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53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11 1

 2주일간, 평범한 시간을 보냈다. 늑대개 팀은 가끔 출현하는 차원종을 처리하고 올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잠잠했지만, 어떻게 될 지 몰랐다. 미스터 블랙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지금 당장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는데, 지금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이올렛 아가씨도 회사에 불이익이 될만한 일은 안할 테고, 늑대개 팀은 초커가 목에 달려 있어서 맘대로 할 수 없으니까.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고하셨어요. 한석봉 씨."
"네?"

 감시관님의 말씀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수고했다는 건,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건가? 슬슬 나를 제거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시는 걸까?

"이제 당신은 더는 늑대개 팀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골치아픈 쓰레기들을 관리하느라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어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제 더는 감시 요원으로서 활동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죠. 우리 벌쳐스는 당신을 현장 요원으로 임명하기로 결정했어요."

 현장 요원은 감시하는 일이 아니었다.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차원종과 싸우거나 잔해를 수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클로저와 함께하지 않은 순간이라고 하니 뭔가 맘에 걸렸다.

"늑대개 팀은 그럼 누가 관리합니까?"
"아,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요."

 뭔가 불길함이 느껴졌다. 홍시영 감시관님의 미소는 언제 봐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해맑은 척 하지만, 속으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교활한 이미지였으니까. 미스터 블랙이 한 말이 사실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당신의 임무가 주어질 거에요. 그 때까지 대기하세요."
"네!"

 일단 더 말하지 않고 나갔다. 늑대개 팀이 골치아픈 쓰레기라고 말했다. 그들을 업신여겼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였을까? 원래 범죄자들이라 그런 걸까? 그래도 중요한 전력이 되는 클로저드링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마침 트레이너 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트레이너 씨!"
"어, 한석봉이냐? 보아하니 감시요원 일을 이제 그만 시킬 거라고 들었다. 우리 늑대개 팀을 감시하느라 지금까지 수고 많았다."

 여전히 근엄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으셨다. 트레이너 씨는 내가 다른 일을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으신 모양이었다. 상부의 명령이니 그대로 따르겠다는 의지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늑대개 팀은 이제 누가 감시하는 거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늑대개 팀은 다른 곳으로 파견될 예정이다. 바이올렛 아가씨도 함께지."
"네? 아가씨도 함께라고요?"
"그렇다. 어째서인지 몰라도 나도 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앞으로 너와 함께하라는 클로저로서 활동하라더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트레이너 씨도 늑대개 팀 대장에서 물러난 거라고? 바이올렛 아가씨를 포함해 늑대개 팀 전원이 어딘가로 파견된다고? 뭔가 이상한데? 대장과 감시 요원을 내보내고 다른 곳에서 활동하려고 하게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왜 그러지?"
"트레이너 씨.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시나요? 지금 유니온 신뢰가 저하되어서 분노한 국민들을 상대하는 상황에 벌쳐스가 왜 늑대개 팀을 데리고 뭔가를 벌이려는 걸까요?"
"글쎄.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된다. 난 이만 실례하겠다."

 트레이너 씨는 쿨하게 어디론가 갔다. 이거 아무래도 확인해야 할 거 같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거보다는 뭔가를 해야 하는 게 더 낫다고 느꼈으니까. 어느 공간에서 그림자가 내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금 아무것도 안하면, 나도 그 사람들이나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는 거라고 말이다. 믿을 만한 사람을 불러야 할 거 같은데 누구를 부르지? 바이올렛 아가씨는 벌쳐스 이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니 안 되고, 다른 늑대개 팀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으니 관두고, 이럴 때는 그 사람밖에 없는 건가? 전화를 걸어 어딘가로 연락하려고 했지만 누군가가 내 휴대폰을 잡았다.

"이런 곳에서 당당하게 통화하면 곤란해요. 한석봉 요원님."

 컥, 실눈 캐릭터가 등장했다. 눈을 감은 거처럼 보인 교활한 인상의 아저씨였다. 설마 수상한 사람들과 한 패는 아니겠지? 나는 어디서든지 감시받고 있으니 내가 조금이라도 수상한 행동을 한다면 당연히 달려오는 게 맞았다.

"흠, 연락처는 다행히 벌쳐스 조직 사람이 아니군요. 아주 잘 판단하셨습니다. 지금 조직 내에서는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기를 보시죠."

 남자가 가리킨 곳은 감시카메라였다. 저런 구석에 조그마한 크기로 설치 되었을 줄은 몰랐다. 이 분은 그들과 한패가 아닌 모양이었다. 같은 편이라면 감시카메라 존재를 알리지 않았을 테니까. 

"아, 실례했습니다. 저는 김시환이라고 합니다. 벌쳐스 사원이죠."
"한석봉입니다."

 우선 악수했다. 이 분은 수상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서 경계가 풀리지 않았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당신 활약은 잘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이 조직에서 나가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어요. 당신은 벌쳐스 방식에 어울리지 않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시죠."

 김시환 씨가 따라오라는 시늉을 했다. 도대체 이 아저씨, 정체가 뭐지? 어째 조직의 방식에 반발하는 거로 보였는데 다른 의도를 숨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경계하면서 이 분의 뒤를 따라갔고, 감시 카메라가 없는 휴게실에 도착했다.

"여기라면 괜찮겠죠. 한석봉 씨는 벌쳐스 기밀 자료를 봐서 여기 왔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들어도 그 기밀을 본 사람처럼 안 느껴졌습니다. 그 사람이 아무 상관없는 당신에게 기밀을 말할 리가 없겠죠. 언론인에게 털어놓는 게 정상인데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표정을 보아하니, 내막을 알고 계신 겁니까?"

 김시환 씨의 한쪽 눈이 크게 떠졌다. 혹시 내가 뭔가를 알고 행동한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벌쳐스 조직이 숨기고 있는 충격적인 진실, 그걸 CKT부대가 간파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CKT부대도 알고 있어요. 헤카톤 케일 계획을요."

 녀석들이 노리는 건 헤카톤 케일을 만들어 통제함으로서 대한민국 수호신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물론 CKT부대를 상대할 때 사용될 차원병기이기도 했다. 머리에 제어 장치를 심어놔서 조종하려고 했지만, CKT부대에게는 이미 다 들통난 상황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든 대항책을 마련할 게 분명했다.

"맞아요. 그 헤카톤 케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십니까?"
"네.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CKT부대 미스터 블랙이 이렇게 말했어요. 처리부대 시신이 겹쳐져서 만들어졌다고요."
"맞아요. 용서받지 못할 일이죠. 아무리 처리부대가 범죄자 출신이라해도 벌쳐스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는데 그런 식으로 대우하는 건 잘못된 일이에요."

 김시환 씨의 눈빛이 강렬했다. 지금 현재 조직에 대한 분노가 내게 느껴온다. 미스터 블랙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벌쳐스는 헤카톤 케일을 만들었지만, 그 재료로 쓰인 게 바로 처리부대 시신들이었다. 레비아가 당시 폭주했을 때 살해당했던 그 처리부대 말하는 거였다. 늑대개 팀은 혹시 그 재료로 투입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들을 통해 헤카톤 케일이 완성된다면 늑대개 팀은 죽을 수 있었다.

"늑대개 팀은 그 재료로 끌려가는 게 틀림없어요. 그리고, 바이올렛 아가씨도 그 재료로 쓰일 계획이더군요."
"뭐라고요? 사장님의 따님이신데 어떻게......"
"현 사장의 친딸이 아니에요. 어떤 이유로 양녀로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 사람도 도구취급받을 뿐이었죠.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로 끌려가고 있을 거에요."
"저, 왜 저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시는 거죠?"
"현재는 당신 밖에 믿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한석봉 씨는 다른 사원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내가 보인 활약 때문인가? 그런 건 내 공적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남들이 계속 인정하니 어쩔 수 없나? 레비아가 자기 힘을 제대로 통제한 게 엄청 컸을 거라 믿었다. 그건 그렇고, 바이올렛 아가씨가 도구 취급받고 있었다는 건 충격이었다.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매정하게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가?

"그 말씀, 전부 사실인가요?"
"믿는 건 당신 자유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조직에서 나가달라는 거 밖에 없습니다."

 나타도 처음에 말했었다. 이 조직에서 나가라고, 그렇지만 이미 나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이대로 가만히 당하고 있는 거보다는 다른 뭔가를 하는 게 더 나았다.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생각이었다. 늑대개 팀을 이대로 죽게 놔둘 수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지? 내게는 힘이 없는데......

"잘 생각하시면 답 나오실 겁니다. 혼자서는 불가능해도 함께할 아군은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김시환 씨가 떠났다. 혼자서는 불가능해도 함께할 아군을 만들어낸다고? 가만, 저 사람은 아무것도 안하고 나에게 떠넘기신 건가? 뭔가 계획을 말해줄 거라고 믿었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선 저 사람을 아직 믿지 못하겠다. 지금쯤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을까? 그렇다해도 나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

 그림자가 말했던 거처럼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 없었다. 이제부터 나 혼자 개인으로 움직인다. 저들이 정말로 늑대개 팀을 헤카톤 케일의 제물로 삼으려고 한다면, 가만히 내버려둘 수 없었다. 우선 헤카톤 케일이 있는 장소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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