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다(9)
건삼군 2018-11-21 0
뒤로 우습게 넘어진 상태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짐한 그 순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그대로 일어나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하였다.
“앞으로는 마주칠일 없을거야. 행복하게 살아.”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는 뒤를 돌아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잠시 나를 멈추려는듯 손을 뻗었지만 이내 손을 천천히 내리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나가는 나를 보내주었다.
그래. 이러면 되는거다. 얼마나 쉬운 일인가. 이제 그녀는 나를 기억할 필요 없이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행복을 가져다줄 사람을 언젠가 만나겠지. 그러니, 그냥 이대로 나는 너의 곁에서 떠나야 겠다. 그게 너와 내가 슬퍼하지 않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그런데, 분명 이게 최선의 선택일텐데, 어째서 이렇게 가슴이 시린것일까.
너무나도 아프게 시려오는 가슴 떄문에 발걸음을 멈춘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문앞에 서있던 그녀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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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밤 10시가 넘아가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잠잘곳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거리를 떠돌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던 나지만 결국 아무리 걸어봤자 내가 내가 있을수 있는곳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걷는것을 그만두고 바로 근처에 있던 편의점 안에 들어갔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에 배가 고팠기에 편의점에서 뭐라도 먹기로 한 나는 현재 가지고있는 전재산인 1만원 한도 내에서 먹을것들을 고르기 시작하였다.
컵라면을 먹을까, 아니면 찐빵을 먹을까, 아니면 그냥 핫도그나 시켜서 먹을까 생각하며 편의점 안을 둘러보던 나는 결국 가장 싸고 간단한 컵라면을 먹기로 하고는 때마침 선반에 딱 하나 남아있던 컵라면을 사기 위해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컵라면을 원했던것은 나 말고 한명 더 있었는지 내가 컵라면을 집은 동시에, 내것이 아닌 또 다른 손이 컵라면을 거의 동시에 집었다.
대체 누구길래 이런 지치고 굶주려서 없는 돈으로 컵라면을 사먹으려는 나를 방해하는 걸까 생각하며 나는 상대방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내가 잘 알고있는 푸른 머리와 푸른 눈, 그리고 더러운 인상을 지닌 남자가 서있었다.
그의 이름은 나타. 난폭한 성격과 딱 봐도 더러운 인상을 가진 싸움광이다. 그런데 왜 이녀석이 이 늦은 시간에 이런데에 있는거야?
“저기... 내가 먼저 골랐는데...”
그래도 일단은 저 녀석은 날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에 나는 최대한 정중히 말하며 양보를 구했다. 하지만 역시 그 성격은 어딜 가지 않았는지 나타는 그 특유의 사람 열받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앙? 내가 먼저 골랐거든? 그러니까 순순히 놔라 이세하.”
하하.. 역시 저 성격은 그대로군. 그래도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걸 보면 많이 부드러워 졌다니까...
아니, 잠깐만. 뭐?
“...다시한번 말해봐.”
“뭐? 순순히 놓으라고 말한거?”
“아니아니 그거 바로 다음부분.”
“뭐, 이세하 라고 말한거 말이냐? 뭐야. 너 맨날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짜증나게 하더니 정작 이름으로 불리니까 꼽냐?!”
뭐야...? 날 기억하고 있잖아? 뭐가 어떻게 된거지...?
“나타~ 컵라면 산다면서 왜 그렇게 서있어?”
그렇게 어쨰서 나타가 나를 기억하는 것에 당황하던 와중, 갑자기 나타의 뒤에서 활기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우 익숙한 모습의 여우귀가 달린 노란색 후드점퍼 입고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소영. 분식점 여우네의 주인이자 현재는 따로 가게를 차린 그녀는 웃으면서 다가와 나타의 등을 장난치듯 후려쳤고 이내 나를 보고는 간단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다음 나타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타, 아는사람이야?”
“뭐? 아는 사람이라니, 누구?”
“저 사람. 바로 네 앞에 서있잖아?”
“이세하 말이야? 너 지금 장난하냐? 알고자시고 너도 잘 알고 있는 녀석이잖냐?”
“...정말? 나 저 사람을 보는건 오늘이 처음인데...”
아무래도 나를 기억하는건 나타뿐인 것 같다. 소영누나는 나를 처음본것인 마냥 대하는걸 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타또한 아직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꺠닿지 못했는지 나타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소영누나에게 나를 대했던 것 보다는 5배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야, 오늘 만우절도 아닌데 왜 그런 뻔한 농담을 하고 그러냐?”
“응? 농담이라니?”
“너 방금 저녀석 이랑 처음 만나는 거라고 했잖아?”
“응. 그런데? 그거 농담 아닌데?”
“뻥치지마. 내가 무슨 바보인줄 알아? 네가 저녀석을 모를리가 없잖아.”
“뻥 아닌데... 진짜 모르는데... 나타 너 외부차원에 임무를 다녀와서 피곤해진거 아니야?”
“아니거든! 난 이정도로 피곤해 하는 나약한 녀석이 아니거든!”
외부차원. 설마 그런건가. 나타가 나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한동안 외부차원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돌아와서 인가. 그떄문에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거고.
어째서 나타가 날 기억할 수 있는지 알아내었지만 그런 것 보다는 누군가 날 기억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기에 그대로 소영누나와 이야기 하고 있던 나타에게 잠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짧막하게 말하고 붙잡고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왔다.
“할 이야기가 뭔데?”
“너, 나 기억하지?”
“그거야 당연하지.”
“내 이름은?”
“아까 말했잖아. 이세하 라고.”
“내 나이는?”
“24살.”
“내 키는?”
“몰라.”
“그럼 내 옷 사이즈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여기 바로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느끼자 나는 그대로 나타에게 달려들며 안기려 했다.
Hainsman님의 작품을 허락을 맡고 대신 업로드한 것입니다