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맨 19화

검은코트의사내 2020-02-17 1

 여기 쓰레기 섬은 사람들이 하도 쓰레기를 많이 버린 탓에 그렇게 변해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여기는 차원종들이 마음껏 날뛰고 있는 섬이기도 하다. 그저 잔해를 모으면 되는 일이지만 헬기는 언제 올지 알 수 없다. 혹시 나를 여기서 죽게 내버려 두려고 그런 걸까? 

 하도 게임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 우두머리의 생각을 대충 예상할 수 있다. 분명히 처음에 내 기억을 지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그걸로 인해 두려워한 사장이 뭔가 조처를 내려 나를 제거하려고 할 게 뻔했다. 울릉도에 보낸 차원종도 마찬가지겠지. 나타는 스캐빈저들을 쓰러뜨리면서 좋아하고 있을 뿐이지만.

서걱- 촤촤촥-

 하도 많이 봐서인지 이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지는 않았다. 처음 봤을 때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지만 이것도 경험이라 할 수 있지. 경험을 많이 하게 된다면 반드시 적응이 되기 마련이니까.

"나타, 수고 했어."
"잘 봤냐? 이 나타님의 실력을. 너 같은 비실이는 지금처럼 뒤에서 구경만 하면 돼. 쳇. 그냥 나 혼자만 와도 되는데 왜 이런 녀석을 보낸 건지 모르겠군."

 스캐빈저만 우글거리는 곳이라면 나타 혼자 와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나까지 보낸 걸 보면 스캐빈저 말고도 뭔가 더 있거나, 아니면 나를 죽게 내버려두려고 온 게 틀림없다고 느꼈다. 헬기도 정해진 시간이 되어서야 온다고 하니 지금은 잔해를 충분히 모으고 나서 생존하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이제 충분해. 잔해를 다 모았어."
"앙? 벌써냐? 쳇. 시시한 일이군. 녀석들이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그 동안에 몸 좀 풀어볼까?"
"저기 나타. 잠깐 쉬었다가 하는 게 어때? 다친 몸으로 너무 무리하면 상처가 벌어질 수 있잖아."
"뭐야? 야! 이 나타님이 이까짓 상처 때문에 쓰러질 거 같아보여!?"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자신의 즐거움을 방해한 자에게 응징이라도 내리고 싶어하는 거처럼 보였다. 석봉은 양손을 들어올리며 진정하라고 말한 뒤에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제 슬슬 점심이잖아. 밥 먹고 하는 게 어때?"
"쳇. 그런 깡통죽 따위는 너나 먹어. 맛 없는 거 먹는 건 질색이니까."
"깡통죽?"
"이거야."

 나타가 보여준 건 전투식량이라고 씌여있었다. 국방부 마크가 있는 걸 보니 군인들이 주로 먹는 음식인 모양이었다. 이게 그렇게 맛이 없는 건가? 평소에 이런 식사를 하고 살았다면 내 식량을 나눠줘야할 거 같았다. 벌쳐스에서 제공한 휴대용 도시락도 있겠지만 나는 사비로 구입했었다. 최재성 팀장이 말한 걸 떠올렸으니까.

이 회사는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 가능하면 휴대용 도시락 말고 사비로 편의점 도시락을 이용하도록 해.

 휴대용 도시락 중에는 유통기한 넘은 게 많다는 얘기다. 기간이 지났는데도 오래 보관하는 이유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거대한 자금을 다른 조직과 거래하는 데 집중 투자하며 정작 현장 요원에 대한 지원이 작다는 얘기니까. 누군가가 **사항을 말해도 소용없었다.

"뭐야 이건?"
"응. 이건 편의점 도시락이야. 괜찮으면 먹어볼래?"
"쳇. 이딴 게 맛있다고? 뭐, 좋아. 한 입만 먹어**."

 나무젓가락을 들어 계란 말이를 먼저 입에 넣었다. 그러자 나타는 눈이 크게 떠지며 곧바로 쌀밥을 시작으로 폭풍 흡입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도시락이 그렇게 맛이 좋은 건가? 나야 뭐, 질리도록 먹어봐서 맛있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깡통죽과는 차원이 다르잖아!"

 한입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어느 새 비웠다. 나도 도시락을 꺼내 먹어**만 나타가 내 도시락에 시선 집중하고 있다. 왠지 모르게 무섭다.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보면 하나 가지고는 모자란 모양이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넘긴다.

"먹을래?"

휘익-

 곧바로 낚아채서 도시락을 먹어치운다. 저렇게 빠를 줄이야. 도대체 얼마나 맛없었으면 편의점 도시락을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 분명히 유통기한이 지나서 맛이 없어진 거겠지. 반드시 그럴 거라 확신했다. 

"야, 비실이. 이거 엄청 맛있는데, 이거 어디서 난 거냐?"
"아, 이건 편의점 도시락이라고 해."
"편의점? 벌쳐스 내에 편의점이라는 것도 있냐?"
"회사에는 없어. 바깥에 있거든."

 벌쳐스 건물 내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사원들이 중식을 할 수 있는 식당만 있을 뿐이다. 석봉은 결국 도시락을 먹지 못했다. 나타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렇게 보였으니까. 대신에 그가 가진 전투식량을 보았다.

"저기, 그거 먹어봐도 돼?"
"뭐? 이런 맛없는 걸 먹는다고? 흥! 이딴 건 먹을 필요 없어!"

 나타는 그걸 집어서 멀리 던져버렸다. 아니, 맛을 좀 보려고 한 건데, 혹시 유통기한이 지나서 그런 건가? 아 이런, 밥을 못 먹었는데 어쩌지? 그렇다고 차원종 잔해를 먹을 수도 없잖아.

"뭐, 덕분에 잘 먹었다. 그럼 여기 있어. 가서 썰어버리고 올 거니까."

 나타는 다시 일어나서 나서려고 했다. 주변에 쓰레기들이 넘쳐난 곳이라 차원종들이 많이 몰려있긴 했다. 이 쓰레기 섬은 인간이 만들어낸 곳이었지.

쿠구구구구-

"어? 뭐야?"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쓰레기들이 진동으로 어디론가 계속 굴러갔다. 나무 기둥을 잡은 채 중심을 잡았다. 나타는 그대로 서 있는 채로 날아오는 쓰레기를 맞으면서 견뎌내고 있었다. 흔들림은 곧 멈췄다. 잠깐 지진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이 쓰레기 섬에서도 지진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일본과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가?

"뭐야 진짜! 짜증나게. 야, 비실이. 넌 여기 있어. 나 혼자 놀고 올테니까."

 싸우기를 너무 좋아하는 거 같다. 임무는 끝났지만 본분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감시 요원, 처리부대 요원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았으니 그 녀석이 어디로 가든 따라갈 필요가 있다. 필사적으로 나타를 따라가는데 언덕을 한 번 넘어갈 때 누군가와 대치하는 게 보였다.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나타와 대치하고 있었다.

"야, 넌 뭐하는 놈이야?"
"버르장 머리없는 애송이로군. 어른에 대한 예의라는 걸 모르는 거냐?"

 두 사람이 갑자기 대치하고 있었다. 검은 제복의 남성은 언월도로 보이는 창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운으로 봤을 때 분명 저 사람도 위상력 능력자다. 유니온 소속은 아닌 거처럼 보였다.

"흥! 상관없어! 약해빠진 녀석들을 썰어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이 나타님의 상대가 되어라!"
"나타! 잠깐만!"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그는 상대방에게 달려들었다. 두 개의 쿠크리를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베려고 하지만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양손으로 쥔 채로 언월도를 위 아래로 움직여서 공격을 막아내면서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캉! 캉! 채챙! 캉!

 네번째 합을 이룰 때 쿠크리 두 개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면서 언월도 날을 막아냈다. 이대로 대치하면서 나타는 재미있는 상대라고 여겼는지 썩은 미소를 보이며 힘으로 밀어내려고 하지만 상대방도 만만치 않았다. 서로의 힘이 충돌한 탓에 발생한 충격파로 둘 다 튕겨져 나갔다.

펑!

"캬하하하핫! 너 제법이잖아."
"그런 상처입은 몸으로 나와 이 정도까지 싸울 수 있을 줄이야. 사람을 많이 죽여본 모양이군."
"그래. 당연하지. 난 얼빠진 녀석들을 수도 없이 죽여왔거든."

 상대방은 차분한 말투로 냉정하게 상대방을 관찰한다. 역시 클로저들끼리 싸움은 대단하다. 그렇지만 빠른 움직임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안 보였는데 지금은 조금 보인다. 역시, 빠른 싸움에 익숙하다보면 이렇게 된다는 건가? 조금 더 싸워주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타가 불리하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큭!"

 나타의 짧은 신음이 느껴졌다. 대등하게 싸워도 나타는 원래 부상입은 몸이었기에 체력전으로는 그가 당해내지 못한다. 상대방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전력을 발휘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음, 그렇군. 네가 바로 그 벌쳐스 ** 사냥개라고 불리는 녀석이구나."
"뭐야? ** 사냥개?"

 호칭이 맘에 안들었는지 발끈하는 나타였다. 내가 보기에도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듯 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고 무조건 싸움을 걸었으니까. 

"처리하는 것도 좋겠지. 너희같은 녀석들을 말이야."

 도끼눈으로 우리를 무섭게 노려보는 걸 보니 적이 틀림없었다. 차원종이 아닌 사람이 적이라면 생각나는 건 한 가지였다. CKT부대, 그들은 요즘 어째서인지 활동이 뜸했다. 바이올렛 아가씨와 또 한 번 접촉한 이후에 지금까지 잠잠했는데 이런 쓰레기 섬에서 잔해수집이나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CKT부대이신가요?"

 생각나는 대로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은 다소 놀란 얼굴을 보이더니 피식 웃으면서 답한다.

"그래. 나는 CKT부대 소속인 배원형이다. 너희 벌쳐스의 적이라고 할 수 있지. 시시한 임무라고 생각했는데 너희 같은 녀석들을 만날 줄이야. 조금 재미있겠는데?"
"큭큭큭, 그래? 그럼 한 판 제대로 붙어봐도 불만이 없다는 얘기군. 좋아. 붙어보자고."

 나타는 반갑다는 듯이 차가운 미소를 보이며 자세를 잡았다. 어째 둘이 닮은 거 같다. 시시한 임무를 하러 와서 지루해하는데 때마침 강적이 나타나 서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저게 바로 싸움을 즐기는 광기의 모습, 말 그대로 싸움에 굶주린 사냥개들의 전쟁터였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35:1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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