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비스의 주인 <4화> : 하늘새 팀과 검은 괴물

AI미스틱 2020-10-06 0



구로역 하늘길크레인 위에 단 두 명의 인간이 있었다.


둘 모두 검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며새하얀 은발을 가진 소년소녀였다.


그런 둘 앞에후드를 뒤집어쓴 한 인간이 나타났으니 척 보기에도 평범해보이는 그것은 겁도없이 기울어져있는 크레인의 위에 올라탔다.


그제서야 소녀 쪽에서 입을 열었다.

 

그래약속은 지켰어. 붕대 녀석은 힘을 잃고 추락할거고네가 원하는대로 결말이 나겠지이제 좀 만족해?”


만족이라... 그렇네요기왕이면 두 분이 칼바크 턱스를 직접 처리하기를 바랬지만역시 거기까지는 안되겠지요. ”

 

그에 반응한검은 바탕에 금색 자수를 박은 후드를 입은 그것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한 열풍이 불어오고 있었다이런 날씨에그토록 더운 열풍이 불어올 수 있는걸까.


시원해도 시원찮을 바람에 열이 가해지니구로 일대가 절로 더워지기 시작했다.

 

너무 경계하시는걸요.”

 

여전히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면서도 가볍게 내미는 그 한마디는 더운 열기를 서늘하게 식혀내었다.


그에 대해 소년쪽이 입을 열었다.

 

감히 우리에게 협박을 하다니그 대가를 치룰 시간이다.”


“...이거야 원... 동생 분을 말리시지는 않는건가요?”


예의없이 먼저 협박한게 누구인데난 오히려 찬성인걸.”


이런.”

 

한 발자국 물러서자마치 절단된 듯 크레인이 분리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벌어지는 신경전그리고 경고없는 공격에 한숨을 내쉰 그것은 천천히 한 손을 들어올렸다.

 

두 분은 제 덕에 칼바크 턱스보다도 훨씬 재미있어보이는걸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 그래그랬지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쪽이 먼저 잘못한 것 아닌가?”


잘못무슨 말씀인가요.”


칼바크 턱스의 정보를 유니온에 흘린건 네가 아니라는건가녀석들이 강남에 있을 때엔 아직 녀석의 정보가 미흡했을텐데그 정보를 알만한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거든.”


정보망이 넓은게 아닐까요? ...제가 한 건 아니지만.”


시치미 떼는건 거기까지야.”

 

또각하면서 뒤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소년과 함께 있었을 터인 소녀가그 뒤에 나타난 것이었다.


구두 발굽을 울리며 앞으로 나선 소녀의 모습에 그것이 고개를 갸웃하니소녀가 말했다.

 

딱 봐도 너잖아타이밍 좋게 굴러와서는 협박이라니설령 아니라고 한들본인이 생각해도 이상한 타이밍이라 생각하지 않아?”


“...그렇긴 하네요그 말이 다 옳다고 쳐도... 두 분이서 저를 제압하실 생각인가요후회하실텐데.”

 

양 쪽에서 불어닥치는 강한 열풍 사이에 끼인 그것은끝내 한숨을 내쉬며 모자를 벗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에 그림자보다 짙은 검은 빛의 눈동자는 머리카락만 제외한다면 흔히들 바라보는 동양의 모습이었다평범한 인간과 아무것도 다르지 않은 그런 인간.


긴 장발의 머리카락이 허공에 아무 의미없이 흩어질 때그녀는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싸워도 서로 이득될 건 없을텐데여기서 그만하시는건?”


이득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알고있지하지만 너는 너무 큰 방해거든.”


우연이네요우리도 당신들이 방해였으니까피차일반으로 방해였다면 여기서 제거해두는게 이쪽 마음이 편하겠는걸요.”

 

빠드득...


기이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런 열풍과이런 상공에 그런 소리가 들릴 수 있는걸까.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그 기이한 소리와천천히 식어들어가는 대기서로를 마주한 상태에서아무도 움직이지 않은 채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평소같았더라면 셋 중 누구 하나는 먼저 움직였을법한 상황이었지만모두가 같은 생각인건지아니면 한 쪽이 일방적으로 상황을 주도해버린건지.


끝내 소녀가 허리에 두 손을 걸치며 말했다

 

그만하자애쉬.”


하지만 누나...”

 

애쉬라 불린 소년이 반박을 하려고 하니그런 그를 제지하듯 손을 올린 소녀가 말했다.

 

이 녀석 말이 맞아여기서 싸워봤자 서로 이득이 될 건 없어오히려 우리가 손해일지도 몰라.”


그런...”


네가 이겼어하지만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물론이죠두 분과는 앞으로도 좋은 사이를 유지했으면 좋겠네요.”


말은 잘하는군거래도 아닌 협박이었던 주제에.”


“...”

 

웃음을 짓는 여성의 뒤로 애쉬와 그의 남매가 차원문을 열며 사라졌다.

그러자 마치 대신이라는 듯 나온 커다란 차원종의 모습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입맛을 다셨다.

 

미움받았을까요.”

 

쩌억...

 

손을 흔들면서 차원문을 열었으니인간인지 차원종인지 분간이 채 가지 않았다.


여유롭게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내버려둔 채그곳에 남아있던 것은 한때 차원종이었던 무언가 뿐이었다.

 

 

 

 

뭐가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차원종은 맞긴 한건가?”


저도 잘 모르겠어요지금 영상으로 확인하고 있지만유니온 자료에는 해당 개체에 대한 자료가...”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니까.”

 

유니온을 시원하게 까대면서 건블레이드를 휘두르니베어낸 상대로부터 번개가 나뭇가지마냥 뻗어져나와 주변의 적을 감전시켰다.


말도 안되는 숫자릐 공세로부터 살아남으면서 잡병을 쓸어버리는 방법은 지루하리만큼 익혔다.

 

철컥!

 

잔혹한 소리와 함께 포구에서 빛이 일렁이니번개라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여린 구체였다.


작은 구의 형체를 띄고있던 그것은 순식간에 깨어지더니 이윽고 정면을 향하기 시작했고결전기라 불러도 이상하기 않을 정도의 빛이 정면을 가득 메웠다.


포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나올 때유주가 끝내 혀를 찼다.

 

이거야 원끝이 안보이는데.”

 

검은 무언가는 계속해서 차원문 너머에서 기어나오고 있었으니차원 전쟁에서 본 그 끔찍한 숫자의 차원종보다 더 역겨울 정도였다.


오히려 그 때가 양반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흘러나오는 그것은 구토를 유발할 정도였으며속이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자니인간의 형체를 한 다른 누군가가 차원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처음 발을 내딛더니 잠시동안 주위를 둘러보고이윽고 이쪽을 쳐다보고서는 놀랐다는 듯 입을 가렸다.

 

“...당신이 한건가요?”


그렇다면?”

 

건블레이드를 어깨에 걸친 채 어쩔거냐는 듯 대답하니그것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반응했다.

 

이 세상에는 대단한 인간이 있네요혼자서 여기까지 해낼 수 있는 인간도 있고요.”


뭔 개가 짖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만너도 차원종이라고 봐도 되는건가?”


반 정도는?”

 

콰아앙!!

 

예고도 없이 찾아온 섬광이 거리를 뒤덮었다.


차원종이라는 이 확실시 된 이상더 나눌 이야기는 없었다빠르게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채다음 적을 맞이하는게 더 나았으니까.


하지만 마음대로는 되지 않는다는 듯눈 앞에 약간의 얼음 벽을 세워 막은듯한 그것은 얼음 벽을 허물면서 즐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밌네요.”

 

그 모습을 보며 인상을 찡그린 채 다시금 위상력을 집중하니그 끝에 맺히는 구슬같은 빛을 바라보며 그것은 손을 저었다.

 

일부러 싸우기위해 온 건 아니라고요.”


그걸 내가 어떻게 믿지?”


...”

 

딱히 믿을만한 것도 없었다오히려 저런 괴물들을 이끌고 나온 것부터가 선전포고에 가까운 행위였는데도.


그렇게 말하자 한참동안 고민하던 그것은이렇게 하면 어떻겠느냐며 박수를 짝 치더니그것으로부터 터져나온 충격은 그 안의 모든 것을 얼리기 시작했다.


위상력을 가지고 있어서인지아니면 적이 봐준 것인지이 근방이 모두 얼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이 멀쩡한 상황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자차원문 너머에서 기어나온 검은 괴물들이 모두 얼어붙어천천히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정도면 믿을만할까요?”

 

그 모습에 살짝의 신빙성이 생기긴 했지만오히려 그 압도적인 힘 앞에 도리어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더욱 경계태세를 가하자니무언가 잘못되었느냐는 듯 고개를 기울인 그것에게 유주가 입을 열었다.

 

오히려 아까 그 괴물들보다 네가 더 위험해보이는걸.”


“...그럼 어떻게 해야 저를 믿으실 수 있으신가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붉은 두 눈동자만을 비치면서 말하는 그것을 보며불안한 기분을 안으로 쓱 감추며 그나마 나오는 말만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얼굴이나 비치고 말을 하시지.”


“...그렇네요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말할 수는 없겠죠하지만 이걸 벗으면 전 분명히 당신네들... 유니온이라고 하던가요거기에 정보가 기록될텐데그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리르정보 기록은...”


제정신인건가요당신?”

 

무전기에 대고 그리 말하자제정신이냐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눈 앞의 커다란 재앙을 바라본 채유일하게 성사될 수 있는 거래를 내팽겨칠 수는 없었다.


뜻을 굽힐 생각을 하지 않자답답하다는 듯 리르가 답했다.

 

알았어요기록을 중단할게요. ...살아서 돌아와요.”


살아서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거기서 따뜻한 차 한잔이나 마시면서 앉아있으라고.”

 

무전이 끝난 후지금의 정보 기록은 중단하겠다고 뜻을 밝히자그것은 웃으며 반응했다.

 

지금은이라고 하는걸 보니헤어진 다음에는 또 기록할 생각인거죠?”


그럴수도 있지하지만 네가 직접적인 힘을 보이지 않은 지금 섣불리 등록하기도 힘들어.”

 

지금 보인 능력만 봐서는 이미 특A급을 뛰어넘은, S급 차원종에 해당했다.


하지만 여유를 부리는 모습이나고작해봐야 박수 한 번의 영향이 그정도라는걸 생각해보면 이미 특S급 차원종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특S급 차원종의 기록에는 상당히 많은 심사를 거쳐야하며실제 현장에서도 그걸 입증할만한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등록하는 것은 무리에 가까웠다.


그런 내용을 정하자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 그것은 처음으로 후드티의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


새까만 머리카락그것은 새까맣게 물든 그림자보다 어두웠다.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어둠보다도 어두웠고심연보다도 깊게 파묻히는 듯한 그 머리카락의 모습에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으며두 눈에 새겨진 흑색 눈동자의 어두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으깨어버리는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지?”

 

유주가 적에게 하는 말투 치고는 매우 얌전히 반응하자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려주면 당신은 내게 뭘 해줄거죠?”


“...또 뭔가를 해줘야하나?”

 

순순히 답할 리가 없겠지현재 등록되어있는 차원종들 역시스스로 입을 연게 아닌 유니온에서 지정한 명칭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런 괴물이 외부 차원에 많이 존재하는거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 그지없었다.


입을 꾹 다문 채 노려보고 있자니 두 손을 올려 손사래를 치며 반응했다.

 

너무 노려보진 마세요싸움을 걸기 위해 온 건 아니니까.”


아까 그 물량을 생각하면 그 말은 믿을게 못되는데.”


물론 그렇겠지만... ...하아...”

 

언제라도 들어올릴 준비가 된 건블레이드와끓어오르는 위상력을 억누르며 대치하고 있자니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딱히 싸우려고 온 건 아니에요우리는 당신들이 차원종이라고 이름지은 이름없는 군단의 적다르게 말하자면... 적의 적이라는거죠.”


“...호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이야기도 있잖아요우리 사이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는걸요.”

 

적의 적그건 분명 공동의 적을 둔 아군일 것이다.


하지만그걸 입증할만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너희는 똑같은 외부차원에서 들어온 차원종. ...틀린가?”


틀리죠같은 차원문이라 해도다른 곳에 있었으니까요무엇보다 지금의 우리는 서로 적대하는 사이니까요.”


일전에는 아니었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죠그런 일만 없었더라면 이 차원의 침공도... 분명 함께했을걸요만약 적이었다면 그 때 같이 침공했겠죠.”

 

이론상으로는 맞는 이야기였다.


만약 차원종과 저것들이 같은 편이었다면 차원전쟁 시절함께 침공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눈앞에서 보인 현상은저런 괴물이 한둘만 더 있었더라면 내부 차원을 아예 무너트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쉽게 믿을 수는 없었다.


결국 차원문 너머에서 침공해온 괴물이었기에.

 

끝내 믿지 못하는 눈빛이시군요.”


그럼너같으면 믿겠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하지만 기억해주세요그들은 우리의 적이라는걸.”

 

그대로 뒤로 돌더니차원문을 열며 사라져버렸다.


제 할 말만 한 채 사라져버린 그것의 뒤를 바라보며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자 하니한 번 닫힌 차원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주는 만약을 대비해 대인용으로 바꿔놓은 건블레이드의 포격모드를 해제했다.

 

원만하게 끝났어리르.”


당신이라는 사람은...! ...어쩔 수 없네요돌아와주세요.”


건블레이드의 리미트를 말없이 해제해서 미안해.”

 

유주의 건블레이드에는 출력을 제어하기 위한 리미트가 걸려있었다.


그 리미트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유주가 요원으로서의 급이 높아지거나혹은 상부의 허락이 있어야만 했는데둘 중 하나도심지어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멋대로 3단계까지 풀어버리니 관리요원인 리르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유주의 뒤처리는 그녀의 담당이었으니까.


작전구역으로 돌아오니뻐꾸기에 나타난 리르가 화면 속에서 이마를 짚은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말없이 리미트를 해제하고작전구역의 정보를 은폐하고상부에서 압박이 내려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고요.”


미안해하지만 상황이 상황이었어그 상태에서 내가 거절했더라면...”


어떻게 될지 몰랐겠죠충분히 알아요. ...하지만 다음에는 최소한 언질이라도 해주세요누가 뭐래도... 저 역시 <하늘새팀의 관리요원이니까요.”

 

유주가 고개를 끄덕이자그제서야 자리에 정자세로 앉은 리르가 말했다.

 

얼마 후면 이곳으로 새 클로저팀이 오게 될겁니다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아마 강남으로 가게 되겠지요.”


강남거긴 이미 다른 팀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들렸거든요아무래도 상대가 성가신 듯 합니다.”

 

의도적으로 강남으로 배치한건지아니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배치한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동에 한숨을 내쉰 유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중하얀이 하품을 하면서 일어났고마침 타이밍 좋게 리르가 말했다.

 

다음 작전구역이 정해졌어요.”


그래빠르게 가지.”


조금 천천히 가주시면 안되나요?”

 

좌표도 도착하기 전에 출발하려던 직전뻐꾸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리르의 그 말에 고개를 기울인 유주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그녀는 장난하냐는 듯 답했다.

 

뻐꾸기로 따라가지를 못해서 GPS 추적하는건 알고있나요?”

 

들어본 적 없는 소리였다.


옆으로 고개를 젓자 한숨을 내쉰 리르는 명심하라면서 당부했다.

 

빨리 가는건 좋지만현지 상황에 대한 보고도 잊지마세요.”


알았어.”

 

배려따윈 하나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답하니 결국 포기한 리르는 좌표를 보내주었고그 좌표에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좌표에 도착했을 때유주의 눈에 비친 것은 새하얗게 얼어붙어있는 세계였다.


바닥이 빠직거리며 깨어질 정도의 살얼음판태양빛을 난반사하는 얼음이 빌딩을 타고 올랐으며차원문을 넘어 나타난듯한 차원종들은 그곳에 얼어붙은 채하나의 빙상이 되어있었다.

 

살벌하군.”

 

얼음기에 서려있는 살의는 다가오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살의가 향하는 것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그걸 알고있었던 유주는정적만이 가득한 살얼음판을 깨워내며 걷기 시작했다.

 

유주.”

 

하얀이 불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확실히 불길했다저 얼음은일전에 보았던 그 가벼운 박수와는 또다른 것이었기에.


떨리는 마음을 붙잡은 채 답했다.

 

“...그래알고있어.”

 

이 앞에 있는건 일전에 보았던 그것과는 다르다는걸.


침을 삼킨 채 계속해서 나아가자그곳에는 일전과는 다른위에 후드를 덧입은 누군가가 있었다.


살의라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한 그것에 건블레이드를 고쳐잡았다.


순간 철컥하는 소리가 나고그제서야 저쪽도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

 

높은 텐션의 목소리였다.


맑고 고운 음색이 울리자그것에 공명하듯 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얼음이 후두둑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얼음 알갱이들은 눈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그 목소리에 결코 좋은 반응은 나지 않았다.

 

“...전에 보았던 그 녀석이랑 동일인물인건가?”


네에.”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유주가 시선을 조금 더 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럼 저건 뭐지?”

 

마치 조각하듯 세워져있는 빙상.


인간의 형상을 띈 그것은판금갑옷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얼음을 두른 채 있었다.


그러나그 복장은 틀림없는 유니온의 것이었다.


아마 이곳에 교체되러 온 클로저거나혹은 정찰일 가능성이 높은 와중그녀는 입을 열었다.

 

사람이잖아요?”

 

당연한걸 묻지 말라는 듯한 목소리에 유주가 건불레이드를 움직였다.

 

그렇겠지.”

 

콰아앙!!


일전의 광범위한 포격과는 달리좁은 범위의 공격.


얼핏 보기만 해도 색이 달랐다무엇보다느껴지는 열과 힘의 크기가 아득히도 달랐다.


그것을 상대에서도 인지했는지얼음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에는 간신히 한 손을 앞으로 내민 이 있었다.

 

뜨겁네요.”

 

죽일 각오로 쏘아낸 공격을 뜨겁다고 표현한 것은아마 유주라는 클로저의 역사상 처음일 것이다.


대개 닿기도 전에 불타버리거나아니면 녹아 사라지거나.


손 한짝도 빼앗지 못한 그 경이로운 강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자니그녀는 손을 다시 거두고선 말했다.

 

싸우고싶지는 않네요.”


우린 싸울 이유가 충분해.”


저 뒤의 인간들 말인가요? ...너무 신경쓰지는 마세요.”

 

어쩐지 말투도 이상하게 달라져있는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자일전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 있었다.


불길할 정도로 검게 물든 눈동자가선혈을 내비친듯한 붉은 눈동자로 변화되어있었기에.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볼 생각은 없는건가요?”


대화를 하기엔 도가 지나친걸.”


알고 있잖아요어차피 이기지 못한다는건그렇다면 최소한 대화정도는 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침을 삼켰다.


억울해도 맞는 말이었다지금의 이 상황에서저것을 이길 대책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리미터가 모두 풀려있을 적에도 승패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괴물을 앞에 둔 지금은... 이길 수가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물러나기에는 이미 누군가가 희생된 다음이었다.

 

아니이미 갈라서버린거야.”

 

고개를 저은 채 유주가 그리 말하자유감이라는 듯 미소를 지어낸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대화라기엔 제안이겠네요.”


제안누군가를 죽여놓고제안을 논하자는건가?”


네에그들은 제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제가 원하는 사람은 오히려 당신들에 가깝죠. ...일단 간단히 여쭤볼게요.”

 

말함과 동시에 그녀는 두 손을 펼쳐보였다.


순간 무기를 바로잡았지만위해는 가할 생각이 없다는 듯 팔을 양 쪽으로 펼치며 물었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어요?”


“...”


이런대답이 없으시네.”

 

대놓고 눈앞에서적을 놓은 채 유유히 회유하려고 하는 그 뻔뻔함에 차마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니뻔뻔함 이전에 그 두 손에 담긴 커다란 무언가에 짓눌려숨조차 쉬지 못할 것 같았다.


압박아니, ‘죽음이라는 개념에 가깝겠지.


바라볼수록 커다랗게 변화하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었다.

 

걱정마세요아무것도 하지 않을테니까.”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버티자역시 무리였나 싶었는지 두 팔을 내린 그녀는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이윽고 입을 열었다.

 

하은.”


“...?”

 

갑작스레 그 입에서 뱉어진 한 마디는본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어째서 그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제서야 관심을 가져주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은이라고 했었나요당신이 잃어버린 옛 친구가.”


“...그걸네가 어떻게...”


글쎄요하지만 이걸로 거래의 조건은 성립된 것 같네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등 뒤로 감춘 그녀는 이내 웃음기가 지워진 표정으로 물었다.

 

당신이 잃어버린 친구와 만나게 해줄테니우리와 함께하는건 어떤가요?”


“...그건...”

 

사실 이제와서 클로저의 활동이라는건 사실상 표면상의 일이었다.


이미 유니온에 대한 정은 떨어져버렸고인간에 대한 신뢰도 거의 무너져내린지 오래였다.


믿었던 사람이 갑작스레 뒤통수를 쳐서모든 것을 눈 앞에서 놓쳐버리는 그 기분을 느껴본 이후하얀을 제외하고 사람을 완벽하게 신뢰한 적이 없었다.


순간의 망설임 속에서 방황하고 있자니 그녀는 말을 정정했다.

 

함께한다고 하는건 너무 그러니 조금 더 자유를 드리죠세 분이 함께할 기회를 드릴테니이쪽으로 오지 않으시겠어요?”

 

거래의 조건이 성립되었다고 했던가.


그것은 거래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호의에 가까웠다.


과연 함께한다는 것이 어디까지 통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적어도 그만큼씩이나 내어준 것은 그녀의 입장에서도 상당히 내어준 것이겠지.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않은 채 있자니 다시금 제안했다.

 

여전히 망설이시는 것 같으니 조금 더

유주!”

 

갑작스레 그 사이에 끼어든 것은 다름아닌 하얀이었다.


강하게 호통치듯 말한 그녀를 바라보니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하은이저렇게 쉽게 사람을 죽이는 녀석과 함께 있을 리가 없잖아!”


그건...”


나는... 나는 안 믿어.”

 

몸이 떨리고 있었다.


아마 그녀도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쯤은 굴뚝같이 있었을 것이다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한 것은 단지 저쪽을 믿을 수 없어서였다.


사람을 죽인다그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가.


한심할정도로 쉬운 행위이긴 하지만그 각오가 얼마나 쉽게 무너지던가.


하은은 쉽게 사람을 죽이고웃음을 비칠 정도로 강한 아이가 아니었다설령 18년이 지났다고 해도그게 변하지 않았을거라고 믿고있었다.


철컥.

 

“...결렬인가요?”


유감이네.”

 

그 사이를 갈라놓은 단 한자루의 건블레이드.


협상도제안도호의도모두 거부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나올까.


웃음기는 물론이요장난기도심지어는 약간의 방심마저도 바람결에 날린 듯차가운 바람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정말 유감이네요.”


그래아주 유감이지만 그렇게 됐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추워서가 아닌공포에 의한 본능육체적인 반응.


비단 유주만 그런 것이 아닌하얀 역시 몸을 떨고 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서 있었다.


그런 둘은그녀에게 어떻게 보일까.


원한다면 지금 여기서 죽일 수도 있는 벌레같은 존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시 한번 자비를 내비쳤다.

 

아쉽군요이정도라면 할만하다 여겼는데.”


난 내 앞에 하은을 데려다놓기 전까진 안믿을거거든.”


그건 모르겠지만요.”

 

추웠던 한풍이 점차 잦아지더니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이거실례했네요제 소개도 없이 멋대로 거래라거나제안이라거나.”


그렇다면 이쪽부터 이름을 조금 대도록 하지. ...유 주클로저다.”


하 얀... 이하동문.”

 

그러자 잘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스스로의 이름을 내비쳤다.

 

저는 어비스’ 소속의 여섯 번째 주인’... ‘설화라고 합니다.”


스스로’ 이름을 내민 그것의 정보는 천천히 리르에 의해 기록되고 있겠지.


고개를 끄덕이자그녀는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다음에는 조금 더 좋은 조건을 들고 오도록 하죠여러분같은 인재를 놓치고싶진 않으니까.”


잘 선택해서 골라오는게 좋을거야. ...만나기 전의 행동까지도.”

 

일전과는 달리미소가 아닌 무표정으로 몸을 돌린 그녀는 눈 앞에 차원문을 만들어내고서는 천천히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야 무거웠던 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클로저들을 어떻게든 구해**다는 생각에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으며리르 역시 상황 보고를 받은 듯해당 구역의 특경대들을 출동시켰다.

 

“...‘설화라고 했나요?”


그래. ...말도 안되는 괴물이야서유럽에 나타났다던 헤카톤케일도그만큼의 괴물인가?”


헤카톤케일과 비교하는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 정도로 압도적인 힘이라면오히려 그 정도의 괴물이 더 알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기록으로 따지자면 아직까지 헤카톤케일이 더 우세합니다당시의 헤카톤케일은... 절망 그 자체였으니까요.”

 

차원전쟁 시절 나타난 ’. 그것은 사람들에게 극도의 절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때는 전쟁에서 나타났을 적의 경우였다아마 그 상황이라면 누구든지 절망하리라.


허나반대로 거의 평화로워진 세상에 보다 더 큰 재앙일지도 모르는 괴물이 나타난다면.

 

더한 재앙이겠지.”


그렇죠. ‘어비스’ 소속이라고 했나요?”


그래그것도 이상해.”

 

차원종이 소속을 밝히고 이름을 밝힌다들어본 적도 없는 이야기였다.


마치 처음부터 그랬었다는 듯한 태도였고그렇기에 의문조차 가지지 못했었다.

 

어비스 소속... ‘여섯 번째라면그녀석보다 더하거나 비슷한 놈들이 최소 다섯이나 더 있다는건가.”


그렇게 되겠네요얼음... 그리고 소속 불명강남에서 한 차례 사건이 있었네요말렉 출현 사태... 김유정 관리요원이 작성한 기록에 따르면 갑자기 말렉이 얼어붙었다.’”


갑자기 얼어붙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어.”

 

최소 특A급 차원종혹은 S급 차원종으로 분류될만한 강함그정도면 말렉정도야.

 

하지만 위해 자체는 없었던 것으로 보이네요실제로 기록에도 그 이상은 없으니까요.”


그건 다행이군. ...이송된 클로저들은?”


다행히 다들 위상력으로 몸을 보호한 것 같습니다잘 녹이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는군요.”

 

여러 가지로 위상능력자라는 존재는 생명줄이 질겼다.


평범한 인간처럼 목이 날아가면 죽는거야 당연하지만이렇게 전신이 얼려졌을 경우에는 자칫 부서지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대체로 살아나니까.

 

아마 며칠뒤엔 거점 이괄이 가능할 것 같으니조금만 더 버텨보자고요.”


그래.”

 

그 괴물을앞으로 자주 보게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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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달라지지 않은 한심한 글을 계속해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이게 뭔 개뜬금없는 전개냐, 고 의문을 가지실 분들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연하은입니다. 그리고 주 전개 역시, 검은양 팀으로 이루어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관적인 게임 설정 따라가기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던 흔한 클로저스의 스토리입니다.

변화하는 것 없이, 클로저스의 내용과 거점지역을 일관적으로 따라가는건 여러분께선 지루해하실겁니다.

그 지루함을 풀어내는 것이 제 역할이고요.


그렇기에 저는 아예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인공이 속한 검은양 팀을 주 전개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제 역량에 부딪히기엔 무리였습니다.

탓에 본래부터 기획되어있던 하늘새 팀을 빼내어 새로운 스토리라인을 구축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외부차원 세력 어비스라는 존재를 추가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앞으로 주인공 연하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동일하게 검은양 팀에 대한 이야기 잘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언젠가 세 팀이 만나기 전까지는 최대한 하늘새 팀에만 집중하여 이야기를 전개할 예정입니다.


두 번째로는 애쉬와 더스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처음 나온 글은 확실히 애쉬와 더스트, 그리고 누군가와의 대화입니다.

이 과정에서 애쉬와 더스트의 강함이 너무 하향되었거나, 혹은 더 약하게 묘사되었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히 애쉬와 더스트는 이름없는 군단의 참모장으로, 최상위급 간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강함도 확실할게 분명하고요.

하지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것은 현재의 애쉬와 더스트로는 어비스 소속의 어떤 주인도 제대로 상대하지 못합니다.

실제로 애쉬와 더스트는 분리된 이후, 외부 차원보다는 내부 차원에 더 오래 있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약해진 상대를 두고, 군단장에 필적하거나 혹은 그 이상의 상대에게 엇비슷하다는 평가를 두기 어려웠습니다.


세 번째로는 하늘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개뜬금없이 나온 팀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3화 마지막에서도 하늘새 팀의 유 주가 있었습니다.

동시에 4화에 나올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두었고요.


그리고 제 문제점에 대한 잡설입니다.

제 글에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라 한다면 보기 지루할 정도로 긴 문장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늦게나마 해결하기 위해 4화 중후반대부터 문장을 최대한 간결화시켰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문장, 의미없는 서술 등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위의 많은 문제점에 대한 피드백이나 충고, 비판이라 해도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보다 많은 문제점이 있다면 부디 제게 가르쳐주시기를 감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설정에 대한 붕괴, 오류, 그리고 의문이 있다면 언제든지 지적해주십시오.


이상입니다.


-글쓴이-

2024-10-24 23:35:52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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