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8화> : 갈 곳 잃은 분노

AI미스틱 2020-10-22 1

“요원님!”

리르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뻐꾸기에서 나오는 걱정스러운 목소리였지만, 거점지역 근처에서 힘이 다해 쓰러진 그를 깨울 수는 없었다.

언제 차원종이나 어비스가 올지도 모르는 마당에, 하물며 거점지역도 아닌 곳에 쓰러져잇는 그는 너무나도 위태로워보였다.

“괜찮습니까, 요원님?”

그런 그를 들쳐메는 이가 있었다.

신재영 경감. 그는 이번에도 하늘새 팀과 함께하게 되었던 탓에, 이곳에 와 있었다.

“정신 차리십쇼, 요원님!”

어떻게든 그를 거점지역으로 옮기고 나니, 상태를 살펴보던 의료 요원이 입을 열었다.

“몸에 막대한 위상력의 부하를 가해 폭발적인 능력치를 이끌어내는 방법… 일전에 제가 하지 말라고 당부드렸던 그거로군요.”

“상태는 위독하신건가요?”

“그런건 아니에요. 방대한 위상력 소모에 의한 피로 상태에서 몸에 가해지는 부하 때문에 쓰러지셨을 뿐. …아무래도 한동안 이분의 작전참여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직 의식조차 돌아오지 않았으며, 몸이 정상적으로 기능할 때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하지만 하얀 요원님은…”

그렇다고 1분대의 다른 한 명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는 끓어넘치는 위상력을 조절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쏟아내는데, 최근에는 그 잠까지 줄여가며 무언가에 몰두하는 것 같았다.

방에 틀어박힌 채 나오지 않는 그녀는 작전구역에 투입되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건드릴 수 없는 상태인 것은 맞았다.

“한동안 이 지대가 마비되겠군요.”

아무리 유주와 ‘주인’ 설화의 접전을 예상하고 도시 주민들을 통째로 대피시켰다고는 하나, 도시 바깥으로 넘어가는 차원종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아이라는 개체와 접전했을 때 어지간하면 멈추지 않을거라는 예상을 했음에도, 유주가 무리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불찰을.”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주인이 있다는 정보를 내어주는게 아니었는데.

손톱을 깨물자, 신재영 경감이 말했다.

“한동안 특경대가 작전구역을 봉쇄하겠지만, 오래 버티지는 못할겁니다.”

“저쪽이 가만히 있기를 바래야겠지요…”

하지만 상대는 차원종, 틈만 난다면, 계속해서 차원문을 넘어 들어오는… 괴물인 것이다.

그저 하염없이, 깨어나고, 나오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지금 상황이 괴롭다.



무엇이 문제일까.

어째서 그런걸까.

몸에 흐르는 위상력이라는 기이한 힘을, 어째서 몸이 견디지 못해 바깥으로 유출될 수 밖에 없고, 그 괴로움을 호소하기 위해 잠에 들어야만 했을까.

근본적인 문제였다. ─위상력은 다루기 위해 있는 것. 그렇기에 본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 터인데.

결국 숙련도의 부족이다.

자신의 모자람을 한없이 체감하며, 옛적에 만났던 스승─박용태를 떠올렸다.

“지금의 내게… 부족한 것…”

보다 강하게 엮고, 잇는다.

바깥에 두르고, 묶는다.

온 전신의 근육에 피가 돌 듯 활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쿵, 쿵거리는 심장음이 모든 것을 지워, 잊어버릴 때 까지…

─화아악…

무언가 변하는게 느껴졌다.

몸이 더워진다. ─붉은 열기를 내뿜으며,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을 점차 느꼈다.

그게 절정에 달해, 끝내 스스로도 의식을 잃어버리려던 순간.

─똑똑…

“하얀 요원님, 안에 계신가요?”

들려오는 노크소리가 의식을 붙잡고, 정신을 깨운다.

불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잦아들기 시작한다. 거친 숨을 내쉬고, 문으로 다가갔다.

“…경감님.”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현재 다른 요원분께서 중상이신지라…”

“유주가 중상…이라고요? 어째서…”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어지간한 차원종은 물론, 현존하는 S랭크 차원종도 리미트가 풀린 지금이라면 이길 수 있을텐데도, 그가 중상을 입고 돌아왔다는 말은, 그만큼이나 큰 충격이었다.

그러자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 고개를 숙인 신재영 경감이 말했다.

“며칠 전, ‘주인’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설마…”

“요원님께선 혼자 주인에게 부딪히셨던 모양입니다.”

리미터도 아직 풀리지 않았으면서, 무리해서까지 싸워야했던걸까?

그럴만한 필요가 있었다는 걸까.

모든 것이 의문이었다.

그리고 의료 요원의 안내 끝에 도착한 환자 침대에는,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것은 물론이요 아까 전까지 창백했던 얼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유주가 눈에 보였다.

“…유주…”

황금색 눈동자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조금만 흔들어도 금방 일어날 것처럼 보였지만, 그만큼 쉽게 쓰러질것만 같았다.

유주를 도망치게 만들고, 하물며 전력을 막아내는 괴물, 그것이 ‘주인’.

적의 전력을 굳이 이런 방식으로 확인한 이유는…….

“정보는 갱신되었습니다. 나타난 경력도 적고, 전적도 적은 탓에 특A급에 있었지만… 현재는 S급 차원종으로 언제든지 특S급으로 등록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유주의 전투 기록……인거야?”

“……네.”

그가 보인 전투는 실로 대단했다.

이 각도 채 되지 않았지만, 단 한번의 전투는 전장 자체를 환하게 비추었고, 세상에 두 번째 태양을 드리우게 만들었다.

주포라는 개념을 잊어버릴 정도로 강대한 고열의 화력을 홀로 이끌어내었으며, 숨쉬는 것만으로도 죽을지도 모를 정도의 몸 상태에서 결전기라고 치부해도 좋을 힘을 또다시 이끌어냈다.

“…휴유증은…”

“남지않을거에요. 원체 위상력을 다루는데 능숙하신 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육체적인 능력치가 높아서 괜찮을거에요.”

의료 요원의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말마따나, 유주가 위상력을 다루는 방식은 마치 아기를 어루는듯한 어머니의 손길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그만큼 섬세하게 위상력을 다루기 때문에 그녀는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이성을 벗어던진 채, 감각과 본능에만 의존하고 싸운다면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알고있기에.

“일어나도, 한동안 출격시키지 말아주세요.”

“예? 어째서…”

“분명… 분명 무리했을테니까.”

그 한마디와 함께, 자신의 검을 집어들었다.

차원종들이, 특경대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신재영 경감이 경고했기 때문이다.

치익, 하고 달아오른 철을 붙잡은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살며시 칼날을 빼내자, 그곳에는 받은지 1달도 채 되지 않은 무기라 하기에는 무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상해있는 칼이 있었다.

그을려지고, 여기저기 날이 망가져 이제는 날붙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불쌍할 지경이었다.

“갈게요.”

“무운을 빕니다, 요원님.”

경례 자세로 배웅하는 신재영을 뒤로한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살의는, 인간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흉흉할 정도였다.

공중에 떠오른 채, 다시금 허공을 밟는다.

응축된 공기가 터져나가며 순식간에 가속한다.

“유주…”

그는 어릴적부터 그랬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언제나 혼자서 해결하려고만 한다.

고집불통, 거기에 말도 통하지 않는 바보.

이번 일만 해도, 얼마든지 동행해서 갈 수 있었으면서도 굳이 혼자 행동하다가 벌어진 일이 아니던가.

조금만 미루고, 조금만 더 자신을 믿어주었더라면 예방할 수 있을 일일지도 모르는데도.

그렇게 한참을 날아간 다음에야 도착한 지상에는, 또다른 존재가 장악한 뒤였다.

“누구지?”

차원종들이었다. ─그것도 크리자리드 타입의.

본래라면 용이 되어야할 뱀들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건가. 의문이 들었다.

그가 부리는 수족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으며, 하물며 그것은 지금에 이르러선 절규를 하고 있었다.

“끝에 끝자락에 이르러서 겨우 만나는 것이… 인간이라니…… 큭큭…… 이 몸도, 이제는 여기까지인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던 크리자리드는, 끝내 한쪽 팔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위대한 선대의 용이시어! 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후손을 용서해주소서…”

콰드득, 콰득!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조차 묻지 못한 채, 이색의 피를 내뿜으며 심장을 꿰뚫은 그것은 천천히 쓰러졌다.

심장을 관통했고, 즉사했다.

일일이 확인할 필요도 없었던 그것의 사체는 벌처스에서 알아서 처리하겠거니 싶어 몸을 돌리는 순간.

─촤아악!

“…저건…”

순간적인 불길함, 단지 감에 불가했지만, 감이라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그녀의 초감각이 그것을 잡아내었다.

─슈앙!

검을 휘두르며 위협했지만, 끝자락조차 베이는걸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늘어나 회피한 그것은 끈적이는 듯한 검은 물체.

‘슬라임’이라 명칭된 괴물은, 애매모호한 악의를 가진 채 그곳에서 놀리듯 꾸물거리고 있었다.

‘작아…’

너무나도 작은 그것이 왜 자신에게 관심을 가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정확하게 느껴진 악의를 가만히 둘 생각따윈 추호도 없었다.

검을 다잡자, 부글거리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붉게 달구어진 철처럼, 망가진 날을 대신해 솟아오른 자홍색의 날. 검으로부터 뿜어지는 열기는 아지랑이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베는 것에 특화되어있지만─베이지 않을 상대.

아마 이 자리에선 분명 도망쳐야 마땅한 일일텐데.

─촤아악!

상대가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다가오는 그것을 회피하고, 쳐내고, 잘라내며 움직인다.

이윽고 감질맛만 난다는 듯, 쩌억하고 그제서야 제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건물?’

건물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커다랗게 늘어난다. 아무리 형체가 자유자재로 변한다고는 해도, 크기까지 자유자재로 변한다는건 너무 말도안되는 소리가 아닌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하지만 몸은 해야할 일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신체 위상능력자라 그런건지 몰라도, 움직임 자체는 아주 예리하고 빠르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더해 본능보다 더 멀리에 있을 터인 어떤 한 ‘감각’이 다음의 위협을 어느정도 예측하기도 했다.

답답해졌는지, 있던 자리에서 주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채찍처럼 변화한 그것은 몸길이를 순식간에 늘려 공격에 임했다.

그 순간, 검을 집어넣는다.

─왜 지금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를까.

기분이 참 더러웠다.

기묘할 정도의 상황에서, 그 남자의 기술이 떠오르다니. 이만큼 기분이 더러웠던 적은 또 없었다.

땅을 박차고 나간다. 의식으로 잡아낼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력.

1초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칼날의 흔적이 갈려나갔다.

“…다음에 만날땐, 밥 한 번 사줘야겠네.”

티잉,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이 갈라진다.

터무니없는 공격반경을 가진 그것은, 빌딩 서너개를 확실하게 절단하고 무너트릴 정도로 강대한 힘이었다. 검집에 검을 집어넣자, 그제서야 흔적이 빛을 발했다.

─산들바람베기

쩌엉!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는 어마어마한 힘. A급 클로저라고 늘 자신을 소개하던 선배 클로저가 죽지 말라면서 보여준, 자기과시의 일환일 뿐이었지만 하얀에겐 그것도 좋았다. 목숨 한 번 구하는 정도는 됐으니까.

“후우…”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는 슬라임은 꽤… 귀엽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날뛸 뿐.

이윽고 덩치를 부풀린 슬라임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였다. 세상이 잠기는 바다, 그게 더 올바른 표현이라 할 정도로 커다란 슬라임은, 이윽고 퍼억, 하고 터지더니 콰앙~! 하며 온 전신이 액체처럼 흘러내렸다.

저것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검을 다잡았다.

살아남아야─

─천지는 물론, 모든 것이 흑색의 바다에 잠겨 사라졌다.



“요원님…”

화면 너머로 보이는 참담한 현장. 검은 해일이 밀고 지나간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단 한 명, 남아있는 존재가 있었다.

특이하게도 한 차례 모든 것을 녹여낸 그것은 곧장 돌아갔으며, 그 덕에 하얀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의식을 잃지 않고서 그 검은 해일로부터 빠져나온 하얀은 무언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안에서 어떤 일도 당하지 않았던 듯, 여기저기를 계속해서 훑어보더니 고개를 기울였다.

“요원님!”

뻐꾸기를 급강하시키며 다가가자, 그곳에는 아무런 변화도 겪지 않은 듯한 하얀이 서 있었다.

“리르…”

그러나 문득 무언가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눈동자가 어두워진 기분이었다.

“나, 살아있어…?”

두 손을 펼쳐보며 묻는 하얀에게 그렇다고 답하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칼자루를 잡았다.

“벨…수 없었어…”

액체를 벤다는건 불가능이다. 물리적으로는 그랬다.

허나, 위상력이라는, 물리적인 차원을 넘어선 무언가를 두른다면 액체라 해도 고체처럼 베어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김기태라는, 옛 선배의 기술 역시 그런 것에 속했다.

한 번 갈라진 것이 두 번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바람결에 상처를 내 공간을 찢어낸다. 한번 찢어진 것은 두 번 다시 달라붙지 못한다.

허나, 그것은 재생했다. 더 크고, 강하게.

하지만.

“요원님은 분명 베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봤습니다.”

리르는 그 모든걸 보고 있었다.

쩌억, 하고 갈라지는 순간, 한 개체로부터 수없이 많은 입같은 것이 튀어나와 다른 개체를 모조리 먹어치웠다는 것을.

하지만 놀랄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의 기술도 아닌, 다른 A급 요원의 기술을 모방한 것도 모자라 그 위력이 드러나다니.

쉬이 믿을 수 없는 경우에 오히려 리르가 놀라고 있자, 덜컥거리는 검을 힘으로 억지로 막은 하얀이 말했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자신은─주인이라는 개체에 적대는 커녕, 위협조차 되지 못했다.

상심했던 까닭일까, 아니면 슬퍼서 그런걸까.

한동안 자괴감이라는 감옥에 빠져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하얀을 다시 일으켜 세워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리르였다.

며칠 사이에 조금 주름기가 늘어난 듯한 리르를 눈앞에 둔 채, 무릎을 끌어안고 벤치에 앉아있던 하얀이 살짝 눈동자를 굴려 쳐다보았다.

황금색의 빛 잃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리르가 말했다.

“출격도 거부하고, 여기서 뭘 하고 계신거죠…?”

그에 대해 하얀이 답했다.

“…모르겠어.”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멈추어있으면 안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도 사방에서는 차원종이 나타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신재영 경감은 굳이 찾아오지 않았다. 왜 그런건진 모르겠지만, 항상 찾아오고서는 약간의 덕담과, 음료수를 내어주고서는 금세 돌아가버렸다.

차라리 호통을 쳤으면, 차라리 욕설을 날렸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잠시 걸으실까요.”

그 말에 하얀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윽고 몸을 일으키자,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왼쪽 볼이 얼얼했다.

불타는 듯한 감각. ─리르가 뺨을 때렸다는 사실이 다가왔다.

“…리르…?”

“당신이 이렇게 멈추어있을 때에도, 사람들이 희생당하는데… 당신은… 왜….”

─힘이 있으면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할 힘이 있으면서도, 여기에서 멈추어있는 그녀가 미웠다.

이런 감정을 사사로이 내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쉽지 않았다.

꾹 쥔 주먹을 내린 채,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하얀마저도 할 말을 잃었다.

“…출격해주세요, 제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지만, 그 목소리에 어쩐지 자신과 비슷한 자괴감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응.”

가슴게에 울리는 고통을 가리며, 출격을 준비한다.

결국 그녀는 클로저기에.

클로저였기에, 다른 사람을 지켜야만 했으니까.

“갈게.”

“…네.”

가벼운 대화 끝에, 하얀이 날아올랐다.

기껏 온 이유가 고작해봐야 그것이라고 누군가는 말할지는 몰라도, 리르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에게 이렇게 살아갈 희망을 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하얀이었으니까.

“제발… 무너지지 말아주세요….”

그녀를 지탱해줬던, 남아있는 유일한 초석인 하얀이 무너지게 된다면…

이제 그녀를 붙잡아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꽈악, 붙잡은 손에서 피가 흘렀다.

긴 손톱이 끝내, 살을 파내 피를 낸 것이다.

“…돌아, 가야겠지….”

그녀는 2분대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해야만 했다.

어린애들이 모여있는 그들의, 기둥이 되기 위해.
2024-10-24 23:35:5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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