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아들 16화
검은코트의사내 2019-06-11 2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이 되어서 옥상으로 왔다. 항상 생각하지만, 우리 학교 남학생들은 그래도 기본적인 매너는 지켜주는 모양이었다. 곤란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가는 짓은 안하니까. 아니, 오히려 그런 짓을 하면, 관리요원님이 학교 측에 항의할 수도 있겠지.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아직 더 쉬어야 될 거 같은데?"
"괜찮아. 상처는 며칠 지나면 나을 거야."
사실은 아프면서 안 아픈 척을 하고 있었다. 전에 팔을 다쳤을 때도 내 앞에서 아픈 티를 내지 않았었지. 겉으로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었으니까.
"어제, 우리 집에 가서 동생들을 챙겨줬다면서?"
"아, 멋대로 집에 들어가서 미안해. 순간, 걱정이 되어서."
"고마워. 내 동생들을 챙겨줘서. 보답으로 내가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어떤 게 좋을까?"
"뭔가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유리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면서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이 애는 스킨쉽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 보는 사람 긴장하게 만든다.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잡더니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이니까 얼굴이 조금 가까워져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만들 정도다. 원래 이런 애였나?
"에이, 그러지 말고 좀 말해봐. 세하 너에게 두 번이나 도움을 받았는데 내가 보답을 해주지 않는 건 맞지 않아. 아, 맞다. 너 클로저가 된다고 했지? 훈련받는 거 내가 도와줄까?"
"응? 원래 도와주는 거 아니야?"
"원래는 아니야. 따로 가르치시는 교관님이 계신데 세하 너는 내가 직접 지도해줄게."
뭐야? 누군가를 지도할 수준이라는 건가? 아직 미성년자 클로저인데 이렇게까지 해도 되려나? 딱히 누가 가르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괜히 신경써주는 거 아니야?
유리가 교관을 맡는다고 해서 가르칠 시간이 남아돌지 않을 것이다. 클로저 요원의 수가 부족한 상황인데 한가하게 훈련 교관이나 할 리가 없지 않는가? 이러한 이유를 그대로 유리에게 전했더니 그녀는 정말로 생각도 못했는지 조금 당황해하는 얼굴 표정으로 두 눈을 감은 채 억지 미소를 보였다. 유리는 다 좋은데 너무 활기가 넘치니 생각하지도 않고 미리 앞서나가는 경향이 있다. 그냥 무조건 자기가 생각하는 건 밀어붙이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아쉽다. 세하와 같이 훈련상대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자세를 원위치 한 뒤에 고개를 숙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쉰다. 많이 아쉬워하는 모양이었다. 도움을 받았으니 보답을 해주고 싶은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할까나? 아, 그렇지.
"유리야. 이슬비라는 애 알지? 클로저 요원."
"응? 혹시 슬비와 만난 거야? 걔 귀엽지? 그치?"
"진정해."
왜 이렇게 들뜬 거야? 마치 아이돌 스타를 자랑하는 사람처럼 보이네. 그녀가 우리 학교로 왔으면 발칵 뒤집혔으려나? 실제로 처음 봤을 떄는 귀여운 이미지였으니까, 너무 꽉막힌 보수적인 성격이 맘에 안들었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녀석 말인데, 친구 없지?"
"어? 응. 어떻게 알았어?"
"어른들처럼 꽉 막힌 녀석들은 친구가 잘 없는 법이야. 거기다가 무뚝뚝해서 잘 웃지도 않는 애가 무슨 친구가 있겠냐?"
"오오, 너 슬비에게 관심있는 거야?"
"아니. 클로저 일을 하게 된 이상, 언젠가는 만나게 될 테니까 어떻게 상대해야 될지 미리 짚고 넘어가야 되니까."
상대를 먼저 알고 짚고 넘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언젠가 마주칠 일이 있을 때 별로 큰 일을 벌이고 싶지 않으니까. 조용히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에이, 재미없는 반응이네. 대부분 슬비 얘기하면 다들 당황하던데."
그림이 딱 그려진다.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가 귀엽게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훨씬 귀여운 사람이 가까운 곳에 있었으니까 금방 면역 될 자신이 있었다. 물론 지금처럼 유리가 가깝게 대시한다면 남자로서 마음이 흔들릴 수도 있겠지만.
"슬비가 좀 딱딱하게 굴어도 이해해줬으면 해. 그 애의 부모님은 나처럼 다 돌아가셨거든. 나는 동생들이 있었지만, 슬비는 혼자였어. 차원종이 나타날 당시에 부모를 눈 앞에서 살해당한 것을 직접 봐서 충격을 많이 받았을 거야. 그 뒤로 클로저에게 구해졌다고 하던데, 그 뒤로는 유니온에서 제공한 오피스텔에서 지내고 있어."
"잘 아는 모양이네?"
"응. 당연하지. 소중한 친구니까."
호오, 그런 얼음여왕같은 이미지를 가진 애와 친구라, 유리 정도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보답은 이걸로 대신한다고 답하자 유리는 고작 이런 걸로 되는 거냐고 물었다. 애초에 보답을 받기 위해서 도와준 일이 하나도 없는데 이 정도면 많이 양보한 거다. 원래 남의 슬픈 과거를 알리지 않는 것도 친구가 할 일이지.
"슬비가 좀 차가워도 알고 보면 좋은 애야. 세하 너도 그 애의 친구가 되어주면 좋을 거 같은데?"
"불가능해. 그 녀석은 보수적이거든."
"에이, 너무 딱 잘라서 말하지 마."
내가 말한 보수적인 건 정치개념이 아니다. 그저 유니온에서 정한 그대로 불만없이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족에서 안 좋은 명령을 내려도 그대로 따를 기세였으니까. 차원종들과 싸워야 된다면 무조건 싸워야 되는 거고, 조금이라도 틀린 행동을 한다면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딩동- 댕동-
점심 시간이 끝나는 종소리다. 나는 그만 일어나겠다고 말했고, 유리도 나와 같이 일어났다. 그녀가 하는 말의 의도는 알았지만 다 들어주기는 어렵고, 최소한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정도로 하면 될 거 같았다. 유니온에 들어왔다고 해서 클로저들과 딱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난 단지, 유리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 * *
방과 후에 유니온 훈련장으로 왔다. 훈련은 가상 현실로 진행된다고 했다. 자리에 들어가서 VR을 키고, Start 버튼 누르면 곧바로 그곳에 전송된다. 설마 만화와 소설로만 나오던 VR 가상현실이 이렇게 이루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것을 끼고 나니 내 눈 앞에는 잠시 하얀 배경이 생겼다가 도시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천천히 재현되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CG장면을 보는 거 같다.
[세하야. 잘 들리니?]
"네. 잘 들려요. 누나."
주변은 완벽히 도시를 재현해냈다. 그리고 내 몸도 들어왔을 때 훈련생 복장 그대로였고, 한 손에는 건 블레이드가 들려져 있었다. 아버지가 만드신 무기가 그대로 재현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보안코드가 2단계나 풀렸으니 충분히 전투를 발휘할 수 있지만 3단계가 해제 되지 않는 게 뭔가 마음에 걸렸다.
[곧 차원종들이 나타날 거야. 준비하렴.]
여기는 디지털 세계, 건물들이 대부분 조그마한 블록들이 하나로 모여서 생성된 것처럼 보였다. 마치 어린 아이들이 잘 가지고 노는 레고 장난감이 흩어졌다가 하나로 뭉쳐지는 것처럼 보였다. 차원종들도 그런 식으로 생성되고 있었다. 조그마한 난쟁이 고블린같이 생긴 차원종이 보였다. 저게 바로 차원종의 종류 중 하나인 스캐빈저, 생긴 건 고블린 같은데 피부색이 연한 보라색이고, 머리도 눈이 없는 상어머리처럼 생겼다.
그리고 한손 검을 들어서 무장하고 있었다. 첫 훈련이니 3마리 정도 생성시킨 모양이다. 어디 그럼, 해볼까?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