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하유리] Re : Dead - Rebellion (3)

루이벨라 2019-01-22 5

※ 암광세하 암광(?)유리

※ 지인분 썰 기반

※ 전편Re : Dead - Rebellion (2) 에서 이어짐

※ 호흡이 너무 길어진 관계로 3편으로 나눌 예정(完)

※ Rebellion : 반란(反亂)






 아직 유리가 왕이던 시절 더스트는 세하에게 이렇게 말했다.

 

 구원 따윈 없다정 그렇게 딱하게 여겨진다면 죽일 수밖에 없다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지지금의 서유리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이다.

 

 하지만 세하는 차마 그러지 못했다직전까지도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다그리고 세하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배드 엔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세하의 곧은 의지를 하늘에서 반하기라도 한 것일까유리는 기적적으로 본래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완전히 되돌아간 것은 아니지만 일단 제1위상력에 대한 개입도 옅어졌고검사 결과 일반 위상능력자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했었다.

 

 기적(奇蹟).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에 기적인 것인데그 기적이 너무도 쉽게 일어났다.

 

 지금 자신이 반인반차원종 상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용의 위광이 넘실되는 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그 축에 들어갈까그렇다면 이 운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마음대로 써보실까유리는 쾌활하게 선언했다.

 

 자신 있는 무기를 잡은 유리의 움직임이 아까와는 확연하게 달라졌다그 전이라면 세하의 공격을 피하고 막는 것에 급급했다면이제는 호기롭게 세하에게 먼저 검을 휘둘렀다검을 세하보다 오랫동안 잡아온 숙련자답게 검을 통한 공격은 유리가 훨씬 폭이 더 넓었다세하는 유리의 공격을 절반은 가볍게 받아쳤지만나머지 절반은 꽤나 힘겹게 막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게 세하와 싸움다운 싸움을 하자니 예전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검도를 다시 할 수 없게 되어서 우울해하고 있을 때 세하가 자신이라도 상대해줄 테니 덤벼보라고 했었던 일이 말이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세하는 그 때를 위해 꽤나 열심히 특별 훈련을 했었다그 후로도 가끔씩 연습을 남몰래 하는 세하를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갔던 일도 있었다본인의 말에 의하면 속성으로 배운 거라도 나중에 잘 써먹을 수도 있으니 안 잊어버리려고 하는 것뿐이야.’ 라는 이유였지만 유리는 아무래도 좋았다.

 

 팅-! 두 검이 45번째로 동시에 팅겨져 나갔다.

 

 더스트는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아무 의미 없는 싸움을 계속 보는 것만큼 지루한 건 없었다이제야 다른 쪽도 반격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슬슬 재밌어지려나했는데그냥 의미 없이 검을 맞대기만 할 뿐아무런 소득도 없는 맛보기가 계속 이어졌다.

 

 ‘상대를 가늠해보려고 하는 건 같지 않은데.’

 

 그런 의미의 탐색전이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끝나고도 남았다말했지 않은가벌써 45번째...아니지 다시 시작했으니 46번째가 되겠군.

 

 그래도 꼴에 왕과 왕의 싸움이라서 볼만은 했다숙련자와 오합지졸의 차이는 금방 차이가 난다저렇게 승부가 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서로가 막상막하라는 소리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스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지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세하는 직접 자신이 힘을 주었다고허점이 없을 리가 없잖아그런데이제는 인간에 가까운 저거와 막상막하그 말은 곧 더스트 자신이 커다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았다.

 

 ‘내가 실수라니그럴 리가 없잖아!’

 

 항상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있던 작은 여왕은 치가 떨렸다더스트는 화가 너무도 치민 나머지느긋하게 구경을 하려던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버렸다.

 

 “뭐하는 거야이세하!”

 

 경치 좋은 곳에서 다리까지 꼬고 앉아있던 더스트는급기야 벌떡 일어났다그렇게 크게 지른 소리는 자신의 위치를 타인에게 알려주기에 매우 충분했다.

 

 “네 힘이 고작 그거뿐이야?! 저 인간 계집애 하나에게 쩔쩔 매기나 하고!”

 “...”

 

 순간 세하가 더스트를 살짝 노려보았다더스트는 그 싸늘한 시선에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세하가 감히 자신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곧바로 생각했다.

 

 더스트는 자신이 세하에게 베풀어준 호의를 하나둘씩 나열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싸우면서도 나를 째려볼 재간은 있는 거야?!”

 “...”

 “난 말이야...죽었던 널 되살렸다고넌 허울뿐인 왕이라고지금 군단 녀석들도 사실은 네가 아니라 나를 따르는 거...”

 “그렇다는 말이지그러면 너 하나만 죽이면 다 끝난다는 소리네?”

 “...!!”

 

 더스트는 갑자기 대화에 끼어드는 제3자의 목소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분명 이세하가 쓰러뜨렸을 인물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뒤를 힐끗 보니 서지수가 자신의 머리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더스트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네가 어떻게...!”

 “아가씨그렇게 큰 소리를 질렀는데 위치를 모르는 바보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뭐야그 당당함은?! 방금 전까지도 자신의 아들에게 다 죽어가던 사람이!”

 

 세하의 이야기에 서지수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아마 자신을 지옥으로 인도하려는 사자(使者)의 얼굴은 이러리라.

 

 “그 말백 배 천 배로 되갚아서 돌려주마!”

 “어디 한 번 해봐내가 죽으면 네 아들도 죽어!”

 “네 그런 안일한 협박이 내게 통할 것 같나?!”

 

 악()에 바친 얼굴은 이렇게 무섭다더스트의 앞은 절벽이다그리고 그 절벽 밑에는 세하와 유리가 있었다그렇다고 뒷걸음질을 하면 서지수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을 고를까어느 쪽이든 쉽게 빠져나갈 방법은 안 보이는데.

 

 더스트는 뒤를 돌아보았다마지막까지도 조금 더 재밌는 것을이게 그녀의 삶의 모토였다더스트는 서지수를 도발했다.

 

 “그래네 그 꼴사나운 얼굴을 보니 이제야 조금 재밌어지네!”

 

 조금이게 더스트가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난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고더스트는 짙게 웃었다.

 

 

 

* * *

 

 

 

 위쪽에서 일어나는 소란은 이 둘에게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더스트가 중간에 세는 걸 중계해주지 않아서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아마 힘겨루기만 60번을 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슬슬 무거워지는 검을 다시금 올리며 세하는 생각했다.

 

 ‘왜 안 죽이는 거지?’

 

 세하는 유리의 속사포 같은 공격을 정확히 막아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딱 알맞은 적임자를 찾았다고 좋아하고 있었는데지금 현 사태의 지속은 그 기쁨을 사그리 뭉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세하는 검을 내려놓았다하지만 유리가 더 빨랐다유리가 먼저 검을 내려놓았다그건 더 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는 걸 뜻하므로 서로가 서로의 행동에 더 놀랐다.

 

 유리가 단도직입으로 말했다.

 

 “난 너와 싸우기 싫어.”

 “...”

 “역시...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너랑 싸우기 싫어그리고...”

 “-...죽이기도 싫고?”

 “...!”

 

 처음으로 세하가 말을 꺼냈다공허하게만 보이던 눈동자에 빛이 약간 생긴 거 같기도 했다유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

 “-하지만 이대로라면 결판은 나지 않는다.”

 

 결판지금 그 소리 검을 겨누지 않는 상태에서 하니까 이상하다는 걸 세하는 알까세하는 계속 말을 이었다.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닌가?”

 “?”

 

 세하의 뜻밖의 말에 유리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세하는 의아한 표정이다.

 

 “-이 자리는 항상 그렇지 않았나힘으로 얻은 자리의 유지 및 쟁탈의 열쇠가 되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텐데.”

 

 그건 유리의 뇌리에도 어느 틈에 강하게 각인된 이론이었다.

 

 “힘으로 얻은 건 힘으로 유지되고그 힘이 약해지면 뺏기게 된다...”

 “-너 또한 그렇게 해서 선대(先代)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 게 아닌가?”

 “...”

 

 하지만...

 

 ‘하지만 난 이 자리가 너무 싫다.’

 

 이제는 무지를 방패로 삼아서 나를 지키는 것도 힘들기 시작했어그래서 유리가 나타났을 때는 기쁘기까지 했다그것과 별개로 심장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뛰기도 했다.

 

 그래서 세하는...

 

 “-그래서 나는...”

 “...”

 “나는...네가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

 

 목소리가 변했다아까 전까지는 무슨 잡음이 잔뜩 끼얹어있던 목소리였는데지금은 아주 또렷하게 공기 중으로 은연하게 퍼졌다말투 또한 바뀌었다잔잔하고 슬펐다.

 

 세하는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오른쪽 눈을 가렸다생각하기 싫은 듯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서.

 

 “매일같이 악몽을 꾸었어.”

 “...”

 “차마 말할 수 없어이제 몰랐다’ 라는 변명으로 나를 지키기에는 한계가 왔어.”

 “...”

 “그렇잖아...그 변명도 타인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것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것도 바로 나잖아.”

 

 세하가 지은 미소는 한눈에 봐도 지쳐보였다유리는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세하는 이런 유리의 대담한 행동을 별로 개의치 않아했다.

 

 세하가 아프게 웃었다.

 

 “악몽 뒤에는 가끔씩 생각했어이대로라면 난 지옥에 가겠구나.”

 “...”

 

 또각유리는 계속해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동화도 항상 그런 결말로 끝나잖아나쁜 사람은 결국 벌을 받는다라는...”

 “...”

 

 또각— 또각— 보폭이 좀 더 빨라졌다세하가 손을 얼굴에서 뗐다그리고 유리에게 씁쓸하게 물었다.

 

 “나 죽으면 정말로 지옥 가겠지?”

 “...”

 

 세하는 아마 울 것이다그렇기에 좀 더 걸음을 서둘렀다.

 

 탁-! 마지막 걸음을 앞두고 유리는 뜀박질을 했다목표는 당연하게도,

 

 “...?”

 “...”

 

 세하의 품 속철저하게 짜여진 갑옷을 입고 있어서 싸늘함만 느껴졌지만 그런 거 상관없었다어차피 얼마 전의 세하도 그랬을 텐데.

 

 유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세하는 얼어붙었다빠져나가려고 조금만 움직임을 보여도 유리가 더 억세게 껴안았다갑옷의 뾰족한 부분이 맨살을 찔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유리가 세하의 품에 안겨 고했다.

 

 “많이 생각했어널 죽여야 하나하고더스트의 말이 맞아원래대로라면 구원은 없어없기에 그런 단호한 생각을 해야 하지하지만 너도 알잖아.”

 “...”

 “난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유리가 농담조로 말했다답지 않게 웃음보도 터졌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그러다 생각나더라고나와 똑같은 상황에 처한 네가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

 “너는 나에게 검을 겨누지 않았어되러 안아주었지.”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하는 것뿐이야유리는 지금 자신이 운다고 생각했다.

 

 세하가 말했다.

 

 “참 물러터진 방식이야.”

 “네가 원조야.”

 “알아나도 그렇다는 거지.”

 

 눈물이 어느 정도 멈추었기에 유리는 그제야 세하의 품에서 얼굴을 뗄 수 있었다올려다본 세하의 왼쪽 눈은 또 다른 의미로 공허했다유리는 세하의 왼뺨을 쓸어주었다.

 

 “왼쪽 눈미안해.”

 “괜찮아.”

 

 그 말을 하면서 세하는 유리의 뺨에 생긴 상처 – 피가 나고 있었다 를 쓸어주고 있었다유리가 중얼거렸다.

 

 “이제 보니 세하...”

 

 많이 달라졌네생각보다 무심한 평이다물론 유리의 기억 속에 있는 세하는 고등학생 시절이었고지금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다른 건 당연하다그냥 유리가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이 궁에서 고립된 시기가 제법 길었다는 것과 그 긴 시간동안 홀로 둔 세하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올 수 없어서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껴안았다서로를 안느라 두 사람이 내려놓은 검은 공기 중으로 입자가 되어 사라졌다.

 

 어디서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린 거 같았다.

 

 반란은끝났다.(The Rebellion is Over)






[작가의 말]


https://leesehaxseoyuri.tistory.com/122


본래는 엔딩이 유리가 세하를 찌르는건데...(2) 쓰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대략적인 엔딩이 마무리 되었네요. 외전은 언제 공개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써보고 싶은 것이 조금 있더라고요. 그것이 시리즈물이 될지, 단편으로 끝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전자 확률이 높긴 하지만)

요즘 씁쓸한 다크초콜릿 같은 소설만 써서 다음번 세유는 오랜만에 달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4-10-24 23:22:03에 보관된 게시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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