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5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4-08 1

"왜 저에게 연락하셨어요?"
-한석봉 씨. 당신은 벌쳐스가 어떤 집단인지 알고 계십니까?
"무슨 말씀이세요? 용건을 간단하게 말해주세요."

 벌쳐스 조직이 조금 수상한 점이 있다는 건 확실했지만, 그렇다고 적의 말을 계속 들을 생각은 없었다. 온몸이 소름돋게 만드는 변조 목소리, 정말로 미스터 블랙 본인일까?

"당신은 정말로 미스터 블랙인가요? 아니면 대역인가요?"

 실제로 만나본 적 없으니 의심하는 거였다. 상대가 누구더라도 상관없지만, 우선 심리적으로 밀어붙였다. 미스터 블랙은 조직의 수장이니 긴장된 가슴을 조금이나마 풀려고 하는 게 좋았으니까.

-믿는 건 당신 자유입니다. 제가 연락드린 건, 벌쳐스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벌쳐스가 감추고 있는 진실 말인가요?"
-조사해보니 벌쳐스는 당신이 기밀 정보를 알았다고 착각하고 본사에 입사시킨 모양이던데, 반응을 보니 정말로 모르신 모양이군요. 그럼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헤카톤케일을 아십니까?

 헤카톤 케일은 과거 차원전쟁에 나타났던 군단장의 이름이었다. S급 차원종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들을 상대했던 정예 클로저 수백명이 희생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 차원종을 왜 갑자기 언급하는 걸까?

"헤카톤 케일을 벌쳐스가 숨기고 있다는 겁니까?"
-눈치가 빠르시군요. 다만, 그 헤카톤 케일은 인간의 기술로 만들어진 인공 생명체입니다. 한마디로 당신들 벌쳐스가 인공기술로 헤카톤 케일을 만들었다는 거죠.
"그게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왜 저에게 이런 걸 알려주시는 거죠? 다른 목적으로 저에게 거짓말하시는 거 아닌가요?"
-의심되면 직접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아닌 듯 했다. 벌쳐스는 오래전부터 수상하다고 여겼었다. 편의점에서 일할 때도 벌쳐스 사원이 창백해진 얼굴로 언론에 알려**다고 얘기할 정도였으니까. 상대방의 말은 거짓말이 아닌 거로 느껴졌다. 그런데 왜 이 사실을 일부로 알려주는 걸까? 혹시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을까?

-한석봉 씨. 우리 CKT는 대의를 위해 활동할 뿐입니다. 우리와 함께하시죠.
"그 대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사람들이 진실을 ** 못했기 때문이죠."
"뭐라고요? 진실을 모르면 사람이 죽어도 된다는 거에요!?"

 벌쳐스나 유니온이 잘못되었다해도 CKT부대의 방식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역시나 나를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조직이 숨기고 있는 정보를 내게 알려준 거였다. 어차피 그 조직은 내가 기밀정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지금 들어도 상관없었다.

-우리는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전세계인들이 딱히 우리를 지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배제하고 있는데, 저희가 왜 민간인을 살려줘야 하는 거죠? 우리는 민간인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우리 조직을 위해 싸웁니다. 민간인 학살은 당연한 거 아닌가요?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거지? 확실히 테러 조직은 사람들을 오히려 위협하는 존재니 민간도시를 공격하는 건 당연했지만, 직접 대놓고 이런 말을 하니 순간 당황했다. 망설임없이 당당하게 말하는 걸 보니 진심으로 하는 말로 들렸다. 테러 조직 입장에서 사람들을 위해 싸울 이유는 전혀 없는 건 사실이었다.

-CKT는 유니온을 궤멸할 목적으로 설립된 테러단체입니다. 이를 지지하는 민간인을 죽이는 것도 우리의 정의죠. 유니온과 벌쳐스, 둘 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바로 사람들이 내는 세금입니다. 민간인이 내는 세금이 그들에게 힘들 주고 있다는 거죠. 따라서 우리 입장에서는 민간인이 죽어도 별 문제없다는 겁니다.

 이 논리에는 조금이라도 틀린게 없어보였다. 내 입장에서는 악마같은 발언이었지만, 테러조직 관점으로 본다면 조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테러조직 관점에서 볼 때는 틀린 선택이 아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건 명백한 악이다. 벌쳐스가 한 짓이 나쁜 짓이라해도 녀석들이 하는 짓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었다.

"벌쳐스가 헤카톤 케일을 인공적으로 만든 게 전부인가요?"
-그 헤카톤 케일을 만드는 데 쓰인 소재라 뭐인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그 말을 들은 나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를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 이게 사실이라면 난 처음부터 악에 물든 회사를 다녔다는 게 된다. 이런 조직에 있는 게 정말로 잘한 일일까?

*  *  *

 다음 날에 바로 벌쳐스에 출근했다. 감시관님에게 사실을 물어볼까 생각했지만,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다짐했다. 벌쳐스도 나름대로 문제점이 있어도 CKT부대도 악이라는 건 확실했다. 지금은 다급하게 행동하지 말고, 기회를 봐서 진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다음 할일을 배정받기 위해 감시관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요. 정상회담 경호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그렇지만 이번 일로 유니온 신뢰가 낮아진 거 같더군요."

 감시관님은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어도 침착하지 않으면 다음 수를 쓸 수 없으니 당연한 거겠지. 얼굴은 그래도 양손이 조금 떨리는 게 보였다. 완전히 진정할 수는 없었겠지.

"CKT부대는 아무래도 유니온 신뢰를 목적으로 정상 회담을 습격한 거 같군요. 이걸 주장한 사람은 당신이라면서요?"
"네...... 네."
"다른 건 알아낸 거 없나요?"
"그...... 그게......"
"왜 그러죠?"

 이걸 말해야 되나? 벌쳐스도 정의로운 집단이 아니고, CKT도 악이나 다름없는데, 역시 알리는 게 좋겠지. CKT부대와 벌쳐스, 어차피 둘 다 쓰러뜨려야 하니까. 두 세력을 적으로 두고 있다면 서로 싸우게 해서 힘을 약화시키는 방법도 있었다. 감시관님에게 말했다.

"CKT는 벌쳐스 기밀 정보를 해킹했습니다. 지금쯤 저희 비밀병기를 손에 넣기 위해 놈들이 한국에 올 지도 모릅니다."
"뭐라고요? 놈들이 우리 기밀을 알고 있다고요? 이상하군요. 우리 회사 보안 시스템은 수십명의 화이트 해커를 동원해서 만들어낸 최첨단 보안인데, 그걸 어떻게 CKT가 알고 있는 거죠? 최근에 누가 침입했다는 정보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고? 그럼 CKT가 어떻게 알아냈다는 거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한 가지, 벌쳐스 내에 CKT정보원이 존재한다는 얘기였다. 설마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기 싫었지만,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감시관님에게 내 생각을 전할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도 안심해도 될 거에요. 헤카톤 케일의 컨트롤은 벌쳐스에게 있으니까요. 아무리 해킹 실력이 뛰어나도 보안을 쉽게 뚫지 못할 거에요."

 완벽한 보안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화이트 해커들이 테스트하여 사전에 차단시켜주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다 잘 되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CKT에게 뛰어난 해커가 있다는 건 확실했다. 미국 공군사령부에 해커 침입이 있었다고 했으니까. 시스템이 마비되면 전투기에게 제대로 된 명령을 하달할 수 없어서 전투기가 한 대도 출동하지 않았었다. 

"아무래도 사장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겠군요. 당신은 당분간 늑대개 팀을 감시하세요."

 이제야 정상으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늑대개 팀 감시요원인데 사장님의 경호로 가고, 유니온에 파견된다는 건 솔직히 너무 이상했다. 왜 굳이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히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  *  *

 오랜만에 늑대개 팀을 만났다. 나타는 심심했는지 쿠크리로 나무조각품을 만들고 있었고, 레비아와 하피 씨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오랜만이에요. 한석봉 씨."
"아, 안녕하세요."

 레비아 씨는 나를 보며 긴장한 듯 보였다. 차원종도 얼굴을 붉힐 줄 아는 건가? 아무튼 이들과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우선 오늘은 하루종일 대기하면 되는 거였다. 우선 이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모르겠다. 늑대개 팀에게 진실을 알려줄까? 아니, 이들에게 말하면 오히려 폭주해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벌쳐스가 숨기고 있는 병기가 세상에 드러낸다면 큰일인데 어떻게 하지?

"어머,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시죠? 무슨 고민이라도 있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피 씨."

 우선 얼버무리기로 했다. 미스터 블랙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통제구역은 나같은 말단 요원이 갈 수 없었다. 지금은 늑대개 팀과 다른 화제 이야기를 해볼까?

"저, 여러분들은 혹시 뉴욕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뉴욕? 그게 뭐야?"
"어떤 건가요?"
"어머, 뉴욕은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에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라고 알려진 곳이죠. 이번 정상회담을 연 UN본사가 있는 곳이고요."

 나타와 레비아 씨가 모르는 걸 보고 하피 씨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하피 씨는 가봤을 만도 했다. 감시관님을 전에 호위한 적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늑대개 팀의 목에 달린 초커를 무력화시킬 수 없을까? 아무리 범죄자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노예 취급하는 건 잘못된 거였다. 그리고 이들은 절대 악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나타는 성질이 고약했지만, 조각 취미를 가지고 있는 거로 보아, 살인마 심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레비아는 차원종이면서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으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졌고, 하피 씨도 나쁜 짓을 할 거 같지 않았다.

"그 이야기는 왜 하시는 거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저 뉴욕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 해서요."

 그냥 할 일없어서 말을 꺼낸 거 뿐이었다. 미스터 블랙에게 들은 말은 아직 하면 안 되겠지. 늑대개 팀에게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사실이 있으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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