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의 계승자 EP.4 사냥꾼의 밤 20화 침식되다(4)
Heleneker 2023-04-11 1
24년도 개정판으로 편집 완료입니다.
"자.... 들어온 것까진 좋은데.... 그 기억을 어떻게 봐야할까."
실이 물길처럼 흐르는 딛는 감각도, 떠있는 감각도 들지 않는 기묘한 공간에 들어온 것까진 좋았으나, 막상 어떻게 기억을 봐야할지 난감해 하고 있었다.
"다시 왔네? 우리랑 그렇게 떨어지고 싶었어? 키득키득."
그들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리며 들려왔다.
"시끄러워. 여기선 너희는 나한테 말말고는 간섭할 수 없는 주제에."
[글쎄? 그때와 지금은 다른걸~?]
쿠구구구구-----
그 말과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흘러가던 실도, 기묘했던 딛는 감각도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때엔 방관자 그년의 방해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계승을 어중간하게 중단한 덕분에 우리를 방해하던 힘이 사라져 개입할 수 있게 되었거든. 키키키키키-----]
[자아, 보자. 절망하고, 후회가 가득한 그 기억을. 키긱키긱키긱.]
내 주위로 무엇도 되지 못한 그들의 검붉은 형태가 나를 집어삼키듯 덮쳐왔고, 그와 동시에 기억의 재생이 시작되었다.
치....치즉....지지직...
짝!!!
짜악!!!
살을 때리는 건조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
"이이익.....! 그 눈 안 깔아!?"
짝!! 짜악!! 짜악!!! 짜아악!!!!
연구원으로 보이는 가운을 입은 남자는 한껏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대며 자기 앞에 서있는 남자를 향해 뺨을 계속 구타하고 있었다.
"***씨, 얘들한테 임무 하달되었습니다. 그만하고 내보내세요."
"망할!!! .....뭐해!! 얼른 안 나가!? 폐기된 실험체면 그런거라도 잘해야 할 거 아니야?!!"
그 남자는 다른 연구원에게 받은 문서를 구타하고 있던 남자에게 내던지며 방을 박차고 나갔다. 불합리해 보이는 구타에도 그저 조용히 서있던 남자, 비운은 자신에게 실험을 자행한 연구원 겸 자신의 관리요원이 내던져진 문서를 조용히 주워 정리한 후 방을 나섰다.
******
"형님, 그 자식 점점 너무해지는 것 같지 않습니까? 형님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요?"
"새한 말에 동의합니다. 다른 연구원에게 듣기론, 하버트라는 연구원이 제어코드를 어느정도 확립시켰다고 듣고 나선 더 도를 넘은 행동이 잦습니다."
광대 가면과 도깨비 가면을 반 정도 쓰고 있는 두 남자가 내 얼굴을 보곤 격분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저 덤덤하게 타깃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타깃은?"
"예상하셨던 범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단장, 건성으로라도 새한과 지운에게 대답이라도 해주시죠. 해랑이한테 그 얼굴 뭐라고 설명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여우가면을 쓴 남자가 회복 앰플을 건네며 물었지만, 나는 앰플을 홀짝 마시곤 가면을 쓰기 시작했다.
"잡담은..... 임무 후에 하도록 한다. 가지."
"에휴.... 형님...."
네 남자 각자의 가면을 똑바론 착용하곤 어둠 속에 물들어 타깃을 향해 접근했다.
유니온의 총장, 미하엘의 숨겨진 살수들의 타깃이 된 선량한 이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피와 비명, 심장을 꿰뚫린 구멍만을 남기며 삶을 빼았겼다.
모두를 침묵시키고, 임무를 모두 마치고 해산해 홀로 남은 순간, 나는 골목길에 머리를 박으며 울기 시작했다.
내가 목표로 하고 있는 어떤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죄없는 이들을 죽인 죄책감은 언제나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후회한다. 이 길을 걸은 것을. 하지만 후회할 수 없다. 내가 보았던 희망을 위해서.
나는 선한 이들의 피로 손을 더 검게 물들이고도 거부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죄업을 쌓길 반복하며 나 혼자만의 비통을 잠식되어갔다.
치즉...즉....지직......
"아악......아아아아아-----!!!"
우리의 육체가 녹아들고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싫어, 이런 건 되고 싶지 않아!!!"
일그러진 우리의 몸이 억지로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갔다.
"어째서..... 우리는 그저....옛....!!!"
우리는 비명을 지르고 비탄을 토해냈지만, 우리 각자의 목소리가 점차 무너지더니 이윽고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변질되어 버렸다.
"돌아가고 싶어.....되찾고 싶을 뿐이였는데...."
"우리의 모습을..... 그 권능을...... 우리에게....줘....!!!]
[용서 못 한다아! 그분도, 위대한 의지 네 놈도오오!!!!!]
옛 군주와 군단장들은 광기가 되어 일그러지며 하나의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
"으으......아아아악!!!!!!"
살수로써의 형님과 광기들의 고통이 기억이 둑이 무너진 것처럼 물밀듯 내게 쏟아졌다.
게다가 단순한 기억만이 아니였는지 형님이 받았던 경시와 모멸, 죄책감의 감정과 광기가 되기 직전의 그들의 몸이 문드러지고 녹아 강제로 하나가 되는 감각이 조금의 여과 없이 생생하게 나를 짓눌러왔다.
슬픔, 후회, 비관, 혼란, 핍박, 분노, 고통, 허무, 우울, 괴로움, 비통, 혼란, 공포, 무기력, 좌절.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온갖 부의 감정들이 내 마음을 급격하게 깎아나갔다.
"그만....."
쏟아지는 부정들에게서 나를 유지해야 하는데....!
"멈춰.....그만...해...."
그 부 (不)의 기억에, 행복으로 쌓아 두었던 추억이 바래져갔다.
"섞이지 마...... 제발.....!"
그 부의 감정에, 광기에 저항하고 버티던 의지가 무너져갔다.
"제발...... 그만해줘.....!!"
그 부의 고통에, 다정함의 불꽃을 피워놨던 영혼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무너진 의지와 식어버린 영혼의 틈으로 침식해오는 온갖 부정(不淨)한 것들이 마음을 가라앉이고 좀먹어갔다.
"나는.....나는......아아아아악......제발 멈춰!!!!!!"
부정을 밀어내려 했지만 부정한 침식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가속하고 반복하며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절망과 후회가 담긴 감정과 고통, 기억 그 무엇 하나 멈추지 않고 끝없이 반복하고, 반복하고, 반복당해 점차 마음이 무너지려 하자,
[다정함으로 이어진 마음 따윈, 결국 절망과 후회에 먹혀 흩어질 운명이지.]
그들이 내게 무엇보다도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정도 선의도 언젠가는 끝이 오기 마련. 하지만 절망과 후회는 끝없이 넘쳐 흐르지.]
[그대, 기대하지 말지어다. 희망을 가지지 말지어다. 그것은 결국 유한하고 언젠가 끝을 맞이할 것이니.]
[그러나 절망과 후회는 바닥을 보일 일 없이 끝없으니.... 견디고 버텨보아도, 결국 남는 것은 보답받지 못한 공허함만이 남을 거란다.]
[그 공허함에 비탄한 그대는 아무것도 되지도, 남지도 못한 채이 세상에서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겠지.]
[그대, 공허함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무한한 탐욕 뿐일지어다. 빼앗고, 지배하고, 침식하며 모든 것을 가지는 때야 말로 진정으로 보답받는 길.]
[그대, 우리를 집어삼켜라. 우리와 하나되어 무한해지 그대의 탐욕으로 모든 것을 침식할지어다.]
[보답받을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침식조차 넘어서는 광기의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지어다.]
그들이 내 몸을 감싸안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면 안 되는데..."
그들이 내 안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들의 흐름에 몸을 맡기면 안 되는데...]
하지만 달콤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제안이 산산조각난 내 안에 스며들어 버렸다.
[그래. 힘 빼고 모든 걸 흡수하듯이.... 우리를 모두 받아들이렴.]
손, 발, 다리와 팔을 지나 어깨와 몸통, 머리까지 삼키고 마침내 심장까지 스며들어 자온의 모든 것을 침식한 순간,
[결국은 우리가 이겼다. 침식황이여.]
패배자에 불과했던 그들은 승리자로 변모하며, 웃었다.
[기다려라, 위대한 의지여. 침식의 권능을 넘어선 광기가, 그대를 집어 삼키러 갈지어다.]
[자, 맞이해라. 세상 모든 것을 광기로 침식해 지배했던.... [광기의 군주]를!!!!!]
키득키득키긱득키키키득키득키긱키득키득키긱긱득키키긱득키키긱득키긱득키득키키긱키긱득키득득키득키키긱득키득키긱키득키득키긱득키키긱득키키긱득키득키득키키긱키긱득키득긱득키키긱득키키긱득키득키득키키키득키득키긱긱키득키득키긱득키키긱득키키긱득키득키득키키긱키긱득키득긱키긱득키득
그들의 검붉은 이형에 삼켜진 자온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그 속에서, 침식을 넘어서는 광기의 군주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살랑
갑자기 그들의 눈 앞에 너무나 작고, 여린 한 가닥의 실이 흘러왔다.
[뭐냐, 이것은?]
[설령,]
[......?]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려 한다면,]
뭔가 이상함을 느낀 우리는 그 실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제가 바랠게요. 간절히 바라고 바라서, 당신의 마음이 보답받길 바라는 제 작은 소망이 기적처럼 피어나길 바랄게요. 제가 사라진다 해도, 그 마음이 계속 빛날 수 있도록 제 마음을 전부 보내드릴게요.]
[뭐..... 아아아아아-------???!!!??!??!]
그 실 한가닥에 뿜어져 나온 찬란한 광채에, 군주로 각성하기 직전이였던 우리가 산산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
아무것도 없다. 아니.... 이건 아무것도 없는 걸까?
아니, 이미 아무것도 없는게 아닌,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점점 [나]를 잃은 채 검붉은 바다 깊숙히 가라앉았고,
-----!!!
찬란한 광채와 함께, 순식간에 검붉은 바다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
눈 앞에 누군가가 보였다. 하지만.... 이미 아무것도 아닌 내가 신경 쓸 필요.... 있을까?
이미 온갖 부정함에 절여진 자온은 의욕이고 뭐고 모두 잃어버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그에게, 누군가가 말했다.
[나의 밤을 끝내러 와주지 않을 건가요? 나의, 나이트 엔더(Night Ender).]
다시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가 내게 남겨준 마지막 별칭.
고개를 들은 내 앞에 서있는 이는 바로....
죽은 나의 친구, 희망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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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유언 - WILL OF 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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