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싸울아비] 도시가 가장 고요할 때

설원 2019-12-23 8

※ 어반 싸울아비 로그인 화면을 보고 영감을 받아 쓴 글

※ 본래 6캐릭이지만, 세하와 나타 중심으로 쓴 글

※ 관련 소재 리메이크 가능성 高

※ 살짝 현대물 느낌

 

 

 

 

 

 빌딩들이 줄을 잇는 이 최첨단을 향해 달려가는 거대한 도시를 지키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별다른 무기 없이 검 하나만을 들고 싸우는 이들이었다. 제일 일차원적인 싸움 방식을 택한 이들은 정해진 유니폼을 입고, 교대로 도시를 순찰을 돌고는 했다. 이들이 도시의 입장에서 완벽한 기밀에 해당하는 건 아니라, 일반 사람들 중에도 이들을 보았다고 하는 목격담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부르는 명칭은 완벽하게 통일되지 않아서 목격 사례마다 이들을 통칭하는 단어들이 다 달랐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검사’ 라고 불렀고, 또 다른 무리에서는 ‘정찰대’ 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나마 제일 멋스럽게 나온 명칭이 어반...뭐라고 했는데, 그 뒤의 말이 어려워서 까먹어다. 그리고 무어라 불리든 그건 별로 상관없었다. 이들이 맡은 유일하고 중대한 의무는 그저 도시를 지키는 일. 그것 외에는 느긋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들 중 한 명이 나타는 어느 날,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나서 한 가게의 처마 끝을 빌리게 되었다. 나타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우중충한 날에는 도시는 유독 고요해진다. 앞서 말했던 잠깐 비를 피하기 위한 처마를 발견한 곳만 해도 그러했다. 이미 누군가 떠난 지 오래 되었다는 걸 증명하듯, 나타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은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가까운 곳이었다. 한옥 양식인 걸 보면 꽤 오래전부터 여기에 세워져 있던 거 같은데, 아직까지도 철거를 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렇게 주인 없이 낡아만 가는 집이 이 도시에는 한둘이 아니었다. 중심부를 지나 조금 외각으로만 나가도 수두룩했다. 물론 이것들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애초에 그 외각에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명색이 도시의 상징적으로 있는 일명 정찰대로 있는 이들이 검 하나만을 드는 식의 낡은 방식을 추구하는 것을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이들은 상징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렇기에 검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보고도 그냥 신기하다고 생각할 뿐, 진지하게 바라** 않았다.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이들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어쨌든 외각을 순찰하고, 무슨 사항이 생기면 곧바로 본부에 연락을 취해 지시를 기다린다. 그렇기에 이들은 대부분 도시의 중심부가 아닌, 외각에 자주 있다. 그리고 외각은 중심부에 비해 약 3배는 넓었다. 이 넓은 곳을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6명이 각자 담당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적에 따라 한 달에 한 번씩, 담당 구역은 바뀌게 된다.

 

 이렇게 자신이 맡은 구역만 관리하기도 벅찬 시스템이다. 그래서 이렇게 같은 유니폼을 입은 동료대원을 만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타는 지금 자신과 같은 처마 아래에 있는 소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나타와는 달리 하얀색 검을 지닌 소년은 조금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있는지 나타를 미처 신경쓰지 못한 거 같았다. 나타는 앞에서 설명한 데로 오랜만에, 약 석 달 만에 만난 자칭 라이벌이라고 하는 소년에게 약간 퉁명하기는 하나 인사를 건넸다.

 

 “여, 이세하.”

 “...나타.”

  

 나타의 목소리를 듣자 세하는 그제야 반응했다. 약간 졸린 듯 보이는 그 얼굴이 지금 세하가 겪고 있는 피로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 했다. 나타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었냐?”

 “보시다시피 비를 피하고 있지.”

 

 세하의 말을 증명하듯, 세하의 겉옷은 이미 빗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든 상태였다. 옷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비슷한 수준으로 젖어있었다. 빨리 따뜻한 물로 샤워하지 않으면 감기 걸릴 텐데, 라고 나타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타를 보며 세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둘 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는 소리였다.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두 사람의 바람과는 달리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뻘줌히 있는 것도 그러해서 세하와 나타는 이런저런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선의의 라이벌인 두 사람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실적 관련으로 이어졌다.

 

 “이번 달은 넌 어느 구역이냐?”

 “F 구역.”

 “쳇, 거기는 내가 가고 싶었는데...”

 “나타 너는 어디인데?”

 “C 구역.”

 

 6개의 구역, 즉 A부터 시작해서 F로까지 명명된 구역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A에서부터 F로 나누는 기준은 위험도였다. A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고, 따라서 F는 가장 위험한 구역이었다. 그렇기에 F에 가까운 구역을 맡을수록 좀 더 유능하다는 소리였다.

 

 나타는 세하의 답변에 이상한 괴리감을 느껴서 재차 물었다. 정말 F 구역이 맞느냐고. 그에 대해 세하는 맞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타는 참지 못하고 아예 대놓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세하 너, 세 달 전에도 F구역 아니었냐?”

 “...F 구역만 벌써 6개월째야.”

 “워, 그거 좀 힘들겠네.”

 

 나타도 F 구역을 맡은 적이 몇 번은 있었다. 아무리 가장 유능한 인재라고 인정받는 것이라고 해도 F 구역을 맡았을 때는 정말 힘이 들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나타가 마지막으로 F를 배정받은 건 1여 년 전 일이었다. 그 직후로도 세하가 F를 맡은 걸로 기억하는데...

 

 이쯤 되면 세하는 거의 F 고정 멤버나 다름없었다. 라이벌이 이렇게 본부에서 유능하다는 대접을 받는 것에 자존심이 강한 나타는 화가 났을 법도 했지만, 나타는 꽤나 현실적이라서 F를 맡은 한 달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가 먼저 떠올라 그냥 세하가 불쌍하다는 생각만 우선적으로 들었다.

 

 실제로 세하는 근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비에 젖은 그 모습이 좀 더 초췌해보였다.

 

 사람이 한계점에 도달하면 마음에 있는 말 없는 말 다 내뱉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세하는 그런 상태였다. 평소의 세하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을 조금 퉁명스럽게 불었다.

  

 “이 도시는 정말 이상해...”

 “...”

 “검 하나 주고...지키라니...이상하잖아...”

 

 사실 좀 웃긴 일이었다. 그냥 평범하게 생긴 검과 칼집 하나만 받고서 이 도시를 지키라니. 우스운 일이다. 도시는 최첨단 기술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의 일종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런 현대라는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검 하나만을 들고 도시를 지킨다는 이들의 정체.

 

 처음 나타는 이 단체에 들어왔을 때, 아니 들어오고 나서도 한 한달 동안은 도저히 믿지 못했다. 영령이라는 게, 쉽게 말해 귀신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 중에는 악(惡)에 받친 종류도 있다는 거. 이들이 소지하고 있는 검은 일종의 장식용에 가까웠다. 실제 하는 것을 베어버리는 게 아니라, 형체가 없는 것을 때리는 용도였으니까.

 

 그래서 나타가 이 일을 시작하기 위해 봤던 면접에서 실제로 들었던 질문이 이거였다. 내려치기를 잘하는가, 정확히는 막대기 같은 걸로 무언가를 잘 내려치는가.

 

 실제로 세하와 나타와 같은 동기인 한 사람은 검도 선수 출신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적성에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지만. 물론 내려치기를 잘해야만 합격하는 것도 아니다. 내려치는 힘은 약하지만 영(靈)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서 채택된 사람도 둘이나 있다.

  

 그에 비해 나타와 세하는 평범한 재능을 가진 편에 속했지만, 강인한 체력으로 실적을 착실히 세워나가는 쪽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며칠, 몇 달 동안 굴리면 처절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지금 세하가 나타에게 하는 말은 신세 한탄에 가까웠다. 봐라, 지금도 한탄을 중얼중얼하고 있었다.

 

 “이 도시는 참 좋아. 살기 편하고, 조용하지.”

 “...”

 “...그런데 조용하다고 꼭 좋은 건 아니더라.”

 

 도시가 가장 고요한 시각에, 이들은 가장 바쁘게 움직인다. 조용하다는 것은 다른 쪽에서 시끄럽다는 의미. 가장 햇살이 따사로울 때에도, 어느 부분은 그늘이 가장 짙게 드리운다.

 

 이걸 나타는 이 일을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대화를 좀 나누다보니 안 그칠 것만 같았던 비도 마침내 그쳤다. 구름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나타가 세하를 재촉했다.

 

 “야, 비 그쳤다.”

 “...”

 “일하러 가야지.”

 “...그래야지.”

 

 세하는 주춤 일어섰다. 피로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아까보다는 눈빛이 살짝 또렷해진 거 같았다. 이건 세하가 그래도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 일을 시작하게 되면 필수적으로 정신력이 강해진다. 세하는 물론 나타도 이 일을 시작하면서 정신력이 많이 강해졌다.

 

 C와 F는 서로 반대 방향이었기에 나타와 세하는 처마 밑에서 금방 헤어졌다. 몇 달 뒤의 일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기는 할 터라, 딱히 서운하지는 않았다. 나타는 괜히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을 쓸어내렸다. 검을 만질 때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사명감이 자신을 옭아매는 거 같았다.

  

 오늘도 도시는 조용하고 평화롭다. 언제나처럼.

2024-10-24 23:28:07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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