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 여는 이야기 1 -

율시카 2015-03-04 0

 

 

 

눈을 떠보니 다른 세계다라는 이야기는 상당히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별다른 이유도 없이 어느날 눈을 떠보니 아이돌! 이라는것도 상당히 웃기지 않은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어쩌다가 얻은 기연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강해지는것도 볼때마다 웃기지도 않는다며 비웃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것들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속 주인공들의 기분이 어땠을지 지금은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바로 눈앞에, 이상한 생명체가 칼날을 겨누고 있는 이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에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해서 상황에 맞지도 않는 헛짓거리를 하는 주인공을 볼때마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어제와 다른 현실에 현실을 부정하며 자신의 틀에 박힌 사고에 현실을 끼워맞추려 한다.

그러니까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은 멍청하다고.

 

하지만, 그런 그들이 얼마나 정상적이었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이 비웃었던 모든 주인공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눈앞에 닥친 비현실적인 상황에 대체 어떤 사람이 순식간에 그것에 적응해 나갈수 있겠는가걸어서 10분 정도밖에

지금 네 꼴이 딱 그 꼴이며, 이것이야 말로 사람, 그 상황을 겪어봐야 알수 있다라는것을 직접 체험하고 있는것이다.

 

아, 아. 그래.

사과한다. 모든 이야기들속의 주인공과 그 주인공들을 탄생시킨 작가들에게 사과한다!

 

 

 

1

 

 

그 날은 평소와 다름없는 매우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다.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아침잠이 많은 나를 동생이 깨워주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며 토스트로 가볍게 아침을 떼우고 세면대에서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는것도 평소대로였다.

 

"으아. 학교가기 싫다ㅡ."

 

대한민국의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내뱉는 소리를 하며, 옷장에 걸려있는 교복을 꺼내 입고 책상위에 올려져있는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들며 집을 나섰다. 거실 소파에 앉아 아침부터 과자를 십으며 방학에도 학교에 가냐며 비웃는 오빠의 입을 식탁에 있던 큼지막한 귤로 틀어막고 나온것도 평소대로라면 평소대로였을 것이다.

 

분명 방학하기를 기대하며 방학식을 그렇게나 고대했것만, 막상 방학을 해도 학교를 가는것은 방학하기 전이나 똑같았다.

그나마 나은 점이라면 방학하기 전보다 한시간 늦게 등교할수 있다는 점일까.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맞이한 방학이 이리도 꿈도 희망이 없을줄은 중학생일때는 상상도 할수 없었지.

휴대폰으로 연예기사나 웹툰을 보며 걷는다. 학교가 그나마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느긋하게 걸어갈수 있었다.

 

"이 웹툰은 패러디는 재밌는데 작가의 지각이 문제야."

 

일요일 웹툰이 월요일날 올라오는게 말이되나라고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교복 주머니에 넣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두 아침 특유의 꿍한 얼굴로 등교를 하고 있었다.

분명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도 저들과 같겠지.

 

하지만 인간, 휴식이 필요한 동물이것만 어째서 방학 기간에도 공부를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는데, 등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오늘 아침도 저기압이네?"

 

"그렇지, 뭐. 그러는 너는 오늘도 싱글벙글이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내는 친구를 바라보며 그래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걸 느꼈다.

등교는 싫지만, 친구와 노는건 좋아한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다.

 

"보충 수업을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얼굴좀 한번 보고싶다."

 

"그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친구와 잡담을 하며 등교하는 등교길이 설마 이 날이 마지막이 될줄은, 이 날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쉽다. 그 사람은 왜 그런걸 만들어놓고 죽은걸까……."

 

그래서 그 날에 했던 친구와의 대화는

 

"그,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별 영양가 없는 대화였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한번쯤 생각해보기도 한다.

만약 그 날. 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어떠한 이유라도 상관없다.

아침에 일어나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꾀병을 부렸다던가, 아니면 자고 일어나니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등교를 못했다던가. 부질없는 희망이지만,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17세의 어느 겨울날. 평범하지 않았던 그 날의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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