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평화 - 1. 첫 만남 (1)

Dadami 2019-06-02 6

  *스포 주의!*


  이 소설은 원작을 기본으로 하는 만큼 아직 게임 스토리를 만나지 못한 분(검열이 이걸ㅠㅠ)들에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클로저스의 스토리 ─ G타워 옥상 이후 ─ 를 아직 만나지 못한 분들은 스포일러가 싫을 경우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



  "아저씨!"

  "그러니까, 아저씨가 아니라 형이래도……."

 

  이른 아침, G 타워 옥상에 있는 구조물 위에 편하게 드러누운 제이 옆에 미스틸테인이 밝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익숙하지만 아쉬운 표정으로 보던 그는 마치 빛이 나는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보는 소년을 보며 상체를 일으켰다.


  "무슨 일이지? 아직 출동 명령은 안 나왔다만."

  "오늘 새로운 요원님이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지."


  소년은 제이의 옆에 걸터앉으며 양다리를 앞뒤로 살살 흔들며 말했다.


  "어떤 사람일까요? 유정이 누나도 모르는 사람일 정도면……."

  "글쎄, 이번엔 나도 잘 모르겠군. 등급도 딱히 나와있지 않을 정도니 신입일 것 같기도 한데."


  아무리 은퇴를 했다가 돌아온 그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차원종이 계속 나타나는 중에서 수많은 요원이 활동을 하는데, 신입이라도 기본적인 프로필은 있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가지, '쿠로' 라는 이름 말고는 아무런 내용도 들어있지 않았다.


  "뭐, 오늘 만나게 될 테니 굳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아, 그렇네요!"


  미소를 지으며 고민을 그만둔 제이의 말에, 소년은 활짝 웃으며 구조물에서 내려와 체조의 마지막 자세를 하듯 양팔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오늘 출동은 언제에요?"

  "유정 씨의 말로는 차원종이 피해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딱히 출동은 없다고 했으니, 편히 쉬고 있어."

  "네─"


  미스틸테인은 대답과 동시에 다시 밑으로 내려갔다. 제이는 그 모습을 보다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짙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이, 그다지 좋은 기운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아무것도 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하지만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제이 씨? 김기태 요원이 명령을 어기고 시가지 부근에 나타났다고 국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애들 데리고 돌아오라고 얘기해주세요. 전투는 되도록 피하시고.]


  유정의 무전에 제이는 몸을 일으켜 알았다는 답을 한 뒤에 밑으로 내려가 애들이 있는 회의실로 갔다.


  "자, 얘들아. 출동 명령이다."

  "잠깐만요, 이것만 잡고요."

  "야, 이세하. 게임 빨리 안 꺼?"


  게임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하는 세하와 그것을 타박하며 제이에게 죄송하다며 대신 사과하는 슬비를 보며, 그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엔 어떤 건가요?"


  미스틸테인의 말에 제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김기태 요원이 시가지 부근에 나타났으니 돌아오라고 말해달라는 거다. 가는 길에 차원종이 있으면 처치해야겠지."

  "어? 김기태 아저씨는 당분간 근신 처분이지 않았나요?"

  "명령 위반이지."


  어리둥절한 유리에게 짧게 답한 그는 장갑을 끼며 진중하게 말했다.


  "만약 저항한다면 절대 싸우지 말고 도주한다, 그게 이번 명령이야. 그러니 절대 싸우지 마라."


  유리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어? 체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보기엔 저래도 A급 요원이야. 싸우면 우리가 지는 게 당연해. 그러니 절대 싸우면 안 돼."

  "네─"

  "으아악! 아직 세이브 못했다고!"


  그리고 게임기를 강제로 빼앗긴 세하의 비명 소리가 실질적인 출동이라는 것은, 검은양 팀에겐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          *          *



  [여긴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여기도 마찬가지다.]


  시가지에 들어와 흩어진 검은양 팀은 생각보다 적은 차원종들을 물리치며 김기태를 수색했지만 생각보다 넓은 이곳에서 사람 찾기란 쉬운 건 아니었다. 계속해서 허탕을 치는 검은양들의 무전에 한숨을 쉬던 유리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뒤, 무기를 꽉 잡고 나아갔다.


  "어?"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김기태가 아니었다.


  "차원종, 은 아닌 것 같지?"


  이런 폐허에서 보일 만한 건 김기태가 아닌 이상 차원종 뿐일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근처에는 그 차원종들의 시체가 널려 있고 그 중간에는 양손에 특이한 무기를 가진 검은 옷의 청년이었다. 불러보려고 한 순간, 자신의 입을 막은 유리는 먼저 근처 콘크리트 뒤에 숨은 뒤 무전으로 모두를 불렀다.


  [유리야, 찾았어?]

  "아니요, 김기태 아저씨를 찾은 건 아닌데…… 다른 사람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당황한 유정이 그의 인상착의를 묻자, 유리는 조심스레 그를 보기 위해 콘크리트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람?"

  "꺄악!"


  그 순간, 바로 앞에 나타난 누군가의 얼굴에 놀란 유리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유리야? 유리야! 무슨 일이니!]


  놀란 유정의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차린 유리는 곧바로 전투 태세를 취하며 뒤로 물러섰다.


  "아, 아저씨는 누구에요? 왜 여기 있죠!"


  무전기를 가져오지 못한 데에다, 본래 표시한 곳보다 멀리 들어가버려 도움 요청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주변의 차원종들이 얼마나 강한 지는 몰라도, 단신으로 수많은 시체를 만든 청년은 분명 강할 것이다. 유리는 최소한 시간을 벌기 위해 물은 질문이었지만, 그는 그에 답하지 않고 무기 하나를 허리춤에 있는 보관 가방에 넣은 뒤 무전기를 잡았다.


  "앗, 무전기!"


  당황한 유리의 외침을 들은 그는 고개를 돌리자, 지금껏 느껴본 적 없던 싸늘한 기운이 소녀를 덮쳤다.


  "읏!"

  "……아."


  후들거리는 다리에 애써 힘을 넣어 전투 태세를 갖춘 소녀를 보던 그는 잠시 생각하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작게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졌던 싸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네가, 유리?"

  "어?"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의 이름. 왜인지 자신을 알고 있는 그의 목소리에 소녀는 순간 몸에 힘을 뺐다가,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누구신가요? 어떻게 제 이름을 알죠?"

  "아, 그러고 보니 말을 안했구나."


  그는 남은 무기를 반대쪽 보관 가방에 넣으며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음, 목소리만으로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유리는 무사합니다. 곧 뵈러 갈게요."

  [자, 잠깐만! 당신 누구…….]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에 유리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싸늘한 분위기는 어디 가고 나긋한 느낌으로 하품을 하며 무전기를 꺼버린 청년.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소녀는 고개를 힘껏 저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대체 누구에요! 제 말에 대답 좀 해주세요!"

  "아, 맞다, 미안. 아직 이런 게 힘들어서."


  그렇게 답한 그는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오늘 부로 함께 하게 된 유니온 요원 '쿠로'. 잘 부탁해."

  "쿠, 쿠로?"


  익숙한 이름에 유리는 어제 유정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아, 아저씨가 쿠로에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어?"

  "알 리가 없잖아요!"


  보내진 프로필엔 사진도 없었다. 그저 '쿠로' 라는 이름이 있을 뿐이었다. 유리의 폰에 저장된 프로필을 보던 쿠로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뒷머리를 긁었다. 그리고 자신의 프로필이 초기에서 전혀 갱신이 되어 있지 않아 있는 것을 사과했다.


  "미안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다시 소개할게."


  그는 한발짝 뒤로 물러선 뒤,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쿠로. 아직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어려운 유니온 요원이야."



  *          *          *



  "되도록이면 말을 해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죄송해요. 중간에 길을 잃어버려서."

  "데이비드 국장님과 연결되어 있던 거 아닌가요?"

  "저 휴대폰 없는데요."

  "그럼 연락은……."

  "길을 잃었을 때 연락을 대신 해주던 분이랑도 떨어졌죠. 지금쯤 자기 구역으로 돌아갔을 것 같은데요."


  유정은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관자놀이를 살짝 눌렀다. 나긋하다못해 나른해보이는 그의 모습은 요원이라기보단 흥미가 없으면 관심마저 주지 않는 연구원 같았다.


  "어째 데자뷰가 보이는 것 같은데."

  "게임하는 와중에도 그건 보였던 거구나."


  세하의 말에 놀란 슬비는 한숨을 쉬며 유리에게 다가갔다.


  "유리야, 괜찮아? 다치진 않았어?"

  "응, 괜찮아! 도리어 아무것도 안해서 몸이 풀리지 않았을 정도?"


  유리는 손바닥을 보이며 살짝 흔들었다. 실제로 그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유리가 한 것이라곤 길안내 하나뿐. 보였던 차원종은 전부 그가 처치했다. 그 중에는 그가 정리한 뒤에야 자신이 눈치챈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러고 보니 김기태 아저씨는?"

  "아, 벌써 왔어. 저항 없이 도리어 같이 차원종을 처리하며 왔으니까."


  슬비에게서 '준비 운동' 이라는 것까지 들은 유리는 조심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 끝엔 데이비드와 대화 아닌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김기태와 유정에게 혼나고 있는 쿠로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누나."

  "응? 왜 그래, 테인아?"

  "저 아저씨는 어떤 사람이에요?"


  미스틸테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쿠로였다. 유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평소와 싸울 때가 엄청 다른 사람?"


  막상 떠올려보니 미스틸테인과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한 유리였다. 미스틸테인 역시 평소에는 이렇게 밝고 명랑한 아이지만, 싸울 때는 상당히 매서운 편에 속했다. 그건 쿠로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정도의 차이가 소년보다 큰 것의 차이일까.


  "에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야기가 끝났는지 유정과 쿠로가 같이 다가왔다.


  "아, 유정 언니. 고생하셨어요."

  "응, 정말 힘든 대화였어, 쿠로 씨와는……."

  "우와, 너무하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상처라곤 조금도 받지 않은 것 같은 나긋한 표정이었다.


  "여하튼 소개할게. 이번에 우리들을 도와주게 된 쿠로 씨야."

  "잘 부탁해─"

  "잘 부탁해요─"


  서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미스틸테인과 쿠로. 그런 둘을 보면서 유정은 입을 열었다.


  "음, 이런 상황에서 죄송하지만, 쿠로 씨는 일단 국장님에게 가야 되니 지금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게요. 자, 쿠로 씨 있다가 출동할 때 다시 와주세요."

  "네."


  대답을 한 뒤 김기태와 대화를 끝냈는지 혼자 있는 데이비드에게 가는 쿠로의 뒷모습을 보며, 유리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왜 그러니?"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니."


  그런 유리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은 유정에게,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

  "네,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야. 아, 조금 있다가 물어볼 게 있으니 따로 와줄래?"

  "네. 알았어요."


  그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왜인지 쿠로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유리였다.



  *          *          *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요, 국장님?"


  유정의 말에 데이비드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이네. 내가 아는 거라곤 그가 차원 전쟁에 참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뿐이네. 심지어 그 이름도 본명이 아니라더군."

  "그 사람은 26살이라고 했어요. 만약 그 말이 맞다면 고작 8살 정도밖에 안되는 때에 전쟁에 참전했다는 말이에요."

  "어쩔 수 없네. 정보가 없는 이상 그의 말을 믿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긴 하지만……."


  유정의 입장에서는 그에게 아이들을 어느 정도 맡겨야 된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걱정이었다. 아무리 요원이라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이상, 완전히 믿을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김기태 같은 요원이 있다는 점과 현재 지부장의 건에 대해서 알고 있기에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서유리 양의 말을 듣지 않았나? 그에겐 아직 여러 의문이 남아있긴 하지만 최소한 적은 아니네. 여기에 올 때 도리어 지켜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정도니까."

  "……알겠어요."

  "하하, 미안하네. 나도 너무 밀어붙인 것도 있으니까."

  "아니에요. 그래도 국장님이 선택한 사람이니 못 믿을 사람은 아닐 테니까요."


  데이비드는 미소를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그보다, 어떤가? 다음에 시간이 되면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거 아시잖아요."

  "하핫, 이런. 이번에도 실패야. 기념적인 열 번째를 넘었으니 될 지도 모른다 생각했는데 말이지."

  "정말이지……."


  그런 실없는 웃음을 보며, 유정도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          *



  "……무슨 일이지? 나하고도 딱히 안면식은 없는 걸로 아는데."

  "뭔가 따갑네요."

  "뭘.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한테 팔짱을 권하진 않을 테니까?"

  "하핫, 그런 실없는 농담 같은 거 꽤 좋아해요."


  구조물 위에 누운 채 답하던 제이의 옆으로 다가온 건 쿠로였다.


  "그런가? 아이들은 재미없다며 아저씨라 부르는데."

  "저하고는 나이차가 별로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젊은이."

  "에이, 허리만 조심하면 될 나이라구요."


  쿠로 역시 실없는 농담을 하며 구조물에 조심스레 앉았다.


  "그래서, 내겐 무슨 일이지? 용건 없이 온 건 아닌 것 같다만."

  "별 건 아니에요. 다 큰 어른끼리 취중진담이라도 해보자는 거죠."


  그 말을 하며 꺼낸 건 흔히 볼 수 있는 소주였다.


  "술인가, 근데 너 마셔도 되는 건가?"

  "이렇게 보여도 성인이라구요? 젊게 봐주면 좋지만요."


  쿡쿡 웃으며 술을 딴 그는 잔에 술을 따른 뒤 제이에게 건넸다.


  "자, 앞으로 잘 부탁 드린다는 의미로 한 잔 받아주세요."

  "그렇다면 고맙게 받도록 하지."


  몸을 일으켜 술을 받은 제이는, 자신의 잔에 술을 따라 그에게 내민 쿠로의 잔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꽤나 마음에 드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을 비웠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괜찮은 걸?"

  "다행이네요."


  미소를 지은 채 답한 쿠로는 약간 남은 술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음, 질문을 바꿔서, 무슨 일 있나?"

  "아, 별 건 아니고, 애들의 시선이 곱진 않아서요."

  "그렇긴 하겠지."


  마냥 좋지 않은 상황과 그런 와중에 나타난 낯선 사람에게 주는 시선은 곱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호의를 보이는 건 미스틸테인 뿐일터.


  "그래도 이해해줬으면 해. 아직 아이들이니까."

  "뭐, 우리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알 건 다 아는 애들이니까요."


  그 말에 제이는 미소를 지었다. 다 큰 어른이라지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어린 시절이 그다지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닌 사람 뿐이니까.


  "아직 대화가 익숙지 않은 저로서는 조금 힘들긴 하네요."

  "그런가? 금방 익숙해질 것 같다만."

  "그런가요?"

  "지금 나랑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실제로 쿠로는 제이와 제대로 대화하고 있다. 처음 만난 것뿐만 아니라 둘이서 대화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도, 무리없이 잘 이어가고 있다.


  "뭐, 그쪽이 잘 이어주는 것도 있겠죠."

  "그쪽, 이라는 호칭은 뭔가 아쉬운데."


  그렇게 답한 쿠로는 다시금 두 잔에 술을 따랐다.


  "뭐, 잘 부탁 드린다는 의미도 담긴 술이니, 한 번 더 건배 할까요?"

  "나야 좋지."


  제이의 답에 쿠로는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 한다고, 쿠로."

  "네, 잘 부탁 드릴게요. 제이 씨."


  두 개의 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구름이 잠시 걷혀 내린 달빛이 둘의 주변을 비췄다.



  ─────



  예정 업로드 시기는 화, 목, 토 입니다. 시간이 남거나 분량이 부족할 때는 일요일에도 업로드할 예정이고, 그때는 토요일에 바로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10-24 23:23:20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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