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게인 클로저 3화

검은코트의사내 2021-02-03 0

 한 해가 지났다. 트레이너는 새하얀 눈이 뒤덮인 곳에서도 독자적으로 훈련을 했다. 그가 수련하는 걸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누가 보더라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차원전쟁 발발 2개월 전, 돈이 어느 정도 모였고, 전투 식량도 상당히 많이 모았다. 이 정도라면 전쟁이 발발해도 몇 개월은 집에서 버틸 수 있는 수준이었다. 차원종이 대학로 근처에 나타나면 처음에 각성했던 장소로 가서 능력자가 되면 그만이었다. 장소는 이미 기억하고 있으니 문제 되는 일은 없었다.

[조금은 나아졌군.]

 예전에 근육이 붙은 몸으로 돌아왔다. 꾸준히 쉬지 않고 운동했으며, 패스트푸드 음식은 전혀 손대지 않았고,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으며 닭 가슴살과 공기밥을 먹으면서 살아왔다. 이제 흉터만 있으면 미래의 자신이 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부족한 육체로 각성하는 것보다는 완벽한 육체로 각성하는 편이 차원종을 상대하는 데 더 뛰어나는 편이었으니까.

 미래의 신서울 지부장과 안면이 텄으니, 나중에 위상력이 각성하면 지부장이 그를 알아보게 된다. 트레이너는 그 때를 기대하며 2개월 동안 반복 생활을 보내면서 기다렸다.

 오늘도 고깃집으로 가서 알바를 했다. 서비스와 가성비, 고기맛이 좋다는 이유로 빈 자리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려왔다. 전직 대기업 부장이 다녀간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었다. 장사가 잘 된만큼 매출도 많이 올랐다.

"이런 겨울철인데도 장사가 잘 되네."

 사장은 계산대 앞에서 매출액을 확인하면서 놀라워했다. 지금은 방학이라 대학생들이 대부분 고향에 내려갔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올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기맛을 잊지 못하고 온 손님들이 계속 이어졌다. 

"여기가 부장님이 추천해주신 그 고깃집인가요? 별 거 없어보이는데요."

 전에 왔던 신현우와 그의 예전 부하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들어왔다. 트레이너는 일행의 얼굴을 보며 떠올렸다. 강남 사태를 일으킨 원흉이 된 미래의 신서울 지부장이었다. 그 남자가 바로 현우와 같은 직장 출신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워낙 알려진 게 없었고, 수배령이 내려진 때였기에 자세히 알아볼 여유는 없었으니까.

 오늘도 두 사람을 위해 서비스를 해주었다. 부하직원은 트레이너의 솜씨에 감탄하며 받아들였다.

"왜 부장님이 추천해주셨는지 알 거 같습니다. 정말 완벽하군요. 표면이 전부 갈색으로 될 정도라니 놀랐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이 친구가 알아서 맥주도 가져다 준다니까."

 현우는 이러한 그의 서비스에 감탄했던 거였다. 트레이너는 더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보았다. 

 두사람이 가고 난 뒤에 그는 손님을 정리하고 부엌으로 가서 사장의 부인에게서 요리를 배웠다. 그는 요리를 할 줄 몰랐다. 트레이너 말고도 울프팩 맴버 대부분이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배워야겠다고 판단했다. 차원전쟁과 관련없는 일이지만, 대원들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거야말로 교관으로써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음, 국물 맛이 좀 짜네.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어."

"아, 그렇습니까? 다시 해봐도 되겠습니까?"

"그래. 한 번 해보렴."

 매출이 많았기에 몇몇 재료들을 요리에 쓰는 것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트레이너는 지난 1년 동안 틈틈히 요리를 배웠다. 기본요리는 숙달했지만, 고급 요리는 아직이었다. 사장 부인도 그가 열심히 요리를 배우는 걸 보며 만족해했다. 처음에 요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길래 그녀도 조금 의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바람이 진심이었다는 걸 알았다.

"또 요리를 배우는 거야? 이제 그만 들어가서 쉬지 그러니? 오늘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사장이 그를 걱정했지만, 트레이너는 괜찮다면서 계속 그녀에게서 요리를 배웠다. 이건 필요한 일이었다. 미래의 동료들에게 사기를 불어넣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자취방으로 돌아온 그는 전술교본을 공부하고, 법률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익혔다. 언론사에서 올라온 최근 소식을 계속 확인했지만, 프로미넌스 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어쩌면 벌써 시작했는지도 모르겠군.

 지고의 원반에 대한 실험은 벌써 실행하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앞으로 2개월 뒤에 원반이 폭주하여 이계의 차원종들이 나타날 수 있다. 그 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신에게 부족한 점은 더 있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과거로 돌아갔다고 하지만, 20대까지 살아온 몸에 생긴 버릇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이번에 달라진 게 있다면 신서울 지부장들과 만났다는 것. 안면이 튼 상태로 차원전쟁 때 다시 만난다면 미래는 조금 달라질 거라 확신했다. 원래 단 한 번의 작은 만남으로 모든 게 변하는 법이었으니까.

[과거를 바꾼다. 어떻게 해서든 비극을 막아보겠다.]

 암울한 미래를 바꾸기 위해 과거로 돌아왔다. 가능하면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의 불행을 막고 싶었지만, 혼자서 모든 사람을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트레이너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적어도 먼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다. 유니온은 처음부터 정의로운 조직이 아니었기에 기대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걸.

 잠이 오자 않아 야간에 밖으로 나왔다. 가볍게 혼자 구보를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단련을 한다해도 위상력은 잠재력에 따라서 강약이 달라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재력이 없는 한 강한 클로저가 될 수 없듯이. 트레이너는 강한 위상력 잠재력을 받았기에 전쟁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아직도 안 자고 있었니?"

 구보를 하다가 밖으로 나온 고깃집 사장님과 마주했다. 질리지도 않고 단련하는 나를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트레이너는 훌륭한 인력이 병에 걸려서 활동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이 안 오는 거니?"

"네."

"잠깐 얘기 좀 할까?"

 사장이 쓸쓸하다는 듯이 힘없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벤치에 먼저 앉자 그도 옆자리에 앉았다.

"한수야. 요즘 들어 매일 단련하는 거 같은데 무슨 이유라도 있는 거니? 너 그러다가 병 걸릴 지도 몰라. 저번에도 한 번 어지러움증을 느꼈었잖아."

"괜찮습니다. 이제는 익숙해졌으니까요."

 트레이너는 초커를 달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인간은 반복 생활을 하다보면 적응할 수 있는 신체를 가졌다. 직장인이 블랙 기업이나 화이트 기업에 취직하든 다 똑같았다. 처음에는 지옥같은 경험이지만, 오래하다보면 적응하는 법이었다. 트레이너가 늑대개 팀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죽이는 걸 싫어했던 그가 요원 암살 노릇을 하기도 했었고, 살인에 대한 망설임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고민이 있으면 말해주지 않을래? 내가 보기에는 넌 지금 커다란 문제를 혼자서 떠맡고 있는 거 같아."

"그런 건 없습니다. 사장님. 전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사람이 육체 단련을 하는 것만으롣 강해진다고 할 수는 없어. 한수야. 수많은 문제를 혼자서 다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야. 내가 보기에는 너는 커다란 일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여. 학교에서 자퇴하고, 운동하면서 근육을 키우고, 갑자기 요리를 배우다니, 단순히 장래를 위해서 한 게 아니라고 봐."

 사장의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아니라도 누구라도 생각할 수 있었다. 트레이너는 가족이 없었다. 대학교도 자퇴했고, 장래희망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생활하는 데 있어서 필요할 것만 같은 일만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부사관을 위해서 단련하는 거라 생각했어. 그런데 너는 그것 말고도 우리집 알바를 열심히 해서 돈을 모으고, 요리를 배웠어. 그건 취미로 넘어갈 수 있지만, 자퇴했는데도 이 학교 근처에서 머무르는 이유가 뭐니? 뭔가 목적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니니?"

"죄송합니다. 사장님.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어차피 믿지 못하실 테니까요."

"난 말이다. 네가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았으면 한다. 너만의 목표를 정하지 않고 그냥 살아만 간다면 인생이 재미가 없을 거야. 나야 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를 물려받았지.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서 보람차게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너는 뭐니? 오랫동안 일하는 걸 봤지만, 넌 한번도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어. 마치 때를 기다리면서 꾹 참고 있는 거 같았거든."

 아무리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아도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법이었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어른이라면 한 번 정도는 눈치챌 수 있는 법이었다. 트레이너는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 대비했다. 차원종과의 전쟁 뿐이 아니었다. 미래에 들어가게 될 조직인 유니온과 벌쳐스, 그리고 모든 일의 원인인 프로미넌스와의 싸움을 계획했다. 

"저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싸워야 할 상대가 너무나 많습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우리나라에 전쟁이 일어날 일은 없을 텐데. 아니면 설마, 이 나라의 권력을 잡는 거물급과 싸울 생각인 거니?"

"그거와 비슷합니다."

 트레이너는 지고의 원반을 폭주시킨 미래의 유니온 총장을 떠올렸다. 미하엘 폰 키스크,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그를 잡는 것이 트레이너가 과거로 돌아온 진짜 이유였지만, 막상 그를 잡고 나서 지고의 원반을 어떻게 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지만, 말려봤자 소용없는 거 같구나. 가능하면 몸조심하기를 바란다."

"네. 사장님. 건강이 중요하니까요."

"들어가서 자라. 내일도 출근해야지."

 사장이 먼저 돌아갔다. 트레이너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취방으로 돌아가서 잠자리에 들었다. 


* * *


 2개월 후, 종말이 찾아왔다는 듯이 차원문이 하나 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6:1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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