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피해자

공항철도경비대 2015-03-08 2


첫 작품입니다. 좋게좋게 봐주세여. 

진짜로 걍 두서없이 썼습니다~ 

심히 오글거릴지도 몰라요 ㅠㅠ 



*** 




"어른보다 잘 해낼 수 있어요." 


사진속 여자의 말버릇이다. 

해질녘 유니온 건물의 한 사무실 안에 김유정 요원이 검은 양 이슬비의 프로필을 바라보고 있다. 

책상을 정리하던 도중 실수로 떨어뜨린 프로필을 줍다가 의도치 않게 이슬비의 요원사진에 눈이 갔고 생각에 잠기게 된 것이다. 

유니온 위상 잠재력 양성소에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인재가 바로 사진속의 여자 이슬비다.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군대나 마찬가지인 이 체제 안에서도 이정도까지 자발적으로 유니온의 목적을 지향하는 아이는 드물다. 

'목적과 방향이 확고한 기계' 

김유정 관리요원이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처음으로 느낀 인상이었다. 

프로필로 그녀의 과거사를 읽은 이후 그 목적과 방향이란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는 것은 쉬웠다. 

차원종에 대한 복수인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심이 단순한 희망사항으로 끝나지 않게 해준 것이 그녀가 보유한 위상 잠재력이었다. 

팀의 리더로서 이슬비는 너무나 잘 해내고 있다. 

수습요원과 정식요원간에는 경험과 노련함이라는 메꿀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이런 불가항력의 요소를 제외하고 나서 바라본 이슬비는 요원으로서, 리더로서 흠잡을 곳이 없다. 

그리고 그런 이슬비의 성실함과 어른스러움이 김유정을 더 심란하게 한다. 

현재 사무실 문 너머에는 검은양 팀의 리더인 이슬비, 그리고 제이와 세하 3명이 대기하고 있다. 


"어른보다 잘 해낼 수 있다.. 라.." 


그렇게 중얼거린 김유정 요원은 사무실의 문을 살짝 열고 문 틈으로 리더와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노트북으로 작업중인 리더 슬비는 낮에 김유정 요원과의 의견충돌때문에 오늘따라 더 피곤한 표정이다. 


".." 


모두가 피해자들이다. 

철밥통을 밝히는 유리와, 누가 봐도 게임중독인 세하와, 그런 세하를 나무라는 리더. 

결코 쉬지 못하는 제이.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는 사람을 더 측은하게 하는 미스틸 테인. 

겉보기에는 유쾌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실 속으로는 모두가 알고있다. 

이 아이들은 또래의 아이들이 누려야 할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그리고 본인들 또한 알고 있다. 


차원문이 열린 이후로 무수히 많은 클로저들과 인류가 이런 희생을 당해왔다. 

인류가 이들의 위상력을 필요로 하기에 이들은 희생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 있다. 

이들이 피해자라면 가해자는 누구인가? 그 분노는 누구를 향해야 좋단 말인가? 

몸이 반 시체가 된 후에도 '숭고한 희생이니까' 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렇다. 이들이야말로 '시대의 희생자' 인 것이다. 
가해자가 있다면 이 시대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분노를 향할 곳이란 오로지 차원종밖에는 없다. 

갑자기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김유정 요원이지만 망설여진다. 

책상업무를 맡는 김유정 요원과 현장에서 뛰는 아이들이다. 살아온 환경 또한 전혀 다르다. 그 사이의 갭은 10년쯤 인생의 선배라는것 정도로는 메워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김유정 요원의 입을 떨어지지 않게 했다. 

'그리고 본부는 이런 상황을 위해서 제이라는 은퇴요원을 다시 불러들인 것인거겠지.' 


김유정 요원은 제이에게 대신 부탁한다는 문자를 보내고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쉬었다. 


*** 


'뭐.. 부탁 안해도 그럴 참이었어.' 


문자를 확인한 제이는 바닥이 **라 한숨. 

의자에서 일어나 갑자기 노트북 작업중인 이슬비의 옆에 섰다. 


".. 무슨일 있나요?" 

"낮에 김유정 관리요원과 충돌이 있었다지." 

"무슨 말인가요?" 

"차원종을 섬멸할 수 있다면 스스로를 희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지." 

".." 

"울거나 의지하는것도 모든 일이 전부 끝난 후에야 할 수 있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차원종이 날뛰는 마당에 클로저에게 휴식이란 없습니다." 


"슬비야.. 그럼 만약에 차원종이 100년 후에도 계속 나타난다면 넌 앞으로도 계속 요원으로서 일만 하다가 늙어 죽을거냐?" 


게임기를 돌리던 세하의 손이 멈췄다. 시선만은 게임기쪽을 유지하며 애써 안들리는척 한다. 

누군들 이런 막막한 현실에 겁을 내지 않을 사람은 없다. 

언제 차원종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지, 사라진다 해도 언제 다시 나타날지 현재로서 인류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100년 후에도, 20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인류의 위기가 지속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검은양 팀을 , 아울러 전 인류를 우울하게 한다. 

모두가 알고있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던 것. 


"제이 아저씨가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는지는 알것같아요. 하지만 인류를 위해서 클로저로서 사명을 다 하는것은 너무도 당연한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아.. 물론 나도 그 주장에 이의는 없지만.. 휘어지는게 꼭 나쁜것만은 아니야. 부러지는것도 마찬가지고." 

"저는 한번도 휘어지는게 나쁘다고 생각한적이 없어요. 나쁘다, 나쁘지 않다를 떠나서 현재의 자신에게 그런 사치를 용납할 수 없을 뿐이에요." 

"그게 왜 사치지?" 

"남들에겐 사치가 아닐지 몰라도 저한테는 사치입니다." 

"부탁한다 슬비야.. 더이상 옛날생각이 나지 않게 해줘." 


제이가 슬비의 양 어깨를 잡았다. 


"구성원으로서 리더에게 존대합니다. 이슬비요원..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인류를 수호하던, 임무를 완수하던 제가 그것에 뭐라 할 자격은 없습니다. 당신에겐 당신의 방식이 있고 누군가에겐 그 누군가의 방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이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 안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제이의 슬픈 눈이 있다. 


"당신이 힘들거나 외로워할때 이렇게 함께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걸 알아주세요. 제발 스스로를 경시하는 행동을 하지 마세요. 당신은 왜 스스로가 혼자라고 생각합니까?" 


슬비가 고개를 숙여서 제이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오늘의 이 모든것은 절대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서 시선을 마주했다. 


"물론이죠. 나쁜건 엄마아빠를 죽인 차원종들이니까요!" 


슬비는 정면으로 제이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그러고선 도망치듯이 방을 나서서 멀어지는 슬비의 뒤로 제이가 소리쳤다. 


"니잘못이 아니야!" 


슬비가 계단으로 완잔히 사라진 후에야 제이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방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세하는 한결같이 게임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화면은 10분 전부터 이미 게임오버상태였다. 


"세하야. 심란하게해서 미안하다." 

세하도 한숨으로 답을 대신했다. 

오늘밤은 이 방 안에 있던 누구도 편하게 잠들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너도 나도 언제나 그걸 잊지 말아야 해." 

"물론 그렇죠." 

그렇게 말하고는 세하도 슬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계단으로 사라지면서 세하가 나지막히 말한다. 

"걱정마세요 아저씨. 내일이 되면 언제나처럼 평소로 돌아올게요. 오늘은 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던 불안감을 알았어요.. 하지만 정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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