. 왜 이래 얘, 평소답지 않게 오늘따라 말도 많고……, 신경쓰이게 무지 걱정한 것 같은 목소리 내고…….

 "근데,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슬비."

 나도 모르게 침이 목구멍을 넘어갔다. 뭐냐고, 뭐냐고, 대체, 이건…….

 "이 놈은, 뭐야……."

 놈은 내 앞에서 꾸물거리면서 무언가를 쏘아낸 보이드 뒤에 서 있었다. 보이드가 쏘아낸 끈적끈적한 덩어리 같은 것을 건 블레이드로 쳐내면서도, 나는 그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게 다가오는 '놈'을 바라보면서, 숨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괴, 물……."

 그렇게밖에 부를 수 없는, 그런, 진짜 '괴물'이었다.

 * * *

 3.

 보이드가 찌걱, 하고 껌이 도로 포장재에 달라붙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면서 짓밟혔다. 내 키의 절반 정도는 될법한 보이드를 한 발로 그냥 밟아버릴 정도로 놈은 거대했다. 이런 놈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8~9층 빌딩 정도는 될 것 같은 이런 거대한 차원종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을리가 없지 않은가. 멀리서 봐도, 높게 솟아 주위 시야를 가리고 있는 역전 건물들보다도 훨씬 큰 놈인데…….

 놈은 발걸음 소리부터 거대했다. 쿵, 쿵, 쿵, 하는 놈의 무게가 땅을 디디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시키고 비명을 지르게 만들었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며 오른손에 쥐고 있던 건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강하게 쥐었다. 땀이 났는지 장갑 안쪽이 축축해졌다.

 "에, 으, 아……."

 소녀가 공포에 먹힌 소리를 내며 내 자켓을 붙잡아왔다. 나도 질린 건가,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움직이는 오른손을 검 손잡이에서 떼고, 소녀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한 번 두드렸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어쩐지 찐득찐득한 느낌이 드는 놈의 붉고 흉측한 눈이 안광을 발했다. 놈은 나를, 내 뒤의 소녀를 보고 있었다. 그 입이 벌어지고, 끈적끈적한 타액이 뚝 떨어져 내 눈앞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타입, '타이탄'.
 
 아마도, 놈을 부른다면 타입 자이언트라든지, 타이탄이라든지, 그런 이름이 적절할 것 같은 모습이다. 그야말로 레이드 몹의 실체화인 그것을 눈으로 담으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턱이 알아서 이를 악물었다.

 달칵, 하고 발포 트리거를 조작했다. 뚫을 수 있을까? 저런 놈의 가죽을?

 『Radical Jacket, Ready.』

 일단은 거침 없이 다가오는 놈을 견제해야 한다. 차원종 기동차단 무력화용 발포탄, 첨예관통탄이 건 블레이드의 블래스터 타입에 대체 장탄된다. 높은 관통력을 가진 이 탄환은 차원종의 가죽을 찢고 체내로 침투해 연쇄 폭발을 일으켜 지속적인 경직을 줌으로 상대의 이동을 저지하는 발포모드다. 너무 고출력이라, 이 탄은 익숙하진 않긴 한데…….

 "야, 꼬맹이, 내 뒤에서 비켜. 내 등에 얻어맞는다."

 확실히 경고했다. 벌벌 떨고 있으면서도 내 말뜻은 이해했는지, 소녀는 부들부들 떠는 다리를 움직여 옆으로 후다닥 피했다. 그걸 확인한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잠시 멎어있던 심장에 다시 터질듯이 피가 돌기 시작한다. 잠시간 차갑게 식어있던 온 몸이 멈추지 않고 움찔거린다. 확신은 없다. 다만.

 "젠자아아아앙, 첨섬탄(尖殲彈)!!!"

 여기서 물러서면, 나도, 저 꼬맹이도, 다 죽는다!!!

 평소와는 다른 자색 섬광이 건 블레이드의 블래스터 머즐 브레이크에서 작렬했다. 내 위상력을 화약으로 삼는 블래스터 포격이 두꺼운 가죽을 뚫기 위한 관통력을 얻는 경우는, 별로 어려운 원리는 아니다. 그저, 탄속을 살리기 위해 폭발 범위를 포기하는 대신, '모두 꿰뚫어버릴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를 얻은 사격일 뿐.

 쾅!!!

 건 블레이드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창 같은 자색 섬광을 초고속으로 쏘아냈다. 그 반발력이 내 몸에 달려들어 내 몸을 뒤로 크게 쳐날렸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억지로 다리에 힘을 줘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놈의 가슴을 향해 날아간 첨예관통탄이 그늘져 시커멓게만 보이는 놈의 가슴팍에 푸른 섬광을 튀기며 작렬했다. 지저분하게도, 괴물은 가슴에 시커먼 털 같은 것이 수풀마냥 자욱했다. 푸쾅!!! 하는 날카로운 굉음이 놈의 거대한 몸을 억지로 뒤로 꺾었다.

 『쿼워거거거거거거거!!!』
 "가악?!"

 놈이 고통스런 목소리를 내는 귀를 찢는 굉음이 귓가를 유린했다. 콘크리트 벽조차도 가볍게 관통하는 첨예포도 놈의 가슴을 뚫지 못했다. 고막이 터진 것마냥 웅웅하고 소리가 먹히고, 고통스러운 통증이 가득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가볍게 뛰어 벽을 찬다. 위상력이 양 다리를 푸르게 휘감고, 벽을 걷어찬 몸이 길게 도약했다. 순식간에 7,8M를 극복하고 뛰어올라, 양 손으로 건 블레이드를 쥐고 내려친다. 비틀거리는 놈의 안광이 나를 잡았다. 이 멀리 뛰어올라서도 한 눈에 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얼굴이, 정면에 있었다.

 이건 어떨까, 이세하식 결전검 제2식──!!!

 "유성검──!!!!!"

 건 블레이드를 휘감은 폭발적인 위상력이 푸른 섬광의 폭풍이 되어 내지르는 수직베기에 실렸다. 온 힘을 다해 휘두르는 일검 뒤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전신을 꿰뚫어 뒤로 향했다. 폭풍으로 인한 충격파를 견뎌내는 온 몸에 격통이 내달리고, 크게 내려친 건 블레이드의 파괴적인 폭풍이 이윽고 건 블레이드의 베기를 따라 놈의 상부에 작렬했다. 

 『쿠워어어어어어어어!!!』

 콰지지지직!!!

 맹렬한 위상력의 푸른 스파크가 놈의 어깨를 찢어내린다. 온 몸에서 짜낸 위상력이 만들어내는 파괴의 폭풍이 놈의 어깨부터 가슴께까지를 푸르게 태우며 찢어내린 바로 다음 순간, 웅, 하고 무겁게 휘둘러진 놈의 손이 내 팔을 후려쳤다. 그 탓에 검이 뽑히면서 몸이 붕 뜨고, 그저 그 뿐일 터였는데.

 "거─?"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맞은 직후였다. 거인의 손에 맞은 내 몸은 검째로 붕 뜨는 것뿐이 아니라 마치 포탄과도 같이 날고 있었다. 그것도 지면을 향해, 그 자리에는──!!!

 "위─허?!"
 "꺄, 꺄아아아앗!!!"

 콰과과광!!!

 놈의 일격에 맞아 일발의 섬광과도 같이 날아가버린 내 몸은 추락 직전에 몸을 지키기 위해 개방한 위상력에 감싸여 그대로 떨어진 지면의 도로 포장을 거칠게 파내버리며 꼴사납게 굴렀다. 온 몸에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격통이 내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눈은 뜨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찾는 눈에는, 내가 구해낸 소녀가 아무렇게나 내달려 쓰러진 채 울먹거리며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이세하 씨……."
 "크으……, 멀쩡한 거지? 아프다……, 그나저나 내 이름은 어떻게……?"
 "그, 아, 아까 통화때 소리가 너무 커서 우연히, 엿들으려던 건 아닌……, 위험해요!!!"
 "크윽──?!"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몸이 낡은 철마냥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정말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온몸에 찢어질 것 같은 격통이 가득했다. 입에는 기분 나쁜 쇠맛이 가득하다. 이번엔 놈이 그 무시무시한 덩치에 걸맞는 거대한 손을 주먹쥐고 내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 내리찍고 있었다. 저런 거에 맞았다간 위상력으로 몸을 감싸든 말든 아까 보이드처럼 도로 포장재 위의 껌딱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냥 달리면 늦는다. 분명했다. 억지로 움직인 다리를 위상력으로 강화해 몸을 쳐날렸다. 허공에 가볍게 떠오른 몸이 고속으로 아무렇게나 날아갔다. 쿵!!! 하는 소리에 이어 도로가 구덩이를 만들며 깊게 파였다. 

 건 블레이드를 양손으로 고쳐 쥔다. 매일같이 이 손에 들어온 녀석임에도, 오늘따라 건 블레이드가 무시무시하게 무겁게 느껴졌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놈에게 한 방 맞았을 뿐인데도 몸이 얼마나 크게 내몰렸는지를 대변한다. 울컥, 하고 구역질과 같이 목구멍을 역류하는 타액을 아무렇게나 뱉어내고, 비틀거리는 몸을 고쳐 놈을 직시한다.

 "안, 안돼! 도망가요, 지금 도망가야 돼요!"

 소녀가 외쳤다. 마치 찢어질 것 같은 간절함인 채 눈물까지 흘리면서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저렇게 거대한 놈이라면, 놈의 자세한 속도를 모르는 이상 지금 내 몸상태랑 네 느려터진 달리기 속도를 봤을 때, 도망치다 쫓겨서 당해버릴 수도 있어. 게다가 그뿐이 아니야. 저 녀석 말고도 다른 차원종이 우글우글하다고, 이 인근에는."
 "그,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간절한,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억지로 끊는다는 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지만.

 "진짜 게이머는, 레이드 몬스터를 상대로 도망가지도, 지지도 않아."

 
 * * *

 4.

 내 옆으로 내려쳐지는 거인놈의 주먹을 몸을 날려 피해내며 그대로 건 블레이드를 정면으로 내밀었다. 타입 체인지, 공파탄!!!

 바로 내 눈앞,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푸른 폭발이 작렬한다. 다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폭발은 연쇄의 사슬이 되어 길게 그 폭발규모를 더해가, 내가 겨눈 거인의 복부쯤이 되었을 때에는 놈의 거대한 배 절반을 덮을 정도로 커져서 추가로 두 세번 더 폭발했다. 놈이 뒤로 움찔했다. 블래스터의 쿨링 타임을 기다려야──.

 "응?"

 본래 공파탄이나 첨섬탄 같은 특수 발포 기능을 사용하면, 일순 내 위상력 에너지를 잔뜩 사용하게 되는데다가 블래스터 코어가 정상적 기동이 어려울 정도로 과열되는 탓에, 전투 지속을 위한 내 몸상태와 건 블래스터의 내구성을 고려해 특수 발포 재사용까지 쿨링 타임이라는 블래스터의 권장 과열 냉각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말해주는 쿨링 타이머가 건 블레이드의 블래스트 코어 부분에 위치하는데, 아까 유정누나에게 받은 버스트 액셀레이션을 박았던 블래스트 코어 옆에 존재하는 쿨링 타이머는 여전히 발포 가능 상태인 『READY!!!』 메시지를 출력하고 있었다. 적어도 공파탄을 한 번 사용하면 10초 남짓의 쿨링 타임이 필요함에도, 여전히 활성 상태인 건 블레이드를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건 블레이드에서 평소에 들을 수 없던 우우웅, 하는 회전 활성음이 들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블래스트 코어 쪽의 버스트 액셀레이션에서 나는 소리였다. 각이 진 큐빅 같은 모양의 버스트 액셀레이션은, 마치 둥그런 원으로 보일 정도의 고속으로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었다. 느낌이 온다. 블래스터 코어 활성 부분만이 아니다. 어쩐지 평소보다 건 블레이드가 발포를 위해 요구하는 위상력의 소모가 적다. 나는 유정누나가 말했던 버스트 액셀레이션의 발포 효율 증가가 무엇인지 대략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옳아, 이거였군……!"

 답이 보였다. 그렇다면 망설이지 않는다. 다시 놈의 주먹이 쿵! 하고 떨어진다. 그것을 피해 몸을 날린 자리에 이번엔 놈이 오른발이 떨어져온다. 순간 위상력으로 강화한 다리로 도로를 강하게 차 그것을 피해내며 질주해, 순식간에 놈의 가랑이 사이로 들어가 놈의 왼다리 쪽을 향해 건 블레이드를 강하게 찔러넣었다.

 이거나 먹어라!!! 공파탄!!!

 놈의 왼발 아킬레스건 바로 옆에서 갈겨버린 공파탄이 맹렬한 연쇄 폭발을 만들어내며 놈의 발을 옆으로 쭉 쳐밀었다. 놈은 귀청이 터져버릴 것 같은 굉음을 내지르며 연신 비틀거렸다. 비틀비틀 쿵쿵대며 지면을 짓밟아대는 놈의 왼발에서 빠르게 빠져나와, 나는 놈의 발 뒷꿈치를 크게 베면서 다시 한 번 건 블레이드를 돌려 찔렀다. 이번에도 공파탄!!!

 퍼걱!!!

 맹렬한 굉음에 이어 더러운 체액과 살점 튀는 소리가 놈의 발치에서 사방에 튀었다. 내 뺨에도 보라색 체액이 튀었지만 그딴 것에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놈은 그 지나치게 거대한 크기 탓인지 자기 발 바로 뒤쪽에 있는 나를 바로 찾지 못하고 허공을 뻥뻥 걷어차댔다. 여전히 READY. 공파탄, 공파탄, 공파탄!!!!!

 끊임없이 작렬하는 푸른 작열포가 놈의 발을 도려내고 또 도려낸다. 그렇게 한참을 쏘아내다 겨우 쿨링 상태가 되어 건 블레이드를 회수했을 때, 이 왕 차원종 놈은 그제서야 머리를 뒤로 옮겨 자신의 발뒤꿈치를 계속 노려대던 나를 발견했지만, 엉망진창이 된 발에서는 이미 힘이 빠져 거대한 몸이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 놈은 마치 지진처럼 사방을 진동시켰다. 그 무너져가는 거대한 몸이 도로를 박살내면서 봄 황사는 애교로 보일 정도의 흙먼지를 자욱하게 흩뿌려댄다. 그 타이밍을 놓칠성 싶냐. 그대로 놈의 쓰러진 다리 위에 올라타 그대로 놈의 상체를 향해 내달렸다. 내 무게를 느낀 걸까. 놈은 나를 떨쳐내기 위해 다리를 맹렬하게 움직여댔다. 흔들다리와는 수준이 다른 위기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다리를 위상력으로 강화해 허공을 한 번 강하게 찼다. 차갑고 거친 바람이 머리칼을 뒤쪽으로 뒤집는다. 다리를 멈추지 않고 내달리면서 건 블레이드의 블래스터 부분을 조작해 '결전기'로 변경시킨다. 건 블레이드의 차원절단 검날로 놈의 왼쪽 무릎부터를 길게 찢어간다. 건 블래스트에 막대한 발포 에너지가 집약되고, 순식간에 복부를 넘고, 가슴을 넘어, 거대한 붉은 눈이 번뜩이는 흉측한 머리에 도달한다. 몸을 일으키려는 놈의 가슴 위에서 도약해, 그대로 들린 놈의 안면에 건 블레이드를 들이대고──!!!

 "이세하식 결전검 제1식──, 폭령검!!!"

 놈을 길게 찢은 검날에 이어, 첨섬탄이나 공파탄과는 규모가 다른 거대하고도 푸른 폭발이 놈의 안면에 그대로 작렬했다. 귓청을 윙, 하고 먹게 만드는 푸른 폭연이 놈의 얼굴을 가린다. 하지만, 그런 중에도 놈은 일어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고통에 맹렬히 울부짖으며, 놈은 온몸을 비틀어 억지로 일어섰다. 떨어지기 직전이 되어 놈의 가슴을 다시 한 번 걷어차고 허공에 도약한다. 휘백색의 위상력이 나를 공중으로 날려올리고, 거기에 모든 것을 실어, 다시 다시 한 방이다. 

 Warning!!! 공파탄 연사에 이어 큰 공격을 속행한 직후기 때문인지, 명령 오버드라이브를 인식한 건 블레이드가 띠잉띠잉!!! 하고 새된 경고음으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무기 안부 물어줄 정도의 여유는 없다. 억지로 모드를 다시 결전기 모드로 전환시킨다. 위험 상태에서 최대출력 공격의 강제를 인식한 건 블레이드가 명령 강제 속행 상태인 'Over Ready'를 출력시킨다. 이는 건 블레이드의 내구 한계선이라는 의미로, 이 상태에서 계속해서 발포하면, 그것도 출력이 통상 발포와는 규모가 다른 결전기 모드로 발포하면 건 블레이드의 수명이 순식간에 작살나는 것은 당연하다. 엄청 혼날 거다. 당연하다. 이 엄청 비싼 건 블레이드를 이렇게나 혹사시키고 나면, 기술 문제와 클로저 병기 취급 문제 탓에 이걸 수리할 수 있는 사람도 몇 되지도 않고, 이렇게 전투 중에 맛이 간 파트도 제한적으로 지나치게 비싼 값에 생산되기에 대체할 파트 하나하나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상상하기도 무서울 정도니까.

 "이걸로 끝이다, 이세하식 결전검, 제3식──!!!"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경제적인 고민을 할 때는 아니다. 지금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은 오직 눈앞의 거인 놈 뿐. 격통이 가득한 온몸을 건 블레이드 이상으로 오버드라이브시켜 억지로 가동시킨다. 온몸의 위상력과 힘을 다 짜내 양 팔을 뒤로 크게 당기고, 정면에 위치한 놈의 점액투성이 흉측한 얼굴을 향해 찔러넣는다. 붉푸르다 못해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 강렬한 위상력의 스파크가 나선형으로 놈의 얼굴을 향해 뛰쳐들고, 그 맹렬한 파괴의 나선을 따라, 쥐어짜내듯 한계 수준까지 위상력 에너지가 집약된 블래스터의 머즐 브레이크가 입을 열고──!!!

 "끝이다, 절명검(絶命檢)!!!!!"

 푸른 나선의 섬광이 한 자루의 거대한 랜스가 되어 괴물의 안면을 관통하고, 그 뒤를 맹렬히 쫓는 건 블래스터의 기관총과 같은 연사가 위상력의 랜스가 뚫고 지나간 놈의 두부를 계속해서 찢어발겼다. 너무 큰 발포 에너지 탓에 이윽고 거인 괴물에게서 맹렬한 충격파가 이윽고 내 쪽으로 되돌아오고, 나는 그대로 충격파에 밀려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쾅!!!

 "큭?!"

 위상력으로 몸을 감싸고 박아버린 탓에, 근처 학원 건물 외벽에 툭 치면 부숴져버릴 정도의 금을 내버렸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추락해 바닥을 구르며 올려다 본 거인형 차원종은, 몸을 일으키던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렇게 1초, 2초, 3초, 건 블레이드를 쥔 손에서 긴장을 잃지 않고 기다렸다. 10초, 20초, 30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설마 실패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그렇게 47을 셌을 때.

 『구──』

 거인형 괴물은, 나지막하게 입에서 그런 소리를 낸다 싶더니, 그대로 쿵, 하는 소리를 내고 쓰러져.

 ──더 이상, 아무 소리를 내지 않게 되고, 나는.

 "아, 성, 공……."

 ……답잖게, 다리에서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 * *

 5.

 "……낯선 천장이 어째 빈약한 가슴이군."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렇게 눈을 뜨니 어째 낯선 천장인데, 그 낯선 천장이 참으로 안쓰러운 빈약한 가슴이라 감상 그대로를 내뱉으니, 갑자기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별이 보였다. 눈이 번쩍 뜨여 "헤엑?!" 하면서 몸을 일으키니, 내 바로 옆쪽에 날 외면하고 있는 우리 '검은양'의 리더인 작은 체구의 여자애, 이슬비가 있었다.

 "뭐야, 왜 때려?!"
 "난 이세하를 때린 적이 없어. 그저 무례한 벌레를 잡았을 뿐이지."

 그렇게 새침하게 툭, 하고 쏘아붙이듯 말하고 나서 슬비는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듯 나를 외면했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주위는 슬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리, J형, 미스틸……, 작전할 때는 어디가고 다들 여기에 있는 거야?

 "와, 뭐야?! 다들 뭐하다가 다 끝나니까 다들 여기에 있는 거야? 나만 엄청 고생했잖아."
 "세하 형이 아니라 우리가 이상한 건가요?"

 혼자 개고생하고 나서 난데없이 이렇게 다들 주위에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난데없이 평소에는 헤헤거리며 귀여운 표정만 짓는,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여자애일리가 없는 외모의 미스틸 테인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싸늘한 얼굴인 채 내게 툭 내뱉듯 그런 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그 박력에 숨을 삼켜버렸다. 근데 그런 얼굴도 귀여웠다.

 "……차원종이 잔뜩인 그런 데서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그런 널 주워온 건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세하."

 가만히 돌아보니 그건 싸늘하게 말하는 J 아저씨도, 처음부터 싸늘했던 슬비도 마찬가지. 모두가 나를 똑같이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모두랑 다른 건 오직 처음부터 내가 일어나자마자 하고 싶은 말이 잔뜩이라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유리뿐으로.

 "우와,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이세하?! 그렇게 커다란 차원종을 혼자 쓰러트리고 말이야!"

 어쩐지 싸늘한 공기를 자신만 못 읽은 것인지,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반짝거리며 그런 걸 물어온다. 막 눈을 떴을때 눈 위로 보이던 볼륨과는 격이 다르다──, 가 아니라, 아무튼, 그렇게 신기하다는 듯 이것 저것 물어오려던 그녀는 이윽고 내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는데다가 J 아저씨가 헛기침을 세 번 정도 더해줌으로 뭔가 분위기가 이상할 정도로 싸늘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닫고는 에헤헤, 하고 곤란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모두의 눈이 따갑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눈치가 없진 않다. 모두들 아마 내가 단독으로 행동해서 큰 위기에 처할 뻔 한 것을 질책하는 것인 듯 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내가 단신으로 도착하자마자 차원종 출몰지역에 뛰쳐들어간 뒤 나를 찾기 위해 고생한 것 같기도 했고……, 솔직히 마음같아서는 아파죽겠는데다가 고생했으니 좀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도무지 모두의 눈이 그렇게 끝내줄 리가 없을 것 같아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다들 미안합니다."

 * * *

 겨우 몸을 일으켜 구급차에서 나오니, 바깥쪽에 유정누나가 울상을 지은 채 계속 울리고 있는 휴대전화를 볼 때마다 몸을 흠칫흠칫 떨고 있었다. 어쩐지 이상한 모습이라 고개를 갸웃, 하고 기울이며 다가가니,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유정누나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세, 세하야……. 아, 아니지. 일단 네가 쓰러진 후에 네가 구한 아이가 슬비가 계속 전화하는 걸 받아서 모두들 널 찾으러 갔었는데, 어쨌든 무사하니 다행이네."
 "아, 뭐, 전 진짜 엄청 고생했는데……, 뭐, 됐어요.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버, 버스터 액셀레이션이이이……."
 "네? 아, 그거요? 아, 그거 좋더라구요. 앞으로도 가능하면 그거 계속 보급되면……, 에엑?!"
 "좋더라구요가 아니잖아, 세하야아아아!!!"
 
 유정누나는 어쩐지 으아아아앙!!! 하고 눈물 가득한 얼굴인 채 과장스럽게 양 팔을 동동 흔들면서.

 "그거 건 블레이드형 무기를 사용하는 클로저 요원에게 대략적인 성능 테스트 인터뷰를 위해 대여된 최첨단 모듈 시험 버전이라고……!!! 버스터 코어 회전력 관련해서 아직 기술력이 부족해서 그거 하나 만드는데 무리한 기술이 사용된 탓에 단가가 만 원 단위가 아니라는데에에에!!! 그거 하나 기술실증품으로 만드는데 가격이 억, 어어어억……."
 "……비싼 거였구나, 왠지 좋더라. 그런데 그게 뭐 어쨌는데요?"
 "수리 불가 상태로 망가졌어! 원형도 못 찾을 정도로 오버드라이브 번 되어버린 상태로 말야!!! 네 건 블레이드랑 같이! 네 건 블레이드도 그렇고, 그 외 코어들도 그렇고 아예! 전부! 다! 새로 만들어야 한단 말이야!!! 여기에 드는 돈이 얼마인줄 알아?! 물론 클로저 장비는 나라에서 지원하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 지원비 요청 관련해서는 전부 다 내가 이리저리 해야 하는 것들인데다가, 그 버스터 액셀레이션은 국가 지원품목도 아니고오오오!!!"
 "……어차피 성능 테스트 때문에 저한테 맡겼던 물건이잖아요? 인터뷰 하러 오면 이렇게 말해요. 진짜 슈퍼 베리 굿이라고. 그럼 저는 이만……."
 "세하야, 이세하아아아아아!!!"

 나를 향해 절규하는 유정누나를 애써 무시하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 게임도 현질인데, 현실도 돈이다. 장비에 그런 무지 비싼 코어 하나 들어갔다고 건 블래스터 연사력이……, 그건 아예 효율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새로 지원된 코어인 줄 알았던 그게 어느 군수사의 실험 버전이었다면, 그건 사실 내 지원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잖아. 

 어쩐지 갑자기 레벨 엄청 오른 기분 들더라. 다음에 건 블레이드 새로 와서 늘 쓰던 발포 모듈 장착하면 다시 레벨1으로 돌아간 기분이려나…….

 "뭐, 상관없나……."

 아무튼, 차원종 출몰지역의 그 민간인 소녀도 구해냈고, 삭신이 쑤시긴 하지만 나도 어찌어찌 이리 무사하니 이걸로 됐다 싶었다. 듣기로 이제 뒷처리는 정식 클로저 팀이 늦는데 대비하기 위한 긴급 땜빵 수습요원 팀인 우리가 아니라 정식요원들로 구성된 전문 클로저들이 알아서 할 테고, 이제 나는 한 판 닷지한 골드 승급전에서 두 번 이겨야 골드에 갈 수 있다. 정작 골드나 플래티넘들은 모르겠지. 실버가 얼마나 실버를 탈출하고 싶어하는지, 그 간절함을.

 "에휴……."
 "저, 저기!"

 그렇게 한숨을 쉬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니,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눈을 가늘이며 돌아봤다. 거기에는 경찰 특경대에게 지급되는 자켓을 원피스 위에 걸치고 있는 슬랜더한 인상의 소녀가 서 있었다. 새하얀 피부, 찰랑거리는 갈색 세미롱 헤어에 선이 가는 고운 얼굴. 낯익은 얼굴이다 했더니 아까 내가 구해낸 여자애였다. 

 소녀는 어쩐지 두 손을 쭈삣거리며 뒤로 숨기고 있었다. 뭐지.

 "아……."
 "아, 아까는, 고마웠습니다!!!"

 소녀는 두 눈을 꼭 감고 그렇게 외쳤다. 뭐지, 이 상황은. 내가 도무지 어쩔 줄 몰라 허둥지둥하며 눈을 깜빡이자, 소녀는 조심스럽게 눈을 뜨면서 수줍은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흘끔대며 옴질거렸다. 이런 누군가의 진심어린 감사. 나 이세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저런 괴물 놈들이 나타나는 건 너 같은 능력자 놈들 때문이야!!!

 ──뭐죠, 그 표정은? 어차피 당신들이 해결해야 하는 일인데,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래, 이런, 진심으로 감사하는 얼굴은.

 "아, 어……."

 그 진심으로 감사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막 어색해지고, 몸 이곳저곳이 막 뜨거워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탓인지 말도 답잖게 막 더듬어지고…….

 "이, 이세하 씨라고 했죠!!! 저보다 한 살 많으니 오, 오빠라고……."
 "어, 어, 으, 으응……?!"
 "아,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왕 오빠라고 부르게 된 김에 저, 저, 전화번호라도, 저……!!!"
 "저, 전화번호?!"

 소녀는 온통 새빨개진 얼굴로 계속 무언가를 머뭇거린다 싶더니 뒤에 숨기고 있던 손을 앞으로 결심한 듯한 얼굴로 눈을 꼭 감으며 섬광과 같이 내밀었다. 뒤에 숨기고 있던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은 전화번호 입력창이 띄워져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어떤 상황이든 별로 대할 때 어려움이 없는 나임에도, 이런 갑작스런 상황이라면 당혹스러웠지만…….

 "아, 아하하, 전, 전화번호? 그, 그럴까?"
 
 랭, 랭겜도 랭겜이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바라는 여자애 부탁을 완전히 거절하기에는 좀 그, 그렇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소녀가 내민 휴대전화를 받아들었다. 소녀는 "아와와!!!" 하고 당장 터질 것 같이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 귀여운 반응이 정말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또 돌아갔다.

 ……맹렬한 싸대기에 정신이 돌아왔다. 싸늘하게 눈을 가늘이며 싸대기의 주인을 찾았다. 언제 와있었는지 슬비가 옆에 와 있었다. 갑자기 열이 확 빡쳐와서 머리를 붙잡고 날카롭게 물었다.

 "야, 왜 때려?!"
 "나는 이세하를 때린 적이 없어. 그저, 피해자한테까지 집적거리는 파렴치한 벌레를 잡았을 뿐."
 "아니,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는 거야?!"



 "저, 저기, 핸, 핸드폰……, 가져, 갈게요……."

 그리고, 세하가 슬비와 이상한 말다툼을 끝낸 뒤에, 세하를 잠시 두근거리게 만든 소녀도, 휴대전화도 이미 세하를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 * *

 "잠재력이 있지만 그걸 활용할 줄은 모른다고만 생각했는데……, 글쎄, 이렇다면야."

 방 안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첨단형의 투명 스크린이 빼곡한 윈도우를 띄우고 있는 어두운 사무실. 그 스크린으로 가득한 공간에 앉아있는 건 지적인 안경을 쓴 한 명의 미남자였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오늘 차원종들이 갑자기 변칙 출현한 강남역 외곽에서 벌어진 한 소년과 미분류 차원종의 조악한 전투영상. 그것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돌려보던 남자는, 무표정하게 다물고만 있던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스트라이커'……, 역시, '그녀'의 아들이라는 건가. 계속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앞으로가 기대되는군."

 남자는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천천히, 천천히, 그 뿐인 공간에 메아리쳐 사무실을 돌며 울렸다.

 * * *
2024-10-24 22:21:1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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