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knight 2부 6화 교차점(crosspoint Beta)
firsteve 2019-05-01 3
한편, 복도로 나온 슬비는 복도 쪽에서 걸어오는 하피를 보고는 황급히 다가갔다.
“하피 씨. 왜 나오신 거에요….빨리 들어가서 쉬세요.”
“괜찮아요. 이제는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는걸요?”
하피가 애써 웃음을 지으며 다가오지만 결국 비틀거리면서 벽을 짚은 채 멈춰 섰다.
“하피 씨….역시 몸이 덜 회복 되잖아요. 빨리 들어가서 쉬세요.”
“안돼요….내가 쉬다가 트레이너 씨 마저 나타 씨처럼 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려고요….”
하피가 벽을 짚은 채 지나가려 하자, 슬비가 그녀를 돌려세웠다.
“고집 부리지 마요! 지금 몸 상태로는 방해만 될 거라고요! 그러니까 나타 씨나 트레이너 씨의 일은 세하한테 맡기고 쉬라고요!”
그녀의 말에 하피가 중얼거렸다.
이세하 씨가 열심히 찾아줄 이유가 없잖아요….
“…..네?”
“…..세하 씨가 두 사람을 열심히 찾을 이유가 어디 있어요? 협력관계 구축 때문에? 아니면 우연찮게 유니온을 부수는 김에 하는 거에요? 어딜 봐도 세하 씨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이유가 없잖아요! 이세하 씨는 강해요. 혼자서 요원들을 다 날려버리고도 숨 한 번 안 가빠지는 사람이라고요! 게다가 저희 옆에 있던 그 사람도 이세하 씨처럼 온몸에서 경고를 보낼 정도였다고요! 협력관계 같은 것 없이도 그냥 유니온을 멸망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고요! 그런 사람이 도와줄 리가 없어요. 그러니까….가서 뭐든지 하겠다고 빌 거에요. 제 몸을 원한다고 하면 제 몸을 내어줄 거고,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면 기꺼이 희생할 거에요. 그렇게 해서라도….되찾고 싶단 말이에요….!”
처음 보는 그녀의 격정적인 감정이었다.
적어도 자신의 앞에서는 언제나 여유롭고 적당하게 넘기던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가면 따윈 없는 진짜 그녀의 감정이었다.
“…..근거 같은 건 없어요. 저도 근거를 대서 이야기 하라고 하면 못해요……하지만…..세하는 지금도 여전히 이세하였어요. 조금 날카로워지고 좀 더 냉정해지긴 했지만….여전히 바보 멍청이에다가 여전히 다정하고 자기가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해요. 그래서 저는….세하를 믿을 거에요. 7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저희를 찾으러, 유니온의 거짓을 부수려고 싸워온 세하에요. 세하를 못 믿으시겠다면 저를 믿어주세요. 제가 설득할게요. 그러니까 하피 씨….돌아가서 쉬어요, 네?”
슬비의 말에 하피가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신도 불안하면서도 남을 안심시키려고 하는 착한 아이.
아카데미를 뛰쳐나온 불량 선배를 포기하지 않고 도와준 모범생 후배.
그리고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저 숨어 지낸 자신들과 달리, 유니온과 맞서온 자신보다 어른 같은 동생인 슬비의 모습에 하피가 그녀를 꼭 껴안았다.
“슬비 씨…..트레이너 씨 어떻게 해요…..나 어떻게 해요…..무서워요…..내 옆에서….다들 사라져가요…..”
울먹거리며 말하는 하피의 모습에 슬비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이….있었던 거죠? 램스키퍼가 추락할 때….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슬비의 말에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7년 동안 저희가 숨어 지낸 건 아까 들어서 알죠? 그 후에 생필품이 떨어질 때마다 마을에서 조달을 했었는데…..어디선가 정보가 새었나 봐요….램스키퍼에 도달할 때쯤 공중에서 전함을 향해서 공격이 오더라고요.”
하피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천벌이 내리듯 화염과 빛들이 전함을 향해 쏟아졌다.
급하게 램스키퍼의 시동을 걸고 출발했을 때는 이미 하늘에는 전함뿐만 아니라 공중을 날 수 있는 위상능력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방어막은 견고했지만 그것이 완벽하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위상력의 폭격을 막기에 방어막은 적합했지만 램스키퍼에 탑승하는 요원들에게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너 씨. 전함 안에 요원들이 침투했어요. 저희가 치우고 올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너희는 이대로 램스키퍼를 떠나라. 이건 명령이다.
산 같은 남자는 언제나처럼 담담하게 그들에게 지시를 했다
트레이너. 어쩔 생각이냐? 인원 수가 너무 많다.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숫자를 전부 감당한다는 건 불가능해.
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저들을 잡고 있는 동안, 너희만은 탈출할 수 있겠지.
순간 잘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잊을 수 없는 환청인 그녀의 웃음소리처럼 착각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싫어요…! 트레이너 님과 같이 싸우겠어요! 나타 오빠처럼 트레이너 님까지 잃고 싶진 않아요!
자기 주장이 약한 레비아가 끝까지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런 그녀를 하피는 꼭 붙잡은 채 달렸다.
그런 그녀에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환청이었을까, 아니면 진짜였을까.
지금도 그 때도 그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에 들렸다면 그것은 분명….
고맙다…..하피.
그의 입에 좀처럼 나오기 힘든 [감사]의 표현이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 생각에 머리에 들자 정말로 뒤도 안 돌아보고 레비아를 데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그의 옆에서 죽고 싶어질 것 같아서.
같이 가자고 말해버릴 것 같아서.
그녀는 자신의 품에서 울면서 놓아달라고 외치는 레비아의 말을 무시한 채 달렸다.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건조한 공기 탓인지 달리면서 계속해서 눈물이 흘렀다.
모두 내 장비에 타라. 신속히 이곳을 이탈한다.
티나의 인간형 공중전 장비의 커다란 손에 모두가 올라타자, 티나가 재빠르게 램스키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그에게서 통신이 들려왔다.
늑대개. 듣고 있나. 아니…..듣고 있지 않는 편이 좋겠군. 이건 그저 죽기 전의 변덕 같은 거니까. 너희에게 무게를 지우는 것은 싫군.
그래도…..듣고 있다면 끝까지 들어주길 바란다. 그동안 늙은 늑대의 지휘에 따라줘서 고마웠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던 내게 살아갈 이유를 주어서 고마웠다. 나에게 다시 한 번 동료라는 것을, 가족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서 고마웠다. 우선, 티나. 너를 다시 만난 것은 나에게는 큰 행복이었다. 네 안에 있는 그 아이에게도 부디 안부를 전해주거라. 바이올렛. 너는 참 친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그렇기에 꺾여버린 나와 달리 정의를 외치는 너에게 더욱 모질게 군 것도 있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겠다. 그리고 너를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것으로 너의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도록 하겠다. 레비아. 첫만남부터 좋은 만남이 아니었고, 늑대개 안에서는 네게 가장 모질게 굴었다. 차원종에 대한 분노로 눈이 가려있는 내게 너는 언제나 거슬리는 존재였다. 차원종이면서 인간을 위해 싸우겠다는 네가 권력의 개가 된 채 살아가는 내 모습과 너무나도 반대되서 더 모질게 군 것도 있었다. 그러나 함께 지내면서, 너와 지냈던 시간들은 너를 내 딸로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내게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그 동안 모질게 굴어서 미안했다. 부디 살아남아다오. 나의 소중한 아이야. 마지막으로….하피. 너에게는 가장 미안하게 되었다. 늑대의 우두머리는 자유를 원하는 네게 가장 안 어울리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난 너를 가장 신뢰하고 있었다. 다른 녀석들보다 더 나와 가까워지려고 해줘서 내가 이렇게 올 수 있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잊어버린 내게 이것저것 알려줘서 고마웠다. 그리고….미안하다. 너에게 가장 사고뭉치인 녀석의 일마저 맡기게 되었다. 부디….그 녀석을 찾아서….끝까지 살아남아다오. 마지막으로 늑대개 전원에게 명령한다. 늙은 늑대의 마지막 명령이다. 살아남아라. 살아남아서 우리를 사냥하려고 든 사냥꾼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어라. 우리의 이빨은 사냥꾼들의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우리를 건든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들에게 새겨줘라. 그리고…..하아….죽을 때가 되니 감상적이 되는군. 늑대개 팀…..너희와 함께해서……행복했다…..통신 종료.
“……멋있죠? 그 아수라장 속에서……이런 말이나 하고 말이에요……하하….이렇게 녹음도 제대로 해놓았으니까 찾으면 놀려야겠어요…”
가볍게 느껴지는 말투와 달리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한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피….씨…..”
“슬비 씨…..트레이너 씨 좀 꼭 찾아주세요…..저한테…이런 거….안 어울리….잖아요….늑대의 우두머리는…트레이너 씨……잖아요….그러니까….제발….트레이너 씨….구해주세요…..”
하염없이 울기 시작하는 하피의 모습에 슬비가 진정하라며 그녀를 다독였다.
“트레이너 씨 그런 말 안 한단 말이에요……한 번도….그런 소리 한 적 없는데….마치 죽기 전에 남기는 유언 같아서….그래서….다른 거는 놓고 와도…..이 녹음만은 꼭 쥐고 왔어요…..이것마저 없으면…..저 진짜 무너질 것 같아요…….슬비 씨…..절 미끼로 써도 된다고 세하 씨한테 이야기 해줘요….작전으로 미인계가 필요하면 저를 써도 상관없어요. 허니 트랩으로 암살하라고 해도 되고, 작전이 끝날 때까지 남자들을 유혹해서 공백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기꺼이 제 몸을 바칠게요…..그러니까…그러니까……트레이너 씨만 찾아주세요……뭐든 할게요….뭐든지…..할 테니까….제발…..트레이너 씨만 돌려주세요….”
감정이 둑이 무너진 듯 하피가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도 하나에게 저런 말을 한 적이 있었으니까.
절박하고, 하루에도 수백번도 더 떠오르는 그 기분을 그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를 슬비는 꼭 껴안았다.
하나가 자신을 안고 위로해줬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의 차례라는 듯 그녀를 꼭 껴안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요….이제 그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돼요…..정말….정말로…..고생 많았어요…..선배…..”
“미안….해요…..이런…..못난 모습 보여서….미안해요…..”
“선배가 이러면 후배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잖아요. 괜찮아요. 선배.”
“하하…..선배라고……해줬네요….예전에는…..그렇게 해달라고 해도….안 불러주더니….”
그럼에도 그녀의 모습이 위로가 되었는지 하피가 눈물을 닦아내며 슬비에게서 몸을 떼었다.
“고마워요 슬비 씨….덕분에….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는 된 것 같네요….”
“다행이에요…..늑대개 팀은 어때요?”
“레비아 씨는 울고 잠들고를 반복하고 있어요….나타 씨랑 트레이너 씨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말로는 표현이 안될 만큼 힘들겠죠. 티나 씨는 냉정하게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을 구할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다만…문제라면….바이올렛 씨일까요?”
“바이올렛 씨한테…..무슨 문제라도 생겼나요?”
“…..아니에요. 그저 예민해진 것뿐이에요. 사람이 구석에 몰리면 살짝 예민해지잖아요?”
하피가 머릿속에서 고개를 드는 불안한 예상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지만, 슬비는 그와 반대로 그녀의 머릿속에 든 의문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바이올렛 씨가 여기 있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고 있는 건가요? [차원종의 소굴]….이라서?세하가….[차원종]….이라서?”
그녀의 지적이 정확했는지 하피의 미소에 더욱 더 여유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는 슬비가 한숨을 쉬었다.
“저…..슬비 씨…..바이올렛 씨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는 있는 건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해요. 저도 세하 씨를 믿지만….동시에 차원종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거부반응 같은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도 신경 쓰지 않은 자신과 달리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그녀도 레비아를 처음 보았을 때는 마음 속으로는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지 않았던가.
“…..알겠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요. 그래도…..하피 씨…..아니….선배. 세하를 믿어주시면 안될까요? 세하를 못 믿으시겠다면 저를 믿어주시면 안될까요? 그래도…..세하는 아직 [사람]의 감정을 버리지 않았단 말이에요. 제가 도와달라고 했을 때도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고, 나타나 트레이너 씨에 대해서도 벌써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조사하라고 시킨 뒤에, 보고 받고 있었어요. 그러니까…..조금만….조금만 더….마음을 열어주세요….최선을 다할게요. 네?”
슬비의 말에 하피가 그녀를 빤히 보더니 이내 웃음을 지었다.
거짓없이 맑은 눈동자에 그녀 또한 거짓 없는 미소로 회답했다.
“좋아요. 그럼 우리와의 동맹은 슬비 씨가 맡아주는 걸로 하죠. 당신에게 배팅 할게요, 슬비 씨. 대장으로서 우리 팀원들의 목숨과 신뢰를 걸고 배팅한 거니까.....잘 부탁할게요?”
“네! 믿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로….감사해요!”
슬비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하피가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럼 세하 씨와 무슨 대화가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조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방에서 천천히 이야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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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날이 밝자, 맑은 종소리가 그녀들이 잠들어 있는 방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잠이 깬 슬비가 눈을 비비적거리며 방의 문을 열고 나오자, 고운 한복을 입은 궁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일어나셨나요, 이슬비 아가씨? 수면은 어떠셨나요?불편한 곳은 없으셨나요?”
“아,네….아주….잘 잤어요…..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섬기는 것이 저희의 일인걸요. 다른 아가씨들께서는 아직 주무시고 계신가요?식당에 아침식사를 마련할 준비가 다 되어가는 중이라서 슬슬 일어나셔야 할텐데….아니면 조금 더 주무시고 저희가 여기로 아침 식사를 가져다 드릴까요?”
“그….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깨워서 나갈게요. 식당의 위치가 어딘지 알려주시면 저희가 그쪽으로 갈게요.”
“저희가 기다리고 있다가 안내해드려도 상관없는데…..혹시 불편하시다면 위치를 알려드릴게요.”
“불편하지 않아요. 괜찮으시다면 모두를 깨워서 안내를 받고 싶은데…..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폐라니….당치도 않는 말을 하시네요. 저희는 이곳에서 일하는 궁녀들인 걸요. 세하 님의 소중한 분들을 모시는 것 자체가 영광이랍니다.”
모든 것을 무적의 미소로 감쌀 것 같은 궁녀의 모습에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는 슬비가 황급히 나머지 사람들을 깨워서 문 밖을 나섰다.
이윽고 궁녀를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한 그녀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예뻐요….마치….동화 속의 궁궐에 온 것 같아요….”
“우아한 느낌의 궁궐이라니…..세하 씨도 꽤나 센스가 있는 분이었나 보네요.”
“이 궁궐은 세하 님이 하나부터 열까지 디자인 하시고 검수하신 곳입니다. 이 궁궐 하나 만드시겠다고 내부차원에 가셔서 건축 관련 서적과 디자인 관련 서적과 같은 걸 들고 오셔서 공부하시고 만드신 곳입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분명 이세하 님도 기뻐하실 거에요.”
직접 디자인 했다니…..대체…..우리가 모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온 거야, 이세하….
복도를 비롯한 궁궐에 관한 이야기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이 필 무렵, 궁궐에 어울릴 만한 아름다운 문이 나타나자, 문 앞에 서 있던 궁녀들이 고개를 숙이며 목례를 하고는 가볍게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그 안에는 동양과 서양이 조화된 느낌의 거대한 식당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오셨다. 여러분 여기에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하연의 모습에 옆으로 다가가자, 세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어서 와. 피곤할 텐데 아침 일찍 깨워서 미안해. 우리 애들이 훈련 때문에 아침을 좀 일찍 먹어서….”
“괜찮아.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식당이 되게 크네. 과장되게 말하면 행정구역 하나 정도는 들어갈 것 같은데…..”
“그 정도로 크진 않아. 여기 말고도 훈련소 쪽 식당에서 먹는 애들도 있어. 너무 몰리면 아침도 못 먹고 훈련하게 되니까 몇 군데 원하는 곳으로 가라고 나눠놨어.”
세하가 앉아서 이야기하자며 손가락을 딱 튕기자, 궁녀들이 일사불란하게 의자를 빼어 그녀들을 자리에 앉히고는 곧바로 식사들을 가져다 주었다.
“우와…..세….세하 님…..이….이거 저희가 진짜 먹어도 되는 건가요?”
“레비아 씨.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세하 씨가 무언가 독이나 함정을 파놓았을 수도 있어요.”
눈을 빛나며 먹을 기세가 가득한 레비아를 바이올렛이 말리더니, 세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수작을 부려놓았죠? 당연하겠죠. 당신은 [차원종]이니까. 인간을 포기하고 차원종이나 되어버린 당신이니까, 우리가 먹는 요리에 독이나 당신의 말에 복종시키는 걸 해놓았겠죠? 내 말이 틀렸어요?”
“…..먹기 싫으면 드시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알아두세요. 이 요리를 만든 애들은 [인간]이고 자신의 요리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긍지 높은 요리인들 이니까요. 원하신다면 저희 애들을 불러서 먹여볼까요?”
“아니. 괜찮다. 방금 전 성분이 무언가 분석해보았다. 독이 포함되어있지 않군. 그리고 미각이라고 하는 감각이 둔한 나에게도 맛있다 라는 느낌이다. 이건 꽤나 맛있는 음식이라고 판단할 수 있겠군.”
“티나 씨…..정말인가요? 제 것도 먹고 분석해주세요!”
“바이올렛. 조심하는 건 알겠지만, 우리는 지금 식객이다. 불평은 나중에 해라. 이세하. 의심해서 미안하다.”
“괜찮아요. 예상은 했으니까요. 아. 여러분. 분위기 흐려서 죄송해요. 얼른 먹죠. 식겠어요.”
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자, 바이올렛도 마지못해 숟가락을 들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이건…..일품이네요. 세하 씨. 죄송하지만 이거 한 접시 더 먹어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마음껏 드세요.”
“저…저도!”
어느새 긴장감이 조금은 누그러진 식사자리의 분위기에 모두가 행복하게 식사를 끝내자, 세하가 그녀들을 보며 말을 걸었다.
“식사가 맛있게 드셨나요? 입맛에 좀 맞으셨다면 좋았을 텐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런데…..이런 것까지 해주신 거라면….무언가 저희한테 바라는 게 있으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되어버리는데…..무언가……원하시는 게 있나요?”
레비아의 말에 세하가 픽 하고 웃음을 지었다.
“레비아. 네가 사람의 호의에 익숙하지 않다는 건 잘 알아. 물론, 7년 동안 너희 삶 또한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데 일조를 했을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이건 순수한 내 호의야. 숨기는 일 같은 것도 없고. 그저 7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맛있게 먹으라고 조금 주방장을 닦달했지. 맛있게 먹었다면 그걸로 된 거야.”
“그….그렇지만….트레이너 님의 일이나 나타 님의 일에 대해서도 그렇고…..저희를 치료해주신 것도 그렇고….너무 잘 해주시면 무언가를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걸요.”
“부담 가질 필요는 없는데……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대가로 날 편하게 부르는 걸로. 언제까지 세하 님은 조금 어색하니까.”
“저….정말로 그걸로 괜찮으신가요? 다….다른 걸 원하시면 제 힘이 닿는 영역에서는 해드릴 수 있는데.”
“괜찮아. 그거면 충분해.”
“알겠어요, 세하 님….아니지….세하 오빠.”
겨우 레비아를 달래고 화제를 돌린 세하가 늑대개 팀을 바라보았다.
“식사들 다 하셨으면 회의장으로 가시죠. 트레이너 씨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아라한테 아침에 보고 받았으니까요. 하연아. 미안하지만 먼저 가서 브리핑 준비를 해줘.”
“네, 오라버니.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연이 불꽃을 휘날리며 사라지자, 하피가 그에게 매달리듯 다가왔다.
“저…정말인가요? 트레이너 씨가 확실한가요? 위치는요? 그 사람 상태는요?”
“진정하세요, 하피 누나. 우선 회의실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시죠. 여기서 할 정도로 짧은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세하가 그녀들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서자, 하연이 가볍게 목례를 하고 모두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지금부터 트레이너 씨 구출에 대한 브리핑을 하겠습니다. 우선 회의실 중앙을 주목해주십시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육지와 연결된 어느 섬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이곳은 캐나다 지부 온타리오 주 미시소거 실험실입니다. 확인결과, 유니온 데이터 베이스에서조차 삭제되어있던 기밀시설로 추정됩니다. 이곳에서 트레이너 씨의 위상력이 감지되었고, 그 경비 상태로 보았을 때, 트레이너 씨가 없더라도 장소를 추정할 수 있는 열쇠가 있을 거라고 추측되는 장소입니다.”
“실험실….이라고요? 섬 하나가…..실험실?”
“네. 외관상으로는 대학교로 꾸며져 있습니다만, 아라 아가씨의 감지능력으로 확인해본 결과 이렇게 되더군요.”
하연이 버튼을 누르자 섬에 있던 대학교 캠퍼스 밑으로 뻗어져 있는 거대한 개미굴 같은 미로에 모두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행히도 아라 아가씨의 사역마가 유니온 측에 걸리지 않은 덕에 트레이너 씨의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망설일 것이 없잖아요. 가죠, 티나 씨.”
“잠깐 기다려라, 바이올렛. 하연이라고 했나? 너의 말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설명해주겠나?”
“일단 접근성의 문제입니다. 이건 아라 아가씨가 보내준 그 주변 상황입니다.”
하연이 다시금 홀로그램을 조작하자, 섬을 포함한 그 주변에 무수한 파란 점들이 표시되기 시작했다.
“이 점들은 전부 위상력 억제기입니다. 오라버니의 권능이라면 왠만한 억제기 정도는 돌파하겠지만 이건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아요. 효과영역을 넘어서는 부분은 바다입니다만, 그 부분은 위상력억제기를 실은 군함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 드리자면…..오라버니. 오라버니의 작전은 채용불가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렇겠지. 만약 내가 무시하고 전이한다면 제대로 도착할 확률은?”
“0.1231퍼센트입니다. 그 외의 확률은 잘하면 전이장소가 달라지는 정도지만 안 좋게 간다면 육체의 분리까지 예상됩니다.”
“권능으로 그 정도라니…..작용범위 패턴은?”
“순차적인 강화였습니다. 실험실이 있는 섬은 권능으로도 전이불가. 유일한 전이가능 지역은 섬과 육지를 이어주는 대교 앞 정도입니다. 위상력 사용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지만 공간좌표의 교란에 특화되어 있는 상태라….”
“그 정도 정보면 됐어요. 요약하자면, 대교 앞에까지는 이동이 가능하다는 거죠? 그거면 됐어요. 지도와 위치를 알려주세요. 저희가 가죠.”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대교의 진입을 막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특경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특경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피하고 싶으시잖아요?”
“그게 저희랑 무슨 상관이죠? 그곳을 지킨다는 건 저희 적이라는 거에요. 베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말해두죠. 저희한테 지시하지 마세요. 차원종 따위에게 지시 받을 이유는 없어요.”
“언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같이 협력해도 구할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잖아요!”
슬비가 회의실 책상을 내려치며 말하자, 바이올렛이 짜증난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좋아요. 누나. 그럼 혼자 내려가서 죽으세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돌격해서 죽어버려요.”
싸늘하게 내뱉어지는 말에 바이올렛이 세하의 멱살을 잡았다.
“이봐요, 차원종 씨. 말 가려서 해요. 인간을 버리고 차원종이 되었으면 다야? 죽어버리라고? 역시 너 같은 걸 잠시라도 믿은 내가 잘못이었어.”
그 모습에 세하가 한숨을 쉬며 그녀의 팔을 밀어냈다.
“적당히 하시죠. 아무것도 모르면서.”
“뭐라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네가 뭘 아는데? 차원종 주제에 뭘 아는데! 인간을 그만둔 네가 뭘 안다고 잘난 척인데!”
그녀의 말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거구의 차원종이 못 참겠다는 듯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용께서 너희들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셔서 참고 있었지만 더 이상의 무례는 용납할 수 없다, 인간.”
“너는…..안드라스….?하…..! 결국 자기 손은 안 더럽히겠다 이건가요? 하긴….애초에 차원종을 지휘하고 선을 넘었는데 이제와서 내가 무슨 소리하는 거람….”
“용이시여. 이 무례한 자를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부디 저에게 이 자를 처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안드라스의 몸에서 압도적인 위상력이 풍겨져 나오자, 하연이 다급하게 그를 말렸다.
“안드라스 님 진정하세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심합니다!”
“참모장. 미안하지만 진정 할 수 없을 것 같다. 용에 대한 무례함은 내가 용께 벌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처벌하겠다.”
그러한 그의 모습에, 세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라. 안드라스. 누나에게 손 대지 마.
“하지만 용이시여…..이 자는…..!”
“두 번은 말하지 않는다. 그만해라. 안드라스. 아니면…..오랜만에…..처음 네가 내 말을 거역했을 때의 추억을 되살리게 해줄까?”
순간 회의실의 온도가 한순간에 떨어진 듯 오싹한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명을….받듭니다.”
안드라스가 조용히 물러나자, 회의실을 휘감던 차가운 공기가 순식간에 언제 그랬냐 듯 사라졌다.
“…..작전 브리핑 계속해줘, 하연아.”
“이봐요, 차원종 씨. 나는 아직 말 안 끝났…..”
바이올렛이 세하에게 덤벼들려고 하다가 자신의 목 앞에 들이밀어진 검에 움찔했다.
“……가서 죽기 싫으면 들어요. 당신 하나 때문에 이 회의가 얼마나 지체되고 있는지 굳이 입으로 설명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요? 이 협력관계는 트레이너 씨와 나타를 되찾기 위한 협력관계입니다. 저는 한 번 배에 올라탄 이상 일은 확실히 처리합니다. 반면 당신은 뭔가요? 그저 저에 대한 불만으로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고 있으면서 화는 저한테 내고 있군요. 마지막 경고입니다. 브리핑을 들으세요.”
그의 말에 바이올렛이 짜증난다는 듯이 자리에 착석하자, 하연이 한숨을 쉬며 이어갔다.
“우선 트레이너 씨에 대한 장소는 파악이 되었으니 실험실로 가는 길에서 둘로 나누어가려고 합니다. 저와 슬비 님, 오라버니와 엘리가 실험자료 및 다른 자료들을 자료실에서 찾는 쪽, 늑대개 여러분은 트레이너 씨를 찾는 쪽으로 나눌 생각입니다. 돌입 방법은 조금 무식한 방법이지만 다리를 정면돌파 하는 것입니다.”
“자….잠깐만요, 하연 님. 정면돌파를 하게 되면 오히려 더 위험하지 않나요? 차라리 상공에서 들어간다던가 그런 방법은 없나요?”
“그 방법도 고민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주변을 순회중인 전함에 설치된 미사일이 위상반전탄입니다. 공중에서 아무리 막아낸다고 해도 주변 공간조차 비틀리는 그 공격을 피하면서 내려가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군요. 정면 돌파라면 차를 개조해서 그대로 밀어붙일 수도 있고 말이죠. 어찌 되었든 안에만 들어가면 되니까요.”
“그럼 그 안건을 채택하지. 차량의 수배는 완료되었나?”
“네. 대략 앞으로 8시간 뒤, 작업이 완료됩니다. 차량에 탑승하시면 슬비 님과 레비아 님은 보호막을 만들어주세요. 티나 님은 뒷문을 열어드릴 테니 혹시나 모를 공중에서 오는 공격을 요격해주세요. 오라버니에게는 차량의 강화를 맡기고 싶습니다. 남은 건 운전할 사람인데……”
“그건 제가 하겠습니다. 어떠한 차량이든 아가씨와 여러분을 위해 완벽하게 해내어 보이겠습니다.”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그 전까지 시간이 있으니 개발부 쪽에 가셔서 무기를 손질 받으시는 게 어떠신가요? 물론 차원종이 무기를 만진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분도 계시겠지만….”
“상관없다. 전력을 보강하고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니까. 안 그런가, 하피? 아니….대장?”
“대장이라고 불리니까 어색하네요…..하지만 티나 씨의 말도 맞아요. 트레이너 씨를, 나타 씨를 구하는데 한 치의 실수도 한 치의 부족함도 없어야 해요. 절대로….두 번 다시……내 앞에서 내 소중한 사람들을 잃을 수는 없어요.”
하피가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며 말하자, 세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소망. 확실하게 이루어드리죠. 그 마음이 있는 한, 기사단은 여러분을 전력으로 지원할 겁니다. 하연아. 개발부에 안내해드려. 헤카테한테 확실하게 하라고 전해두고.”
“아하하….확실히 헤카테 님은 그렇죠…..전해드릴게요. 그리고 서둘러 달라는 말도 같이 전해면 되겠죠?”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묻지 마. 얼른 안내해주고 와. 그리고, 레비아. 잠깐만 이리로 와줄래?”
하연을 따라나가려던 레비아가 쪼르르 되돌아오자, 세하가 무릎을 굽힌 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을 맞추었다.
“미안해, 레비아. 너희가 이런 일 겪지 않게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야했는데….”
“아니에요. 세하 님……아니….세하 오빠한테 연락을 안 하던 저희 잘못도 있는 걸요…..그런데…..왜 저를 부르신 건가요?”
“아…..이거 주려고. 통신기 망가졌잖아. 가져가서 써. 잘못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세하가 통신기를 건네어주자 레비아가 고개를 저었다.
“이….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오빠…..저희한테 잘해주시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주실 정도만으로도 감사할 뿐인 걸요. 마음만 받을게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세하가 통신기를 손에 꼭 쥐여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불안해서 그래…..또다시….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어버릴까 두려워서 그래….그러니까….쓰지 않더라도 가지고 있어줘.
“세하 오빠……감사합니다…..정말로 감사합니다…..”
레비아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재빨리 늑대개 팀을 따라 뛰어가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슬비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역시 성격 어디 안 가네. 늑대개한테도 잘해주고.”
“나한테 남은 사람들이니까….내가….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게 날 지탱해준 사람들이니까….게다가 레비아는 이제 여동생 같은 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래서…..무서워…..또 다시 잃어버릴까봐…..
순간적으로 나온 세하의 본심에 슬비가 그를 품에 꼭 안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세하야….같이 가자….내가….함께 해줄게….”
“미안해….약한 소리 해버렸네….잊어주라….”
“괜찮아. 이런 모습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라서 좋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네가 상태가 안 좋으면 나도 너희 기사단에 들어가지, 뭐….돌아갈 곳도 없으니까.”
“…..넌 돌아가도 돼. 나처럼…..너도 밑으로 떨어질 필요는 없어. 너는…..나처럼 욕 먹을 필요 없어. 모든 나쁜 건 내가 가져갈게.”
그의 말에 슬비가 그를 더 세게 껴안으며 그를 쓰다듬었다.
“그런 말 하지마……나는……너와 함께 하고 싶어. 돌아가도 테인이가 날 죽이려고 할 거고, 유리랑도 다시 만나지 못해. 내게는 네가 있는 이곳이 돌아올 곳이야. 그러니까….날 보내려고 하지 마. 나는…..내 곁에 있고 싶어.”
“……내 말은 모든 누명이 벗겨졌을 때야. 그 때는…..너도 돌아가야지. 그 때는…..”
“…..됐어…..이 이야기는 그만하자….일단…..트레이너 씨부터 생각하자.”
“슬비야…..”
슬비가 돌아서서 가려다가 세하를 돌아보고는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고집 센 것처럼 나도 고집 세. 그러니까…..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야. 난 네가 뭐라고 해도 네 옆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스스로를 외롭게 하지 말아줘.”
방문을 닫고 애써 감정을 다스리며 복도를 걸어가던 슬비가 어느 순간 멈춰 섰다.
가슴이 아팠다.
7년 전에 같이 떠났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저렇게 마음 속이 썩어버릴 때까지 자신이 도와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지금도 그에게 자신은 그저 보호 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죄어왔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가슴이 아파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리에 힘을 넣고 다시금 복도를 걷기로 했다.
자신보다 더 힘든 자신의 친구도 걸어가고 있으니까.
그가 짊어진 짐을 내려놓게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짐을 나누어 들 수는 있으니까.
절대로 홀로 두지 않을 거야. 두 번 다시……네게 그런 짐을 짊어지게 놔두지 않겠어.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의 그림자 뒤로 벚꽃들이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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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firsteve입니다.
어....일본의 휴일이라서 좀 써봤습니다?
슬슬 분위기가 어두워지려고 하는데 과연 이 뒤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후훗....
지옥행 완행 열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음에 또 시간 나는대로 올려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irsteve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