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의 통돌이는 엄청난 것을 가져왔습니다(1)

사일로시빈 2015-03-10 8

"무, 물질변환 한번만 해보고가세요!"

"이제 안 해요."

"에엣?!"


 빛나는 언제나 바니걸 복장을 입고있다보니 내면마저 토끼와 동화되었는지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늘 단정하게 끼워져있던 토끼 머리띠가 앞으로 흘러내려서 삐딱한 더듬이같은 모양새가 되고,

대박세일이라고 적힌 간판은 힘없이 넘어져 대**의 이웃같은 꼴이 되었으며, 양 손은 허공을 움켜쥐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하는 그녀의 고객 중에서도 단골이라 부를만한 손님이었다. 그녀에게 상당히 우호적인 클로저기도 했다.

온갖 남자들이 지저분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을 때마다 그녀는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났다.

하지만 이세하는 늘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목례를 했고, 따분한 표정으로 물질변환을 대했다.

진지한 관심이라고는 게임뿐인 이 쑥맥같은 남고생이 그녀에게는 썩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을 구해**다며 진지한 표정으로 자리를 박차고 달려나갈 때는 꽤 남자다워 보이기도 했다.

이젠 간단한 농담도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돌연 냉랭한 태도로 되돌아온 것이다.

꽤 자존심이 상하고 속상한 일인지라 빛나는 툭 찌르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로 앙탈을 부렸다.


"왜요!?"

"매번 결과가 실망스럽잖아요."

"아, 아니에요! 저번에는 차원종 게임기도 나와었잖아요!"

"그나마 쓸만한 물건이었죠. 아니, 생각을 해봐요 누나."


 세하가 통돌이에 팔꿈치를 올리며 비스듬하게 기댄다. 빛나는 이 남자애는 뭐 이렇게 기럭지가 길담, 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우리가 이쪽에서 뭔가를 넣으면, 주파수에 따라 다른 물건이 나와요. 그렇죠?"

"그래요! 분명 유용한 물질이 나올 거에요!"

"이거 실은 그냥 물물교환 아니에요?"

"......호에?"

"마치 돌을 넣었더니 고기가 나오고, 스피커를 넣었더니 연필이 나오는 식이잖아요."

"우으.... 그럼 더 좋은 거 아닐까요? 차원종의 물건을 가져올 수 있다면, 이 통돌이로 중요한 무기를 빼돌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럼 그걸 연구해서 차원종의 전력을 더 약화시킨다던가! 아무튼 물질변환의 원리가 물물교환하고 같아도 유용하단건 변하지 않아요!"


 빛나의 열변에 세하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채 식은 땀을 흘렸다. 


"그렇지만요. 차원종의 기술력은 우리가 모르잖아요. 전 저번에 크리자리드 통신병이란 놈도 만나봤다구요.

만약 놈들이 주파수를 해킹하면요? 의도적으로 우리가 물질변환할 때 폭탄이나 차원종 같은걸 보내면요?

아니면 그쪽도 통돌이 비슷한걸 만들어서 모르는 사이에 제 게임기를 가져가버리면요?!"

"세하군 마지막 말이 본론이죠?"

"물론 이 모든 이의제기는 유정 누나가 한 거에요. 그래서 당분간 통돌이 금지에요. 관리요원님 지시니까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마지막 말은 세하군 진심이었죠!?"


 빛나가 끈질기게 캐물었지만 세하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아무튼 그렇게 되었으니까 누나도 이제 그런 옷 좀 벗고 쉬세요. 매번 바니걸이라 다들 흥미를 잃었다구요."


 빛나가 찔끔 눈물을 떨궜다.


"그게 문제에요... 실적이 계속 이래선 연구소를 재건할 수 없어요... 과장님이 메이드복 같은 걸 권할지도 몰라요."

"메이드복이 지금 옷보다 덜 부끄럽겠네요 뭐."

"똑같이 부끄럽거든요!?"

"그럼 여름에는 수영복이에요?"

"싫어요! 여름에는 아이스크림이나 물고 그늘에서 쉴 거에요!"


 빛나가 발을 구르며 몸서리를 치자 세하는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는 풀러져있던 빛나의 가운 끝을 잡고 단추를 잠궈주었다.


"에?!"

"오늘 영업종료니까 이쪽부터 닫죠. 매번 그렇게 놀라면 심장마비 걸리지 않아요?"

"세하군이 너무 무심한거에요!"

"매번 이런 복장이니까 다른 모습이 상상되지도 않고...."


 가운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눈치를 살피던 빛나가 살짝 달뜬 표정으로 넌지시 물어본다.


".....세하군은.... 제 사복차림이 보고싶어요?"

"에?!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여, 연구원 복장이라던가..."

"음. 좋아요. 이건 어때요?"


 기껏 먼저 말을 꺼낸 그녀였지만 무척 고민한 제안인듯 눈을 꾹 감고 토하듯이 내뱉는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물질변환 해주시면, 세하군이 말하는 옷을 입고올께요!"

"............에에?"

"수영복이든 메이드복이든 사복이든요! 어, 어때요?"


 세하는 불그스름한 뺨을 긁적이며 시선을 통돌이 위에서 돌아가는 안테나에 두고있었다.


"......진짜죠?"

"진짜요."

"후회 안 해요?"

"대, 대신 정말 이번에 유용한 물건이 나오면요! 김유정 요원님한테 꼭 잘 말해주세요! 물질변환은 중요한 연구라는걸요!"

"...........음.... 좋아요."


결연했던 빛나의 표정이 헤실 풀어진다.

세하는 무심코 그녀를 쓰다듬을뻔했지만, 당연하게도 연상인 여성에게 무례하게 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손을 선회하여, 아까부터 비스듬히 삐뚤어져있던 흰 토끼 머리띠를 잡았다.


"그, 그건 제 물건이잖아요!"

"어라, 토끼 머리띠 좋아했어요?"

"........맘같아선 지금 입고있는 옷도 같이 넣고 돌리고싶네요."

"좋아. 그럼 이걸로 하죠."

"두고봐요. 이번엔 정말 대성공이니까요! 아, 아마도...."


 건방진 고등학생에게 눈을 흘기며 빛나는 물질변환을 준비했다.

세하가 기판을 조작해 주파수를 맞추자, 빛나는 남은 설정을 조율하고 변환율과 진동수가 안정되었는지를 확인했다.

육안으로 수치를 확인 후, 곧 섬광이 일 것을 알고있기에 고글을 쓴다. 세하도 익숙한 듯이 눈을 감았다.

덜컹덜컹 세탁기가 요란하게 걸어다니는 소리가 난 후, 배출구에서 희뿌연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문을 열고, 집게로 조심스레 안에 있는 것을 꺼냈다.


"..........에...에?"


 세하도 그녀가 꺼내든 것을 보고 있었다.

이 축 늘어진 천조각은 정규교육을 받고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팬티다.


 물론 평범한 팬티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망사로 된 비범한 물건인가 했지만, 곧 검색을 통해 그것이 검은색 올오버 레이스 팬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이건 '가린다'라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손바닥만한 크기에 비해 무척이나 ** 디자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차원을 건너왔다.

이는 곧 이번 물질변환이 대실패거나, 혹은 차원종도 팬티를 입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대발견인 것을 의미한다.

세하의 뇌리에는 이런 팬티를 입을법한 차원종이라고는 딱 한 부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빛나는 슬그머니 그것을 주머니에 넣었다. 세하는 어째선지 발끈했다.

 

"아, 아니! 그걸 왜 누나가 가져가요!?"
"아, 압수! 이런 거 압수! 제, 제가 정밀하게 이상이 없는지 연구해볼게요!"

"팬티 가지고 연구는 무슨!"


 세하와 실랑이를 벌이던 빛나가 도끼눈을 뜨고 쏘아붙였다.


"세하군이야말로 이런게 왜 필요하죠!? 가져가서 사춘기 남학생 특유의 행위를 하려는 거죠?!"

"누나야말로 그러는 건 아니구요?"

"뭐, 뭐라구요!? 저, 전 그런 불건전한 짓을 하지 않아요!"

"하아, 난 불건전하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

"시, 시끄러워요! 제 머리띠를 넣어서 나왔으니까 제가 가져갈래요!"

"제 돈으로 돌렸으니까 제가 가져가야죠!"

"그렇게 여자 팬티에 관심이 많았군요!? 파렴치해요! **!"


 애석하게도 세하는 현역 클로저 요원이었고, 힘과 기술, 스피드 모든 면에서 연구원인 빛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간단하게 팬티를 낚아챈 세하는 무척 야릇한 기분이 들어서 삐질삐질 식은 땀을 흘렸다.

이후 사이킥 무브로 도망치려는 것을, 빛나가 몸을 던져 옆구리를 끌어안아 실패했다.


"정말! 뭐에요! 이름도 모르는 여자의 팬티가 그렇게 좋아요!?"


 세하는 당연히 팬티따위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것은 이름없는 군단의 군단장이자 S급 차원종인 더스트의 물건이며, 이를 빌미로 유용한 거래를 성사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빛나의 보안등급으로는 지성을 지니고 대화가 통하는 인간형 차원종의 존재에 대한 기록을 열람할 수 없다.


 제이나 김유정이 늘 누누히 강조하듯이,

이런 기밀사항을 사소한 사고로 유출한다면 유니온의 높으신 분들이 좋은 건수를 잡았다고 검은양 팀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모든 사정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세하는 애써 매정한 말을 뱉었다.


"아, 아, 아무튼! 이번 물질변환은 실패죠?"

"....에!?"

"봐요. 다른 차원에서 이런게 건너온다니 이상하잖아요. 분명 누가 속옷을 잊어버렸겠죠. 이거 들고가서 보고할거에요!"

"이 이잇! 정말 그러기에요? 남자가 치사하게! 잠깐이나마 세하군을 좋게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어요! 다른 남자들하고 똑같아!"

"조, 좋게 생각했다는게 무슨 뜻..."

"몰라요!"


 빛나는 얼굴을 붉히며 씩씩거렸지만, 뒤에서 껴안고있었기 때문에 세하는 얼굴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단지 아까부터 부끄러운 기분에 주변에 온도가 상승한 것처럼 느껴졌을 뿐이다.

이제 좀 놔달라고 말하려는데, 서늘한 목소리가 북풍처럼 폐부를 찔렀다.


"이.세.하."

".........."


 묘한 공기를 유지하던 세하와 빛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끼기긱하는 기계적인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검은양 팀의 지엄하고 엄격하며 모범적이자 위대하고 존귀하신 리더 이슬비께서 나찰과 같은 표정으로 또각또각 걸어오고 있다.

위상력이 마치 물 위에 떨어뜨린 푸른 잉크마냥 갈래갈래 찢어져 흘러넘쳐서, 굉장한 위압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외도를 하다 들킨 남편처럼 세하는 허둥거렸고, 빛나 역시 그제야 오해할만한 자세였음을 깨닫고 얼른 떨어졌다.


"또 호출을 무시하고 어디서 뭘하나 했는데, 이런데서 이런 식으로 알콩달콩 노닥거리고 있었니?"

"야, 아니...."

"다물어."

"........"

"정좌."

"아니, 야, 얘기를..."

"정좌."

 

 세하는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빛나가 지원사격을 나섰다.


"저, 저기 슬비양. 오해에요. 이건 단순한 사고로...."

"어머, 단순한 사고로 서로 껴안고 부비고 얼굴을 붉히고 있나요? 드라마에선 절대로 사고인적이 없었는데요."

"어......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요, 세하군이 제 팬티를..."


 말하던 빛나가 얼른 입을 막는다. 세하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슬비의 눈은 이황화탄소가 연소하는 것처럼 무기질적인 푸른색으로 이글거렸다.


"서로 팬티를 교환하는 사이였나요?"

"아, 아니, 아니아니아니! 그럴리가 없잖아요!"

"둘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데 제가 미처 몰랐었군요. 리더인데 팀원의 연애사정도 하나 모르고 있고...."


 빛나가 붕붕 흔드는 손에 의해 허공에선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생하고 있었지만, 슬비에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만 슬비는 아까와 달리 무척 유약해져 있었다. 풍만했던 보름달이 삽시간에 기울어 반쪽이 된 모양새였다.

울음을 참는 모양새로 입술을 지긋이 깨물면서, 아래에 처박혀있던 세하를 노려보았다.


"그런 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빛나가 말릴 새도 없이 슬비는 어딘가로 뛰어가버렸다. 갑자기 폭풍이 지나가 세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중력장-게임기 비트생성-염동결계-관절꺾기-의자 폭격의 체벌 트리가 돌아오지 않다니 하늘이 도운 것인가.

하지만 사춘기의 섬세한 소녀의 마음이 어떻든간에 세하는 지금이 도망칠 기회라고 생각했다.

빛나도 멍하니 슬비가 뛰어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무 구속도 없이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던가.

세하는 위상력을 발끝에 집중해서 훌쩍 뛰어올랐다.

빛나와 슬비에게는 나중에 해명하고 사과-불합리하게도-해야겠지만, 지금은 반드시 확인해야할 것이 있었으니까.


 세하는 곧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물론 이 번호의 주인은 존재하지 않지만, 위상력을 집속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곧 얼핏 듣기에 요염한, 장난스럽고 달콤한 미성의 목소리가 귀가 간질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이세하? 이제야 이 여친님의 제안을 따르기로 한 거야?"

"너한테 물어볼게 있어."

"데이트 날짜?"

"비슷해."

"히엣"


 방금 뭔가 굉장히 당혹스런 소리가 들렸지만 세하는 주파수 간섭에 의한 환청이라 지레짐작했다.

뭘 잘못 먹었는지 한참을 기침하던 더스트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 그래? 그럼 만나면 뭘 할래? 역시 싸울까? 아니지, 그럼 네가 한방에 죽으니까 안돼. 구속 플레이는 어떠니?"
"무, 무슨 소리야 너. 그런 것보다.... 그..."


 역시 물어보려니 부끄러웠지만, 세하는 용기-용기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를 내어 물었다.


"너 팬티 검은색이야?"

"............"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태초에 무엇하나 조형되지 않은 반죽같은 상태일 때 그랬듯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귀를 기울이면 행성이 궤도를 돌 때 나는 장엄한 울림이 들릴 것이라 기대할 정도였다.

이후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려서, 세하는 귀를 떼고 폰을 틀어막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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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뭘 쓴거야....

2024-10-24 22:24:1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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