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와 오세린의 어떤 하루

아름호수 2015-02-25 8

*요주의 : 김기태와 오세린, 둘 모두의 캐릭터 붕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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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은 꽤나 희한한 날이었다고, 오세린은 기억한다.

 그녀가 보좌하고 있는 김기태 요원은 여느 때와 같이 G타워 옥상의 맨 꼭대기에서 어딘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오세린은 그의 입에 물린 담배를 손가락으로 휙 잡아 내던지고 주머니에서 막대사탕을 꺼내 입에 물렸다. 너무도 오랜 일이라 동작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가 사탕을 덜그럭거리며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반도 안 태운 거였는데. 담배 값도 한참 오른 판에……."

 "담배는 몸에 안 좋아요."

 "어련하시겠나."

 김기태는 혀를 차며 계속해서 그의 눈 아래에 펼쳐진 암흑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순간 깊어졌다. 마치 그 속에서 무언가를 꿰뚫어보려는 것처럼.

 오세린은 그가 무엇을 보려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르렁거리며 어둠 속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는 차원종일까? 아니면 그 너머의 다른 무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오세린은 이런 얼굴의 김기태가 좋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결코 이런 얼굴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의 그는 마치 철없는 한량이었다. 한 마디로 대표되곤 하는.

 "A급 요원 김기태다. 알아 모시라고."

 그 거만한 태도에 주변인들이 겉으로만 비굴하게 웃어보일 뿐 속으로는 비웃는다는 것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S급 요원이 되지 못한 낙오자. 그렇게 수군거리는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턱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오세린 뿐이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들어가. 아직 춥다."

 "괜찮아요. 따뜻하게 입었어요."

 "그래."

 그 짧은 대화 이후 두 남녀는 한동안 말없이 나란히 서 있었다. 따로 어떤 말을 애써 자아내 대화의 물꼬를 트고 이어나가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은, 둘은 그런 관계였다. 하지만 그 이상은 나아가지 못했다. 남자 쪽에서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오세린이 남자가 겁쟁이라는 걸 깨달은 것은 그를 알고 난 뒤로, 보좌가 되기 전으로 계산해도 꽤나 뒤늦은 일이었다. 그는 잃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새로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했다. 차라리 여자를 사서 안을지언정 순수한 호의를 부딪쳐오는 것만큼은 견뎌내지 못했다. 그렇게 된 이유 따위는 알 수 없었다.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그가 그동안 지나온 길에 넘칠 만큼 있었기에.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세린은 말을 돌렸다.

 "검은 양 팀이 곧 도착한다고 해요."

 "아."

 "가서 보고 오셨죠?"

 "…뭐, 그렇지."

 임무를 맡은 요원이 아주 잠깐이나마 그걸 내팽개치고 단독행동을 하는 것은 중죄다. 하지만 김기태는 시치미를 떼어봐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았던 듯 순순히 긍정했다. 물론 오세린도 자신의 경애하는 상관을 이런 사소한 일로 고발한 만큼 꽉 막힌 성격은 아니었다.

 "술 한 잔 사주셔야 해요."

 벗겨먹기야 하겠지만.

 "망할, 대놓고 뇌물 요구냐? 대체 뭘 보고 배워서 그런 불량 공무원이 된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옆에서 보고 뭘 배울 사람이라곤 기태 오빠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네 진짜 얼굴을 내숭 떠는 얼굴만 보고 사는 놈들한테도 보여줘야 하는 건데."

 "그것도 오빠한테 보고 배운 거죠."

 김기태는 말을 멈췄다. 한 마디도 안 진다는 둥, 전혀 귀엽지 않아졌다는 둥, 어릴적엔 오빠야 안아줘, 하고 달라붙더니… 등등 꿍얼거리는 말을 오세린은 평소처럼 한 귀로 흘러 넘겼다.

 오세린이 문득 물었다.

 "어떻던가요?"

 그 물음에 김기태는 코웃음을 치며 혀를 찼다.

 "뭐, 소질은 있다 못해 넘치지만 아직 애송이들이야. 그 조막만한 학교랑 주변 구역 가지고 얼마를 씨름하는 건지 원."

 "수습 요원 된지도 얼마 안 된 애들이잖아요? 굉장한 발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문제지. 데이비드, 그 정신나간 양반은 그 녀석들을 정식 요원으로 올릴 생각인가 보니까."

 "뭐라고요?"

 오세린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그게 말이 되나요? 아직 걔네들 1년차도 못 넘겼다고요!”

 “어거지로 경험을 쌓게 해줘서 승급 조건을 만들려나 보더라. ‘호라드릭 큐브’를 이용해서.”

 “잠깐, 그냥 큐브가 아니라 호라드릭 큐브라면…….”

 오세린이 부정해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김기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김기태는 그 시선에서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오세린은 웃었다. 실소였다.

 “성인들조차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정신력이 극도로 소모되어서 며칠은 요양해야 하는, 그런 시설에 애들을 밀어넣겠다고요? 그거 사실상 실패로 여겨져서 폐기 처분 직전이었던 거잖아요. 미쳤어요, 미쳤어. 국장님은 대체 무슨 생각을…….”

 “마흔 번.”

 “…….”

 “공평하게 똑같이 마흔 번 밀어넣겠다더라. 그 양반.”

 오세린은 그제서야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일찍이 겉으로는 몹시 댄디한 척 구는 그 남자의 광기를 조금이나마 엿봤다고 생각했었다.

 한참 잘못 생각했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자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허탈해졌다. 

 “미쳤어…….”

 오세린은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전부 ** 거군요. 저희를 제외하곤.”

 “아니, 나도 ** 지 오래지. 그래서 이곳에 멀쩡한 인간이라곤 너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너도 미쳤어. **놈들 중에 정상인이 하나 껴있으면 ** 거거든.”

 “…….”

 “뭐, 그 꼬맹이들은 타고난 위상력이나 자질이 굉장하니까 버틸 수는 있을 거야. 제이 그 양반이야 전**라면 내가 쳐다**도 못할 사람이었으니 그러려니 하면 되고. 그 실험체 꼬맹이야 나도 모르겠다만. 내가 보기엔 당장 붕괴하지 않는 게 용하던걸.”

 김기태는 사탕이 사라진 하얀 막대기를 입에서 꺼냈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고는 저 너머로 휙 던져버렸다.

 “그 녀석들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오히려 짐을 맡겨야 할 입장이니까.”

 “…하긴, 기태 오빠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규모니까요. …저희를 희생양으로 보냈나 싶을 만큼.”

 오세린은 그렇게 말하며 김기태와 같이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많은 차원종의 무리들이었다. 새까맣게 물들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녀는 그것들의 음산한 그르렁거림을 들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김기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 녀석들은 저런 잔해 따위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돼. 그 녀석들은…….

 “기태 오빠?”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김기태는 다시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오세린은 그걸 낚아채서 던져버리고는 다시금 빨간 막대사탕을 꾹 물려주었다. 남자는 하늘로 날갯짓하지도 못하고 추락하는 하얀 막대를 슬프게 바라보다가 드르륵, 사탕을 입으로 굴렸다.

 “딸기맛이군.”

 “딸기맛이에요.”

 “난 포도맛을 좋아하는데.”

 “제가 싫어하니까 없어요.”

 “…….”

 “…….”

 “남은 담배 다 줄테니까 몇 개만 더 줘봐.”

 오세린은 김기태의 담배갑과 사탕을 교환했다. 김기태는 그것들을 주머니에 주섬주섬 넣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제가 물려드릴 텐데.”

 “아니, 걔네들 오면 너와 나는 한동안 나쁜 사이가 되어야 해. 정확히는 제멋대로인 상관과 거기에 고생하는 불쌍한 부하.”

 “네? 왜요?”

 “나 같은 놈이 상관인데 네가 나랑 짝짜꿍하고 있어 봐. 김유정 그 꽉 막힌 여자가 어떻게 굴지. 나는 채찍 역할, 네가 당근 역할 하는 게 베스트지.”

 오세린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게다가 싫었다.

 “뭐에요, 그거. 무지 귀찮은데요.”

 “뭐야. 내숭 떠는 건 네 특기 아니냐. 평소처럼 실실 웃으며 어벙하게 굴면 되는 거라고.”

 “어벙하다니.”

 김기태의 말에 오세린은 약간 뿔이 난 얼굴을 했다. 그녀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리고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요염한 미소를 베어 물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어떠신가요? 이래도 어벙해 보이나요, 김기태 요원님?”

 김기태는 그 모습에 한참동안 눈만 끔벅이고 있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는 주먹을 들어 꿀밤을 날렸다. 아얏! 하고 주저앉은 오세린에게 그는 한참 동요한 모양새로,

 “이, 이 꼬맹이가 어딜 어른을 놀리고 앉았어!”

 “…놀린 거 아닌데.”

 오세린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나름 조언을 구하고 연구한 거였는데도 안 되나? 이 허당은 대체 어떻게 해야 넘어오려나.

 뭐, 됐어. 시간은 많으니까. 오세린은 속편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김기태는 한참 뒤에야 간신히 패닉을 떨쳐버린 듯 지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걔네들 오고 한 달 정도만 연기 좀 해줘라. 내가 이것저것 좀 이상한 짓을 하겠지만 맞춰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꼭 필요한 일이니까.”

 오세린은 말없이 김기태를 바라보았다. 김기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휴, 하고 한숨을 내쉬고 물러선 것은 언제나 그렇듯 여자 쪽이었다.

 “뭐, 오빠가 괴상한 변덕 부리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정히 필요하다면 할게요. 하지만 이 빚은 커요. 밥 한두 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요.”

 “오냐, 뭐든 해주마.”

 김기태가 기세 좋게 말했다. 오세린의 눈이 빛났다.

 “뭐든?”

 “뭐든.”

 절, 안아달라고 말해도요?

 오세린은 그 말을 차마 내뱉지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듯 애써 맑게 웃어보였다.

 “그 말, 절대 잊지 마세요.”

 “그래.”

 오세린은 문득 길게 하품을 하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슬슬 눈꺼풀이 감겨왔다. 졸리네,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새 팀이 오면 이것저것 준비할 일도 많으니까.

 그녀는 멍해진 정신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세린아.”

 “네?”

 “고맙다.”

 “…뭐에요, 새삼스럽게.”

 평소라면 당연히 깨달았을, 그 한 마디 말에 담긴 감정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그 어둠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도, 어떤 생각을 했는지도, 그 한 개비 담배 안에 무엇을 담아서 내뿜고 있었는지도. 오세린은 조금도 알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




 오세린이 그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지부장과 김기태 자신이 내통했다고, 거짓으로 증거를 꾸미라고 할 때까지도 오세린은 몹시 의아했지만 속으로 그가 무슨 생각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김기태 자신도 믿으라고 했다. 속을 수밖에 없었다. 오빠 믿지, 필살기잖아. 어쩌겠어.

 그는 물론 생각이 있었다. 그는 거짓말쟁이였다. 애초에 오세린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 따위는 들어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래서 숨어버렸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악한이었다.

 오세린은 검은양 요원들에게 김기태가 그렇게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물론 연기였다. 오세린이 연기하던 ‘오세린’의 입장에서의 연기였다. 눈물도 연기고, 표정도 연기였으며, 김기태가 죽었다는 소식 역시 연기일 터였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상하게도, 숨어버린 김기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오세린은 매일 밤마다 그를 찾아 헤맸다. 숨바꼭질하는 기분으로 그가 숨기 좋아하던 곳을 순회하듯 돌았다.

 여길까? 여길까나? 하아, 그렇게 꼭꼭 숨다니 얼마나 들어주기 싫은 거야. 그렇게 싫으면 그런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지.

 뭐, 정히 그러면 조금 줄여줄 수도 있어. 결혼해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백 보 양보해서 데이트 한 번. 어때? 대박 할인이지? 솔깃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제 좀 나와봐. 응? 

 한 달뿐의 연기라고 시작했다.

 한 달뿐의 연기라고 시작했는데,

 하지만 이제 그만둬도 좋다고 말해줄 사람이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서. 들어달라고 할 소원은 산더미처럼 생각해 놨는데도, 그걸 전부 포기하겠다는데도 돌아올 기색이 보이지 않아서. 

 얼굴에 그렸던 거짓된 웃음이 가면처럼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지경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서. 하지만 그렇다고 이 연기를 그만뒀다가는 그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서.

 아아, 하나님.

 캐롤리엘이 말한 대로, 누군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 모두가 오로지 당신의 뜻이라고 한다면. 어느 누구나, 그 영혼을 태워 한 번이라도 기적을 바랄 수 있는 것이라면.

 부디, 그 몹시 서툴지만 그 누구보다 상냥한 사람을 -

 “오세린 선배님.”

 그리고 그녀는 누군가의 부름에 돌아서서 언제나처럼, 그와의 약속에 충실히 가면을 뒤집어쓰고 웃었다. 투명하고 순수한 웃음을, 누가 봐도 의심치 못할 순진무구한 웃음을.

 아직 그는 언제나처럼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제 됐다, 고 말해주지 않았다.

 “네에~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




2024-10-24 22:23:5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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