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타 단편)
플루ton 2020-03-28 2
전부터 생각하던 설정인데 이번 이벤트 던정에서 너무 비슷한 스토리를 보여줘서 급하게 한번 써봤습니다.
이번 나타 이벤트 스토리와 제 개인적인 상상을 버무려서 작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예쁘게 봐주시길
그럼 즐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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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눈을 뜨자 창밖 너머로 자신을 구경하고 있던 작은 새들과 눈이 맞았다. 멍하니 새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새들 쪽에서 먼저 흥미가 끊겼는지 날갯짓하며 날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보았다.
제법 넓은 방. 방안 곳곳에는 아직 작업 중으로 보이는 그림과 조각들이 놓여 있었고 그 주변에는 사용된 물감이나 도구가 널브러져 굴러다녔다. 햇볕이 잘 드는 벽면에는 완성된 걸로 보이는 그림들이 나란히 배치되어 몸을 말리고 있었고, 커다란 선반이 위치한 벽면에는 다양한 종류의 조각들이 종류별로 분류되어 있었다.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나자 몸을 덮고 있던 얇은 모포가 흘러내렸지만 이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나는 발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 눈앞에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어머! 나타 일어났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자신을 반기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부엌으로 보이는 장소에서 고개를 내민 아름다운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긴 흑발을 하나로 올려 묶고 반쯤 휘어진 두 눈을 아름다운 푸른색으로 반짝였다. 가느다란 몸에는 분홍색 앞치마를 맨 여인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다시 말을 걸어왔다.
“오늘은 깨우지 않았는데도 잘 일어났네? 먼저 씻고 오렴. 금방 아침밥 차려줄게.”
말을 마친 여성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고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말에 따라 홀린 듯이 욕실로 보이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나온 나는 천천히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금 전의 여성이 아닌 다른 인물이 자신을 반겼다.
“오, 나타. 잘 잤니?”
식탁에 앉은 채로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남성.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 달리 푸근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남성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자신과 같은 푸른색이었다.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보이는 양팔은 단련이라도 한 건지 단단한 근육이 붙어있었다.
“밤새 작업한 것 치고는 혈색이 좋구나. 그래도 가능하면 잠은 방에서 자도록 해라. 요즘은 날이 따뜻하니 괜찮지만, 겨울에 작업실에서 자면 감기 걸린다.”
걱정어린 남성의 충고에 나는 뭐라 대답하지 못하고 식탁에 앉았지만 남성은 별로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대회 준비로 바쁘겠지만 그럴수록 적절히 휴식을 취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그게 지금 당신이 할 말인가요?”
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어느새 다가온 여성이 식탁에 요리를 내려놓으며 남성을 노려보았다.
“한 달 전에 전시회 준비한다고 며칠 밤을 새우다가 응급실 실려 갈뻔한 거 기억 안 나요?”
“아, 아니 그때는 여러모로 중요한 이벤트라.”
“암만 그래도 정도가 있죠!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정말……!!”
나는 멍하니 눈앞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실랑이를 바라보았다. 화가 난 듯 소리치는 여성과 그런 그녀에게 쩔쩔매는 남성. 정신 사납고 시끄러울 뿐인 광경일 텐데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두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 목소리에 두 사람도 다툼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서 밥이나 먹죠. 식겠어요.”
급하게 말을 얼버무린 나는 내 앞에 노인 토스트를 들고 한입 베어 물었다. 고소한 토스트의 향과 달콤한 잼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나를 바라보던 두 사람도 자식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며 부끄러워하고는 각자 앞에 놓인 접시를 비워갔다.
식사를 마친 나는 잘 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처음 눈을 뜬 작업실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먼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커다란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여러 종류의 소설이 국적 불문하고 책장 가득 꼽혀있었다.
책장에 이어서 침대, 책상, 시계, 거울, 마지막으로 작은 옷장이 눈에 들어왔다. 옷장 문을 열고 안에 걸려있던 교복을 한 벌 꺼내 갈아입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와이셔츠와 바지를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매려던 나는 순간 손을 멈추고 천천히 목을 쓸어보았다.
새하얀 목덜미. 상처는커녕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자신의 목덜미의 위화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딩~~~동~~~~!
집안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넥타이를 매고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대로 거실과 부엌을 지나 현관문을 나서니 익숙한 은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아, 나타 선배. 좋은 아침이에요!”
자신을 바라보며 해맑게 인사하는 소녀, 레비아의 미소에 나는 얼굴이 살짝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학교 한 학년 후배인 그녀는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질긴 인연으로 여동생 같은 존재로 등하교를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아, 생각보다 일찍 왔네.”
“헤헤. 그런가요?”
평범한 안부 인사를 나누며 나는 신발을 고쳐 신고 현관문을 나서려 했다.
“아! 잠시만 기다리렴.”
하지만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돌아보니 엄마가 보자기에 쌓인 사각 통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도시락 가져가야지. 자, 가방에 넣어줄게.”
뭐라 반응하지 못하고 있으려니 엄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방에 도시락을 집어넣고는 고개를 돌려 레비아를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레비아도 안녕? 이렇게 항상 마중 나와줘서 고마워.”
짧은 인사가 오가고 이젠 슬슬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열리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학교 다녀올게.”
“후후. 그래 잘 다녀오렴?”
얼떨결에 내뱉은 내 말에 엄마는 미소로 답하며 우리를 배웅해 주셨다. 또다시 마음 한 켠이 울렁거리는 감각을 느끼며 나는 레비아와 함께 등굣길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선배 이번에도 큰 대회에 나가신다면서요?”
“응? 아~ 뭐 그렇지. 덕분에 요 며칠 작업하느라 잠도 잘 못 자고 있다.”
자잘한 수다를 떨며 걷던 도중 레비아가 갑자기 그런 것을 물어왔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난 나름 이름을 날리는 중인 학생 예술가다. 기본적인 수채화부터 시작해서 조각까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재능을 가진 나는 중학교 때부터 다양한 대회에 출전했고 그때마다 입상에 성공했다. 거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인 아빠의 후광에 힘입어 이쪽 분야에선 꽤 유명한 신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그러다가 쓰러지면 큰일이잖아요.”
내 말에 레비아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살며시 내 팔을 붙잡았다. 이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수긍했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낸 다음에야 그녀는 손을 놓아주었다.
“정말로 남 걱정 잘 하는 건 변함이 없구만.”
작게 혼잣말을 내뱉은 나는 이번엔 그녀의 이야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인 신강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수많은 학생이 교문을 지나 등교하고 있었고 우리 두 사람도 그사이에 편승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럼 점심시간에 봐요.”
“그래. 그때 보자.”
한 학년 아래인 레비아와 헤어진 나는 2학년 교실로 들어가 창가 쪽 제일 뒷자리에 대충 가방을 던져두고 자리에 앉았다.
“아, 나타. 왔냐?”
그러자 옆자리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던 친구 이세하가 고개를 들어 인사를 건넸다.
“어, 그래. 근데 넌 아침부터 게임이냐?”
“남 이사. 그러는 너도 자리에 앉자마자 소설부터 펼치고 있잖아.”
“게임이랑 이게 같냐?”
별거 아닌 일로 시시덕거리는 사이 담임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조회를 시작했다. 출석체크를 시작으로 전달사항까지 알려준 담임은 열심히 공부하란 말을 남기고 밖으로 나갔고 그와 교차하듯이 1교시 과목 담당 교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이른 아침부터 이루어진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 내용에 어느새 절반가량의 학생들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옆자리인 이세하의 경우 완전히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조용하고, 느긋한 시간.
“....평화롭구만.”
멍하니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다른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교사가 반을 나가자마자 지금까지 자고 있던 녀석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어나더니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그 외에도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거나 친구들을 모아 매점을 가는 등 각자 원하는 대로 점심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자, 그럼 우리도 밥 먹으러 가볼까?”
“아, 그러지”
마찬가지로 나도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 이세하를 따라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운동장 구석에 자리한 정자나무 아래에 익숙한 얼굴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야호~ 나타, 세하! 두 사람 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야~”
포니테일로 묶은 흑발을 흔들며 서유리가 큰 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좀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주는 우정미, 천천히 도시락 뚜껑을 열며 식사 준비를 하는 한석봉, 수저를 꺼내는 이슬비, 그리고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레비아까지.
아는 얼굴이 한자리에 모여 시끌벅적하게 점심을 준비하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흘리며 자연스럽게 레비아의 옆자리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자신이 좋아할 법한 메뉴로 가득 채워진 도시락을 보자 또다시 가슴이 울렁거리는 감각을 느꼈지만 이를 무시하고 천천히 젓가락을 놀렸다.
서로 잡담을 나누며, 반찬을 교환해가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으려니 시간은 금세 사라지고 어느새 점심시간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어이쿠, 오늘은 슬슬 끝내야겠는데?”
이세하의 말 대로 다음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모두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를 정리했다. 수업 끝나고 보자는 말을 남기고 각자의 반으로 향하는 모두를 따라 나도 이세하와 함께 반으로 돌아와 빈 도시락통을 가방 안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가방을 싸고 교실을 나갈 채비를 갖췄다.
“아~ 나타 넌 좋겠다. 대회 준비로 오후 수업은 또 빠지는 거지?”
그런 나를 이세하가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제법 큰 대회가 있는 기간이면 나는 교장의 특례로 오후 수업을 빠지고 대신 그 시간 동안 학교 미술실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조정되어 있다.
“수업을 빠지는 대신 그만큼의 성과를 내야 하니까 그렇게 부러워하지 말라고.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알기는 하냐?”
“뭐, 그건 그렇지. 열심히 해라.”
“너야말로 졸지 말고 수업이나 잘 듣지? 간다.”
이세하와 인사를 마친 나는 교실을 나와 교내 미술실로 발을 옮겼다. 수업시간이 되어 조용한 복도를 홀로 거닐고 있으려니 심심해서 나도 모르게 하품이 흘러나왔다. 몇 차례 하품을 되풀이하는 사이 어느새 미술실에 도착한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안에 있던 미술 교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전날 작업하고 있던 작품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막 알을 까고 나온 새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 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 전체적인 형태는 잡혔고 이제부터 세세한 부분을 하나하나 작업해야 하는 단계였다. 본체인 새의 눈이나 부리는 물론 그 깃털 하나하나랑 새 주변에 배치된 알에 생긴 균열까지.
나는 가방 안에서 애용하던 조각칼을 손에 들고 천천히 조각을 바라보며 그 위에 완성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덧씌웠다.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조각할 위치와 방법을 정한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작업을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손을 잘못 움직이는 순간 그대로 작품을 망쳐버릴지도 모를 미세한 정교한 작업이었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놀리며 조각을 깎아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고요한 미술실에 울리는 조각칼 소리. 그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나는 더욱 작업에 몰두했다. 마지막 깃털을 새겨넣고 나서야 손을 놓고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물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으며 창밖을 보자 어느새 해가 지며 노을이 지고 있었다.
“이런! 너무 몰두했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급하게 가방을 싼 나는 졸고 있던 교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미술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러자 그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레비아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아! 나타 선배! 오늘을 오래 걸리셨네요?”
수업시간을 생각하면 못해도 2시간을 기다렸을 텐데 아무런 투정 없이 자신을 반겨주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 한구석이 또 술렁거렸지만 이를 억누르며 나는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너무 집중하는 바람에.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안으로 들어오지 그랬냐?”
“후후 그러려고 했는데 문 너머로 선배가 엄청 집중하고 있다는 게 전해져서요. 괜히 들어가서 집중을 깨긴 싫었거든요.”
해맑은 그녀의 미소에 오히려 더 미안해진 나는 사과에 의미로 방금까지 조각한 작품을 구경시켜 주기로 했다. 아직 완성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넘칠 정도로 기뻐하며 내 작품을 칭찬해주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녀의 칭찬은 낯간지럽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쁘다.
그 후 미술실은 나온 우리는 함께 노을 진 하굣길을 나란히 걸어갔다. 주홍색으로 물든 하늘 아래 등교할 때 걸었던 길을 거꾸로 되돌아가던 중 문득 그녀가 조금 다른 길로 돌아가** 않겠냐고 제안했다. 갑작스런 제안에 의아했지만 미안한 일도 있고 해서 나는 선뜻 그 제안을 수락했고 우리는 조금 경로를 옮겨 평소 다니던 골목길이 아닌 바로 옆에 강을 끼고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 탓에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나란히 걷던 그녀가 한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등 뒤에서 나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무, 무슨?!!”
당황한 내가 뭔가 반응을 취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좋아해요!”
“?!!!!”
갑작스러운 고백. 너무 놀라서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녀가 이어서 말을 이었다.
“전부터 선배를 좋아했어요. 너무 좋아해서 잠을 설칠 정도로 선배가 좋아요. 그러니…. 부탁드려요. 저랑 사귀어 주세요.”
그녀치고는 용기를 낸, 하지만 그녀다운 순수하고 직설적인 고백.
알면서도 가슴이 뛰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뒤돌아서서 그녀를 마주 안고 싶었다. 자신도 그녀를 좋아했다고 힘껏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정말 돌아갈 수 없겠지. **.”
“? 나타 선배?”
갑작스럽게 변한 내 태도에 그녀는 놀란 듯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녀가 그러건 말건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선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 얼굴도 한 번 더 보고 싶었지만……. 그만둬야겠네. 지금 같은 상태에서 그 얼굴을 보면 정말로 돌아가기 싫어질 테니.”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선배? 설마 가출하시려는 건.”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방금까지 고백하던 것도 잊은 그녀가 입을 열었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삐뚤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연기 그만해. 아니, 연기가 아닌가. 그저 인격을 부여받았을 뿐 자신이 인형인지도 모르는 걸지도.”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예요?”
“너랑 더 할 이야기 없어. 그러니….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고 이 ** 백작---!”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나는 허공에다 소리쳤다, 그러자,
“어라? 벌써 눈치챈 건가?”
세계가 무너져내렸다.
노을 진 하늘도, 고요한 강물도, 지나가던 차들도, 시야 끝까지 늘어선 건물과 산도.
세계를 이루던 모든 요소가 하나하나 부서지며 사라져갔고 방금까지 눈앞에서 이야길 나누던 레비아도 어느새 가루가 되어 사라져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남은 새까만 공간. 그런 공간에서 새로운 존재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양복을 차려입고 얼굴의 절반을 가면으로 가신 장신의 신사, D 백작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 내 앞에 섰다.
“이거 놀랍군, 설마 내가 준비한 꿈을 자각할 줄은.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나?”
“하! 그야 당연히 처음부터지. 그것보다 역시 네놈의 소행이었나? ** 백작. 정말로 같잖은 짓을 해주셨군그래?”
내가 분노를 담아 낮게 으르렁거리자 그는 과장되게 손을 휘저으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오~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말아 주게. 내가 자네를 꿈속 세계로 끌어들이긴 했지만, 딱히 자네들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으니. 오히려 자그마한 선물을 주려던 것뿐이라네.”
“하? 선물?”
“그래. 난 그저 고생하는 제군들이 잠잘 때만큼은 휴식을 즐기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있는 힘껏 제군들이 행복할 만한 세계를 준비한 거라네. 시간의 흐름도 조정해서 원하는 만큼 그 세계를 즐길 수 있도록 설정했고 현실에서 하루가 경과 하면 되면 저절로 일어나게 하는 조치도 취해놨고.”
“.....뭐, 대충 그런 의도일 거라 예상했어.”
백작의 변명에 나는 화를 가라앉히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 화가 풀렸다고 생각한 백작은 가면 너머의 눈을 빛내며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설마 스스로 꿈임을 자각하고 더 나아가 꿈에서 벗어나려 할 줄이야.”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내가 시치미를 떼자 백작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양팔을 벌렸다.
“그야 당연하지. 자네를 포함해 내가 꿈속 세계로 끌어들인 클로저 제군들은 수도 없이 많다네. 하지만 그중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자각한 자는 몇 명 있었지만, 자네처럼 스스로 깨어나려고 날 부른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 자, 이제 알겠나? 자네가 얼마나 특이한 존재인지?”
“...별로 대단한 이유는 아니야.”
과장된 몸짓으로 설명하며 점점 다가오는 백작의 모습에 난 별수 없이 이유를 설명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네가 만든 세계는 확실히 매력적인 세계였어. 내 몸은 실험체가 되지 않은 덕에 건강 그 자체고 재능을 꽃피워 미래도 창창했지. 거기에 부모는 모두 살아있고 날 좋아해 주고 따라주는 여자도 있고 적긴 해도 주변에 친구라고 부를 만한 녀석들도 있었지. 조용하고, 평화롭고,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안심되는. 그런 일상이 계속 이어지는 이상적인 세계였지.”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난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백작이 만든 세계는 나에게 있어 정말로 이상에 가까운 세계였다. 너무 이상적이었기에 눈을 뜬 시점부터 위화감은 느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이란 것을 자각했다.
“꿈이란 걸 자각한 순간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했지. 어차피 눈을 뜨면 사라져버린 거짓 행복에 겨워 허우적거릴 정도로 여유롭진 않으니까.”
뭐 이렇게 말해도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겠냔 유혹에 넘어가 조금 즐겨버리긴 했지만.
내 말을 들은 백작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뭔가 부족하다는 듯이 재촉하는 눈빛으로. 그렇기에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백작이 만족할만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동안 날 지켜봤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내가 바라는 건 행복 같은 게 아니야. 고통과 투쟁 속에서 쟁취할 완전한 자유. 내가 바라는 건 오직 그것뿐이야. 그러니까 네놈이 만들어준 거짓된 행복 따위는 나에겐 필요 없어. 오히려 내 각오를 무디게 만드는 방해물일 뿐이야.”
“.....푸, 푸하하하하하핫-!!!!”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백작이 폭소를 터뜨렸다. 숨이 넘어가라 웃어 재끼던 백작 놈은 한참이 지나서야 눈물 닦는 시늉을 하며 간신히 웃음을 멈췄다.
“아하하…. 그래! 제군이라면 그렇게 말할 거라 생각했다네. 자유를 위해 행복을 포기하고 앞을 막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 그거야말로 나타 군 자네의 긍지! 자네의 삶 그 자체였지!”
진심으로 즐겁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던 백작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내 뒤에 공간이 일렁이더니 새하얀 문이 생겨났다.
“그 문을 지나면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걸세. 그리고 내 마음대로 자네를 꿈의 세계로 초대한 점은 사과하지. 그래도 오해는 말아 주게. 난 정말로 제군이 잠시라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니. 그럼 다음에 또 만나자고.”
그 말을 끝으로 백작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이제 이 공간에 남은 건 나와 이 새하얀 문뿐이다. 홀로 남겨진 나는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새까만 공간이었지만 눈을 감으면 이 세계에서 겪은 일들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뭐 그래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었어. 평범한 삶이란 걸 체험해볼 수도 있었고. 그게 얼마나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도 다시 확신할 수 있었으니.
아쉬움이 남지 않은 건 아니지만 더 망설였다간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고 싶을지도 몰랐기에 나는 손을 뻗어 천천히 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문에서부터 흘러넘친 빛이 전신을 감쌌다.
“아, 그래도 마지막으로 부모에게 얼굴 정도는 한번 더 비출 걸 그랬나?”
그런 얼빠진 말을 중얼거렸지만 뭐 상관 없다. 현실에서 눈을 뜨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전부 잊어버릴 테니.
“돌아가자고. 괴롭기 짝이 없는 현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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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