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36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3-14 1

 일본 유니온 도쿄 지부, 유니온 복장을 입고 다니는 요원들이 가득했다. 하피는 이미 와본 적 있었는지 익숙한 태도였고, 석봉은 촌놈처럼 주변을 살펴보면서 신기해했다. 유키코의 뒤를 따라 작전 회의실로 들어왔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유키코가 나가자 하피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석봉을 보고 말했다.

"우리는 휴가 중인데 왜 일본 유니온에 불려온 거죠?"
"네? 어, 그러니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란다고 순순히 가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우리는 벌쳐스라고요. 유니온이 불러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요."
"죄송해요."

 하피가 검지로 가리키며 지적하자 석봉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였다. 석봉은 이곳에 임무 수행하러 온 게 아니라 게임기를 사러온 건데 트러블에 휘말려버린 셈이었다. 크리자리드 계열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한국에서 봤던 녀석과는 달랐다. 

"그 여자가 얼마나 잘난 여성인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에요. 수많은 남자들이 좋아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순진한 척 하지만 속내는 지겹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모든 연예인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처음에는 그저 좋을 뿐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당신같은 남자를 싫어하게 될 거에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머, 부정을 안하시네요. 많은 남성분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럴 리가 없다고 답하던데 석봉씨는 다르시군요."
"이해하니까요. 유명한 연예인도 힘들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아이돌 키우기 게임해봐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싫어한다는 말을 해도 이상할 일이 없다고 받아들였다. 너무 빠져든 열혈팬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 게 당연하겠지만. 유키코는 유명인 사이에서 많이 힘든 쪽에 속해 있다고 확신했다. 클로저로 목숨걸고 싸우는 일도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

"전 그 분이 좋지만 스토커같은 짓은 하지 않을 거에요. 멀리서 응원 메시지를 남겨주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요?"
"어머, 그런가요? 그 여자의 본성이 어떤지도 말인가요?"
"사람을 너무 깎아내리려고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쁜 점만 생각하는 거보다는 좋은 점만 생각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마치 자신을 가르치듯이 말하는 석봉의 말에 하피는 당황했다. 주제 넘은 말인 듯 했지만 석봉이 그 말에 불쾌함을 다소 느꼈다는 의미였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상대를 깎아내리려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유키코가 유니온 요원과 함께 들어왔다. 잘생긴 남성의 모습에 하피는 흥미롭게 보았고, 석봉은 자세를 반듯하게 하여 요원의 말을 경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니온 도쿄 지부 관리 요원 나카무라 고이지입니다. 한국에 있는 벌쳐스와 연락을 끝냈습니다. 여기 팩스로 도착했습니다. 당신들은 휴가 기간동안 우리 도쿄 지부와 협력해 임무에 동참해주시는 겁니다."

 벌쳐스에서 온 공문을 보이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석봉은 여기 와서 휴가를 제대로 못 즐긴다는 생각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원래 회사에 다니는 직원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참여할게요."
"고마워요. 한석봉 씨는 인천에서 노다지 군단을 막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거구의 크기를 가진 크리자리드도 손쉽게 해치우는 걸 도와주셨으니 그 능력을 믿고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석봉이 수락하자 고이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언급한 뒤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휴가 나왔는데 갑작스럽게 임무 수행하라고 하니 속으로는 불쾌할까봐 일부로 기분 좋게 하려는 거였다. 고이지는 석봉 얼굴 표정이 변하지 않은 걸 보고 다소 실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 사진을 보시면 차원문에서 거대한 크리자리드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전세계에 노다지 군단이 출현하기도 했고, 모스페어 차원종이 출현했죠. 한국 유니온에서 보낸 위성 사진이 있는데 이런 게 찍혔습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공중 부양을 한 모습이 찍혔다. 차원종은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간 듯한 모습이었다. 석봉은 그를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워낙 작은 모습이라 확대한 사진이 필요했다.

"이거 누구인가요?"
"그건 저희도 잘 모릅니다. 확대해봤는데도 식별이 잘 안 되었습니다. 눈에 검은 점같은 게 있는 걸 보면 선글라스를 낀 거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저희가 보기에는 이 남자가 차원문을 연 거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정체를 알 수 없는 차원종이 계속 나온 이유는 이 남자 소행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람이 차원문을 연 건가요?"
"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 장비도 없이 열었다는 게 이상하긴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건 이 사진 속 남자를 추적하는 겁니다. 그 남자는 누구이며, 왜 그 차원종들을 불러냈는지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석봉은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차원종을 출현시킨 장본인, 그들은 삶의 환경 위협을 받고 있었다고 했지만 그들이 지구로 온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 확신했다.

*  *  *

 회의가 끝난 뒤에 곧바로 유키코 씨와 시내를 걸었다. 돌아다니다가 게이트 출현 연락을 받게 되면 그곳으로 달려가 남자가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잡아들이는 게 이번 임무였다. 검은색 양복같은 걸 입었다고 했는데 그걸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저, 혹시 CKT부대에 대해 아시나요?"
"CKT? 아, 그러고 보니 들어본 적 있어요. 반 유니온 테러단체라고 들었는데, 요즘은 활동이 조용하군요. 예전에 우리 유니온 시설을 몇 번 습격하고 나서는 소식이 없습니다."

 유키코 씨도 CKT부대 클로저와 싸웠던 모양이었다. 요즘 계속 안 보이는 게 지금 나타나는 차원종과 관련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 섬에서 만났던 배원형도 노다지 군단을 알고 있고 경고까지 했었다. 분명히 그 조직과 연관이 있는 게 틀림없었다.

"CKT부대라, 그러고 보니 나타 요원과 만났다고 했었죠?"
"네. 그 때는 상황이 안 좋아서 일시 휴전을 했었어요. 나타와 호각을 좀 이루는 요원이었어요."

 하피 씨의 말에 나는 답변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다가 험상궂은 얼굴을 한 불량배들과 맞닥뜨렸다. 위상력 능력자가 나타난 이후로는 범죄율도 증가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클로저는 총을 한 방 맞아도 아플 수준이지만 튼튼한 장갑만큼이나 단단했었다. 경찰이 실탄을 든 권총으로 겨누어도 범죄자가 위상능력자라면 충분히 두려워하지 않고 범죄를 저지를 만 했다.

"하아, 꼭 이렇게 돌아다니면 저런 녀석들과 맞닥뜨리게 된다니까요."

 유키코 씨는 지겨워했다. 솔직히 나는 무서운데 두 사람은 너무 여유로웠다.

"어이, 어린애 주제에 미인 두 명과 함께 어울려 다니다니 제법이구나."
"오우, 둘 다 각성자인 거 같은데 저런 힘없는 어린애와 놀지 말고, 우리랑 함께하는 게 어때?"

 이마에 손을 얹으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저분들은 지금 누구를 건드리는 건지 알고 있을까? 육안으로 봐도 그들이 C급 클로저 수준 전투력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분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을 정도면 이미 답이 나왔다. 

"어머, 한석봉 씨. 연약한 숙녀가 위협을 받고 있는데 저를 지켜주세요."
"하피 씨, 농담하지 마세요. 저보다 훨씬 더 강하시잖아요."

 왜 갑자기 이러시는 거야? 강한 사람이 연약하다고 말하시다니, 이걸 보고 얄미운 여우라고 했던가? 유키코 씨가 먼저 나서서 불량배들을 선제공격했다. 하피 씨는 입술을 삐죽이며 덤벼든 녀석들을 향해 발차기를 날렸다. 우선 내가 할 일은 하나다.

"36계 출행랑!"

 저런 불량배들 사이에서 벗어나는 게 올바른 일이었다. 남자가 비겁하게 여자를 두고 도망간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본질을 알면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게 올바른 거라고 깨닫게 될 것이었다.

"어이구, 아가씨들. 남자 친구분이 겁쟁이라서 실망했겠네? 나라면 괜찮은 남자인데 어떻... 컥!"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무식한 불량배가 하피 씨의 발차기를 맞고 나가 떨어졌다. 상황이 정리된 뒤에야 나는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겁하게 도망가신 건가요?"
"저분들은 각성자들이잖아요. 그리고 여러 사람이 있는 싸움에서는 제가 피해있는 게 더 좋을 거 같았어요."

 차원종과 싸우는 일이라면 기꺼이 참여하겠지만 사람들을 상대로는 웬만하면 피했다. 그 사람들에게 잡혀서 인질극이라도 당하면 두 사람이 험한 꼴을 당할까봐 그런 거였다. 하피 씨는 서운했는지 실망스러운 얼굴을 보였지만 유키코 씨는 달랐다.

"잘 하셨어요. 원래 민간인은 클로저 입장에서 거슬리는 존재죠."
"어머, 거슬린다고요? 입이 생각보다 거치시군요."
"사실을 말한 거에요. 차원종을 쓰러뜨려야 하는 상황에 민간인이 대피 방송을 무시하고 현장에 남아있다가 위험에 처하면 클로저는 그 사람을 구하고 차원종에게 죽게 되기도 하거든요."

 생각보다 거친 말투였다. 사람을 구하다가 죽는 클로저가 실제로 있었다. 사회에서 소방관이 사람을 구하다가 죽는 거와 같다는 거겠지. 경찰도 시민을 보호하다가 죽는 일이 많았다고 했고, 군부대도 마찬가지였다. 그 희생정신이 맘에 안든다고 말하는 듯 했다.

"민간인은 클로저에게 짐만 되는 존재, 차라리 그냥 없는 게 나아요. 솔직히 한석봉 씨도 공적이 있어서 참여하게 한 거지, 평소라면 거절했을 거에요."
"민간인 자체를 싫어하시나요? 관리 요원도요?"
"네. 싫어해요. 하피라고 했죠? 당신도 알 거에요. 사람을 구하는 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유키코 씨의 말을 들은 하피 씨 얼굴이 굳어졌다. 뭐지?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아무래도 두 사람에게는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듯 했다. 일단 물어**는 않았다. 사람이 저렇게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건 쉽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자의 비밀은 함부로 캐내서는 안 되지.

"저, 기분 전환할겸 후식을 즐기지 않으실래요? 일본에는 처음 와서요. 사람들이 즐겨먹는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싶은데요."
"그럴까요? 먹으면서 대기하는 것도 좋겠죠."

 순찰 임무가 아니었으니 가게에 들리는 것도 상관없었다. 민간인은 클로저에게 거슬리는 존재라는 얘기에 나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서 기분이 안 좋았다. 점장님은 물론 엄마 아빠도 말씀하셨었다. 클로저에게 있어서 민간인은 거슬리는 존재라고 여기는 게 보통이라고. 바이올렛 아가씨와 나타, 레비아, 하피 씨도 속으로는 나를 짐짝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21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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