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고 어려진 세하와 슬비, 다섯번째 이야기

토이코 2015-03-28 16

 

 내 작고 어려진 세하와 소풍.

 

 

 

 

 "므아아아── 냐우우우…."

 

 검은양 팀의 임시 본부의 탁자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있는 작은 세하. 조그맣고 까만 꼬리를 느릿하게 살랑살랑 흔들며 배를 깔고 대자로 엎어져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세하의 곁에는, 귀여운 행동을 잔뜩 하는 그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어야 할 슬비가 없었다.
 세하가 너무나 단잠을 자고 있다는 이유로 건드리지도 깨우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가 차마 데리고 나가지 못하고 홀로 임무를 나간 것이다.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어 세하를 비춰주고, 약간 열려있는 창문에서 불어오는 살랑이는 바람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다.
 고요하고 포근한 임시본부에서 행복한 꿈을 꾸며 자고 있는 세하에게, 갑작스러운 굉음폭탄과 함께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콰앙!

 

 "더! 워! 어어어어어어어!!"

 

 "히으냐아아아아아아아악───?!!"

 

 화들짝 놀라며 진짜 고양이처럼 벌떡 솟아올라 30cm 이상을 뛰쳐오른 세하가 "아쿠." 소리와 함께 다시 탁자 위에 떨어졌다. 비몽사몽한 정신을 억지로 깨워 흐릿한 시야로 눈 앞을 바라보니,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며 덥다고 소리를 지르는 유리가 와이셔츠의 단추를 세 개 정도 풀더니 성큼성큼 걸어와 의자를 꺼내 앉고는 펄럭펄럭 부채를 부쳤다.

 

 "으으, 아직까지는 봄날씨라면서… 완전 여름날씨잖아. 축축찝찝해……."

 

 땀이 잔뜩 흐르는 몸에 달라붙은 와이셔츠를 떼어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 때, 유리는 그제서야 탁자 위에서 엎어진 채 눈동자만 떼구르르 굴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세하를 발견했다.

 

 "어라, 세하잖아? 안녕안녕? 나 누군지 알겠어?"

 

 "……안뇨옹… 유리이……."

 

 세하는 손을 들어 흔드는 대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대답하자, 유리가 빙그레 미소지으며 세하에게 부채를 돌려 약하게 흔들었다. 봄바람처럼 불어오는 부채바람에 세하가 행복한 표정을 짓더니, 곧이어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어 털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주저앉았다.

 

 "유리유리, 슬비이 어디써?"

 

 "응? 슬비? 같이 있는게 아니였구나… 슬비라면 임무에 나갔어."

 

 "우웅… 그러쿠나아…."

 

 그러면 뭐하지잉── 하고 중얼거리며 세하가 입을 살짝 벌리고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유리가 이제부터 넘쳐날 시간을 어디에 할애할지 결정했다.

 

 "세하야, 그럼 나랑 놀러갈까?"

 

 "놀러어?"

 

 유리의 말에 관심이 있는지 머리에 달린 하얀 귀를 쫑긋거리며 되묻자, 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누나가 옷같은거 몇개 사 줄…… 표정이 왜 그래?"

 

 "……옷은… 괜찮을 것 같아서어."

 

 궁금함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 같은 세하의 얼굴이 유리의 말을 들음과 동시에 순간 접착제라도 뿌린 듯 딱딱하게 굳어지더니 잠시 후 완강한 거부를 표했다. 그 모습에 유리가 조금 의아함을 나타냈지만── 뭐 어쩌겠는가. 본인이 싫다는데.

 

 "그래? 그러면 맛있는거 사 들고 슬비나 보러 가자. 어차피 슬비도 순찰 임무라고 하니까. 장소는 한강 근처라고 하니… 놀기에도 딱 좋네."

 

 "맛있는거! 찬서엉!"

 

 "좋아, 그러면 가보실… 아차차."

 

 그대로 벌떡 일어나 세하를 데리고 출발할 뻔한 몸을 잠시 멈추고, 유리는 뒷쪽에 위치한 커다란 서랍장에서 가운데 칸을 열더니 자신의 여벌 와이셔츠와 속옷을 꺼내들고는 입고있는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 풀었다.

 

 "유리, 뭐해에?"

 

 "응? 아 맞다. 세하가 있었지… 세하야, 옷 좀 갈아입게 뒤 좀 돌아줄레?"

 

 어려진 세하의 정신건강을 위해 뒤로 돌아달라며 부탁을 하긴 했지만, 사실은 보여져도 별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행동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단추를 풀어 와이셔츠를 벗었다.

 

 "으응? 갠차나! 슬비가 옷 입는거 많이 봐써!"

 

 "잉? 오호라, 우리 슬비 대담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세하의 말에 당분간 슬비를 놀려먹을 거리를 찾아낸 유리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수건에 물을 묻혔다. 땀으로 젖은 스포츠 브라도 벗어버리고 찝찝한 몸을 대충 닦고, 이후 속옷과 와이셔츠를 전부 갈아입은 유리는 벗어둔 옷을 정리하고 세하를 들어 머리 위에 올렸다.

 

 "오, 예상보다 가볍네?"

 

 자신이 쓰는 총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가벼운 무게에 놀라고 있을 때, 세하가 유리의 머리카락을 붇잡고 팔을 치켜들고 외쳤다.

 

 "가자아! 렛츠 고!"

 

 "그래! 오랜만에 소영이 언니나 보러갈까나~."

 

 세하와 함께 덩달아 신이 난 유리가 계단을 내려가 시가지로 들어와서 조금 걷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는 강남광장에 포장마차를 열고 영업을 하고 있는 소영이 보였다.

 

 "소영 언니이이!"

 

 "어? 아하하, 유리야!"

 

 유리의 외침에 떡볶이를 졸이고 있던 소영이 고개를 들고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유리를 보고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유리가 포장마차에 도착하자 소영이 유리의 볼을 잡고 쭉쭉 늘렸다.

 

 "오랜만이야~ 유리야. 그동안 더 큰 것 같다?"

 

 "에에히, 아니에어. 저 키능 그대론데어?"

 

 "키를 말한게 아니지만… 응? 머리에 달고 있는 그건 인형이니? 에헤, 남자친구 인형이구나? 그런데 묘하게 세하를 닮은 것 같은데……."

 

 의미심장힌 미소를 지으며 유리를 흘겨보는 소영의 눈빛에 유리가 평소같지 않게 얼굴을 붉에 물들으며 소영의 손을 떼어내고는 손을 휘저었다.

 

 "나, 남자친구 아니에요! 그리고 인형도 아니고요. 세하야, 소영 언니야."

 

 머리 위에 올려져있던 세하를 양 손으로 들고 소영의 앞에 들이대자, 세하가 손을 반짝 들고는 귀를 쫑긋거렸다.

 

 "안냥!"

 

 세하의 인사에 소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세하와 유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라라. 이거 진짜 세하……?"

 

 "사정이 있어서 어려지고 이렇게 작아졌어요. 기억도 조금 날아간 것 같지만… 이게 더 귀엽지 않………."

 

 "세상에에에에귀여워유리야나이거주면안되겠니잘키울게!!"

 

 "왓, 잠깐! 언니! 이거 제거 아니에요 슬비꺼… 가 아니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세상이 돈댜아아아아아───!"

 

 클로저조차도 따라갈 수 없는 빠르기로 세하를 빼앗가간 소영이 정신줄을 놓은 듯 흐헤헤, 하며 세하를 바라보며 군침을 흘리자 유리가 당황하며 세하를 빼앗아가려고 소영과 작은 쟁탈전을 벌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애꿎은 세하는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온갖 고초를 다 겪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쉽다며 툴툴대던 소영은 유리가 주문한 상당량의 김밥과 떡볶이, 순대 등의 분식을 건네주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잘 가, 유리야. 세하도 나중에 보자!"

 

 "언니~ 나중에 또 올게요!"

 

 "안냐아아앙~."

 

 유리가 손을 흔들고, 유리의 머리 위에 얹혀져있던 세하도 손을 흔들었다. 그대로 사람이 북적거리는 강남 광장을 지나가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로 걸어가던 도중, 세하가 유리의 머리카락을 약하게 잡아당겼다.

 

 "유리이── 유리이이──."

 

 "왜, 세하야?"

 

 "유리이도 슬비처럼 슝~ 하고 날아갈 수 있어?"

 

 마치 아침에 본 로봇만화의 줄거리를 늘어놓는 것 같은 세하의 설명은, 유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사이킥 무브를 말하는 건가… 할 수 있어. 왜에?"

 

 "유리가 나는거 보고싶어! 날아가자 날아가자아!"

 

 세하가 유리의 머리 위에서 조르기 시작하자, 유리는 조금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클로저들은 작전중이거나, 차원종이 출현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위상력을 사용하는 안된다는 방침이 있었는데, 약간의 위상력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상관이 없으나 사이킥 무브같은 행동은 상당량의 위상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100% 들킨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여러가지 변명을 궁리하던 유리는 곧 해결책을 찾고는 세하를 데리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슬비를 도우러 갔다고 하면 되겠지. 그래도 안되면 유정이 언니가 알아서 해 줄거야!"

 

 이판사판이라며 손에 들고있던 비닐봉지는 팔에 걸어두고, 머리 위에 있는 세하를 한 손으로 꼬옥 안은 유리는 신발 끝으로 바닥을 톡톡 찍고는 도움닫기 후 곧장 날아올랐다.

 

 "자아, 저쪽이지?! 간다!!"

 

 인적이 뜸한 곳에서 외벽을 타고 건물 옥상으로 날아오르자, 탁 트인 시야와 함깨 언제나 느끼는 부유감이 몸을 감쌌다. 저 멀리 보이는 강줄기로 대강의 위치를 파악하고는 그대로 쏘아져 나가려는 찰나, 다 죽어가는 세하의 목소리가 품 안에서 들려왔다.

 

 "부웃, 수, 숨막…… 뉴리잌………."

 

 "엣, 앗? 미, 미안해 세하야."

 

 유리의 가슴에 짓눌린 채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하를 이번에는 강하지 않게 양손으로 살포시 들어올리고는 슬비가 있을법한 장소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와아! 빠르다, 빨라. 유리이!"

 

 "그렇게 재미있어?"

 

 "우으응! 시원해에에에에에!"

 

 "풋, 아하하하!! 너 진짜 귀엽다!"

 

 거의 드러누울 듯 유리의 손 안에서 바둥거리며 세하가 즐거워하자, 유리도 덩달아 웃으면서 더욱 속력을 높혔다.

 

 ───슬비는 좋겠다. 이렇게 귀여운 녀석이랑 같이 지내고.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옛날의 세하가 떠올랐다.
 임무는 건성건성. 하루종일 게임 삼매경.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을 때가 다반사며 수업 시간에는 주구장창 멍만 때리는, 그러면서도 성적은 자신보다 좋은 이상한 녀석.
 그 모습에 뭔가 동생같기도 하고, 외로워보여서 지켜주고 싶기도 했었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하는 일반인이 아닌 클로저였으니까. 자신보다 월등히 강하고, 차원종과 싸우는 인류의 영웅.
 자신이 처음 위상력이 각성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수상받았던 상을 몰수당하고, 갑자기 검도를 포기하라느니 공무원이 되라느니 이상한 권유들을 받았을 때는 정말로 세상이 무너지는줄 알았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미래의 꿈이 사라져버리자 깊은 상실감에 빠져있던 자신이지만,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세하의 위로같지 않은 위로 한 마디와, 이제부터는 그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길을 걸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외로워보이는 세하의 곁에 있으면서, 세하를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아직 약하지만, 언젠가는 그와 어깨를 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리, 유리! 유리이이이이이이이!!!"

 

 "어, 아? 응? 우냐아아아아악!?!"

 

 평소답지 않게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 탓일까, 세하의 비명같은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든 유리가 고개를 들자, 눈 앞에는 커다란 성수대교의 기둥 하나가 유리와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가까스로 급제동 및 방향전환을 시전하자, 유리는 기둥의 코앞에서 스쳐지나가며 몸을 옆으로 틀 수 있었다.

 

 "푸하, 파하아… 처녀인채로 죽어버리는 줄 알았네."

 

 "무, 무서워써……."

 

 "미안해, 세하야… 하, 하하. 이제는 정신 똑바로 차릴게!"

 

 "예써! 알아씀당!"

 

 죽을뻔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활기차고 씩씩하게 대답하는 세하를 보며, 유리는 왠지 모르겠지만 박장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평소의 자신답지 않게 괜히 깊은 상념에 빠져버렸다.
 작아진 세하나, 큰 세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세하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세하를 좋아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유리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켜주고싶다는 그 때의 생각도, 관심이 간다는 그 때의 마음도, 검도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겠다는 각오도, 그리고 지금 옛날의 세하를 그리워하며, 작아진 세하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지금도.
 모두 거짓이 되는 것이니까.

 

 웃음때문에 튀어나와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스윽 닦고는, 유리는 한강 강변길에 가볍게 착지했다.

 

 "자, 콜택시 도착이오!"

 

 "도착이다아!"

 

 야호──! 하고 팔다리를 벌리며 싱글벙글 웃고있는 세하를 머리위에 올려두고 어디서 슬비를 찾아야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을 때, 유리는 쓸때없는 고민을 했다며 중얼거리고는 저 멀리 보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의 소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야아~ 슬비야아아~~!"

 

 그 외침에 반응하여 분홍빛 머리카락의 소녀, 자신들의 리더인 슬비가 고개를 들자 한손에는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유리와, 그녀의 머리 위에서 덩달아 손을 흔들고 있는 세하를 발견하고는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유리야, 세하야!"

 

 

 

 

 소풍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024-10-24 22:24:59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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