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6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26 1

 레비아는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었다. 게임이 이렇게 어려울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계속 재도전하면서 어떻게든 클리어하려고 했다. 위상력 능력자로서 자존심은 있으니까. 석봉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레비아가 간만에 의욕을 내면서 게임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삑! 삑! 삑! 삑!

"우우..."

 스테이지도 차츰 나아가고 있다. 최종보스에 마침내 다다르고 있지만 계속해서 게임 오버가 되고 있었다. 석봉은 예비용 건전지를 꺼내 언제든지 배터리가 닳았을 때 채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떄 누군가가 문을 세게 열어젖히면서 들어섰다. 바이올렛이었다.

"아가씨?"

짝!

 석봉의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친 거로 봐서 화가 많이 난 걸 알았다. 석봉은 아마 트레이너에게 들어서 저렇게 된 거 같다고 확신했다.

"당신 바보인가요? 왜 매번 이런 식인가요? 정말로 죽으려고 환장했어요?"
"저...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당신은 위상능력자가 아니라 민간인이라고요.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헉!"

 두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으면서 들어올렸다. 석봉은 공중부양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대가 엄마였어도 분명히 이렇게 대했을 거라 확신했으니까.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잔소리를 마음껏 들으려고 했지만 가늘어보이는 그녀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석봉은 그녀가 고개를 숙인 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심장이 덜컹거렸다. 꼭 자신이 그녀를 슬프게 만든 죄책감이 들 정도다. 레비아도 놀랐는지 게임하다 말고 놀란 얼굴로 그 모습을 보았다. 석봉의 다리가 지면에 닿았다. 그를 놔준 바이올렛은 등 뒤로 돌며 이렇게 말했다.

"목숨을 소중히 하세요. 당신은 살아야 하니까요."

 물론 벌쳐스를 위한 인재로서 하는 말이었다. 회사의 도구로 이용하는 거지만 사로잡기 위해서는 그만한 정성을 쏟아야 한다. 석봉은 그녀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그건 부모님이나 친구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석봉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레비아와 약속까지 했으니까.

"레비아 씨. 포기하시는 건가요?"
"아, 아니요! 지금 할거에요!"

 싱긋 웃으면서 말하자 레비아는 계속해서 게임에 집중한다. 석봉이 그녀에게 게임을 시키는 이유가 있다. 상대가 인간이라면 조금 설득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게임 자체를 모르는 차원종이기에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거짓말로 도와주는 꼴이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꼭 진실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으니까.

 거짓이라해도 결과가 좋게 나온다면 언제든지 사용한다. 석봉은 그녀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져서 스스로 고통의 길을 걸으려고 한다면 자신이 그 운명을 바꾸게 만들면 되는 거다.

*  *  *

 13시간이 지났다. 처리부대 요원 숙소까지 와서 레비아는 게임기를 조작한 결과 마침내 최종보스까지 오게 되었다. 그곳에서 아직까지 막히고 있었다.

"우우!"

 그녀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진다. 원래 최종보스라는 게 어려운 법이니까 당연한 거다. 나는 사비로 그녀에게 도시락을 대접하면서 허기를 채우게 했다. 이제 기회가 왔는지 레비아가 눈을 크게 뜨면서 버튼을 더 빠르게 조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Game Clear 라는 문구가 떴다.

"와아... 해냈어요!"

 매우 기뻐하는 레비아의 모습에 나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힘들었는지 게임기를 든 채로 드러누웠다. 얼굴이 붉어진 걸 보니 많이 애쓴 모양이었다. 그녀에게서 게임기를 받은 나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땠어요? 게임을 클리어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이렇게 즐거운 건지 몰랐어요."
"레비아 씨. 실은 레비아 씨에게 훈련을 시켜드린 거에요."
"네? 훈련이라고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13시간이 걸려서 최종보스까지 클리어하게 했다. 그녀가 인간이었다면 분명히 화낼 거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인격이 그녀의 몸을 차지하는 것도 전부 패턴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지만.

"최종보스를 어떻게 이기셨죠?"
"네? 그게... 그러니까......"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우시죠. 그거야 당연하죠. 그건 몸으로 이기는 거니까요. 그거와 마찬가지로 레비아 씨 내면에 잠들어 있는 무서운 것도 몸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그건......"
"게임을 하실 때 처음에는 많이 어려워하셨죠? 그런데 지금은 어떠신가요? 불가능할 거 같은 최종 단계까지 클리어하셨잖아요. 그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레비아 씨는 그걸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거에요.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계속하다보면 어떻게 해야 공략이 되는지 알아낼 수 있으니까요."

 레비아 씨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려고 했다. 게임과 관련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폭주함으로서 나오는 또 하나의 인격이 어떻게 자신의 몸을 차지하는지 예상이 되기 마련이다. 그 방법은 오직 그녀만 알 수 있다. 나는 반드시 그녀가 해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니까.

"한석봉 님."
"레비아 씨. 저도 이 훈련으로 제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민간인은 차원종이 나타나면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게 정상이라고 보시겠죠? 그건 나약한 또 하나의 자신에게 패배해서 그런 겁니다. 레비아 씨가 폭주한 거처럼요."

 폭주라는 건 레비아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작용한다는 것만 쓰이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 침착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을 희생해서라도 자기 혼자 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도 포함 된다. 그녀만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이 희생자가 나오는 건 클로저가 제대로 활약을 못해서가 아닌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스스로 희생을 자초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니까.

"정말로 제가... 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이에요. 레비아 씨. 이 훈련을 기억하세요. 최종보스인 레비아 씨의 또 다른 내면을 이기기 위해서는 계속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레비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망설이고 있지만 나는 그녀가 이겨낼 거라 확신한다. 난 그녀가 차원종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  *  *

 다음 날, 실험장에서 그녀는 다시 힘을 개방한다. 위상력 기운은 점점 위협적이지만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레비아는 짧은 신음을 내면서 괴로워한다. 눈을 찡그린 채로 보라색 위상력을 계속 방출하다가 힘을 거두었다. 

"하아... 하아......"
"괜찮아요? 이번에는 저를 날려버리지 않으셨네요."
"한석봉 님. 조금만 더 떨어져 주세요. 다시 한 번 해볼게요."

 이제야 레비아 씨가 자신감을 가지고 힘을 방출한다. 안전 거리에서 기다린 나는 그녀가 계속 힘을 방출하는 걸 보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녀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다. 나타보다 더 높은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실전에서 커다란 활약을 못한 이유가 있었다.

쿠구구구구-

 다시 한 번 힘을 방출한다. 지면이 흔들리고 있었고, 레비아 씨의 눈동자가 점점 붉은색으로 빛나려고 하고 있을 때 멈췄다. 그 정도라면 위험상황이라는 걸 인지하고 행동한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해볼게요."

 힘을 개방하다가 위험 수준까지 온다면 곧바로 멈춘다. 이것도 10번째 반복이었다. 레비아는 스스로 멈출 능력이 있었다. 전에 한 번 개방했을 때 얼마나 많은 인원이 희생되었는지 알고 있기에 그 힘을 폭주하려고 할 때 자신의 의지로 멈추려고 하니까.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했더니 또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건가?"

 트레이너 씨다. 그가 뭐라하든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레비아 씨는 계속 힘을 방출하고 있었지만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그가 갑자기 개입하려고 하자 달려가서 그를 가로막았다.

"안 돼요."
"비켜라. 저러다가 정말로 폭주하다면 또 다시 많은 희생을 낳게 된다."
"레비아 씨는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저분에게 맡겨주세요."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라!! 네가 하는 짓이 지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직도 모르는 거냐?"

 그러는 사이에 레비아 씨는 위상력을 더 늘리고 있었다. 괴성을 지르는 듯 해서 트레이너 씨가 나를 밀친 뒤에 앞으로 나서서 주먹에 푸른 위상력을 주입한다. 안 돼. 레비아 씨는 이제 겨우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회인데 이대로 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재빨리 권총을 꺼내 트레이너 씨 얼굴 옆을 조준해서 발포했다.

피융-

 정확히 얼굴 옆으로 지나가자 트레이너 씨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내게 거대한 살기를 내보낸다.

"이렇게까지 할 생각인 거냐? 한석봉 학생."

 으으, 화내니까 엄청 무섭네. 다리가 절로 후들거릴 정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다. 트레이너 씨가 레비아 씨를 죽이게 하면 안 되니까.

"전, 레비아 씨를 믿으니까요!"
"크아아아아아!"
"이런!"

 그녀의 괴성과 함께 위상력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마치 강진을 체험하는 기분으로 땅이 심하게 흔들린다. 트레이너 씨는 이를 악물면서 위상력을 방출한다. 세하와 비슷한 수준의 위력을 가진 위상력이다. 이 사람도 정말 강하구나. 하긴, 대장이 약할 리가 없겠지. 

"음!?"

 트레이너 씨가 갑자기 뭔가를 느꼈는지 위상력을 거두었다. 땅의 흔들림이 줄어들어가고 있다. 레비아의 눈동자 색도 원래 색깔로 돌아오고 있었다. 좋은 느낌이 들었다. 이건 분명히!

"트레이너 님."
"이... 이럴 수가!"

 평소에 무표정을 보이던 트레이너 씨가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8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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