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45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30 1

"창을 분석하려면 조금 더 연구해봐야 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우리 벌꿀오소리 팀은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한영수 요원을 포함한 그들은 또 다시 들어갈 작정이었다. 감시관님도 이들과 끝까지 함께하라고 했으니 나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사람들이 걱정되기도 했으니까.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감시 요원님은 여기 계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구멍이 생긴 곳으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제 동료들이 정말로 죽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전에는 무턱대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구멍으로 들어가지 않았던 거였다. 클로저들 전원이 이번에는 특수한 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냥 불빛을 밝히는 전구로 이루어진 거 같은데, 설마 그것 뿐이었나? 

"감시 요원님도 필요하실 겁니다."

 연구원님이 내게 건넸다. 벌꿀오소리 팀은 구멍 속으로 들어가 동료를 구해낼 생각이었다. 분명히 그 맨트란 같은 차원종은 눈도 없었고, 청각을 듣는 놈도 아니었다. 오직 지상에 있는 구멍으로 감지하는 거로 보였지만, 아직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나머지는 클로저들이 가져온 놈들의 잔해를 연구하면 되겠지. 

 연구 결과를 기다리고 들어가도 되는데 벌꿀오소리 팀은 서두르는 듯 했다. 동료들이 아직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자, 벌꿀오소리 팀. 출발이다."

 한영수 요원이 근엄한 목소리로 팀을 이끌었다. 구멍에 떨어졌다해도 동료가 죽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맨트란 차원종에 대해 아직 모르지만, 저들은 두려움이 없는 클로저들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명령받은 몸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든 살아돌아가야겠지.

*  *  *

 함정이 생겼던 곳으로 돌아오자 우리는 놀란 표정을 보이며 침묵했다. 전에 생겼던 구멍이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거처럼 구멍이 메워져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우리가 가고 난 뒤에 구멍을 메우기라도 했나?"

 한영수 요원의 말에 나는 돌멩이를 하나 집어 던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생각대로 녀석이 구멍을 뚫고 나타났다. 워낙 빠른 움직임이였지만, 한영수 요원의 빠른 사격으로 녀석을 쓰러뜨렸다. 

"저 구멍으로 들어간다. 다들 움직여."
"저, 잠깐만요.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말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들어간 뒤였다. 정말로 두려운 게 없는 벌꿀오소리 팀이다. 이름값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지만, 클로저들이 보이지 않았다. 우선 녀석들은 시각과 청각은 없는 거 같으니 마음껏 소리내도 되겠지만.

퍼펑!

 조명탄이 터졌다. 어두운 배경이 밝아지며 목이 길게 늘어진 맨트란 차원종 다수가 모습을 드러냈고, 클로저들이 그와 대치하고 있었다. 

"요원님!"
"오지 마십시오. 여기서부터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커다란 녹색 줄기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클로저들은 각자 힘으로 줄기를 하나 둘씩 잘라냈다. 배경이 어두워질 때마다 조명탄을 하나씩 터뜨리면서 주변을 밝혔다. 벨트에 달린 플래시만으로 어둠을 밝히기 어려워서 그런 거였다. 조금 뒤로 물러나며 클로저들이 싸우는 걸 멀리서 지켜봤다.

파앙!

 마지막 한 마리의 맨트란이 쓰러지고 나서야 클로저들에게 다가왔다. 조명탄 효과가 사라짐과 동시에 다시 어두워졌다. 한영수 요원은 손전등으로 비추며 녀석들의 몸을 살폈다. 칼을 가진 클로저가 줄기를 가르니 사람의 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소화액에 녹아 부식될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그 클로저들은 이 녀석들에게 잡아먹혀 소화가 된 모양이었다.

 벌꿀오소리 팀은 조용히 침묵했다. 클로저가 전사하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다. 이미 한영수 요원님도 여러 동료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셨을 테니 마음 아프신 건 어쩔 수 없을 거다.

"유골을 회수하고 돌아간다."

 나도 도와주었다. 싸우는 전사들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클로저들에게 뒤지지 않을 각오로 유골 회수에 들어갔다.

*  *  *

 플레인 게이트로 다시 돌아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유해를 한 곳에 모아두고, 조용히 묵례를 했다. 플레인 게이트 조사를 위해 목숨을 걸고 들어간 벌꿀오소리 팀, 위험한 임무라도 절대로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묵례시간을 마친 뒤에 각자 자기 할일로 돌아갔다. 한영수 요원님께서 내게 다가오셨다.

"유해를 회수하는 데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능하면 감시 요원님같은 사람이 저희 팀과 함께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저희 일을 방해한 것도 아니고, 재생하는 차원종을 쓰러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셨으니까요. 당신이 위상력 각성만 했다면 저희 팀으로 스카웃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벌꿀오소리 팀에 절대 방해되지 않으려고 했다. 요원님이 내가 맘에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클로저들이 전사하는 걸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익숙하다는 듯이 그냥 넘어가는 듯 했다. 정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

"전사한 요원들을 많이 보신 건가요? 지금까지 수많은 싸움을 하면서 수백명의 클로저가 전사하신 걸 눈 앞에서 보신 거죠?"
"눈치채셨습니까? 네. 맞습니다. 실은 여기 있는 벌꿀오소리팀은 한두 명씩 누군가가 전사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실은 여기 있는 팀원들도 새로 들어온 지 1주일 밖에 안 지났거든요. 그 중에서 저는 최고참으로 3년 정도 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벌꿀오소리 팀으로 활동하다가 차원종과 전쟁이 또 다시 발발했고, 그들은 용감하게 싸우지만 전사했다. 세하가 싸우던 시기에도 그들은 안 보이는 곳에서 용감하게 싸웠을 것이다. 벌꿀오소리 팀 말고도 다른 클로저들도 마찬가지겠지. 사람들이 모를 뿐, 싸우다 죽어나간 클로저들은 수없이 많이 있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수많은 요원의 죽음을 목격했다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팀원끼리 친목을 이루는 일이 없습니다. 단지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군대같은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고 보니 이 사람들이 웃으면서 잡담을 나누는 걸 한 번도 못봤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들이니 후유증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였다. 게임 캐릭터 한 명이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한 교관이 자신을 계속 엄하게 괴롭혔는데 사실은 후유증을 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훈련 교관도 수백명 이상 훈련생을 수료하니, 인간으로서 정을 가지게 되면 그리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릴 수 있었다.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 있죠?"
"각성한 저희가 그런 걸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희는 클로저입니다. 클로저는 클로저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생활은 있을 수 없어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내 시선을 피하는 걸 보니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클로저도 인간이다.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욕구와 그리움이 반드시 존재하는 법이었다. 세하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당연한 섭리입니다. 클로저는 클로저의 삶, 민간인은 민간인의 삶이 주어지는 법입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클로저 일을 그만두고 일상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잖습니까? 한영수 요원 님. 전 요원님이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인생 아니겠습니까?"

 전투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클로저가 이길 수 없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병이다. 하고 싶은 걸 하지도 못한 채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병에 걸리게 된다. 클로저들이 사망한 사례를 보았다. 차원종에게 전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과 병에 걸려서 죽은 사례가 더 많았다. 싸우기 싫은데 억지로 싸워야 할 운명을 가진 클로저들이 겪는 정신적인 문제였다.

 유니온은 물론, 벌쳐스에도 이러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한 사명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전 클로저들이 왜 사망하는지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차원종에게만 전사해서 사망한 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전 한영수 요원님이 저희같은 사람들을 위해 얼마나 싸웠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영수 요원님께 뭔가 도움이라도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일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든 도와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제가 원하는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아무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도 함께하는 기회가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이만 돌아가셔도 됩니다. 저희 일은 끝났으니까요."

 한영수 요원님이 쓴웃음을 보이고 요원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나도 이제 벌쳐스로 돌아가야겠지. 위험한 탐험이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잘 살아남았다. 저들을 그냥 이대로 내버려둬도 될까? 익숙하다고 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차원종에게 전사하는 클로저가 40%, 자살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이52% 정도 되었다. 그러고 보니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이 위상력에 뒤늦게 각성하여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유니온에 부름을 받았지만, 원하지 않은 위상력으로 클로저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이 결국 투신자살했던 일도 있었다.

 연구원들에게 인사하고, 어두운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왔다. 클로저에 대해 이제 좀 많이 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아직 멀었다. 내가 직접 위상력을 사용해보는 기회가 없는 한 완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겠지. 날도 어두워졌으니 이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택시!"

 마침 지나가던 택시를 불러세웠다. 요금이 비싸겠지만 내 수중에 있는 돈이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택시에 탄 뒤에 기사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말했다.

"네. 갑니다."

부우웅-

 피로했는지 잠이 왔다. 기사 아저씨가 도착하면 깨워줄거라 믿고, 잠들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4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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