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23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8 2

 중간고사 2주 전, 평소처럼 아침에 책상 위에 앉아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데이비드 국장님은 높은 직책의 사람이다. 클로저들에게 관심이 많으신 직업일 수밖에 없다. 유리가 훈련 중에 멍 때렸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아니, 그러지 않는 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지금 유리는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으니까. 한 소녀가 묘비 두 개 앞에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홀로 울고 있었던 꿈, 지난 밤에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 헌신했던 꿈. 이 두 가지를 결합해보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얘들아. 안녕!"


 평소처럼 유리는 밝은 얼굴로 등교한다. 친구들과 사교성이 좋아서 쉽게 친해지기도 했으니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은 건 여전했다. 별로 문제가 없을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말을 한 번 걸어봐야 되나? 라고 생각했지만 남자애들에게 둘러싸여서 말을 걸기가 곤란했다.


"세하야. 좋은 아침!"

"어, 응. 좋은 아침."


 아무리 봐도 멍 때릴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국장님이 잘못 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넓은 시야로 봐야 된다. 그녀의 얼굴 표정 뿐만 아니라 전신의 움직임 전부를 봐야 된다. 예를 들면 손이나 다리가 떨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약간이지만 왼쪽 팔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게 보였다. 에잇, 별로 좋을 것도 없잖아. 오래 보면 오해받을 수 있으니 관둬야겠다.


"응?"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유리에게도 문자가 도착했다. 차원종이 나타났다는 정보였다. 유리는 남학생들에게 양해를 부탁한 뒤에 어딘가로 급하게 뛰어간다. 그들은 순순히 유리의 앞길을 비켜주었다. 그녀가 클로저라는 걸 아니까 그러는 거지. 나는 어차피 말을 안해도 학생들이 알아서 비켜주니까 이럴 때는 고맙게 느껴졌다.



*  *  *



 차원종이 시내에 출현하여 사람들이 대피중에 있다. 유리는 건물 옥상 사이로 뛰어가다가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는 차원종들을 보았다. 스캐빈저 계열의 차원종이었지만 그보다 더 강해보이는 흰색 피부를 가진 녀석들이었다. 일반 스캐빈저보다 전투력이 더 높다고 알려진 홉 고블린들이었다. 그리고 녀석을 지휘하는 차원종이 있었다. 붉은 피부를 가진 스캐빈저가 클로저인 그녀를 발견하고 검지로 가리켰다.


"어디, 한 번 해볼까?"


 권총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홉 고블린들은 일반 스캐빈저와 마찬가지로 포위 공격을 하면서 덤벼들었지만 총알에 대부분 관통당하면서 쓰러지고 있었다. 조준해서 사격하는 게 아닌 그저 난사형으로 하는 거라 거의 빗맞을 일이 없었다.


슈가악-


 원거리 사격만 하면 그녀가 근접전에서는 약한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근접했을 쯤에 나머지 한 손으로 허리춤에 꽂혀진 검을 빼들어서 한 손으로 빠르게 다방향으로 휘둘렀다. 선봉에 섰던 홉 고블린들이 전부 두 동강이 난 채로 죽어간다. 일반 스캐빈저보다 조금 파워가 강할 뿐, 그녀가 쓰러뜨리지 못한 수준은 아니었다.


타앙!


 나머지 홉 고블린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은 뒤, 지휘관으로 보이는 붉은색 스캐빈저를 보았다. 녀석은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혹시 지휘만 할 줄 아는 게 아닌가 그녀는 생각했지만 위상력의 기운을 느끼자 다시 자세를 잡았다.


"크루라아악!"


 녀석의 몸에 불꽃이 감싸고 있었다. 걸어다니는 불덩어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태연하게 세 걸음 정도 걸어가다가 상체를 앞으로 구부리더니 박치기를 할 기세로 달려든다.


"우왓! 위험해라!"


 불덩어리가 메테오처럼 빠르게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지나간 자리에 지면이 9cm 정도로 파여진 채로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유리를 지나친 녀석은 두 발을 이용해서 브레이크를 밟음으로서 멈춘 뒤에 다시 한 번 돌진하자 이번에도 유리는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근접과 원거리 전투를 할 수 있었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한손검으로 쓰는 날은 날이 얇기 때문에 내구력이 낮을 수밖에 없어서 녀석의 공격을 방어해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도시가 불바다가 될 거 같았기에 빨리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후우, 좋아."


 유리는 총을 허리춤에 집어넣었고, 검까지 칼집에 넣으면서 눈을 감으며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발도 자세를 취한다. 붉은 피부를 가진 스캐빈저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하면서 '뭐하는 거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뭘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 부딪쳐보면 알 거라고 생각했기에 녀석은 방금 전처럼 불을 일으키며 돌진했다.


서겅-


 뜨거운 기운이 가깝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그녀는 곧바로 검을 빼들어 올렸다가 수직으로 바로 내리그었다. 불덩이가 둘로 쪼개지면서 그녀의 얼굴을 통과한 채로 뒤로 지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나와버린 기습공격, 발도술을 모르던 스캐빈저였기에 당한 것이지만 만약 이것을 알고 있었다면 좀 더 신중하게 공격했을 것이었다.


"후우."


 검을 칼집에 천천히 집어넣는다. 검술 수련을 많이 했는지 흐트러짐이 없이 일직선으로 정확하게 들어가면서 찰칵- 소리를 냈다. 붉은 스캐빈저는 그대로 불에 타버린 몸체로 둘로 갈라진 채 계속해서 불길을 번지게 하고 있었고,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정기 보고를 한다.



*  *  *



 유리와 다른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차원종들을 상대한다. 이번에 나타난 녀석들은 홉 고블린이었다. 역시나 실전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았는지 훈련 때처럼 잘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실전 경험이 별로 없으니까 그러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 위상력의 수준이 강하다고 해서 잘 싸우는 것도 아니었다. 위상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거다. 게임에서는 스킬이 정해진 채로 나오지만 여기서는 스킬을 내가 만들어서 사용해야 되는 법이었으니까.


"하앗!"


 건 블레이드로 두 마리 정도 벤 다음에 곧바로 분리 버튼을 눌러서 톤파형태로 바꾸었다. 두 손으로 건 블레이드로 휘두르는 것보다는 톤파로 싸우는 게 더 효율적일 거 같아서다. 실전이 서투르고, 여러 차원종에게 둘러싸였다면 당연히 톤파로 싸워야 되니까.


 왼팔을 들어서 한 녀석의 검을 방어한 동시에 오른팔을 움직여서 톤파로 녀석을 찌른 뒤에 푸른 불꽃을 주입시켰다. 내 위상력이 무서운 이유가 바로 이 푸른 불꽃 때문이다. 차원종들에게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줄 수 있는 화염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톤파는 가볍고, 돌리는 게 가능하다. 무엇보다 내가 맘에 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후방공격이다.


"꾸엑!"


 등 뒤에서 공격하려고 했던 홉 고블린 녀석에게 오른팔을 뒤로 빼서 톤파의 날로 찔렀다. 톤파는 한쪽에만 기울어져 있기에 방어형으로 할 때는 날 부분이 손잡이와 평행을 이루게 설정해야 되고, 공격형으로 갈 때는 날의 끝 부분이 손잡이의 윗부분에 존재해야 되는 편이었다. 후방 공격할 때는 방어형 자세로 맞추어서 ** 않고 찌르면 되는 일이었다.


 톤파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손잡이로 돌리는 연습을 많이 해야 된다. 그게 가장 기본이었다. 무슨 버튼을 눌러서 되는 게 아니라 손잡이를 잡은 채 그대로 회전시켜서 맞춰야 되는 원리였다.


 녀석들이 한꺼번에 점프하면서 달려든다. 자세를 잠시 낮춘 뒤에 톤파에 푸른 불꽃을 주입시킨 채로 톤파의 날을 수평으로 놓은 상태에서 그대로 제자리 점프를 한 다음에 360도로 몸을 회전했다. 그러자 톤파의 날에서 푸른색 파장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면서 녀석들을 날려버렸다.


 더 가까이 왔으면 푸른 불꽃에 휩싸였겠지만 그렇게까지 위험한 행위는 하고 싶지는 않았다. 홉 고블린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자, 톤파 손잡이 아랫부분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톤파형태로 되었던 날들이 다시 건 블레이드의 날로 천천히 조립되듯이 돌아왔고, 그대로 검을 붙여서 하나의 건 블레이드로 원상복귀시켰다. 남은 건 3마리, 붉은 스캐빈저가 지휘관이었던 모양이었다. 녀석이 검지로 나를 가리키자 두 마리의 전사들이 날아왔지만 건 블레이드로 썰어버렸다.


 나머지 한 마리, 녀석의 몸이 붉게 물들었다. 이건 뭐, 마치, 마그마 골렘이 축소된 게임 몬스터 수준으로 보인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는다. 녀석이 상체를 구부린다. 학교에서 배운 '크라우칭 스타트' 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다리 자세가 틀렸다. 아무튼 저런 걸 보면 딱봐도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다.


"불에는 불!"


 투쾅!


 위상력을 폭발시켜서 각성한다. 녀석은 붉은 불길로 몸을 뒤덮었고, 나는 푸른 불길로 몸을 뒤덮었다. 녀석이 어떻게 공격해올 건지는 예상이 된다. 두 눈을 반쯤 감은 채로 집중하면서 녀석이 올 때만을 기다린다.


"꾸에엑!"


 녀석이 돌진한다. 게임에서 보는 기본 마법 '파이어볼'을 보는 거 같다. 녀석이 빠르게 날아오지만 나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달려들어서 왼 손으로 녀석의 몸을 잡아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꾸레에에엑!"


 녀석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발을 바둥거린 채로 괴상한 비명을 낸다. 아무래도 놀란 모양이었다. 붉은색 불덩어리가 푸른색 불길에 조금 밀린 채로 위로 들어올려지는 느낌이었으니까. 손과 발을 바둥바둥거린다. 올림픽에서 트로피를 드는 기분으로 머리 위로 최대한 들어올린 뒤에 나머지 한 손으로 잡은 건 블레이드로 녀석의 목을 조준했다.


펑!


 조준한 즉시 발포하자 녀석의 몸은 푸른색 불길로 뒤덮인 채로 공중으로 치솟아 오른다. 마치 푸른색 불꽃을 점화해서 잠시나마 높게 날아가는 장난감 로켓처럼 보일 수준이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물로켓 체험했을 때를 떠올렸다. 나는 혼자서 만들고, 혼자 즐길 뿐이었지만. 녀석은 포물선을 이루면서 지면에 추락했다. 푸른색 불길에 타버린 채로 서서히 재가 된 것을 확인했고, 휴대폰을 들어서 임무 보고 연락을 했다.


To Be Continued......

2024-10-24 23:23:26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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