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22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22 1

 나타와 배원형은 동시에 눈을 떴다. 옷은 젖었지만 석봉이 동굴 안으로 옮긴 것도 있고, 체온 약을 먹어서 추위에 떠는 모습도 안 보였다. 석봉은 모닥불을 피워서 주변을 밝게 했다. 아직도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물살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일어나 무기를 다시 집는다.

"또 싸우시는 거에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이 녀석은 적이니까!"
"그래. 우리는 적이지."

 또 무기를 들고 대치했다. 석봉은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헛수고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조용히 나뭇가지를 움직여서 불이 잘 타게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싸우지 않았다. 또 다시 물벼락을 맞기는 싫었는지 서로 주저하는 모습이었다. 헬기는 기상 악화가 해결되면 곧바로 날아온다고 했다.

"그만하지. 싸우다가 또 물벼락 맞기 싫으니까."
"쳇. 동감이다. 생쥐꼴이 되는 건 나도 원하지 않아."

 배원형이 먼저 물러나자 나타도 공감이 되었는지 순순히 무기를 내렸다. 또 물벼락을 맞고 쓰러지는 건 사양하고 싶을 테니까. 강풍이 부는 데다가 물살까지 조금 흐르고 있는데 당연했다. 바깥에는 지금 발목이 잠길 정도로 물이 올라왔다.

"CKT부대는 안오는 건가요?"
"나야 뭐, 명령받는 입장이지. 어쩌면 너희와 같은 처지일 지도 모르겠군."

 배원형이 창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가슴을 끌어 안은 채로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CKT부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 생각이 들었지만 석봉은 그들이 알고 있을 만한 걸 물어보았다.

"혹시 모스페어 차원종 아시나요?"
"모스페어? 아, 그 팔 네 개 달린 놈 말이지? 울릉도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그런데 말이야. 이미 유니온에서 처리했다는 데."
"알고 계셨군요. 혹시 유니온 내에 첩자라도 있는 건가요? CKT부대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죠?"
"글쎄. 왜 알고 있을까? 거기까지는 말 할 수 없지."

 배원형은 씩 웃어보였다. 석봉은 민간인인데도 위상력 능력자인 자신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는 점에 대해서 약간 호감이 갔다. 물론 유니온 관리 요원이나 벌쳐스 현장 요원이라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그가 보기에는 석봉이 아직 철이 덜 든 나이로 보였으니까 느끼는 거였다.

"아직 어린애 같은데 나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 군. 내가 싸우는 것도 봤을 텐데."
"더 위험한 순간도 겪어봐서요."
"뭐, 이건 말해줘도 상관없겠지. 솔직히 말해서 그 차원종들이 왜 나타난 건지는 모르겠어. 과거에도 출현하지 않았던 차원종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단 말이지. 그리고 어차피 알게 될 정보니까 이거 하나는 알려주도록 하지. 노다지 군단이라고 들어봤어?"
"에? 노다지 군단이라고요?"

 심각한 얼굴을 하면서 묻자 석봉은 눈을 크게 뜬 반응을 보였다.

*  *  *

 갑자기 노다지 군단이라니, 그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노다지가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지만 보라색 줄기가 근육섬유를 가리키듯이 3줄로 칠해져 있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하얀색이었다. 하얀 복면을 뒤집어 쓴 거처럼 보였고, 표정은 실눈이며 입은 안 보였다.

"이것도 차원종인가요?"
"그래. 차원종이지. 너희는 앞으로 이 노다지 군단과 마주해야 할 거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녀석들은 지금 지구 침략을 노리고 있으니까."
"어째서요?"
"그걸 내가 아냐?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보라고."

 사진을 넘기면서 말했다. 나타도 그 사진을 보며 흉측하게 생겼다면서 투덜거렸다. 하얀 가면을 쓴 테러리스트 같은 얼굴이다. 이런 차원종이 있다는 걸 왜 알려주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 이들이 당신들 적이라도 되는 겁니까? 모스페어 차원종과 아무런 관련은 없으신 거죠?"
"그런 녀석들은 우리가 알바 아니지. 물론 노다지 군단도 마찬가지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단호하게 답한다. 이름이 조금 이상했지만 CKT부대에서 불리는 명칭이었던 모양이다. 유니온과 벌쳐스는 아직 모르는 정보다. 노다지 군단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테니까.

"이걸 저희에게 넘기는 이유가 뭐죠?"
"글쎄. 그냥 날 동굴에 머무르게 한 보답이라 해두지. 어차피 우리 조직에게 손해 보는 일도 아니니까."

 이건 틀림없이 일부로 건네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벌쳐스에게 알려야 되나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이 어차피 곧 나타날 거 같으니 보고하는 게 좋을 거라 확신했다. 나타는 상대가 누구든지 싸우려고 할 게 뻔했지만.

*  *  *

 다음 날 아침, 반가운 햇살이 동굴 안을 비췄다. 석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깨우려 했지만 이미 한 명은 어디로 사라진 뒤였다. 나타는 벽에 기댄 채로 잠들어 있었다. 조용히 흔들어 깨우자 나타는 눈을 번뜩이며 한손으로 그의 목을 잡아서 넘어뜨렸다.

"컥!"
"음? 뭐야? 너였냐?"

 쿠크리의 날이 이마를 찌를 뻔 했다. 석봉은 창백한 얼굴을 보이며 가래끓는 소리를 냈지만 다행히 나타는 그걸 거두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사실이 생생한 고통으로 느껴졌다.

"뭐야? 그 자식은 어디로 갔어?"
"본부로 돌아간 거 같아요."
"뭐야? 쳇."

 나타는 뭔가 아쉬웠는지 혀를 찼다. 석봉은 밖에서 들려오는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들었다. 날씨가 안정화되었으니 그들이 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헬기가 착륙하는 곳으로 향한 두 사람은 거기서 내린 선글라스 남성과 마주했다.

"고생하셨습니다. 타시죠."

 곧바로 헬기에 탑승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간다. 석봉은 자리에 앉은 뒤에 배원형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노다지 군단이라고 불리는 차원종들, 그가 하는 말이 거짓이라해도 어차피 벌쳐스가 모르는 차원종이 나타나는 건 분명했다. 차원종은 아직 수많은 종류가 남아있으니까. 

"저, 급히 전해야 할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딱딱한 말투에 석봉은 잠깐 멈칫했다. 지금 말을 걸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를 보내고 있어서였다. 그래도 침을 꿀꺽 삼킨 뒤에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사내는 사진 앞에 가까이 댔다.

"뭡니까? 이건?"
"새로운 차원종이라는데 혹시 아시는 게 있으시나 해서요."
"이런 차원종은 본 적 없습니다. 도대체 이거 어디서 얻은 겁니까?"

 석봉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이어피스를 이용해 어딘가로 보고한다. 한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말하면서 그가 들리지 않게 했다. 그걸 본 나타는 불쾌해하지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여기서 날뛰면 바다 위로 추락한다는 거 정도는 잘 알고 있으니까.

*  *  *

 벌쳐스로 돌아와 감시관님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그 분도 사진을 신기하게 쳐다보면서 내게 말했다.

"그 CKT부대 소속 요원이 이걸 건네줬단 말이죠?"
"네."

 눈매가 조금 날카로운 게 꼭 나를 의심하는 듯 했다. 일단 그렇지 않다는 걸 표정으로 보여주었다. 감시관 님은 사진과 나를 세 번정도 번갈아본 뒤에 실눈을 보인 채로 미소를 보이며 한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항상 그래왔지만 감시관 님은 실눈을 한 채로 나를 대하시는 게 가장 무섭다. 이번에는 또 뭘 꾸미려고 그러시는 걸까?

"수고 많았어요."

 다른 사람이 한 말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이 분의 말에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장과 한패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런 거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차원종 중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음에는 어떤 방법으로 날 죽이려고 할 지 불안했다.

"어머, 왜 그렇게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어요? 임무 실패라도 한 건가요? 그것도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요."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교활한 미소가 마음에 걸린다. 나도 온화한 척 하지만 불안함을 숨기지 못한다. 솔직히 나는 그 기밀 정보 하나도 모르는데 왜 사장이 멋대로 판단해서 이지경으로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나를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들어가서 쉬세요. 내일부터는 특별한 임무를 좀 해줘야할 테니까요."
"감시관 님. 그 임무라는 게 무엇입니까? 미리 여쭤봐도 될까요?"
"아, 늑대개 팀에 위험한 차원종이 있다는 거 아시죠? 사장님께서 지시를 내리셨어요. 레비아라는 짐승을 24시간 잘 감시하라고 말이죠. 폭주할 위험이 있으니까요.

 뭐지? 왜 그걸 나더러 감시하라고 하는 걸까? 과거에 처리 부대를 몰살 시킨 장본인이라는 거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 위험 수준이라면 신입이 아닌 경력이 많은 베테랑에게 맡기는 편이 좋을 텐데 굳이 나에게 맡기는 이유라면 뻔하다. 그 차원종이 폭주한 사고를 과장하여 날 죽이려고 하는 거겠지.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난 어차피 선택지가 없으니까.

"학교와 집은 어떻게 하죠?"
"걱정 마세요. 저희 회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요. 그럼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터 잘 부탁드려요."

 입꼬리를 올린 채로 문열고 나갔다. 난 어쩌면 그들과 다를바 없는 신세인 거 같았다. 목에 초커는 차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약한 민간인이니까.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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