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파이] 얼음에 잠긴 초신성[中 Part 1]

PlaylMaker 2020-03-23 4

15세 이하의 연령이신 분들이 이 글을 읽는 것을 절대 권장해 드리지 않으며 또, 유해할 수 있다고 권고합니다.
 Real 막장드라마.



#1 과거 이야기

"오셨군요. 세하씨."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음습한 장소.
사냥터지기 팀의 관리요원 김재리는 <TL세포 증강 억제제>라고 적힌 봉투를 들고 이세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이 야심한 새벽에 만나는 이유는 유니온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선 출입대장을 작성해야 하는데
자주 드나드는 고위 관리직이나 특수요원 이상의 클로저들에게는 융통성 있게 넘어가 주는 관례가 있기에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항상 감사합니다. 재리."

"계속하던 일인데요...뭘 세하씨가 더 고생이죠."

재리는 가지고 있던 봉투를 넘겼다. 이세하는 봉투를 건네받는 것이 이미 익숙한 듯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곧바로 돌아서려 했다.

"항상 투여하신 양을 복용하시면 되고... 증상이 더 심해지면 한 알 더 드시게 해도 돼요. 그때는 꼭 저에게 알려주시고요. 그리고..."

재리는 다음의 말을 꺼내기를 망설이고 있다. 만약 상대가 미성년자라면 꺼내기가 상당히 민망한 이야기라는 걸 인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약을 제작한 당사자이고 복용자의 배우자에게 이를 설명할 의무가 있기에 어렵게 입을 연다.

"...... 피임약도 포함되었으니까요. 참고하시면 될 거 같아요."

"......"

예전의 이세하라면 곧바로 홍조를 띠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겠지만 올해 24살이 된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파이의 증상을 해소하게 하기 위해 했던 행위가 세하에게는 커다란 고통으로 다가왔으니까 무리도 아니다.
조금 생각하는 모습을 하더니 무뚝뚝한 대답을 한다. 

"알겠습니다."

"아... 역시 김유정 국장님께는 알리는 편이 않을까요? 파이의 PNA에 박힌 the luminosity of darkness 즉, 암흑의 광휘 인자는 아직 연구가 더 필요해요. 임시로 만든 억제제가 언제까지 통할지도 모르고요. 그래서-"

"그렇게.... 알려지게 되면!"

세하의 눈동자가 오랫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낸다. 자신의 가족, 연인에 대한 미안함, 파이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그를 여기까지 내몰고 있다.    
 
"자기가 강제로 안았던 클로저의 아이를 가져 결혼하게 되었다는 진실이 파이 누나에게도 알려질 거예요. 안 그래도 줄곧 동생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 사실까지 알게 되면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나요?"

"그... 그래도! 이런 식이라면 세하씨가 구원받지 못해요. 이대로 계속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멘탈을 유지하기는 역시 무리니까요. 특단의 조치를 세우지않으면...... 언젠가는..."

세하는 검은색 자켓 호주머니에서 양 모양의 브로치를 꺼냈다. 약간 엉성하고 조잡하게 보였는데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고 있다.

"세별이에게 받은 거예요. 언젠가 검은양같은 훌륭한 팀에 들어가서 엄마, 아빠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클로저가 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해요."

"......"

재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들이 헤어지게 되면 가장 많이 상처받고 괴로워할 대상이 세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향후 어떤 선택을 하던 세별이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게 바로 이세하나 파이가 원하는 길일 테니까.  

"저는 아버지가 없었어요. 그래도 엄마는 힘든 와중에도 항상 저에게 웃어 줬죠. 그런데 막상 제가 아빠가 되고 나서는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비탄에 잠겨있던 세하의 눈동자가 서서히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지표를 찾기 어려운 암울한 상황에도 그가 보여준 건블레이드의 불씨 같은 희망의 기운이 감도는 것이다.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필요해요. 그리고 저는 파이 누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어요. 누나가 진정한 의미의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무슨 일이라도 할 겁니다."

"역시 그렇게 된 거로군요. 그래서 선생님이..."

"?!"

쌓여있는 실험 기자재 사이에서 커다란 방패를 들고 있는 여성이 나온다. 볼프강과 파이가 부재중인 지금 사냥터지기팀의 실질적인 리더, 세하와 같은 트리아이나 리벨리온의 멤버이기도 하다.
루나 아이기스, 바로 스스로를 완전무결한 존재임을 지칭하는 클로저다.

현대의 기술로는 위상력을 완전히 감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루나는 해당되지 않는다. 특수한 방벽을 생성해서 외부로 노출되는 차원력을 100% 감출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현재 유니온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클로저 둘을 꼽으라면 당연 이슬비와 루나가 함께 언급된다. 심지어 실험체였던 과거 이력에도 불구하고 감찰국장으로 추천된 파격적인 사례를 볼 때, 유니온 내에서 그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까다로운 상대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세하는 루나를 잘 알고 있다. 자신과 얼마나 상성이 안 좋은지 또한 느끼고 있기에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에이 루나. 원래 나오지 않기로 한 거 아니었어?"

"소마까지......"

루나의 절친한 친구인 소마. 루나의 방벽 안에 같이 숨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느슨한 점이 많은 사람인 거 같아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예리하고 날카로운 직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낄 것이다.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지?"

"선생님이 결혼한다고 했을 때부터요. 기껏해야 만나면 인사말 정도 나누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속도위반으로 결혼한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루나는 이세하에게 그동안 자신이 조사해온 자료를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암흑의 광휘에 대한 전반적인 분석과 파이가 무엇에 의해 기억이 조작되었는지 몽환 세계와의 접점 있다는 가정하에 추론한 내용 등이 포함되었다.

"캐롤리엘씨와 보나가 도와줬어요. 그래도 알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적어도 세하씨가 뭔가를 숨기고 있을 거라는 결론은 쉽게 낼 수 있었죠."

상당히 높은 정확도의 리포트.
많은 분량이 추측과 예상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는 걸 감안하면 얼마나 오랜 고민과 분석을 통해 나왔는지 이세하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숨기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자 그저 허탈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자, 이제 진실을 말씀해주세요. 선생님의 남편이자 저와 같은 트리아이나 리벨리온의 멤버로서. 유니온의 차기 에이스 클로저에게 의지할 기회는 절대 흔하지 않으니까요."

"유니온의 차기 에이스?"

거기에서 장난스럽게 소마가 태클을 걸었지만 루나는 시종일관 진지했다. 결국 세하는 리포트를 재리에게 넘기고 다소 체념한 얼굴로 입을 열게 되었다.

"좋아. 이야기해줄게. 진실에 대해."

"세...세하씨."

"괜찮아요. 루나는 이제 어리지 않아요. 것보다 여기까지 알게 된 이상, 더는 숨기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세하는 가지고 있던 건블레이드를 꺼내고 위상을 방출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루나와 소마는 흠칫 놀랐지만 이후 나타나는 놀라운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된다.
건블레이드는 위상력을 견디지 못하여 파괴되고 그 안에 파이의 사검이 들어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쥐고 계신 거죠? 가까이 두는 것조차 위험할텐데......"

"파이 누나의 PNA 인자를 일부 받았거든. 지금은 암흑의 광휘 인자로 대체된 부분을 말이야."

세하가 오른쪽 눈에 있던 서클렌즈를 떼어내었다. 그러자 파이의 눈과 같은 색채를 띄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는 암흑의 광휘 인자가 무의식과 욕망을 극대화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지. 맞는 말이야. 솔직히 여기까지 알아낼 줄은 몰랐어."

"선생님의 PNA 인자를 무리하게 이식받은 이유와 관련된 건가요?"

"그래. 파이 누나의 동생분, 슈에 윈체스터를 향한 시간 정지. 그건 분명 파이 누나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어. 그런 상태에서 암흑의 광휘로 인해 폭주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

루나는 그동안 알아낸 정보를 토대로 추론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언뜻 보기에 어려워 보였지만 결론을 도출해 내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설마... 동생분을 향한 시간정지를 거둔다는지 하는 건가요?"

"맞아. 무의식의 극대화라고 말했었지? 클로저는 자신이 실제로 낼 수 있는 위상력보다 항상 적게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위상력의 양을 통제하고 있거든. 그 리미트가 해제되는 거야. 시간정지는 상당한 힘이 소모되니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부터 끊어버리게 되겠지."

세하는 분석이라는 단어를 싫어했다. 그래서 전투에 임할 때도 슬비나 루나에게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전방에 나서서 적의 진영을 흩뜨려두는 역할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그다지 주의 깊게 생각할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러던 그도 파이를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이론의 기초도 모르는 상태에서 재리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어요! PNA는 기계 부품처럼 간단히 끼워 맞출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빨리 최보나나 그레모리 박사에게 가요. 안 그러면 일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거예요."

"치료를 받을 여유는... 없어. 파이 누나의 욕구를 주기적으로 해소해줘야 하거든."

"욕구? 아......"

초반에 세하와 재리가 했던 대화를 떠올린다. 민망한 상상을 하고 있자, 옆에 있던 소마가 벙찐 얼굴로 얼타고 있다.

"욕구? 선생님의 욕구가 뭐야?"

"크... 크흠! 어린애는 몰라도 돼!"

"엥? 루나만 알고~ 너무해~"

소마가 어린애처럼 루나에게 매달렸지만 루나는 단호했다. 설명한다고 알아들을 것 같지 않은 순수함을 소마는 아직 가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소마를 밀어낸 루나는

"왜 선생님은 세하씨에게 반응하는 걸까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동생분의 눈동자 색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다가온 시기도 그때였으니까."

"칫~ 칫~ 흥칫뿡!"

소마가 볼살을 부풀리며 토라진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재리 만이 외로이 달래고 있었고 루나와 세하는 하던 대화를 지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


이 시각 세하의 방.
회색 머리로 바뀐 여성이 광기에 찬 눈빛을 한 채, 침대에 뒹굴고 있다.
매트는 땀에 흠뻑 적셔져 있고 굶주린 짐승처럼 필사적으로 누군가의 존재를 갈구하고 있다.

"하아하아... 그대여.. 내가 사랑하는 그대는... 지금 어디 있나요?"

달빛에 반사된 그녀의 입술은 어느 때보다 더 요염하게 빛나고 있었다.

"어서... 빨리... 강하게... 안아주세요. 제가 무너질 때까지..."





글쓴이의 말: 세하 너무 약해요. 제발 상향 좀. 이 팬소설은 클로저스 캐릭 밸런스를 일부 반영합니다.

2024-10-24 23:35:2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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